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면접은 중요하지 (1)
홍유진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건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드라마나 예능에 출연했으면서 뭐가 그리 색다르냐 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 방송과 TV 프로그램은 결이 많이 달랐다.
단적으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부터 이미 일반적인 공중파 방송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내뱉은 말에 바로 피드백이 오는 환경에서 방송을 하는 건 생각보다 재밌었다. 왜 사람들이 인터넷 방송을 하는지 알았다고 해야 되나. 기회가 된다면 또 해 보고 싶었다.
다음엔 게임 실력을 보여 주는 느낌으로.
호록.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백한영이 X카콜라를 홀짝였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역시 탄산 음료가 최고였다.
“형, 이거 어떻게 할까요.”
그러나 스트레스라는 건 원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해결이 안 됐다. 방학 숙제를 아무리 외면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과 똑같았다.
백한영은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를 죽은 생선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몇 개야?”
“안 세 봤어요.”
“대충 천 개는 되겠다.”
“저희 인기 많네요?”
김태식의 말에 백번 동의하며 백한영은 가장 위에 있는 서류를 집어 내용을 확인했다.
이름: 정유니
나이: 17
성별: 여
각성 능력: 환수 소환(유니콘)
각성 등급: C
백한영의 뒤에서 서류를 같이 읽은 김태식이 감탄했다.
“환수 소환이라니. 엄청 희귀한 능력이네요.”
“좋은 거야?”
“좋은 거죠.”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은 김유니의 이력서를 읽어 내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혹시 환수 소환인가 뭔가 하는 능력도 검을 쓰니?”
“보통 직접 안 싸우고 뒤에서 구경만 하죠.”
“그렇다면 얘는 왜 우리 길드에 이력서를 넣은 걸까.”
“…저도 모르죠.”
백한영이 다른 이력서도 집어 확인했다.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것 말고 더 있어?”
“1차로 온 것만 가져온 거긴 해요.”
백한영의 눈이 더욱 죽었다.
누구야. 누가 멋대로 길드 홍보를 해서 일을 만든 거야.
백한영의 머릿속에 관찰 예능을 촬영했을 때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제 평소 일과입니다.’
‘…이게요?’
‘길드원들을 가르치는 거죠. 무공을 가르치는 건 자신 있거든요. 전국에 있는 각성자 여러분, 자신이 재능이 있다 싶으면 무신련으로 오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누가 길드 홍보를 했나 했더니, 뭐야. 나잖아.
과거의 백한영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너 사실 일하는 것 좋아하는구나? 다 알아, 이 녀석아. 부끄러워하기는.
“형?”
“어?”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어요.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이런 건 외주 못 맡기나? 나 돈은 많은데.”
“있긴 하지만, 형, 다른 사람이 뽑은 사람 믿고 쓸 수 있어요?”
없지.
하아. 백한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곤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원래 숙제라는 건 반드시 해야 한다면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게 이득이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만약 무공과 상관없는 각성자들은 안 뽑는다고 하면 제가 한번 걸러 줄 수 있는데.”
“내가 이번에 이초아 씨 가르치면서 생각한 건데, 우리는 각성자 길드잖아. 굳이 그런 식으로 거를 필요는 없을 것… 응?”
“왜요?”
“어… 직접 봐 봐.”
백한영이 김태식에게 이력서를 넘겼다.
너무 많은 서류를 한 번에 뽑아 왔기에 제대로 내용을 살펴보는 건 김태식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름: 이초아
나이: 25
성별: 여
각성 능력: 화염의 원소 마법-소환계
각성 등급: S
김태식이 입을 쩍 벌리고 눈을 의심했다. 그만큼 이력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 믿기지 않았다.
이력서를 앞뒤로 뒤집어 보며 무언가 잘못된 게 있는지 확인한 김태식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초아 씨는 저희 길드에 왜 이력서를 넣었죠?”
“나도 몰라, 인마.”
* * *
이초아는 S급 각성자인 것치고 극히 드문 프리랜서였다.
S급 각성자는 국가 최대의 전력이다. 때문에 정부는 물론이고 일반 길드에서도 모셔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다.
수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은 S급 각성자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조건이 좋은 길드로 들어가든가, 직접 길드를 세우든가. 일반적으론 후자가 많다. 자기만 있으면 최고의 길드가 되는데 굳이 파이를 다른 사람과 나눠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현실에도 이초아가 프리랜서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마법사는 고급 인력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 지식은 활용도가 매우 높았고, 대체가 불가능했다.
무슨 말이냐면, 최고의 길드에서도 마법과 관련된 일이 터지면 반드시 이초아를 불러야 된다는 뜻이었다. 즉 프리랜서라도 활동에 거의 지장을 받지 않았고, 굳이 귀찮게 길드에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상이 이초아가 길드에 들어가지 않은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성격 문제.
오해하지 마라. 이초아가 성격이 더러워서 아무도 안 데려간다는 얘기가 아니다. S급 각성자는 성격이 더럽다 못해 쓰레기라도 모셔 갈 곳이 널려 있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단체 행동과 맞지 않는 그녀의 성격이었다.
길드에 소속되면 아무리 S급 각성자라고 해도 행동이 강제될 수밖에 없었다.
방구석에서 연구하는 걸 무엇보다 좋아하는 이초아가 그런 일을 만들고 싶어 할 리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이초아는 프리랜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녀가 길드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돌자 각성자 협회에선 난리가 났다.
“이초아가 길드에 입단 신청을 했다고요?”
“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일본의 사례를 봐서 알겠지만 S급 각성자 정도가 되면 국가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여태 프리랜서였던 S급 각성자가 길드에 들어가는 정도의 일이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사방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딸깍. 각성자 협회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유지아가 볼펜을 만지작거렸다.
딸깍딸깍딸깍. 계속 애꿎은 볼펜을 괴롭히는 유지아에게 그녀의 팀원인 남국민이 말했다.
“정서 불안이야 뭐야. 대체 왜 그래.”
“뭐가요.”
“왜 자꾸 볼펜을 딸깍거리냐고.”
“제가 그랬다고요?”
본인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는 유지아에게 남국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마트폰에 짧은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유지아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저랬다고? 도저히 안 믿겼다.
“합성이네요.”
“이 짧은 시간에 합성을 어떻게 해.”
“각성 능력이네요. 남국민 씨, 몰랐는데 다중 능력자셨나 봐요?”
“정신 차려, 지아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야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일이.
‘이초아가 백한영 씨 길드에 들어갈 줄은 몰랐어.’
이초아는 한국의 각성자 생태계에서 상당히 특이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S급 각성자 정도 되는 강력한 힘이 둥지에 안착하지 않고 홀로 돌아다니는 거다. 그만큼 다양한 파급효과가 일어났는데.
그런 이초아가 길드에 들어간다? 그에 따라 각성자 생태계에 거대한 변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유지아가 정서 불안에 걸린 것처럼 볼펜을 딸깍거린 건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일하느라 놀러 가지도 못했는데!’
그냥 이초아가 백한영과 가까워진 게 문제였다.
유지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길드에 불만을 가졌다.
최근 친구인 백은하가 놀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유지아는 길드의 일이 너무 많아 거절했었다. 같이 놀러 가는 사람들 중 백한영도 있다는 걸 알고는 살짝 후회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넘어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큰 실수였다.
당시 같이 놀러 갔던 이초아가 백한영의 길드에 들어간 걸 보면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둘이 이렇게 급격하게 친해진 거지?’
유지아의 망상 회로가 폭발했다. 한여름 날의 휴양지. 젊은 두 남녀. 그리고 밤의 해변가.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했다(아무 일 없었다)!
툭툭. 누군가 유지아의 어깨를 쳤다. 남국민이었다.
“그… 지아야?”
“네?”
“네 손을 봐 줄래?”
“제 손은 왜요.”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확인한 유지아가 눈을 깜빡였다. 볼펜이 반으로 아작 나 있었다.
유지아가 신기하다는 듯 남국민을 바라봤다.
“남국민 씨, 트리플 능력자였나 봐요? 염동력까지 쓸 줄 아시네요. 축하해요. 인류 최초예요.”
“그럴 리가 있니. 그 볼펜은 네가 손수 박살 냈어.”
“저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시치미를 떼는 유지아에게 남국민이 재차 짧은 동영상을 보여 줬다.
시원하게 볼펜을 부러트리는 화면 속 여자(눈이 반쯤 맛이 간)를 확인한 유지아가 고개를 돌렸다. 못 본 척하기를 시도한 것이다.
남국민이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진짜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없어요.”
드륵. 유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국민이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유지아 씨? 어디 가시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여기까지? 우리 아직 협회랑 얘기 다 못 끝냈는데? 지아야? 지아야!”
등 뒤에서 들리는 남국민의 소리를 무시한 채 유지아가 각성자 협회 건물을 벗어났다.
유지아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백은하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조작하다 말고 멈칫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백은하가 백한영의 길드에 갈 일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그림이 살짝 이상했다.
아직 백은하의 친구라는 걸 백한영에게 밝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찾아가는 건 조금.
밝혀도 꺼림칙한 건 없었지만, 뭔가 그랬다.
잠깐 고민한 유지아는 이내 무신련의 홈페이지를 스마트폰에 띄웠다.
-길드원 상시 모집 중.
잠깐 구경하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길드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구경만이라면 괜찮을 것이었다. 백한영 씨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절대 이초아랑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려는 게 아니다. 구경만 하는 거다.
* * *
이초아는 집 안에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집중할 때 나오는 그녀 특유의 버릇이었다.
이초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 안을 뽈뽈 돌아다녔다.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드에 이력서를 넣었을 당시만 해도 이초아는 자신이 있었다.
S급 각성자를 거절할 길드는 국내에, 아니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력서를 넣기 전의 얘기. 시간이 지날수록 이초아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력서를 넣을 때만 해도 ‘S급 각성자가 우리 길드에 이력서를?!’ 같은 식으로 난리가 나고 즉시 연락이 올 줄 알았건만, 며칠이 지나도록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떨어진 건가? 진짜로? 나 S급 각성자인데?
그러고 보면 백한영은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S급 각성자라고 해서 무작정 환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너무 쪽팔린데.’
가만히 있었으면 그 어떤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은 S급 각성자일 텐데. 괜히 길드에 들어가려 해서 이상한 오명만 생기게 생겼다.
이대로 자신에게 달라붙은 수식어가 그 어떤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은 S급 각성자에서, 길드에 들어가려 했다가 실패한 S급 각성자로 바뀌는 게 아닌가 이초아가 걱정했을 때였다.
우웅.
그녀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문자를 확인하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목: 면접을 진행하겠습니다.
내용: 일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희망자는…….]
이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면접을 보라고? 나도?”
다시 문자를 읽어 봤지만 바뀐 건 없었다.
면접을 봐야만 했다.
설사 S급 각성자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