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98화 (98/117)

99화 용사의 모험은 계속된다 (2)

“저 무례한 녀석은 대체 누구냐!”

“구원자입니다, 폐하.”

“구원자라고? 저 녀석이?”

침입자의 등장에 목소리를 높였던 황제는 그 말에 상대의 복장을 훑어봤다.

현대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백한영은 딱 보기에도 이 세상 사람과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다.

행색을 보니 진짜 구원자가 맞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황제가 할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황제는 짐짓 엄중한 목소리로 백한영에게 말했다.

“구원자여, 우리의 세상을 도와주러 온 것인 만큼 그대의 무례를 용서해 주겠다. 하나 이 위급한 시기에 자리를 비운 건 칭찬해 주지 못하겠군.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지? 만일 구원자 역할을 맡기 싫은 거면 지금 말해라,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

“어… 마신이 부활했잖아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자리를―.”

“그래서 해결하고 왔어요.”

“……?”

황제가 머릿속에 갈고리를 띄웠다.

지금 구원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장난치는 것이냐?”

“이런 걸로 장난치는 쓰레기는 아닌데요.”

“무슨. 마신을 이 짧은 시간 동안 처리했단 말이냐?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가 상대해야 되는 마신은 하나의 세상을 단숨에 으스러트릴 수 있는 괴물. 그런 괴물과 싸웠다면 설사 승리했더라도 세상에 여파가 생길 수밖에 없다!”

황제가 격노했다.

구원자라는 녀석이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일 났군. 기껏 찾은 구원자가 저런 놈이라니. 이 세상의 명운이 기어코 다했는가.’

그렇게 황제가 속으로 막막한 현실에 한탄했을 때였다.

백한영이 입을 열었다.

“바르세알?”

“하명하십시오.”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나서야 되는 것 아니야?”

“백한영 님께서 명하시기 전까지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친구 아주 제대로구만. 눈치가 기가 막히네? 그럼 내가 왜 불렀는지도 알겠지?”

“명을 받들겠습니다.”

기긱. 바르세알의 몸에 모자이크가 씌워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알현실에 무언가가 강림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마신이 말이다.

[내 주군에 대한 모욕을 참는 건 여기까지다. 참고하도록.]

“마, 마, 마.”

[마신 바르세알이다.]

“허어어어어.”

털썩. 황제가 옆으로 쓰러졌다.

옆에 있던 친위 기사들이 허겁지겁 황제를 붙들며 소리쳤다.

“폐하의 어전에서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그건 내게 한 소리냐, 아니면 내 주군에게 한 소리냐.]

“너한테 한 소리다, 이 괴물아!”

[나한테 한 소리였군. 그렇다면 봐주지. 하지만 말을 조심해라. 주군에게도 똑같이 무례한 짓을 한다면 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됐어, 바르세알. 원래대로 돌아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스으윽. 순식간에 은발의 미남자로 모습을 바꾼 바르세알.

전형적인 수행원의 모습으로 자신의 뒤에 선 바르세알을 슬쩍 확인한 백한영은 고개를 앞으로 하며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설마 그대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가?”

대주교가 두려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주교의 의문은 타당했다. 마신을 하인처럼 부리다니. 그런 걸 보고도 백한영을 모든 일의 흑막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아뇨. 애초에 저는 여러분이 부르지 않았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건 뭔가. 설명을 해 줄 수 있나?”

“얘를 죽이려고 했는데, 제발 살려 달라고 빌어서요. 안심하세요, 책임지고 제 세상에 데려갈 테니.”

“허어.”

대주교가 수염을 정리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오래 살긴 했군. 살다 살다 이런 광경도 보고.

은퇴해야겠어.

그렇게 대주교의 삶에 자기도 모르게 큰 영향을 끼친 백한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상은 언제 받을 수 있죠?”

“보상 말인가. 그렇군. 너무 충격적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마신을 해결한 거니 보상을 줘야지.”

“얼른 주세요. 해야 될 일이 많거든요.”

백한영의 말에 대주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뮬리안, 저자를 성검의 방으로 안내해 줘라.”

“아니, 이미 마신이 해결됐는데 성검을 줘도 돼요?”

“성검은 1,000년 전부터 이날을 위해 준비된 것. 쓸모를 다했으니 처리하든 아니면 주인을 찾아 주든 해야지. 나는 후자를 택했네만, 받기 싫다면 말하게, 상관없으니.”

“준다는데 거절하는 성격은 아니라. 가시죠.”

“뮬리안.”

대주교의 명령에 뮬리안은 알현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를 따라 이동한 백한영은 곧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예요?”

“기다려라.”

뮬리안이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몸에서 신성력(神聖力) 뿜어져 나왔다.

신성력이 문에 닿았다. 그러자.

끼이이이익.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자.”

“알겠어요.”

방 안으로 들어가자 폐쇄된 곳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청결한 실내가 백한영을 반겼다.

순백색의, 단 하나의 이물질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성한 공간.

그곳 중앙에, 무언가 꽂혀 있었다.

“저게 성검인가요?”

“그렇다. 자격이 없는 자는 뽑을 수조차 없는 무기지.”

“우리 세상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이런 건 어디 가나 비슷한가 봐요.”

백한영이 성검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음. 한차례 성검을 훑어본 백한영은 이내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스릉. 아무 저항 없이 대리석에서 뽑히는 성검.

우웅―!

드디어 주인을 만났다는 듯 공명하는 성검의 날을 쓸어 준 백한영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좋은 무기네요.”

“그런가?”

“네. 좋은 무기예요. 사람들이 좋아하겠어요.”

“마음에 든 것 맞나? 말투가 영 아닌데?”

“아뇨. 마음에 들진 않아요.”

좋은 무기다. 얼핏 들어선 칭찬일 수 있지만, 백한영에게 이건 칭찬이 아니었다.

이건 확실히 ‘무기’로서는 훌륭한 도구였다. 하지만 이게 ‘검’으로서 훌륭한 도구냐고 묻는다면, 백한영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었다.

이 성검에 담겨 있는 엄청난 힘은 사용자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겠지만, 예전에도 말했듯 백한영에게 그런 건 거치적거리는 요소일 뿐이었다.

검은 검답게 튼튼하고 날카로우면 됐지, 쓸데없는 기능은 왜 자꾸 넣는 거야.

얘를 어쩌지. 다시 대리석에 꽂아 넣을 수도 없고.

성검아, 혹시 너는 변신 기능 없니?

…….

열심히 공명하던 성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성검에 변신 기능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난 이미 청심이 있는데, 검을 두 개나 들고 다니긴 좀.

진짜 처치 곤란이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처음엔 믿지 않았던 뮬리안이었지만, 백한영의 표정을 보자 그가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마신조차 하인으로 부리는 사람인데, 성검 같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겠지.

백한영은 성검을 일단 허리춤에 착용했다. 얘를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래서 보상은 어떻게 받죠?”

“신께서 주시지.”

“지금 받을 수 있나요?”

“당연하지. 따라와라.”

* * *

백한영은 뮬리안과 대주교를 따라 대성당 안으로 입장했다.

대성당 안의 풍경은 웅장하고 성스러워 들어온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백한영에겐 보상을 처리하는 곳에 불과했다. 비유하자면 용병 길드인 것이다.

대충 아무거나 받고 길드원들이나 굴리러 가야겠다.

“그럼 부탁합니다.”

“알겠네.”

백한영의 말에 대주교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직후.

그의 몸에 한 줄기의 서광이 닿았다.

“파르니안 님, 구원자가 당신을 뵙길 원합니다.”

[…….]

“파르니안 님?”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던 대주교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대주교가 백한영을 흘긋 보더니, 뮬리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혹 자네에겐 어떤 얘기가 없으신가?”

“잠시.”

이번엔 뮬리안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서광이 대주교에서 뮬리안에게로 옮겨 갔다.

“파르니안 님?”

[…….]

“네. 듣고 있습니다.”

[…….]

“아, 네.”

약간의 대화가 오간 후, 뮬리안이 백한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뮬리안이 말했다.

“혹시 자네 바쁜가?”

“바쁘죠. 뭔데요, 대체. 보상을 못 주겠대요?”

“아니. 그건 아니라네. 보상은 진즉 준비돼 있었으니. 다른 문제 때문이네.”

“무슨 문제길래 그래요.”

백한영의 말에 뮬리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님께서 화를 내지 않을 거냐고 묻는군.”

“들어 보고요.”

“자네의 고향, 지금 못 돌려보내 준다는군.”

“…뭐?”

백한영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심각한 뮬리안의 표정을 보고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아니, 그건 약속과 다르잖아요. 뭐 하자는 거예요.”

“미안하다고 하시는군.”

“보상, 그거 안 받아도 돼요. 지금 당장 돌려보내 주세요.”

“불가능하다는군.”

“와.”

백한영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와서 딴소리라니. 화가 났다.

“이유가 뭔데요. 타당한 이유가 아니면 저도 못 참아요.”

“자네가 너무 빨리 해결했다고 하는군. 차원 문을 다시 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모양이야.”

“그걸 말이라고 해요?”

“신님도 억울한 듯하다. 제약 때문에 반년에 한 번 차원 문을 열 수 있는데, 설마 반년 안에 마신을 쓰러트릴 줄은 몰랐다, 라고 하신다.”

백한영이 이마를 짚었다.

설마 이런 이슈가 있을 줄이야.

아니, 잠깐만. 굳이 신을 통해서 내 차원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

백한영이 바르세알을 바라봤다.

최근 백한영이 쓰러트린 마법사도 차원을 넘어 지구에 왔었다.

그 녀석이 딱 바르세알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르세알도 차원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건데.

“열 수는 있지만, 준비에 시간이 걸립니다. 아마 저쪽에서 말한 반년보다 오래 걸리겠죠.”

“돌겠네.”

백한영이 간과한 것 하나.

그가 쓰러트린 유르시는 평범한 중급 신이 아닌 인과율의 사도였다.

무슨 말이냐.

평범한 중급 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유르시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준비 없이 차원 문을 연다든가.

아.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고 올걸.

세상을 위협한다던 마신은 처음 보는 놈이고, 차원 문은 반년에 한 번 열 수 있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는데.

마신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그만.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PTSD 같은 거라고. 마신 리바인드를 어떤 개고생을 하며 쓰러트렸는지 아는 놈들은 나를 이해해 줄 텐데.

억울하다, 억울해.

백한영이 한숨을 푹푹 쉬자 바르세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한영 님은 차원 문을 못 여십니까?”

“검사가 차원 문도 열고 세상도 베면 마법을 왜 배워, 검이나 익히지.”

“확실히 그렇군요.”

“사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차원 문도 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여기서 강해지는 게 빠를까,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게 빠를까.”

“이해했습니다.”

하아. 숨을 내뱉은 백한영은 이내 뮬리안과 대주교를 바라봤다.

“보상 목록이나 불러 보세요, 얼른 받고 방법이나 찾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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