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96화 (96/117)

97화 선택받은 용사 (3)

“가기 전에 두 가지만 물을게요.”

“얼마든지.”

“가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죠?”

“당연하다. 설마 데려와 놓고 안 돌려보내 주려고. 그것뿐이냐? 만약 마신을 쓰러트려 준다면 신께서 그대의 소원 또한 들어줄 것이다.”

“소원 같은 건 필요 없지만, 준다니 챙겨 가긴 할게요.”

준다는 걸 굳이 거절하는 성격이 아닌 백한영은 이내 두 번째로 궁금해했던 걸 물었다.

“시간은 어떻죠? 이 세상과 당신의 세상 시간이 괴리돼 있지는 않나요?”

“으음? 그렇진 않다. 내가 알기로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걸로 아는데, 왜 그런 걸 묻지?”

“이미 한 번 경험해 봐서. 아무튼 좋아요. 두 가지에 문제가 없다면 망설일 필요 없겠죠.”

마음을 굳힌 백한영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후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른 차원으로 떠나기 전, 이 세상에서 벌여 놓은 일을 어느 정도 수습해야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한영이 길드원들과 백은하에게 이런저런 문자를 돌리고 있을 때, 홍유진이 조심히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홍유진은 백한영이 얼마나 뛰어난지 몰랐다.

해 봤자 S급, 혹은 그보다 약간 위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 타 차원으로 가 마신인지 뭔지를 쓰러트리겠다고 한 거다.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안 괜찮으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어요.”

마신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백한영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한 발짝 앞으로 걷지 못했다면 마신을 쓰러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마신은 강하고, 끈질기고, 소름 끼치는 놈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나서는 게 중요했다.

부활을 저지하는 게 베스트였고, 저지하지 못하더라도 부활 직후에 몰아붙여서 쓰러트려야 했다.

만일 마신이 부활을 마친 후 모든 힘을 회복하면 절대 쉽게 쓰러트릴 수 없을 테니까.

어차피 마신이 부활해도 타 차원의 일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른 세상의 일인 이상 어떤 위험한 놈이 부활하든 백한영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이게, 부활하는 놈이 마신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다.

마신은 백한영의 대적자. 운명이 점지해 준, 저울의 반대편에 놓인 상대.

부활한 마신이 모든 힘을 회복한 후 백한영을 찾아올 건 뻔하디뻔한 얘기였고, 그때 가서 고생할 바에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지금 움직이는 게 맞았다.

“괜히 귀찮은 일을 가지고 온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좋았어요. 마신이 부활하는 걸 모르고 있다가 당했으면 어지러울 뻔했거든요.”

홍유진을 칭찬해 준 백한영은 뮬리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준비됐어요.”

“알겠다.”

백한영의 말에 뮬리안은 품속에서 신기하게 생긴 보석을 꺼내 깨트렸다.

직후.

우우우웅―!

허공에 차원 문이 열렸다.

백한영은 차원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갑시다.”

* * *

트리비안 대륙의 반을 지배하는 통일 제국 아필드, 그곳의 수도 대성당 안에 차원 문이 생겨났다.

차원 문 안. 거기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백한영이었다.

“이야. 하다 하다 판타지 세상에 오네.”

자신의 인생도 참 다이내믹하다고 생각하며 백한영은 뮬리안에게 물었다.

“그래서, 마신교의 본거지는 어디에 있죠?”

“여기서 꽤 먼 곳에 있다.”

“먼 곳 어디요.”

“대륙의 최북단. 눈과 얼음이 덮인 곳이지.”

뮬리안의 말에 백한영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백한영에게 뮬리안이 말했다.

“차원을 넘느라 피곤하겠지만 잠깐 시간을 내주게, 황제 폐하와 대주교님을 찾아뵙고 자세한 얘기를 들어야 하니. 그리고 성검도 받아야 되지 않나?”

“제가 검을 안 쓰면 어쩌려고 성검을 준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하죠.”

“왜 그러나? 역시 피곤한가? 그러면 오늘은 쉬고 내일 만나도록 하지.”

“아뇨. 그 얘기가 아니라, 적의 본거지를 알았는데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

당장 마신교의 본거지로 쳐들어갈 생각이었던 백한영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뭐야.’

백한영이 고개를 들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아주 먼 곳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끔찍한 기운을 느낀 건 뮬리안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벌써 신성의 파편을 전부 모은 건가. 마신교 녀석들, 굉장히 빠르군.”

나직이 중얼거린 뮬리안이 이내 백한영에게 말했다.

“미안하군. 아무래도 이미 마신이 부활한 모양이야. 오늘은 쉬게 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겠군. 어서 폐하와 대주교님을 만나 뵙고 성검을―.”

“아니,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뭐?”

“기다려 봐요, 금방 갔다 올 테니.”

백한영이 앞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러자.

세상이 빙글 돌았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륙의 최북단. 그곳 상공에 등장한 백한영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고 했다. 부활하기 전에 쓱싹하려고 했는데, 쉽게 당하진 않는다는 거지?”

탓. 허공을 박찬 백한영의 몸이 마신교의 본거지를 향해 낙하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목적지로 향하던 백한영은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어마어마한 기운이긴 한데, 마신이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됐던가.

이제 부활을 막 해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콰아아앙!

천장을 박살 내며 마신교의 본거지에 진입한 백한영은 몸을 바로 했다.

“많다, 많아.”

건물 안은 이상한 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근데 쟤네는 뭐야. 인간은 아니고.

마족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너는 누구냐!”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침입자인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화륵. 분노한 마족의 앞에 검붉은 불꽃이 타올랐고.

서걱.

사라졌다.

“잔챙이들은 빠져. 바쁜 몸이니까.”

저 녀석들을 상대로는 검을 뽑기도 귀찮았다. 실제 검이든, 마음속의 검이든.

닭을 잡는 데는 닭을 잡는 칼이 따로 있는 법.

백한영은 앞으로 걸어가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쿵. 쿵. 쿵. 쿵.

백한영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족들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반죽음 상태가 된 마족들을 지나치며 백한영이 말했다.

“그럼 고생해라.”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는 이럴 때 쓰기 참 좋았다.

기껏 가르쳐 준… 이라고 하기엔 슬쩍 보고 따라서 쓰는 거긴 한데, 아무튼 천마군림보를 잔챙이 처리용으로만 쓰면 독고린이 짜증을 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 아니면 딱히 쓸모가 없는 무공이라.

그래도 아예 안 쓰는 수많은 무공에 비하면 가끔 쓰기라도 하잖아.

감사히 생각해야지, 검신이 써 주는데.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조용해.’

백한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가로막는 잔챙이를 전부 처리했으니 조용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가 어디 보통 곳인가. 무려 마신이 부활한 장소인데, 이토록 조용한 게 너무나 이상했다.

자기가 아는 마신이면 천마군림보를 쓰기도 전에 등장해 크게 무언가를 저질렀을 테니까.

아무리 막 부활해 약해진 상태라고 해도.

어차피 백한영을 상대로 도주는 불가능했다. 검신을 상대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그렇기에 백한영이 원래 알고 있는 마신은, 상대가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 백한영이 부활한 마신을 실제로 만나고 마음을 다잡기 전에 수작을 부릴 게 분명했건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부활해서 감이 떨어진 건가. 내가 아무리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이 가장 승률이 높을 텐데.

혹시 조금이라도 힘을 회복한 후에 싸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건가.

만약 그러면 도주했어야지. 아무리 나한테서 도망치는 게 불가능해도 시간을 벌 수는 있는데. 왜 떡하니 여기에 남아 있는 거지.

게다가.

백한영은 아까부터 자신의 감각을 콕콕 찌르는 기운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기운, 막 부활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약해. 내가 알던 마신과 비교하면 더욱.

부활하면서 손실이 생긴 건가?

그렇다면 희소식이었다. 약해진 마신이라면 그다지 두렵지 않았으니까.

원래도 거의 없었던 망설임이 이걸로 아예 사라졌다. 백한영은 거침없이 건물 안을 주파했다.

‘여기인가.’

매우 커다란 방에 도착한 백한영이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커다란 의자. 그것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이처럼 좋은 날 정숙이 뭔지 모르다니. 예의를 모르는 놈이로구나.]

“…….”

[과묵한 녀석이군. 복장을 보아하니 이 세상의 사람은 아닌데. 그렇군, 네놈이 나의 대적자―.]

“누구세요?

백한영이 상대의 말을 끊으며 정색했다.

실제로 백한영은 지금 정색을 하다 못해 피까지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진짜 누구세요. 혹시 제가 잘못 찾아온 건가요?”

[뭐냐니. 그것도 모르고 여기에 왔나? 이 세상 놈들도 어설프군. 나의 대적자로 저런 녀석을 데려오다니.]

“말에 대답이나 해 주세요.”

[건방지구나. 좋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알려 주도록 하지.]

백한영의 말에 상대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마저 대답했다.

[마신 바르세알, 그것이 나의 정체다.]

“하아.”

백한영이 고개를 떨궜다.

많이 어지러웠다.

내가 찾던 마신 리바인드는 어디 가고 뭔, 저런.

고개를 바로 한 백한영이 눈가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마신이라는 칭호가 그놈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네 개도 마신이라 자칭하면 마신이 되는 거지……. 아. 오기 전에 마신 이름을 먼저 물어볼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신경 쓸 것 없어.”

백한영은 손을 휘젓고는 팔짱을 끼었다.

자신의 대적자였던, 운명을 손에 넣고 주무르던 마신 리바인드는 이곳에 없었다.

대신 마신 바머시기만 있었지.

진짜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네.

하긴, 내가 그렇게 확실히 끝장을 냈는데, 부활하는 게 말이 안 되긴 해.

아까는 쓰러트릴 때 영 찜찜했다고 하지 않았냐고?

착각이었나 봐, 리바인드 대신 바머시기가 튀어나온 걸 보면.

아무튼 리바인드가 아닌 이상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것도 좀 그런데.

어쩔까.

[나를 우롱하는 거냐!]

백한영이 자신을 무시하고 상념에 빠지자 바르세알이 분노를 터트렸다.

이 몸은 이 세상을 지배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 마신.

한낱 인간이 무시해도 될 정도로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어디 한번 실력을 보여 봐라, 나의 대적자여!]

바르세알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솟아 올랐다.

기긱. 법칙이 뒤틀렸다. 중급 신인 바르세알의 힘이 현실에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이었다.

살벌한 기운이 자신을 덮치기 직전임에도 백한영은 태연히 입을 열었다.

“고민하고 있는데 선빵을 치네.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

청심을 뽑아 든 백한영이 심상 세계를 빠르게 열었다.

그것만으로 주변의 법칙이 빨려 들어갔다.

백한영은 심상 세계에 있는 검들 중 적당한 녀석을 골라 뽑았다.

항마와 관련된 검이니 대충 먹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백한영은 검을 휘두르려 했고.

[제발 살려 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바르세알이 초고속으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여름, 아니 여기는 대륙의 최북단이니까.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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