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70화 (70/117)
  • 71화 그게 정말이니 (2)

    홍유진의 인터넷 방송은 순풍을 탄 듯 순조롭게 성장했다.

    많으면 8,000명 정도 보던 방송이 이제는 아무리 적게 봐도 1만 명은 보는 방송이 된 것이다.

    홍유진의 콘텐츠는 다양했다.

    우선 가장 인기가 많은 콘텐츠는 용사 파티(시청자는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시절 겪은 썰을 푸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콘텐츠는 용사 파티 관련 토론(이건 슬슬 주제가 떨어져서 힘들어하고 있다)이었다.

    세 번째로 인기가 많은 콘텐츠는 홍유진의 게임 방송이었는데……. 사실 이건 인기가 많다고 하기 좀 그랬다. 주 콘텐츠 세 개 중 사람들이 가장 안 보는 콘텐츠는 시청자가 몇이든 인기가 많다기보다는 인기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너튜브 조회 수도 이게 가장 안 나왔다.

    아무튼 원래 홍유진이 백한영을 방송에 초대한 이유는 저 세 가지 콘텐츠 중 마지막의 게임 방송을 살려 보기 위함이었다. 게임 초고수인 백한영을 초대해 실력을 확인하고 가르침도 받아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겠다는 의도였는데.

    “백한영 씨 불러 놓고 굳이 게임 방송 같은 걸 해야 돼?”

    “…안 돼?”

    “드래곤 고기를 얻어 놓고 라면에 집어넣는 느낌이야. 네 게임 방송 가뜩이나 인기 없잖아.”

    “크흑.”

    이제는 거의 현대인이 다 된 천재 마법사 엘레나 크래프트의 통렬한 일침에 급격하게 계획을 바꾸게 됐다.

    원래 인터넷 방송에서 계획이라는 건 있다가도 없는 것이었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그러면 뭘 해야 되지?”

    “토크라도 하든가. 백한영 씨 근황 궁금해하는 사람 많잖아.”

    백한영은 한때 방송계의 블루칩이었다. 드라마부터 시작된 관심은 관찰 예능으로 조금 해소해 줬어도 아직 남아 있었다.

    비록 시간이 지나 조금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일종의 셀럽이 되어 버린 백한영의 근황을 궁금해할 사람은 꽤 많았다.

    “토크 그거 괜찮네.”

    결정이 난 즉시 홍유진은 백한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홍유진: 선생님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이 비는데, 이때 저희 방송에 출연하시면 깔끔할 것 같아요. 괜찮으신가요?]

    [백한영: 괜찮을 것 같아요.]

    백한영이 승낙하는 즉시 홍유진은 콘텐츠를 준비했다.

    주로 백한영에게 할 질문지를 뽑는 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튿날이 밝았다.

    “안녕하세요. 용사 파티에서 용사 역할을 맡고 있는 홍유진입니다.”

    <용하>

    <일찍 켰네>

    <오늘은 뭐 함?>

    “오늘은 미리 고지할 게 몇 가지 있어서 방송을 조금 일찍 켰습니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홍유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 게스트가 있습니다.”

    <게스트?>

    <누가 오는데. 마왕이라도 오나?>

    <여자임?>

    쏟아지는 채팅창에 홍유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도 좋아하실 겁니다. 지금 대기 중이신데, 부르기 전에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채팅을 예쁘게 쳐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한 후 홍유진이 고개를 돌려 게스트를 불렀다.

    “선생님! 와 주세요!”

    “안녕하세요.”

    화면 안에 백한영이 등장하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뭔 남자야 ㅅㅂ>

    <저게 누군데. 유명인임?>

    <그래서 쟤 여자임?>

    당연하지만 용사 파티의 시청자는 극도의 남초였다.

    예쁜 용사 파티 멤버들을 보기 위해 모인 놈들이니 당연했다.

    거기에 홍유진도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기보다는 남자에게 인기가 많은 일종의 광대 포지션었다. 시청자층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백한영은 대한민국에서 꽤 유명했다. 드라마가 그토록 히트를 쳤는데, 유명세가 없는 게 더 이상했다.

    거기에 관찰 예능의 시청률이 대박이 나며 더욱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몇백만 명은 백한영을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지금 홍유진의 방송을 보고 있는 녀석들은 백한영을 잘 몰랐다.

    별 이유는 아니고, 그냥 현대 사회의 구조 때문이었다.

    이제 국민 예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특정 요일에 온 가족이 모여 보는 예능 같은 건 10년도 더 전에 사라졌다.

    관심사가 극도로 세분화돼 조각난 게 요즘 트렌드였다. 수백만 명이 보는 인기 프로라도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굳이 찾아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홍유진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10~20대 남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드라마를 볼 리 없었다. 예능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방송사도 10~20대 남자를 겨냥해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 봐도 재미가 없는 걸 볼 정도로 그들은 시간이 넘쳐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백한영이 깜짝 등장 해 봤자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백한영이다>

    <얼굴 개 잘생겼다>

    아무리 남초 성향의 방송이라고 해도 여성 시청자는 있는 법. 그들은 백한영이 누군지도 알았고, 흥미로워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어디에도 나오지 않길래 뭐 하고 지내나 했더니, 자기가 평소에 즐겨 보던 인터넷 방송에 나타나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선생님이랑은 아주 긴 인연이 있죠.”

    “그 정도인가요, 저희가.”

    “제가 선생님을 만난 건 막 이세계에서 돌아와 땡전 한 푼 없어서 곤란하던 시기였는데요. 그때 선생님이 무려 저한테 치킨을 사 주셨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치킨을 사 달라길래 뭔가 했어요. 솔직히 미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홍유진이 대화의 포문을 열자 백한영도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때 무려 치킨 5마리랑 피자 1판을 시켜 드렸습니다. 다 먹고 부족해서 더 시켜 드렸죠.”

    <배에 기생충이 들었나 ㅋㅋ>

    <치킨 5마리에 피자 한 판은 ㅅㅂㅋㅋ 알뜰하게도 뜯어먹었네>

    <그걸 처음 보는 사람한테 사 줌? 뭐 갑부임?>

    <저 사람 각성자 길드장임. 소규모인데 돈은 몇백억 벌어서 한때 얘기 많이 돌았음>

    쏟아지는 채팅에 여태 조용히 앉아 있던 성녀, 세피아 레이즌이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때 저만 피자를 먹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치킨을 먹고요.”

    <왜 세피아만 피자 먹음? 치킨 싫어함?>

    “왜냐고요? 그야 저는 고기를 못 먹으니까요?”

    처음 안 TMI에 채팅창에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세피아 쟤 비건이었음? ㅋㅋ>

    <선천적으로 고기를 못 먹는 체질이라는 거 아님?>

    <뭐 병임?>

    채팅창이 시끄러워지자 홍유진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에요. 마왕 잡으러 마계에 간 적 있다고 했죠? 거기서 고생을 조금 해서 그래요.”

    “진짜 지옥 같았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마족은 사람을 찢어요. 어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족은 ㅇㅈ이지 ㅋㅋ>

    <근데 그거랑 고기를 못 먹는 거랑 무슨 상관임?>

    무슨 상관이냐고?

    홍유진은 잠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성녀가 고기를 먹지 못한다. 얼핏 들어선 종교적인 이유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세피아가 고기를 먹지 못하는 건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마계라는 곳이 있다. 그곳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곳이다.

    누가 돈을 줘도 가기 싫은 곳이었지만, 홍유진은 마계에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용사는 마왕을 죽여야 된다. 따라서 용사 파티는 마왕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거기가 설사 마계라도.

    마계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넓다. 어느 정도냐면, 홍유진이 마계에서만 몇 년을 헤맸을 정도로 넓었다.

    마계를 떠돌다 보면 가져온 음식 같은 건 금방 떨어진다. 아공간도 만능은 아니다. 아무리 식량을 가져와도 결국 전부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아껴 먹던 식량이 전부 떨어졌을 때 홍유진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마왕을 만나지도 못하고 굶어 죽게 생긴 거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했다.

    떨어진 식량. 몰려오는 적. 극한으로 몰린 상황에서 홍유진은 결단을 내렸다.

    “유진?”

    “이것밖에 없어.”

    식량은 떨어졌고 마계에 있는 건 마족이 전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마족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마족의 피와 살점은 맹독이다. 닿는 것만으로 생명체를 오염시키는 피와 살점을 먹고도 멀쩡하기 위해선 둘 중 하나야 됐다.

    같은 마족이든가, 근처에 신성 주문을 쓰는 성직자가 있든가.

    다행히 홍유진의 용사 파티는 후자에 속했다.

    홍유진과 그의 동료는 먹는 것만으로 내장을 불태우는 마족의 살점과 피를 먹으며 마계를 떠돌았다. 매 식사 시간이 지옥이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상투적인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는 몇 달이었다.

    맹독이 퍼지기 전에 신성 주문을 사용했기에 몸은 멀쩡했지만, 정신까지 그러진 못했다. 반복되는 고통은 파티원의 정신을 안에서부터 좀먹었다.

    가장 먼저 정신이 나간 건 마법사인 엘레나 크래프트였다. 그녀는 자신들이 왜 이러고 있어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다음은 엘프 궁수인 티냐 나피스였다. 그녀는 분노에 차 괴성을 지르다 잠에 드는 나날을 보냈다.

    도적 이엘은 꽤 오래 버텼다. 슬럼에서 오래 산 그녀는 비위가 꽤 강했다.

    결국 무너진 건 똑같았지만.

    마지막까지 버틴 건 홍유진과 성녀 세피아밖에 없었다.

    홍유진은 비교적 멀쩡했다. 그가 내세울 장점이라곤 정신력이 다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세피아가 멀쩡한 건 의외였다.

    세피아가 나약해서는 아니었다. 그만큼 당시 그녀가 처했던 상황이 가혹했다.

    다른 사람은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잃어도 괜찮았다. 홍유진조차 때때로 실신을 했었다. 신성 주문을 사용하는 게 본인이 아니었으니 정신을 잃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세피아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 외엔 성직자가 없었기에 끔찍한 고통을 온전히 견디며 신성 주문을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마계 휴유증도 세피아가 가장 강하게 남았다. 아직도 고기를 입에도 못 대는 건 그래서다.

    만약 홍유진의 어깨에 세계의 운명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홍유진을 용사의 길로 이끌어 준 누군가가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정도로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그걸 뚫고 마왕을 죽인 건 다시 생각해도 인간 승리였다.

    그냥 뭐, 그렇다는 거다.

    “하여튼 마계 그거 진짜 뭐 같았어요.”

    짝. 말을 끝내자마자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한 홍유림이 백한영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저 말고 선생님 얘기나 듣죠. 제가 조사한 바로는 선생님이 각성자라는데, 맞나요?”

    “A급 각성자입니다.”

    “이야, A급.”

    <와 A급 각성자라고?>

    <진짜임?>

    채팅창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던 백한영이 작게 말했다.

    “사람들이 못 믿네요.”

    “A급 각성자가 그만큼 희귀하니까요.”

    “흐음.”

    계속되는 불신에 백한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보여 주면 되겠죠.”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것 없죠. 뭐 벨 건 없나요?”

    “여기 있습니다.”

    홍유진이 가져다준 책(개미부터 시작하는 실전 투자)을 받아 든 백한영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실내니 대놓고 검강(劍罡)을 쓰는 것도 그렇고 검을 뽑는 것도 그러니.

    이게 좋겠다.

    백한영이 책을 허공에 툭 던졌다.

    그 상태로 의지를 세우자.

    책이, 사라졌다.

    “……?”

    “……?”

    <???????????>

    <????????>

    <?????????????>

    채팅창과 방 안에 갈고리 파티가 걸렸다.

    홍유진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건―.”

    “어떤가요. 가볍게 힘을 써 봤습니다.”

    “각성 능력인가요?”

    “비슷합니다.”

    안타깝게도 성검을 활성화하지 않은 홍유진은 백한영이 뭘 했는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어. 음>

    <그래서 저게 뭐임>

    <모름>

    그리고 그건 시청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보기에 백한영이 한 건 마술 쇼에 불과했다.

    ‘…너무 어려운 걸 보여 줬나. 실수했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백한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검강이나 보여 드릴까요?”

    <검강은 ㅇㅈ이지 ㅋㅋ>

    <방금 책 없앤 건 특수 계열 각성 능력 아니야? 그런데 검강을 어떻게 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즐기기나 해 ㅋㅋ>

    * * *

    “푸흡.”

    방 안에서 인터넷 방송을 보고 있던 남자 하나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모니터에 뿜었다.

    “내 모니터가!”

    허겁지겁 휴지를 뽑아 모니터를 닦아 낸 남자는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진정이 좀 됐다.

    남자가 시선을 내려 모니터를 바라봤다.

    거기엔 웬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사람들과 재미있게 떠드는 인터넷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방금 그건.’

    남자는 조금 전 잘생긴 남자, 백한영이 보여 줬던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무인이 꿈에도 바라는 지고의 경지였다.

    그것은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는 환상 속의 경지였다.

    백한영이 보여 준 경지의 이름은 심검(心劍). 그걸 눈앞에서 보고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이 세상도 참 수준이 떨어지는구나 싶었다.

    ‘…백한영.’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딸깍. 남자가 마우스를 조작해 친구 창을 열었다.

    [검신백한영 님의 마지막 접속일. 3일 전.]

    “진짜 얘는 아니겠지.”

    한국계 중국인. 남자, 주리엔이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세상이 좁다지만 백한영이라는 이름을 이 인간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겠지.

    <자리요.>

    주리엔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동 사냥을 돌리고 있던 캐릭 앞에 누군가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주리엔은 바로 캐릭터를 조작했다.

    살랑. 매화 잎이 필드를 휩쓸었다. 순식간에 몬스터와 함께 헛소리를 하던 사람까지 쓸어버린 주리엔이 자신의 캐릭터를 바라봤다.

    <매화검수>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매화검수를 게임 속까지 가져오다니. 늘 생각하는 거지만 참 나도 어지간했다.

    주리엔이 재차 인터넷 방송을 바라봤다. 머릿속에 아까의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주리엔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 녀석도 환생자는 아니겠지.”

    주리엔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았다.

    육체 나이 23살. 정신 나이가 55살.

    그리고 즐겨 하는 게임에서 <매화검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무협 세계에서 평생 살다가 죽고 느닷없이 현대 세계에 아기로 태어나 버린.

    환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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