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63화 (63/117)

64화 초인의 시대 (12)

김태식의 각성 능력은 마도병기를 소환하는 마검 소환-적련으로, 상당히 강력한 능력이었다.

백한영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마도병기를 소환하는 능력은 굉장히 희귀하고 강력한 능력으로 취급됐다.

사실 마도병기를 소환하는 각성 능력의 단점은 뚜렷했다. 직접 무기를 다뤄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응용력이 떨어졌다.

끽해야 소환한 마도병기의 활용법을 늘리는 정도가 끝이고, 각성 능력 자체를 응용할 여지는 굉장히 적은 것이다.

그러나 장점 또한 뚜렷했다.

우선 강력했다. 불의 원소를 제어하는 각성 능력과 불의 마검을 소환하는 각성 능력 중 일반적으로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A등급까지는 불의 마검 쪽이 좋았다.

그렇다고 마도병기를 소환하는 능력이 A등급 이후에 쓰레기가 되냐? 그것도 아니었다.

마도병기를 소환하는 각성 능력의 진가는 A등급 이상에서부터 발휘됐다.

각성 능력에는 흔히 ‘진화’라고 부르는 과정이 있었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각성자의 능력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그걸 흔히 ‘진화’라고 불렀다.

계기가 되는 건 경험일 수도 있었고, 목숨의 위기일 수도 있었고, 능력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 덕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각성자는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진화’했는데, 신기하게도 마도병기를 소환하는 능력들은 보다 쉽게 ‘진화’를 하곤 했다.

원인은 많았다. 응용력이 떨어지다 보니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하게 돼서, 실체가 뚜렷해서 등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김태식의 능력이 ‘진화’하기 쉽다는 것이지.

니콜라이와 김태식의 격차는 상당했다. 단순 등급으로 따져도 2단계 차이. 그 정도면 어떠한 기교를 부려도 힘에 짓눌려 압살당할 수밖에 없었다.

단기간에 니콜라이를 넘어서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그렇지만 따라잡는 정도라면, 격차를 줄이는 정도라면 불가능하지 않았다.

니콜라이의 약점은 뚜렷했다. 그걸 공략할 수 있을 정도의 기교는 백한영이 쌓아 줬다. 남은 건 이제 차이를 줄이는 것뿐이었다.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하나. 능력을 진화시키는 것.

다행히 김태식은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한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시작은 백한영이 가르쳐 준 적련검법이었다. 알아서 이름을 붙이라고 툭 던져 준 검법에 김태식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연했다. 고작 며칠 고민해 만든 검법이라고 해도 제작자가 백한영이었다. 애초에 며칠 만에 완성한 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더는 고칠 부분이 없어서였기에 더욱 그랬다.

만약 중원에 비급이 풀렸다면 그 즉시 피바람이 불었을 검법. 끝까지 익힌다면 이론상 백한영에게도 닿을 수 있는 무공. 물론 극악하다는 말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확률이었지만, 어쨌든 가능성 자체가 열려 있는 것만으로 엄청난 검법이었다.

적련검법을 익히며 김태식의 시야는 넓어졌다.

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의념이 뭔지, 심상이 뭔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았다.

그러고 나자 김태식은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김태식의 실력은 A급과 S급 사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달랐다.

사실 김태식은 언제든 S급이 될 수 있었다.

말을 조금 보충하자면, 심상이 무엇인지 감을 잡고, 자신이 여태까지 무엇을 해 왔는지 자각한 순간 언제든 S급이 될 수 있었다.

백한영은 한때 김태식을 보고 검에 잡아먹힌 놈이라고 했었다.

모든 행동이, 검로가, 검의가, 의념이, 심상이 마검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당시의 김태식은 몰랐지만, 그건 ‘진화’의 전조였다.

심상에 마검을 새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백한영은 사람이 검을 휘두르는 거라고 단호히 말했다. 검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백한영에게 교육을 받고 눈이 뜨인 지금은 그게 백번 옳은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저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이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적련검법을 가르쳐 주던 당시 백한영은 선택지를 줬었다.

이 검법이 정답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언제든 말해라. 이게 싫다면 익히지 않아도 되고, 다른 걸 원한다면 다른 걸 가져다줄 수 있다.

단. 선택했다면 후회하지 마라.

후회는 미련이 되고, 족쇄가 되며, 심마가 된다.

기억해라. 틀린 선택지는 없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뿐이지.

자기가 스스로 선택했다면 말이야.

그때 김태식은 백한영이 만들어 준 검법을 흔쾌히 익혔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나 지금은 반대다. 백한영이 알려 준 검법으로는 지금 당장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없었다.

백한영이 알려 준 적련검법은 확실히 엄청났다. 신공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무공이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 되는 부분도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선 그만큼 페이스 배분을 잘해야 하는 법. 난해한 부분도 있었고, 필연적으로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 적련검법의 진의를 고작 반년 만에 아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각성 능력이라면, 8년간 계속 갈고닦아 왔던 내 능력이라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괴물에게 닿기에 더 용이했다.

물론 이건 미래의 가능성을 깎는 방법이다. 백한영이 깔아 놓은 레일에서 벗어나는 짓이다.

심상에 마검을 새긴다. 백한영이 바랐던 불꽃의 본질을 탐구해 심상에 근원을 새기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확장성이 한없이 떨어졌다.

그러나 누군가를 구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소냐를 지킬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김태식은 기꺼이 이 길을 택하리라.

다른 누구의 뜻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화륵. 심상 속에서 이제 막 태어난 태초의 불을 마주한 김태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작별이었다.

고철이 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간 김태식은 그 안에 버려져 있던 붉은 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아름다운 디자인의 불꽃의 검엔 녹이 슬어 있었다. 8년간 애지중지하며 키워 놓고 지난 반년 동안 버린 탓이었다.

김태식이 녹이 슨 검을 들고 태초의 불로 천천히 걸어갔다.

태초의 불을 조용히 올려다보던 김태식이 불꽃의 검을, 적련을 휘둘렀다.

화륵. 적련이 태초의 불을 잡아먹었다. 녹이 떨어졌다. 적련이 밝게 빛났다.

꿈틀.

변화가 시작됐다.

우우웅! 마나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치이이익! 엄청난 열기에 근방 50m의 눈이 죄다 녹아내렸다.

펑. 내면에서 시작된 거대한 폭발이 이내 현실에 닿았다.

타오르는 불꽃에 손을 집어넣은 김태식이, 거세게 검을 뽑아 들었다.

각성 능력. 마검 소환.

레바테인(Laevateinn).

검은 불꽃에 휘감긴 검을 보며 니콜라이가 중얼거렸다.

“진화?”

예상 밖의 전개에 니콜라이가 살짝 놀라워했을 때, 김태식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졌다.

레바테인이 마나를 게걸스럽게 잡아먹었다. 이 녀석을 소환하는 건 앞으로 수십 초가 한계.

그 안에 결판을 내야만 했다.

“그래 봤자 이제 막 S급 각성자가 된 것에 불과한 것을. 어리석은 녀석. 그 능력, 내게 고스란히 바쳐라.”

윈터 액시즈(Winter Axis)에 냉기가 모였다.

확실히 김태식과 니콜라이의 격차는 아직도 엄청났다.

이제 S급에 올라선 김태식과 SS급의 힘을 갖춘 니콜라이. 한 단계 차이. 말로 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SS급과 S급에는 평생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렇지만 니콜라이를 정말 못 따라잡을 정도냐고 묻는다면, 김태식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겠다.

니콜라이의 힘은 SS급이었다. 위력은 확실히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디테일이, 능력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어설펐다. 진정한 의미의 SS등급이 아니라는 거다.

이 정도로 힘의 격차가 줄어들었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우웅! 윈터 액시즈에 각종 능력이 모였다. 강화계, 원소계, 마법계, 지원계 등. 거대한 힘이 한 점에 집중됐다.

극한으로 능력이 응집된 윈터 액시즈가 김태식을 노리고 허공을 갈랐다. 대기가 찢겨 나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김태식의 시간이 느려졌다.

니콜라이의 창로가 훤히 보였다. 일직선으로 심장을 꿰뚫는 경로.

김태식이 부드럽게 레바테인을 휘둘렀다. 기기기긱! 윈터 액시즈와 레바테인이 만나며 공간이 뒤틀렸다.

원래라면 여기서 김태식이 튕겨 나갔을 것이다. 사실 아까도 그랬다.

지금은 달랐다. 레바테인에 담긴 거대한 힘 덕에 이런 정직한 창로 정도는 비껴 나게 할 수 있었다.

챙! 윈터 액시즈가 정해진 창로를 크게 이탈했다. 니콜라이의 눈이 커졌다. 당황한 것이다.

김태식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최단 경로를 따라 레바테인을 휘둘렀다.

그러자.

모든 걸 불사르는 신화의 불꽃이, 니콜라이를 덮쳤다.

화르륵! 시베리아 한복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변의 기온이 올라갔다.

하아. 하아. 김태식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진화한 각성 능력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모든 마나를 전부 다 써 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태식이 정면을 바라봤다.

‘해냈다.’

한겨울 풍경에 누가 덧칠이라도 한 듯, 검로를 따라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해 있는 걸 확인한 김태식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소냐를 지켜 냈―.

“이, 버러지가!”

잿더미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김태식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잿더미 속. 그곳에서 온몸이 녹아내린 니콜라이가 거칠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니콜라이의 몸에 실시간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녹아내린 몸이 꿈틀거리며 원래대로 돌아갔다.

초재생 능력. 저런 것까지 있었단 말인가.

김태식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실수였다. 만약 상대에게 초재생 능력이 있다면 단번에 모든 힘을 쏟아 내는 게 아니라 조금씩 깎아 냈어야 했다.

아니면 목을 한 번에 날려 버리든가.

어느 쪽을 골라도 상관없었지만, 김태식은 둘 다 고르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네 놈은 절대 곱게 죽여 주지 않겠다.”

니콜라이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김태식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적에게 잠깐이지만 무릎을 꿇다니. 신이 될 자의 미덕이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자신을 추하게 만든 저놈을 절대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터벅터벅. 다가오는 발걸음에 김태식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쓰러졌다. 힘이 없었다.

안 돼. 이대로 쓰러지면 소냐가…….

“우선 예의가 뭔지 알려 줘야겠군. 걱정하지 말게. 이틀이면 끝나는 짧은 코스니까.”

니콜라이의 말에 김태식이 마른걸레를 쥐어짜듯 힘을 끌어모았다. 적련을 소환해 발악이라도 해 보려고 한 것이다.

“‘그만해!’”

조그만 목소리가 둘 사이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니콜라이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거 큰일 날뻔했군. 그대로 도망갔으면 찾느라 수고를 할 뻔했는데, 알아서 내 쪽으로 와 줄 줄이야.’”

소냐의 등장에 김태식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쿵. 니콜라이의 발에 등이 밟혀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멈춰!’”

소냐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권총을 꺼내 니콜라이를 겨눴다. 그게 참으로 재밌었는지 니콜라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뭔지 알고는 있나?’”

“‘그 발 치워. 안 그러면 쏠 거야.’”

“‘네 실수는 두 가지다. 첫째,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한 것. 둘째, 쏘지도 못할 총을 꺼내 든 것. 기회를 주지. 한번 쏴 봐라.’”

“‘…….’”

탕! 권총이 불을 내뿜었다. 지이잉―. 탄환이 날아가다 말고 허공에 붙잡혔다.

염동력으로 탄환을 잡아챈 니콜라이가 소냐에게 말했다.

“‘정정하지. 쏘지도 못할 총을 꺼내 든 건 아니군. 근데 실수가 두 가지라 하지 않았나.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한 것. 이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대죄다.’”

반동에 넘어졌던 소냐가 이를 악물고 권총을 잡아 들었지만, 서걱. 바람의 칼날에 권총이 두 동강 나 버렸다.

“‘재롱은 거기까지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군. 우선 저 한국인의 능력부터 흡수한 후 너를 처리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도록.’”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는 듯 니콜라이가 피식 웃었다.

“‘힘이 없는 건 죄악이다. 잘 알아 두도록.’”

니콜라이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대로 뇌 속성 계열의 능력을 사용해 둘을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지지직! 니콜라이의 손가락에 번개가 맺혔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와인을 먹어야지. 저장고에 고이 모셔 놓은 귀한 와인들을 떠올리며 니콜라이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하아.”

니콜라이의 등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니콜라이가 몸을 돌렸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괜찮냐?”

“…네, 형.”

또다시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니콜라이가 재차 몸을 돌렸다.

바닥에 엎어진 김태식 옆에 낯선 남자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니콜라이가 경계심을 높이며 물었다.

“누구냐.”

“내가 할 소리야, 이 새끼야. 왜 남의 자동 사냥 기계를 부수고 난리야.”

백한영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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