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83화 (83/117)

84화 보이 밋 걸은 클래식입니다 (2)

“우선 아셔야 되는 게, 저는 각성자가 아니에요.”

“각성자가 아니라고요?”

“말했잖아요, 흡혈귀라고.”

유하나는 최동협에게 흡혈귀가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진조(眞祖) 님에게 힘을 받아 인간에서 흡혈귀가 된 거예요. 각성자랑은 많이 다르죠.”

“진조? 그런 게 이 세상에 있어요?”

“있더라고요.”

게이트가 생긴 뒤로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흡혈귀 같은 지성체는 보기 힘들었다. 힘든 걸 넘어 최동협은 그런 게 있다는 얘기조차 들어 본 적 없었다.

진조라. 그냥 흡혈귀들의 대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겠지?

“일단 알았어요. 그래서 왜 쫓기신 거죠?”

“…혹시 요즘 떠들썩한 얘기 아시나요?”

“흡혈귀 살인 사건이요?”

최동협이 유하나를 훑어봤다. 쫓기고 있어 데리고 오긴 했지만 유하나도 흡혈귀. 경계의 대상이었다.

최동협이 경계하는 걸 확인한 유하나가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어요.”

“무슨 오해요. 설마 그것들이 흡혈귀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건가요?”

“아뇨. 그것 말고 흡혈귀가 모두 똑같은 생각일 거라는 오해를 말하는 거예요.”

다른 인간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조용히 살아가던 자신도 똑같은 취급 받으면 억울한 것처럼, 흡혈귀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고 유하나는 말했다.

흡혈귀는 종족의 이름일 뿐. 단체의 이름이 아닌 것이다.

“저는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살인하는 걸 반대해요. 실제로 반 이상의 흡혈귀가 저랑 비슷한 생각일 거예요.”

“살인은 필요해서 하는 게 아니었어요? 피를 마셔야 되잖아요.”

“그랬으면 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졌겠죠. 피가 필요한 건 맞지만 사람 하나를 죽이면서까지 필요하진 않아요. 혈액 팩만 있어도 식사는 되고, 맛은 없지만 동물 피를 마셔도 약간은 해결이 돼요.”

“그러면 왜?”

“살인이 생존에 필요한 행위는 아니지만 다른 곳엔 필요하거든요”

잠시 숨을 고른 유하나는 흡혈귀의 특성을 최동협에게 알려 줬다.

“생존이 목적이라면 혈액 팩 정도면 충분하지만 강해지기 위해선 그 이상이 필요해요.”

“그 이상이라면?”

“생명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는, 막 죽은 인간의 신선한 피.”

그리고 이것이 여태까지 일어난 무차별 연쇄살인 사건의 원인이었다.

더욱 강해지고 싶은 건 생명체의 본능이었다. 물론 얼마 전까지 인간이었던 만큼 흡혈귀가 됐다 해도 살인을 하면서까지 강해지고 싶은 사람은 적었지만, 여기서 다수의 법칙이 적용됐다.

사람이 모이면 늘 쓰레기가 있다는 그 법칙이 말이다.

흡혈귀의 숫자만 약 100명. 당연히 그중에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강해지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간에서 흡혈귀가 되면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긴다. 종족 자체가 달라지는데 인간 시절의 가치관을 유지하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러한 이유로 몇 명의 흡혈귀들은 강해지기 위해 사람을 죽였고, 그것이 연쇄살인 사건으로 떠오른 거다.

흡혈귀가 살인을 하면 그 흔적은 대부분 비슷했다. 시체에 피가 사라지고 목에 송곳니 구멍이 남는다.

때문에 모든 살인이 동일범의 소행으로 취급된 것이다. 실제로는 한 흡혈귀당 한두 명 죽인 게 끝이지 않을까.

흡수한 생명력을 갈무리하기 위한 시간이 없었다면 더 많이 죽였겠지만, 아니었기에 흡혈귀당 죽인 사람의 숫자가 제한된 것이다.

“흡혈귀가 100명이나 된다니. 여기가 지구인지 판타지 세계인지.”

“판타지 세계가 된 지 좀 됐죠. 대충 7년 정도요.”

“그래요. 미친 흡혈귀들이 살인을 저지른 건 알겠어요. 그래서 그거랑 유하나 씨가 쫓기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흡혈귀인 건 알았지만, 그거랑 유하나의 관계를 알 수 없었다.

최동협의 물음에 유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각성자니 아실 거예요, 아까 본 김창수와 저의 차이를.”

“유하나 씨가 압도적으로 강하시던데요.”

“저는 운 좋게 진조 님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서 처음부터 평범한 흡혈귀보다 몇 배는 강했어요. 이게 문제였죠.”

“강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강한 녀석이 더 강해져 흡혈귀 사회에 도움이 되려 하지 않고 매일 혈액 팩만 먹고 있으면 거슬리지 않을까요?”

그런 거였구나.

유하나의 설명을 전부 듣자 드디어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아까 최동협을 위협했던 김창수는 명백히 살인 경험이 있어 보였다. 즉 생명력이 가득한 피를 마시고 원래보다 강해졌다는 건데, 유하나는 그런 김창수보다 강력한 힘을 보여 줬다.

심지어 온전한 상태도 아닌 지친 상황에서 잠깐 보여 준 힘만으로 그 정도다.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잘 안 잡혔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흡혈귀가 자신의 힘을 썩힌다? 다른 흡혈귀가 보기에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방금 유하나가 흡혈귀는 종족의 이름일 뿐 개별적인 개체라고 말했지만, 최동협이 보이게 그건 반 정도만 맞는 말이었다.

유하나가 다른 흡혈귀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완벽히 개별적인 개체일 수 없는 거다.

흡혈귀의 숫자는 약 100명. 흡혈귀가 무슨 100명이나 있냐고 생각하면 많아 보이지만, 하나의 사회라고 생각하고 보면 굉장히 적었다.

거의 작은 부락 수준. 저런 곳에서는 개인의 의지는 어느 정도 묵살됐다. 그런 것 하나하나 챙겨 주다가는 다른 거대한 사회에 짓눌려 숨도 못 쉬고 깔려 죽을 테니까.

구성원이 많은 사회에서나 능력 있는 자가 그걸 썩혀도 평안 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어쩔 수 없다, 라는 태도로 넘길 수 있는 거지. 하나하나의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작은 사회에서 능력을 썩힌다?

억지로 평안 감사 자리에 앉혀야 됐다. 협박을 하든 회유를 하든.

아마 흡혈귀 사회에선 유하나가 강해지도록, 즉 살인을 하도록 권유하거나 협박했을 거다. 그 결과 그건 죽어도 싫은 유하나가 도망을 친 거고.

최동협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일이 참 복잡해 보였다.

“협회에 몸을 의탁하는 건 어때요? 거긴 저보다 강한 사람이 가득한데.”

“정부 측 기관들은 절대 안 돼요.”

“이유가 뭐죠? 유하나 씨는 살인을 안 저질렀다면서요. 그렇다면 정부를 두려워할 필요 없지 않아요? 흡혈귀라는 것만으로 이상한 짓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거면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협회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데 아직도 흡혈귀의 정체도 안 밝혀진 게 신기하지 않아요?”

뜬금없는 말에 최동협이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대충 추측은 됐잖아요.”

“하지만 확정은 안 났죠. 어디까지나 흡혈귀가 나타난 것 아닐까? 하며 반쯤 농담으로 하는 말이잖아요.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그게 왜요.”

최동협의 말에 유하나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째서 들키지 않았을까요. 아까 보셔서 알겠지만 흡혈귀들은 기본적으로 섬세하지 않아요. 오히려 거칠죠.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공원에서 날뛰다니. 들키는 순간 추적당하는 일을 하면서 참 당당하죠?”

“요컨대 흡혈귀들이 여태 들키지 않은 건 자기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도와준 사람이 있다는 거죠.”

“그게 정부라는 겁니까.”

“정확히는 정부 내부에 흡혈귀와 손을 잡은 사람이 있다는 거죠.”

최동협이 앓는 소리를 냈다.

흡혈귀만 상대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인간 측에 배신자가 있었을 줄이야.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이러면 유하나가 왜 절대 정부 측에 접근하지 않는지 이해됐다.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환경보다는 숨어 다니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최동협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다.

‘어쩌지.’

자신이 해결할 사이즈가 아니라 판단해 협회에 유하나를 넘길 예정이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협회가 안 되면 유하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는데, 그게 과연 쉬울까? 흡혈귀 전부가 유하나를 적대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수가 유하나를 잡기 위해 뭉쳤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유하나는 현재 흡혈을 하지 못해 약화된 상태. 안 그래도 힘든 싸움이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렵네요.”

“그래서 신경 끄고 가라고 했잖아요. 타인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뭔가 방법은 있나요?”

별 기대 하지 않고 최동협이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유하나의 계획을 들어 보기는 하자는 심정으로 물어본 거지, 정말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유하나에겐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던 모양이었다.

“어떤 방법이죠?”

“이 모든 건 진조 님이 심처에 틀어박혀서 생겨난 일이에요. 애초에 진조 님은 인간과 조화로운 삶을 살라고 했지, 이런 식의 방식은 용납하지 않았어요.”

진조는 아무 사람이나 흡혈귀로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이 딱한 사람. 그중에서도 자발적으로 흡혈귀가 되고 싶은 자만 흡혈귀로 만들었다는 듯했다.

즉 진조는 온화한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모든 흡혈귀는 진조의 명령을 따르니 심처에 틀어박힌 진조만 밖으로 끌어낼 수 있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는 게 유하나의 설명이었는데.

“진작 그랬으면 되지 않아요?”

“심처를 살인에 찬성하는 흡혈귀들이 점령해서 혼자 힘으론 힘들었어요.”

“흠.”

“하지만 그건 제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흡혈귀들이 감시했을 때의 얘기고. 지금이라면 괜찮아요. 약간의 도움만 있어도 바로 진조 님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대화가 가능한 게 맞을까?

혹시 유하나의 예상과는 달리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부탁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흡혈귀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아.”

그게 결정타였다.

흡혈귀가 벌인 연쇄살인 사건의 숫자는 점점 늘어 가는 추세였다.

이대로라면 일주일만 방치해도 희생자가 수십 명이 될지도 몰랐다.

이건 막는 게 맞아.

마음을 정한 최동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 날이 밝는 대로 움직이죠.”

“흡혈귀에 대한 설화는 대부분이 실제 흡혈귀에게도 적용돼요.”

“햇빛에 약하다?”

“죽진 않지만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져요.”

“알겠어요. 그러면 내일 밤에 출발하도록 하죠. 푹 쉬세요.”

그렇게 말한 최동협은 유하나를 뒤로한 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발신: 최동협 → 신유나]

[최동협: 문자 보면 연락 바람.]

불안한 마음에 신유나에게 문자 하나를 남기며 말이다.

내가 신유나한테 문자를 왜 보냈지. 안 바쁘면 뭐, 같이 흡혈귀나 잡으러 가자고 하게?

머리를 긁적인 최동협은 이번엔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문자를 남겼다.

[발신: 최동협 → 김태식]

[최동협: 형, 문자 보시는 대로 연락해 주세요. 상담할 게 있어요.]

백한영은 게이트 안에 있어 연락이 안 됐으니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김태식 정도가 끝이었지만, 스마트폰이 조용했다. 문자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답장이 오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야지. 언제까지 남의 도움만 받을 수는 없잖아.

이제 나는 A급이기도 하고.

탁. 스마트폰을 침대맡에 내려놓은 최동협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일 바쁘게 움직일 걸 생각하면, 오늘은 푹 쉬어야 됐다.

* * *

“정말 혼자 움직일 생각이군.”

턱을 쓰다듬으며 유르시가 중얼거렸다.

대상이 미끼를 문 건 좋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움직임을 취했다.

흡혈귀 소굴을 처음 본 여자의 말만 믿고 단신으로 침투하려 하다니. 아무리 주변에 연락을 돌리긴 했다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보통은 도움을 요청했으면 연락이 닿을 때까지 기다리지, 연락이 안 된다고 혼자 침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아예 연락을 안 돌렸다면 살짝 계획이 꼬였겠지만, 연락을 돌린 이상 가벼운 해프닝에 불과했다.

이걸로.

“계획 1단계. 미끼 완료. 다음은 김태식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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