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92화 (92/117)

93화 쿠션은 원래 푹신해요 (2)

유지아는 최근 한 길드의 소식을 모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무신련, 소수 정예?]

[무신련의 비밀, 긴급 취재.]

[무신련의 길드장 백한영에 대한 10가지 비밀.]

…요즘은 인터넷 기사도 터튜브 어그로성 영상들과 비슷해졌구나. 이게 수렴 진화라는 건가.

유지아는 그나마 나아 보이는 가장 위의 기사를 클릭해 내용을 살펴봤다.

-무신련, 소수 정예?

무신련은 최근 얘기가 많은 길드의 이름이다. 길드원인 김태식(21)이 반년도 안 돼 B급에서 S급이 된 건 이미 유명한 얘기로, 그로 인해 각성자 관계자들은…….

중략.

하지만 그렇게 대규모 인원 모집을 한 것과는 반대로 현재 무신련의 인원은 길드장인 백한영을 포함한 9명이 끝이다.

각각 S급 김태식(21), A급 최동협(20), A급 신유나(20)… D급 소냐 페도로프(11)로,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길드라고 할…….

“소냐 페도로프? 얘는 또 누구야.”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길드원이 새로 추가된 것을 확인한 유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11살짜리에게 질투를 하진 않지만, 알지 못하는 요소가 추가된 건 유지아를 불안감에 빠트렸다.

‘역시 몸이 멀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지는구나.’

옛말에 틀린 게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애초에 가까워진 적이 없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도 백한영과 길드원들은, 구체적으로 이초아가, 백한영과 가까워지고 있겠지.

나는 이렇게 방구석에서 기사만 보고 있을 때!

콰직. 유지아가 들고 있던 태블릿 PC의 펜이 반으로 갈라져 죽어 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펜을 한 박스로 사 놨으니까.

박스에서 새 펜을 꺼낸 유지아는 손 위에서 펜을 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별로 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보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대로 안 된다 해도, 어쩌지?

일단 유지아가 백한영의 길드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유지아가 가입한다고 하면 백한영이 환영이야 하겠지만, 유지아는 한 길드의 간부. 쉽게 소속을 바꿀 수 없었다.

…요즘은 간부고 뭐고 때려치우고 무신련에 들어갈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버틸 만했다.

아무튼 길드에 들어가는 게 안 된다면 다른 식으로 접점을 만들어야 됐는데, 유지아와 백한영의 접점은 매우 옅었다.

기껏해야 정부에서 실시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같이 교관을 했다는 것과 백한영의 여동생인 백은하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 정도가 끝이었다.

여동생의 친구라니. 솔직히 남은 아니어도 길드원보다 가까운 사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잖아.

방법이, 방법이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뾰족한 수가 있었으면 유지아도 진작 사용했을 것이다. 없었으니까 방에서 음습하게 기사만 스크랩했던 거지.

…….

사실 방법이 없진 않았다.

그게 살짝 그런 방법이라 그렇지.

그런데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야?

아니잖아.

결정을 내린 유지아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백한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유지아: 백한영 씨, 혹시 시간이 나시나요? 요즘 벽에 막힌 것 때문에 상담이 필요해서요.]

유지아가 마지막까지 미뤘던 궁극의 비기.

그것은 바로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무 접점이나 만든다였다.

여기선 강해지고 싶다고 하는 게 가장 무난했다. 백한영의 교육 실력은 세간에서 알아줄 정도로 유명했기에 의심받지 않을 것이었다.

띠링. 갑작스러운 알림음에 유지아는 눈을 깜빡였다.

백한영답지 않게 바로 답장이 와서 놀란 것이다.

뜻밖의 행운에 유지아는 신기해하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고개를 좌로 기울였다.

[강원도 인제군…….]

“이게 뭐지. 주소?”

갑자기 강원도 주소는 왜 찍은 걸까.

혹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지아는 순식간에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밖으로 뛰쳐나가 차에 올라탔다.

“같이 여행이라도 가자는 건가?”

* * *

“어디 여행이라도 가세요?”

“…….”

“이상하다. 백한영 씨에게 받은 문자는 훈련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마중 나가 달라는 거였는데, 휴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초아의 말에 유지아는 선글라스를 벗어 목덜미에 꽂았다.

유지아가 도도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여기서 훈련을 하면 된다고요?”

“밀짚모자라도 벗고 말하지 그래요? 원피스는 또 왜 입었어요. 그러고 훈련받게요?”

“…….”

그러나 아무리 도도한 표정을 짓는다 해도 옷차림에서 설렘이 가득 묻어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훈련받을 생각은 하나도 없는, 하와이에서나 볼 수 있는 패션이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그렇게 말한 유지아는 자신의 차로 들어가 우당탕탕 난리를 피우더니,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돌아왔다.

강해지고 싶다고 말한 게 시작인 만큼 그에 대한 준비도 해 놓긴 했다.

“가시죠.”

“참고로 백한영 씨는 여기 없어요.”

“가시죠.”

단호한 유지아의 말에 이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녀를 던전 게이트 안으로 안내했다.

“여긴?”

던전 게이트 내부를 확인한 유지아는 나직이 감탄했다.

중견 길드의 임원인 유지아는 이 업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일반인보다는 물론이고 웬만한 각성자보다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런 유지아도 이런 건 처음 봤다.

“월드 타입 던전 게이트를 수련장으로 쓰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이게 어떻게 되죠?”

“저도 몰라요.”

당연하게도 월드 타입의 던전 게이트를 발견하자마자 관계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활용하는 법을 찾는 것이었다.

월드 타입 던전 게이트는 자체적인 생태계가 조성돼 있고, 심지어 넓기까지 했다.

이건 잘 이용하면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실험을 실컷 하는 등의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는데.

아쉽게도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단 한 명도.

그 이유는 간단했다.

던전 게이트는 애초에 그런 곳을 하라고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던전을 점령하고 있으면 수호자가 나타날 텐데요?”

“어떻게 잘 해결했나 봐요.”

“단순히 수호자의 행동을 막는 것 정도로는 위험도도 크고, 애초에 차원 에너지 때문에 마법적인 봉인이 잘 되지도 않을 텐데.”

“저한테 말해도 몰라요. 백한영 씨가 한 거라.”

이초아의 심드렁한 말에도 유지아는 눈을 빛내며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역시 백한영 씨!’

백한영이 잘난 게 동생 친구의 입장에서 왜 신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많이 신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유지아는 던전 내부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고.

콰아아앙!

갑작스러운 폭음에 몸을 움츠렸다.

그런 유지아를 보고 이초아가 말했다.

“다 비슷한 반응이네요.”

“네?”

“아니에요. 훈련 중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저게 훈련이라고요?”

다이너마이트 폭파 실험이 아니라?

“네. 안 믿기시면 한번 보실래요?”

“그래도 돼요?”

훈련이라는 건 원래 외부에 보여 줄 수 없는 비밀스러운 것 아니었나.

그런 걸 외부인에게 보여 준다고?

뭐지. 설마 백한영 씨가 나를 외부인으로 생각 안 하는 건가?

“훈련 자체는 보여 줘도 상관없대요. 배우고 있는 무공이 중요한 거라.”

“…쯧. 가시죠.”

작게 혀를 찬 유지아는 이초아를 따라 훈련이 진행 중인 공터로 향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저게 훈련이 맞다고요?”

서커스가 아니라?

바위만 한 나무 공이 하늘을 빠른 속도로 유영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발판을 밟으며 나무 공을 피한 최동협은 재차 날아드는 나무 공을 향해 장저를 내질렀다.

콰아앙! 나무 공이 낙하하면 땅이 흔들렸다.

훈련이라기보다 묘기에 가까운 행위를 반복하는 최동협. 그런 그의 등에 커다란 나무 공이 꽂혔다.

퍽! 나무 공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최동협.

끈 떨어진 연처럼 땅으로 낙하하던 최동협이 땅에 닿기 직전, 그의 몸이 느려지더니 사뿐히 바닥에 쓰러졌다.

미동도 없이 땅에 널브러진 최동협을 보며 유지아가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움직이는데, 괜찮은 것 맞아요?”

“기절한 것뿐이에요. 괜찮아요.”

“…기절하면 안 괜찮은 것 아닌가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백한영 씨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백한영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순식간에 상식을 개조한 유지아는 아직도 허공을 날아다니는 나무 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이초아에게 물었다.

“저도 저런 훈련을 하나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듣기로는 저랑 비슷한 훈련을 할 거라던데요?”

“어떤?”

“대련이요.”

이초아의 말에 유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훈련은 자신이 없었지만, 대련이라면 충분히 할 만했다.

그나저나 백한영 씨랑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이따가 대련하면서 근황이라도 물어볼―.

“아. 참고로 대련 상대는 저예요.”

“네?”

“백한영 씨가 워낙 바빠서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훈련의 원래 의도는 해치지 않으니 걱정 마요. 훈련의 개요가 한 단계 위의 상대와 대련하며 실력을 키우는 건데, 유지아 씨랑 저랑 등급이 딱 한 단계 차이잖아요? 매우 적절한 상대라는 거죠.”

“…이 안 얌전한 고양이가.”

유지아가 이를 바득 갈았다.

대놓고 수작을 부리는 이초아를 보니 속에서 열불이 뻗쳐오르는 것이다.

거친 숨을 내쉬는 유지아에게 이초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고양이 상이긴 해요.”

“내가 뭐가 이쁘다고 직접 대련을 해 준다고 해요? 뭐지? 사실 날 좋아했나?”

“어머. 이제 알았어요? 제가 유지아 씨를 참 좋아해요, 안 걸리적거린다는 의미에서.”

귀찮은 걸로 치면 한유림이 더 귀찮지, 유지아는 뭐, 큐트했다.

백한영과 접점이 아예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

“유지아 씨? 지금 당장 대련이 가능한데 어쩌실래요?”

그 말에 유지아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로 향했다.

이초아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유지아 씨? 어디 가세요? 포기했어요?”

“내일 봐요.”

“내일 보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초아가 어이없어했지만, 유지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취급을 당할 것 같아?’

유지아는 현재 꼭지가 돌아간 상태였다. 이미 누가 뭐라고 하든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한 단계 위의 상대와 대련을 해야 된다고?’

그 말인즉, 유지아가 이초아와 같은 S급이 되면 더는 그녀를 볼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우웅―!

유지아가 마나를 끌어 올렸다.

눈이 돌아간 유지아를 막을 사람은 일단 여기엔 없었다.

쩌저저적!

거대한 얼음의 꽃이, 유지아를 중심으로 끝없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초아 그 인간을 내 눈앞에서 치우고 만다. 반드시.’

* * *

하루 후. 유지아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이초아의 앞에 섰다.

유지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SS급이신가요? 죄송한데 S급이 돼 버려서, SS급이 아니면 훈련이 안 될 것 같아요.”

“하루 만에 S급이 됐다고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착각한 게 아닐까요? 와 보세요, 확인해 볼 테니까.”

그렇게 이초아와 유지아가 대련을 시작했다.

짧은 대련이 끝난 후, 숨을 몰아쉬며 이초아가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네.”

여자의 힘(분노)은 참으로 엄청났다.

유지아, S급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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