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마법사 (1)
카드 키를 사용해 길드 빌딩에 출입한 이초아는 망설임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향긋한 커피 냄새가 이초아를 반겼다.
냄새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처음 보는 남자가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무신련의 기존 길드원과는 안면이 있었으니 아마 신입 길드원이리라.
이초아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말했다.
“커피 한잔 드릴까요?”
“…네.”
“잠시만요.”
남자, 금성화의 말에 이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가 몸이 카페인을 요구했다.
쪼르륵. 미리 내려 놓은 커피를 컵에 따른 금성화는 그대로 이초아에게 커피를 건넸다.
“일찍 오셨네요.”
“할 일이 많아서요.”
금성화의 말에 적당히 대답한 이초아는 사무실 안을 곁눈질로 살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그걸 귀신같이 포착한 금성화가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은 당분간 안 오세요.”
“네?”
“찾으시는 것 같아서요. 길드장님은 스케줄이 있으셔서 당분간 안 오실 거예요.”
갑자기 말을 거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이초아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딱히 누구를 찾은 건 아니에요.”
“어… 아니셨어요?”
“네. 제가 백한영 씨를 왜 찾아요. 그 인간이 뭐라고.”
“아. 죄송해요. 전 또 개인 연구실 때문에 찾으시는 줄 알았거든요.”
“조심 좀 해 주세요. 개인 연구실은 뭐죠?”
예상치 못한 말에 이초아가 그렇게 묻자, 금성화가 품에서 카드 키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못 들으셨나 봐요. 이초아 씨 개인 연구실이 준비돼서 전해 달라고 부탁받았는데.”
“…그러고 보니 제가 백한영 씨를 찾았던 게 맞아요. 네. 개인 연구실 때문에.”
“그쵸? 너무 두리번거려서 아무리 봐도 찾고 계신 게 맞았다니까요.”
“두리번거리진 않았어요.”
카드 키를 받아 든 이초아가 금성화에게 물었다.
“개인 연구실은 어디에 있죠?”
“5층에 있어요. 가면 바로 보일 거예요.”
“5층. 알겠어요.”
커피를 단번에 마신 후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이초아. 그걸 뒤에서 지켜보던 금성화는 손에 들린 커피를 호록거리며 중얼댔다.
“나도 신입 길드원인데 왜 훈련은 안 받고 심부름이나 하고 있는 거지?”
던전 게이트에서 개고생 중인 청진호와 배예린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했겠지만, 소외된 느낌이라 쓸쓸한 금성화였다.
딸깍. 적막한 사무실을 버티기 힘들었는지 금성화가 티브이를 틀었다.
티브이에선 광고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가라. 데뷔 직전의 아이돌 그룹이 모여 경연을 벌이는 살 떨리는…….]
딸깍. 채널이 돌아갔다.
[극한―도전.]
딸깍.
[그래, 신아. 형이 마지막으로 하나 말해 줄 게 있어. 중요한 거니까 새겨들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웃어. 결국 남는 건…….]
딸깍.
[각종 각성 범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특별 수사 팀을 꾸리기로…….]
“세상 참 흉흉하네.”
빠르게 증가하는 각성자 범죄율 그래프가 뉴스 화면에 등장하고, 뒤이어 요즘 가장 얘기가 많은 연쇄살인의 수사 진행 상황이 떠올랐다.
[각성자가 일으킨 범죄로 보이며, 수사 당국에서도 모든 여력을 쏟아…….]
금성화는 빠르게 지나가는 범죄 현장을 눈에 담았다.
피가 사라진 시체에, 이빨 자국?
“꼭 흡혈귀 같네.”
호록. 커피를 다 마신 금성화가 티브이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이 흉흉한 건 흉흉한 거고.
할 일은 해야지.
* * *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인 이현진은 깊게 연기를 빨아들인 후 내뱉었다.
거침없이 니코틴을 흡수하는 이현진의 옆에 선 이세영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다 폐 썩겠어요.”
“썩는 건 옆에서 간접흡연을 하는 너겠지. 먼저 가 보라니까.”
“현장에 혼자 들어가서 뭐 해요.”
“후우.”
반 정도 태운 담배꽁초를 비벼 끈 이현진이 고개를 까딱였다.
앞장서라는 뜻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세영은 이현진이 시키는 대로 앞장서 걸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순경과 경례를 한 이현진과 이세영은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지나쳐 사건 현장이 일어난 장소로 향했다.
깊은 숲이라기엔 뭐한 도심 근처의 숲속. 사건 현장에 들어선 이세영은 근처의 나무에 다가가 말했다.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놨네요.”
“강화계 각성자인가.”
똑같이 근처의 나무에 다가간 이현진은 발톱 혹은 손톱 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신체가 변형하는 계통인가? 이런 특이한 각성자가 특정이 안 될 리가 없는데.”
“근데 짜잔.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성자 등록을 안 한 인간인가. 골치 아프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특별 수사 팀에 합류한 것까진 좋았지만, 수사에 아무런 진척이 없다니. 골치가 아팠다.
“근처 CCTV는 다 돌려 봤지?”
“당연히 돌려 봤죠.”
“안 잡혔어?”
“잡혔으면 제가 진작 알려 드렸죠.”
“그냥 신체를 변형하는 계통의 강화계 각성자잖아. CCTV는 어떻게 피했대.”
이현진의 말에 이세영의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걸 알았으면 자기가 셜록 홈즈지. 박봉을 받아 가며 특수 대책반에 소속될 필요도 없고.
이세영의 능청스러운 반응에 이현진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설마 강화계 말고도 몸을 숨기는 각성 능력이 있는 건가.”
“다중 각성자는 최근의 그 러시아 범죄 조직 보스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에요? 그마저도 죽은 걸로 확정 났잖아요.”
“원래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야.”
이현진은 한숨을 쉬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다중 각성자가 쏟아진 후를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일반 대중에게 다중 각성자란 굉장히 반가운 존재겠지만, 특수 대책반 반장에겐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중 각성자가 저지르는 범죄를 해결할 생각을 하면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우겠지.’
아니길 바라며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 이현진은 이내 사건 현장을 다시 점검했다.
“흠.”
사건 현장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니 보이는 게 있었다.
“이유가 뭘까.”
“뭐가요?”
“왜 이런 곳에서 살인을 저지른 걸까.”
“그건 저도 모르죠?”
“아예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거면 이런 숲속이 아니라 골목길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테니 계획적이라는 건데, 계획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뭘까.”
이현진의 말에 이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그냥 쾌락 살인마가 아닐까요. 보통 연쇄살인마는 둘 중 하나잖아요.”
“무차별 살인마든가 쾌락 살인마든가 둘 중 하나지.”
“피해자 상태 보고서 읽어 보셨어요? 피가 전부 사라졌다고 하던데.”
“시체의 피를 전부 없앤다라. 어렸을 때 피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생겼나.”
시체로 이상한 짓을 하는 연쇄살인마는 여태껏 상당히 많았다.
시체를 토막 내서 장식물을 만드는 놈도 있는 와중에 피를 빼는 녀석 정도면 온건한 편이었다.
적어도 첫 발견자의 정신을 상대적으로 보호해 준다는 점에서 그랬다.
“뭔가 특이점은 없어?”
“사건 발생 지역이 중구난방이라는 것과 시체에 피가 없는 것. 그리고 피를 빼낸 곳으로 추정되는 구멍 2개가 시체에 남아 있는 게 특징이에요.”
“구멍?”
이현진의 말에 이세영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자료를 넘겨주었다.
자료를 읽은 이현진이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시체의 목 근처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근데 보통 구멍을 저런 식으로 뚫던가?
시체에 있는 피를 빼려면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게 편할 텐데. 애초에 저런 조그마한 구멍으로 시체의 모든 피가 제거된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피를 제어하는 각성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팀으로 이루어진 범죄자일 수도 있죠.”
“다중 각성 능력자보다는 그쪽이 가능성이 높겠군.”
들고 있던 자료를 옆구리에 끼운 이현진이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피해자가 가만히 당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피해자도 혹시 각성자야?”
“25살. C급 각성자라고 하네요.”
“C급이면 베테랑 라인인데, 그런 사람이 당했다고?”
연쇄살인범에 대한 위험도를 한 단계 높인 이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진이 말했다.
“이것 말고 다른 정보는 없어?”
“아직까지는요.”
“사건이 여태 몇 건이 발생했는데 이게 끝이야? 얘네는 수사를 한 거야 만 거야.”
그렇게 말한 이현진은 재차 자료를 읽었다.
빈약한 분량의 자료에 혀를 찬 이현진은 그나마 많은 현장 사진을 훑어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피가 없는 시체. 이빨 모양의 구멍.
꼭, 흡혈귀 같네?
“에이. 설마.”
“네? 반장님 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다른 팀이랑 가서 대화나 해 봐. 왜 이렇게 수사가 진척이 안 됐는지 들어나 봐야겠다.”
* * *
인천 부평. 부둣가.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
그곳에서 불콰하게 취해 부둣가를 걸어 다니던 남자가 한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고 인상을 구겼다.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
“대답 안 해? 실수를 했으면 사과해야 될 것 아니야!”
누가 봐도 실수를 한 건 술에 취해 갈지 자로 부둣가를 누비던 남자였지만, 원래 술을 먹으면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술주정뱅이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성별조차 파악되지 않는 사람에게 남자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이라도 보여 줘야 될―.”
“소란스럽네.”
사람을 홀리는 미성에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스륵. 후드가 뒤로 젖혀지고, 안에서 여자가 튀어나왔다.
남자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마치 매혹에 당한 것처럼.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지만, 심심풀이로 나쁘지 않겠어.”
여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여자가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로등 불빛과 닿아 반짝였다.
남자의 목에 여자가 입을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남자의 피부를 뚫기 위해 전진했다.
그리고.
“흡혈귀인가. 이 세계엔 그런 생물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낯선 목소리가 부둣가에 울려 퍼졌다.
흡혈귀가 다급히 몸을 돌렸다. 분명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린 탓에 당황한 것이다.
“누구냐!”
“품고 있는 마력(魔力)은 평범한데, 특수한 파장이 느껴지는군. 이 세계에서 각성 능력이라 부르던 그건가?”
“이익!”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건지 흡혈귀가 마나를 끌어 올렸다. 촤악! 흡혈귀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칼날의 형태를 갖췄다.
“죽어!”
흡혈귀가 부둣가를 박차고 낯선 목소리에게 달려들었다.
직후.
지잉―!
흡혈귀의 몸이 허공에 고정되듯 붙들렸다.
“흡혈귀, 질문에 대답해라. 너 같은 녀석들이 몇이나 있지?”
“무슨 짓을 한 거냐!”
“대답해라. 몇이나 있지?”
낯선 목소리가 재차 물었지만, 흡혈귀는 대답하는 대신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대화로 풀고 싶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나.
낯선 목소리는 작게 혀를 차고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뒤로 젖혔다.
로브 안에서 튀어나온 남자의 눈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마치 보석을 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정신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지만 협조를 안 한 건 너다. 원망하지 마라.”
남자의 푸른 눈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흡혈귀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남자가 말했다.
“말해, 흡혈귀. 너네는 총 몇 명이나 있지?”
“약 100명 정도 있습니다.”
“100명? 100명이라.”
남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면 쓸 만하겠군.”
* * *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세상에 의문을 가졌다.
신들이 뛰노는, 인간이 숨죽이고 눈치를 봐야 하는 이 세상이 과연 올바른 형태가 맞는지, 그는 의문을 가졌다.
그는 세상이 아니꼬웠다.
신들의 놀이에 휩쓸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 그런 와중에도 축복이라는 웃기는 것에 홀려 사람들이 신들을 찬양하는 것이, 그게 너무나 아니꼬워 남자는 결심했다.
이 세상을 그냥 뒤집어 놓겠다고.
남자는 마법사가 됐다. 그리고.
신화의 시대를 끝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