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면접은 중요하지 (3)
무신련 빌딩 로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섰다. 전부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로비엔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 막 각성자가 된 사람부터 S급의 벽에 오랫동안 막혀 돌파구를 찾는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이 각양각색의 목적을 가지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코 한 사람이었다.
로비 정중앙에 앉아 있던 이초아가 손거울을 꺼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이초아다.”
“이초아가 여길 왜?”
“설마 이초아도 면접을 보는 거야?”
본인들은 소곤거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다 들렸다. S급 각성자의 육체가 아니더라도 저렇게 대놓고 떠들면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초아가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꼬았다.
물론 태연한 겉모습과 반대로 속은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이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떨어트리기만 해 봐, 진짜.”
옆집 사람의 정 같은 건 치워 두고서도 나를 떨어트린다? 무언가 음모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한 이초아의 귓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면을 바라보자 아까 면접을 보러 내려간 사람들이 단체로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면접자들의 상태가 아주 가관이었다.
머리카락이 그을린 사람도 있었고, 옷이 찢어진 사람도 있었다. 뭐가 됐든 정상적인 면접을 본 사람의 몰골은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각성자 길드의 면접이라는 게 화이트칼라의 면접과는 궤를 달리했지만, 저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체 뭘까. 이초아는 곧 있을 면접이 어떤 형태일지 잠시 상상해 봤다.
저 정도로 엉망이 되려면, 음. 대련이라도 시켰나? 그렇다면 편하긴 했다. 이초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각성자가 여기에 있을 리 없었으니까.
뭐가 됐든 직접적으로 실력을 보여 주는 방식이면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탁. 이초아가 손거울을 닫았다.
아까부터 심히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다.
이초아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 힐끔힐끔 이초아를 보던 와중 눈이 마주친 거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초아가 살짝 다운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네? 아니, 당신 말고요.”
“예?”
안중에도 없던 사람의 대답에 이초아가 손을 휘저었다. 잠시 비켜 보라는 뜻이었다.
이초아가 지시한 대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에 있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에게 다가간 이초아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유지아 씨? 여긴 왜 왔어요?”
“…그러는 이초아 씨는요?”
“저야 당연히 길드에 가입하려고 왔죠.”
이초아의 말에 유지아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저도 똑같아요.”
“유지아 씨는 길드가 있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구경 왔어요, 구경.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제가 백한영 씨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뭐 그건 그렇다 쳐요. 저는 왜 자꾸 노려봐요. 스토커인 줄 알았네.”
그거야 이초아를 감시하기 위해 여기에 왔으니까.
안 들키게 몰래 봤는데, 마법사 주제에 감각만 좋아서. 가히 짐승 같은 감각이었다.
그래서 짐승같이 새치기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납득이 됐다.
“유지아 씨?”
“왜 부르시죠?”
“아뇨. 시선이 기분이 나빠서요. 할 말 있어요?”
“없는데요?”
“그래요?”
두 여자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무신련 로비에 울려 퍼졌다.
덩달아 소란스러웠던 건물 내부가 조용해졌다. 즐거워 보이는 두 여자의 대화에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져서 입을 다문 것이다.
“숨… 숨 막혀.”
“야, 조용히 해. 우리한테까지 불똥 튈라.”
…그냥 무서워서 그런 걸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초아는 저번부터 묘하게 거슬리는 유지아를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백한영을 스토킹… 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을 때도 따라왔었지.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찾아온 건가?
이초아가 알 만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유지아가 바로 쏘아붙였다.
“뭐 때문에 그러시죠?”
“별건 아니고, 백한영 씨 길드가 참 유망해 보이는데 이미 길드가 있으셔서 아쉽겠어요.”
해석) 네가 속해 있는 길드에 묶여서 백한영과 가까워지지 못할 때 나는 실컷 재미를 보겠다.
“아뇨, 그렇게 아쉽지는. 그나저나 이초아 씨는 여태까지 길드에 안 들어간 덕에 이렇게 바로 백한영 씨 길드에 들어가네요. 역시 평소의 행실이 중요한가 봐요.”
해석) 너, 성격 나빠서 단체 생활 못하잖아. 밉보이기 전에 집에 돌아가지 그래?
유지아의 말에 이초아가 더욱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을 참 재밌게 한다, 너.”
“그래요? 확실히 입꼬리 많이 올라가 계시네요. 좀 내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너무 올라가서 입가에 주름 생기겠어요. 조심하실 나이잖아요.”
“…나 아직 25살이야.”
슬슬 자신이 20대 중반인지 후반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이초아였기에 유지아의 말이 치명타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이초아가 이마를 짚었다. 현기증이 난 것이다.
‘이겼다.’
유지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다음 면접자를 부르기 위해 로비에 올라온 김태식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시끄러웠던 로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김태식은 근처의 남자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네? 아뇨.”
“정말요?”
아니었지만, 사실대로 말하기엔 남자는 이초아가 너무 무서웠다.
“아니라면 다행이지만요. 음. 그럼 다음 면접 보겠습니다! 31번부터 60번까지 차례대로 저를 따라와 주세요!”
김태식의 말에 이초아가 유지아를 노려보다 말고 자세를 바로 했다.
이초아의 면접 번호는 34번. 즉 면접을 볼 차례였다.
사람들이 전부 김태식을 따라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초아도 면접을 보기 위해 움직이다가, 자리에 멈춰 섰다.
이초아가 입을 열었다.
“왜 따라오세요?”
“말했잖아요, 구경하러 왔다고.”
“유지아 씨는 팔천 소속 아니에요? 그것도 간부로 아는데, 이렇게 다른 길드 면접을 멋대로 구경해도 돼요?”
“멋대로 아니에요. 허락 맡았어요.”
실제로 유지아는 백한영에게 면접을 견학해도 되냐고 사전에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
유지아의 부탁에 백한영은 특별한 것도 없는데 구경할 게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허락해 줬다. 유지아와 꽤 많은 교류가 있었기에 그 정도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유지아의 설명을 들은 이초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 들어가서 구경하면 되지 저는 왜 따라다녔어요?”
“우연이에요.”
이초아의 미심쩍어하는 시선을 유지아는 쿨하게 받아넘겼다.
모든 일이 이초아의 소식을 우연히 들은 것에서 시작됐으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방해나 하지 마세요.”
“…그런 짓은 안 해요.”
유지아가 말을 흐렸다.
면접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초아가 이상한 짓을 할 경우 방해할 생각은 가득했기에 살짝 찔렸다.
이초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반응이 수상해.”
“저 말고 면접이나 신경 쓰세요. 그러다 떨어지겠어요.”
“그럴 리 없어요.”
유지아와 대화를 나누며 면접실에 도착한 이초아는 고개를 좌로 기울였다.
아까 면접자들의 몰골을 보고 대충 대련장 같은 걸 떠올렸는데, 면접실엔 웬 장애물 경기장 같은 게 있었다.
‘고작 저걸 하는데 그렇게 심한 꼴이 됐다고?’
이초아가 속으로 의아해했을 때였다.
“백한영 씨.”
“아. 오셨네요.”
유지아가 냉큼 백한영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유지아의 인사를 적당히 받아 준 백한영은 이내 궁금했던 걸 물었다.
“갑자기 면접은 왜 구경하고 싶다고 하신 거예요.”
“겸사겸사요. 괜찮죠?”
“특별한 것도 없는데 괜찮죠. 어차피 기본 골자는 각성자 협회에서 교관 일을 할 때 봤던 것들이니까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유지아와 백한영을 보며 이초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심히 거슬렸다.
‘저렇게 헤집고 다니면 면접자들이 집중을 못 하잖아.’
그리고 그 이유로 이초아는 면접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라고 봤다.
절대 백한영과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왕 구경하시는 거, 고쳐야 할 점이 보이면 말 좀 해 주세요. 외부에서 보면 이상한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어요.”
“그러면.”
백한영이 면접자들 앞에 섰다.
긴장한 면접자들을 빠르게 훑어본 백한영이 말했다.
“면접 내용은 간단합니다. 지금 보이는 장애물 경기장을 10바퀴 정도 뛰시면 됩니다.”
면접자들이 긴장했던 몸을 풀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간단하잖아.
앞서 면접을 치렀던 사람들이 워낙 심한 몰골이라 내심 쫄았는데, 이거라면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면접자들. 그런 면접자들에게 백한영이 단호히 덧붙였다.
“단, 어떻게 뛰시든 자유입니다. 안전은 충분히 확보돼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면접자들이 눈을 깜빡였다.
자유와 안전. 두 가지 단어가 결합되니 무언가 떠오르는 광경이 있었다.
정적이 맴도는 면접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백한영이 툭 하고 말을 꺼냈다.
“뭐 해요. 뛰세요.”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면접실이 아수라장이 됐다.
백한영이 빠르게 면접자를 확인했다.
자, 다들 재능이 어느 정도 있나 볼까.
없음. 없음. 많이 애매. 없음. 없음. 없음. 쟤는 뭐야, 왜 하늘을 날아다녀. 보류.
흠. 이번에도 비슷하네. 기준을 많이 낮췄는데도 마음에 드는 애가 하나도 없었다.
최동협이나 신유나급이 그렇게 희귀한가. 걔네가 그 정도였다고?
슬슬 자신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의문이 생긴 백한영이 유지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각성자 업계에서 많이 구른 유지아라면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유지아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왜 저래, 저 사람은.
“유지아 씨?”
“네?”
“어떤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해 드려요?”
“네.”
백한영의 말에 유지아가 짧게 심호흡을 하곤 말했다.
“살짝 이상하긴 한데, 나쁘진 않아 보여요.”
“그래요?”
“근데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요.”
“아. 안전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아뇨. 그것 말고요.”
아니라고? 안전 문제 말고 또 조심할 게 있나? 하는 표정을 백한영이 지었을 때였다.
화륵. 이초아의 머리카락이 마나에 감응해 둥실 떠올랐다.
어마어마한 마나가 이초아의 주변에 모였다. 단번에 면접자들을 전부 날려 버릴 준비를 하는 이초아. 예상했던 광경에 유지아가 나직이 말했다.
“면접자들 사이에 이초아 같은 게 껴 있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보여 주기도 전에 면접이 끝날 수도 있잖아요.”
“아하.”
바로 이해가 됐기에 백한영이 빠르게 이초아에게 달려갔다.
“이초아 씨! 이초아 씨는 합격입니다! 이리로 오세요!”
이초아, 무신련 입단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