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서울 표류기 (3)
아이돌. 그 어원을 찾기 위해선 1940년대의 미국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10대의 팬을 거느린 ‘우상’ 혹은 ‘스타’라는 의미가 강했고, 그건 현대의 아이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촌 팬이라는 개념이 생길 정도로 팬층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결국 아이돌이 거느리는 팬덤은 Young 하고 MZ 한 게 특징이었으니까.
아이돌은 돈이 된다. 그러니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아이돌을 키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아이돌을 육성하는 회사는 많았지만, 그중 막대한 돈을 거머쥐는 이는 소수였다.
물론 1세대, 2세대, 3세대부터 쌓인 문화의 토양이 4세대에 본격적으로 폭발해 듣도 보도 못 한 아이돌도 수만 장의 앨범을 파는, 이른바 앨범 인플레가 열리긴 했다. 파이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회사가 뛰어들어 레드 오션인 업계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에 ‘망돌 출신’, ‘연습생 출신’이 쏟아지는 시대다. 어지간히 장점이 있는 게 아니면 아이돌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돌을 육성하라고 블링즈 엔터테인먼트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가수 2팀의 팀장, 유상현은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경기도 인근의 여고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스카우트를 하러 간 여고생 때문은 아니었다. 그 아이도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긴 했지만, 그 정도로 놀라기엔 유상현이 여태 먹어 온 연예계 짬밥이 너무 많았다.
유상현이 충격을 받은 건 스카우트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던 중 웬 여자에게 인질로 잡힌 순간이었다.
아이돌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재능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실력. 운. 그리고 얼굴.
뒤에 있을수록 중요했다.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는 외모였다.
재능을 후천적으로 키우는 건 불가능하지만 얼굴은 고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쪽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인간이나 하는 말이다.
재능이 타고나야 하는 것처럼 외모도 타고나야 됐다. 관리를 받아도 한계가 있었다. 머리 크기, 피부, 이목구비 등. 화면에 나왔을 때, 얼굴이 초 단위로 녹화되는 환경에서조차 아름답기 위해선 갖춰야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천재는 극소수다. 천재가 많으면 우리는 그걸 천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얼굴 천재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은 늘 희귀했다.
때문에 유상현은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고, 손날로 목을 겨눈 여자의 외모를 본 순간 큰 충격에 빠졌다.
그녀는 표현하자면, 그래.
미(美)의 현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게 유상현이 독고린을 무사히 풀어 달라고 경찰에게 강력히 주장하고, 신원보증까지 나선 이유였다.
이 사람은 아이돌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범인류적인 손해였다.
“으음.”
카페에서 유상현의 열성적인 설명을 전부 들은 독고린은 막 나온 커피를 한 입 먹은 후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알아주셨군요.”
“조금 낯부끄럽긴 하지만, 그대가 내 칭찬을 하고 있는 것도 알겠다.”
아이돌이 대체 뭐냐는 질문에 외모 칭찬을 약 10분 정도 들은 독고린은 살짝 어색한 표정을 하고는 천천히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걸 내가 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구나.”
아이돌은 까놓고 말해 유사 연애 감정을 팔아먹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요즘은 여자 아이돌이라고 해도 팬의 반 정도가 여자인 상황이긴 했지만, 팬의 반이 남자인 이상 대부분의 아이돌이 저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걸 자기 보고 하라니. 상당히 꺼려졌다.
“아이돌이란 직업 자체가 꺼려지는 모양이군요.”
“오해하지 마라. 선망을 받는 건 익숙하다. 하나 그 형태가 내겐 익숙하지 않구나.”
“제가 설명을 잘못한 모양이군요. 꼭 연애 감정을 팔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아이돌은 ‘우상’이자 ‘별’이니까요.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유상현의 말은 정론이고 왕도였지만, 그렇기에 어려운 길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유사 연애 감정을 파는 건 이유가 있었다. 그게 편했고, 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그저 밝게 빛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그만큼 어려웠다. 실력, 외모, 운 이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춤과 노래를 보지 못해 독고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지만, 유상현은 충분히 해 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외모가 운마저 씹어 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으니 딱 실력만 확인해 당첨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아이돌의 탄생이었다.
“흐으음.”
여전히 꺼림직해하는 표정을 짓는 독고린에게 유상현이 쐐기를 박았다.
“머물 곳이 없지 않으신가요? 만약 계약하신다면 그런 부분을 포함한 어떤 일이든 저희가 확실히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이돌에게 정인이 있으면 곤란한 것 아니냐?”
“아이돌도 비밀리에 연애를 합니다. 들키지만 않게 조심하면 됩니다.”
“만약 아이돌을 한다고 해도 거짓말은 하기 싫다만?”
독고린은 누군가에게 거짓을 말하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거짓은 독과 같아서 쌓일수록 그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마음의 족쇄는 상승의 경지로 향하는 길을 막는 장애물. 무인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요.”
“만약 한다고 해도 내 온전한 모습을 내보여야지.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
여기서 알았다고 한 후 일단 계약부터 하는 방법도 있었다. 설득이야 나중에 하면 되니까.
그러나 유상현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단호한 독고린의 말투에서 그녀가 절대 의견을 굽히지 않겠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심지가 굳다. 저것도 연예인으로서의 재능 중 하나다.’
불특정 다수의 관심은 마약이다. 관심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다가도, 가끔 섞인 악의가 사람을 안에서부터 좀먹었다. 연예인은 정신과 돈을 바꾸는 연금술사인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바꾸어 말하면 정신만 튼튼하면 돈을 무한대로 복사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유상현은 재차 독고린을 살펴봤다. 여태 기획사에 스카우트를 당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를 확인한 유상현이 마음을 굳혔다.
“그 부분은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정해야겠지만,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그게 된단 말이냐? 내가 이쪽 세상의 문물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이돌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면 그런 건 불가능할 것 같다만.”
“되게 해야죠.”
독고린의 외모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분위기가 특별해.’
정말 얼굴뿐이었다면 유상현도 이렇게까지 매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정확힌 매달렸겠지만, 이 정도로 마음이 동하진 않았을 것이다.
독고린이 특별한 건 외모도 그랬지만 묘하게 눈길이 가는 분위기에 있었다.
달리 말하면 스타성. 그것이 독고린에겐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상현의 말에 독고린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독고린은 이국타향이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의 외딴곳에 뚝 떨어진 상태였다.
그녀가 지금 해야 되는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무공을 회복한다.
둘째. 기반을 다진 후 이곳이 어디인지 조사한다.
첫 번째야 독고린의 전문 분야였으니 크게 문제없었지만, 두 번째가 문제였다.
아까 관(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며 본 바로는 이 세계는 신분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확인하는 듯했다.
이방인에게 친절한 곳이 아니라는 거다.
아직 힘이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이곳의 룰을 거스르는 게 좋은 판단일까. 아니라고 봤다.
그렇다면 적어도 힘을 기를 때까지라면, 신세를 져도 괜찮지 않을까.
돈 같은 걸 직접 번 상황에서 백한영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고.
“알겠다.”
“그 말은.”
“그 아이돌인가 뭔가를 구경부터 해 보고, 마음에 들면 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 * *
블링즈 엔터테인먼트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이었다.
대만민국 3대 기획사의 수장 격 기획사. 그게 바로 블링즈 엔터테인먼트였다. 비록 전성기가 살짝 예전이고, 국제적으로 갑자기 떠 버린 기획사 하나가 기존의 3대 기획사에 편입되는 걸 넘어 혼자 앞으로 치고 나가며 성장 중이긴 했지만, 블링즈 엔터테인먼트의 역사와 역량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물론 역량이 남아 있다고 해도 주가가 그대로인 건 아니었다. 블링즈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천천히 우하향 중이었다.
때문에 주주들이 잔뜩 뿔이 난 상황에서 임원 회의가 열렸고, 결론이 나왔다.
아이돌을 키우자고.
지금 시대의 이름은 아이돌이다. 아이돌만이 위기에 빠진 블링즈 엔터테인먼트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런 논리하에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가 설립됐고, 빠르게 윤곽이 잡혔다.
데뷔하는 인원은 총 5명. 3명은 내부 연습생으로, 나머지 2명은 총책임자인 유상현이 외부에서 구해 오기로 했다.
구해 오기로 한 애들 중 한 명은 다른 기획사의 데뷔조였다가 데뷔가 무산되는 바람에 백수가 돼 버린 애로 정해졌으니 나머지 하나가 문제였는데.
그것도 지금 전부 해결됐다.
“저 애야?”
“그렇습니다.”
“쟤는 뭐 집에 틀어박혀 있기만 했대? 저런 애가 어떻게 아직도 업계에 이름이 안 알려졌지.”
외모가 비상식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설사 연습생이 아니더라도 업계에 이름이 알려지기 마련이었다.
과거 SNS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에도 XX중 얼짱, XX고 미녀 이런 식으로 주변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SNS 셀럽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었다.
블링즈 엔터테인먼트의 본부장, 박진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저 정도면 노래 실력과 춤 실력이 평균만 돼도 역대급 아이돌 센터의 탄생이었다.
“실력은 어때.”
“이제 점검할 차례입니다.”
“그나저나 조건이 뭐라고? 남자 친구가 있는 걸 미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고?”
“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이 안 되는 건 유상현도 알았지만, 그게 계약 조건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야, 인마. 업계 짬밥을 그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아이돌이 뭔지 몰라? 공개 연애 하는 아이돌? 있긴 하지. 근데 걔네는 보통 자발적으로 공개한 게 아니든가, 10년 정도 아이돌 짓 실컷 하다가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데뷔 때부터 공개 연애를 하는 경우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안 나와.”
“본부장님,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이번 프로젝트에 회사가 사활을 건 것 몰라? 남자 친구가 있는 폭탄을 가져와서 어쩌자는 거야.”
“…….”
유상현이 입을 다물었다. 박진성의 말은 그만큼 타당했다.
그도 다 아는 말이었다. 단지,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독고린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네가 말한 조건을 들어주면서 성공하려면 얼굴만으론 안 돼. 모든 요소가 당대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설득해서 남자 친구 얘기는 없던 걸로…….”
―♬.
갑작스러운 노랫소리. 이번엔 박진성이 입을 다물었다.
깔끔하게 올라가는 고음. 특색 있는 음색. 거기에 탄탄한 발성까지.
일반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재능이 연습실 중앙에 떡하니 서 있었다.
홀린 듯이 독고린의 노래를 듣던 박진성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확실히 노래는 괜찮아. 그런데 춤이라는 건 단시간에 익히는 게 어렵―.”
박진성이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독고린이 트레이너가 가르쳐 주는 춤을 단번에 따라 했다.
노래는 성대를, 춤은 인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몸을 제어하는 건 정점에 이른 무인에게 턱없이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완벽해요.”
트레이너의 칭찬을 듣는 독고린을 보던 박진성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네 말이 맞아. 쟤는 아이돌을 해야 돼. 그냥 진행하자.”
“알겠습니다.”
데뷔 때부터 공개 연애를 하는 미친 아이돌은 그렇게 탄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