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60화 (60/117)

61화 초인의 시대 (9)

[현재 두 명 다 범죄 조직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있습니다.]

“그놈들 뭐 러시아에 있다면서요. 태식이는 거길 대체 어떻게 갔대요.”

[소냐가 공간계 각성자로 추정됩니다. 아마 의도하진 않았을 테고, 능력이 폭주했을 겁니다.]

“하아.”

그놈의 각성 능력은 들을 때마다 새롭네. 이러다 차원 이동 하는 각성자도 나오는 건 아닌가 몰라.

[최대한 빠르게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전력이 모이는 대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태식이가 러시아로 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요? 음.”

백한영은 잠시 말을 끊고 집중했다. 태식이 얘는 그래서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아직 살아 있긴 하네요.”

[네?]

“아니에요. 그래서 언제쯤 인원이 모일 것 같나요.”

[생각보다 금방 모일 것 같습니다. S급 각성자 한 명이 이미 참가가 확정 났거든요. 이미 전력은 어느 정도 확보가 됐습니다.]

“누구요?”

[윤한 님이십니다.]

아하, 그 인간. 저번에 SS급 게이트를 공략할 때 한번 봐서 누군지 알았다.

기절해서 땅에 쓰러져 있는 걸 본 거긴 했지만, 그것도 얼굴을 본 걸로 쳐도 되지 않을까.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잖아.

S급 각성자가 백한영의 기준에서나 별로인 거지, 다른 사람들에겐 한없이 높은 경지였다. 윤한이 참가를 결정한 순간 목표 전력이 반 이상 확보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모으기도 쉬워졌을 것이다.

S급 각성자와 함께라면 없던 용기도 생겨나기 마련이었으니까.

[이미 다수의 A급 각성자와의 접촉이 끝났습니다. 아마 몇 시간 이내로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백한영 씨에게 연락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길드원인 김태식 씨가 실종돼서 알려 드린 거기도 하지만, 곧 작전을 실행할 것 같으니 만약 직접 나서고 싶으시면 최대한 빨리 합류하시는 게.]

“합류요.”

이현진의 말에 백한영은 잠깐 생각했다. 원래라면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을 텐데. 나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바뀌긴 했나 보다.

백한영이 말했다.

“그거라면 저번에 말했던 것과 답이 똑같습니다. 나서고 싶지는 않네요.”

[알겠습니다.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세요.]

“마음이 바뀐다면요.”

띠링. 통화가 끊어진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던 백한영은 이내 미리 준비해 놓은 캠핑카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은 백한영은 선반에 쌓여 있는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가, 조용히 내려놨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깐 마음속에 있는 걸 정리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을 기준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집어넣을 걸 정한다. 그 후에 안에 있는 내용물을, 일상, 친구, 가족을 지킨다.

이 얘기는 이미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태식이는 울타리 안의 인간일까, 아닐까.

이게 참 애매했다. 김태식은 확실히 백한영과 가까웠다. 적어도 현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선 여동생인 백은하와 이모인 이지선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일 거다.

질문을 조금 바꿔서, 과연 김태식은 백한영에게 얼마나 가까운 존재일까?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달려가서 구할 정도로 가까울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

구할 수도 있었고 안 구할 수도 있었다. 아마 구하러 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김태식이 뜬금없이 웜홀에 빠져서 이세계 마왕성에 떨어졌다고 치자. 그때 누군가 김태식이 위기라고 알려 준다면 아마 쯧쯧 혀를 차고 마왕성으로 향할 것이다.

몇 개월 동안 이것저것 가르치며 쌓은 정이 그 정도는 됐다.

하지만 김태식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마왕성에 멋대로 찾아갔다가 위험에 빠졌다면 어떨까.

상황은 똑같았다. 적진에 고립된 것도, 적이 강대한 마왕이라는 것도 같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백한영은 김태식을 구하러 가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방향성의 문제였다.

스스로 원했는가, 원하지 않았는가.

자신이 벌인 일인가, 말려든 일인가.

김태식을 이번에 구해 줬다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김태식은 여전히 불쌍한 사람을 보면 나서려 할 테고, 어쩌면 또다시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지는 않겠지만, 아예 0도 아니었다.

확률. 그래, 확률이 문제였다.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시행 횟수가 많아지면 결국 당첨되는 것처럼, 이번 일도 같은 맥락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어 간다. 산속에 틀어박혀 속세와 연을 끊고 살아도 만들어지는 게 인연이었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한 도시에서 살면 말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현대에 돌아온 뒤로 백한영은 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작게는 식물인간 시절에 신세를 진 의사부터, 크게는 길드원까지.

백한영이 인간의 삶을 원한 이상 그와 연관되는 사람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의 일부가 김태식처럼 일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들을 전부 수습해 주다 보면 결국 세상에 점점 관여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백한영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이미 중원에서 한계까지 세상에 관여했다가 후회를 잔뜩 했는데, 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방향성이 중요했다. 경험하기론 말려든 걸 구해 주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 정도로는 의외로 세상에 관여하는 정도가 적었다.

그 이상이 문제였지.

하아. 백한영이 한숨을 쉬었다. 당연하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백한영도 인간이다. 괴물 같은, 신조차 두려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사람의 마음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러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닳고 닳은 백한영의 마음은 이 정도로 우울해지거나 울적해지진 않았다. 다만 유쾌하지도 않았다.

이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김태식을 구해 주면 됐다. 그러나 백한영이 세운 룰이, 원칙이 그걸 방해했다.

그깟 원칙. 안 지킨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한 번쯤 어겨도 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원칙을 세웠다면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이 짓을 하는 의미가 사라졌다.

이건 이런 힘을 가지게 됐음에도, 절대자가 됐음에도 인간의 삶을 살고 싶은 이상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운명인 거다.

겸허히 인정하고, 수용해야 됐다.

백한영은 한참 동안 캠핑카의 천장을 봤다가,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한 2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 * *

범죄 조직, 라크라티아의 연구소 보안실. 그곳에서 도넛과 커피를 마시며 CCTV를 보고 있던 보안 책임자가 문득 이상한 걸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감옥 방 CCTV가 거슬리는데? 이유가 뭐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감옥 방이 평소랑 다른 기분이었다.

뭐가 다른 걸까. CCTV를 유심히 보던 보안 책임자는 이내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밤 10시 30분. 원래라면 한창 실험체들을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보안 책임자가 재차 CCTV를 봤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아까만 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 간 거지.’

설마 그 짧은 시간 동안 저 많은 인원을 다 체크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CCTV로 매일같이 지켜봤기에 실험체 점검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잘 알았다. 적어도 11시는 넘겨야 일이 대충이나마 마무리될 텐데 벌써 아무도 없다니. 뭔가 이상했다.

수상함을 느낌 보안 책임자는 내선 전화기에 손을 뻗으며 망설였다.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일 수도 있는데 혼자서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보안 책임자가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조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똑똑.

누군가 보안실 문을 두들겼다.

바빠 죽겠는데 누구야. 보안 책임자가 고개를 돌려 입구를 노려보자,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보안실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필요하다. 열쇠. 특별 관리실.’”

“‘뭐? 그건 왜.’”

“‘보스가 요구했다.’”

보스가 특별 관리실 열쇠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벌써?

말투도 뭔가 어눌하고 행동도 어딘가 미심쩍었지만, 보안 책임자는 일단 방호복을 입은 녀석이 원하는 대로 특별 관리실 열쇠를 가져와 내밀었다.

“‘고맙다.’”

열쇠를 받자마자 보안실을 떠나기 위해 몸을 돌리는 녀석. 저쪽도 어지간히 바쁜 모양이었다.

보안 책임자는 재차 내선 전화기에 손을 올려놨다. 이번에야말로 감옥 방에 생긴 이변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

그리고 멈칫했다.

방호복을 입은 조직원은 주로 실험체들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까놓고 말해서 말단 중의 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조직원이 보스의 아래에 있으니 녀석이 명령을 수행하는 게 얼핏 봐선 당연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 관리실같이 보스가 신경 쓰는 곳을 저런 말단 중의 말단 한 명에게 단독으로 맡길 리가 없었다.

여태까지는 보스의 직속 부하와 말단이 같이 와서 열쇠를 챙겨 갔으면서 이번만 말단 혼자 온다?

심지어 감옥 방에 이상이 생긴 걸 감지한 이때?

보안 책임자가 조심히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수를 쓴 건진 모르겠지만, 연구소 내부에 침입자가―.

“어떻게 알았지. 완벽했는데.”

뚜―. 허공을 가른 칼날이 전화줄을 끊어 버렸다. 방호복을 입은 남자, 김태식이 보안 책임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잠깐 잠 좀 주무세요. 얼굴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게, 수면이 부족한 것 같네요.”

털썩. 보안 책임자를 기절시킨 김태식은 휴게실에서 챙긴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걸로 열쇠까지 챙겼으니 바로 소냐의 오빠를 구하러 가면 되겠다.’

연구소 내부는 월드컵경기장을 가볍게 넘기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소냐의 오빠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특별 사용실은 보안실과 거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서둘러야겠다. 김태식은 지도를 챙긴 후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다.

빼꼼. 소냐가 고개를 들어 김태식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왜?’”

“‘괜찮아?’”

“‘응.’”

소냐의 상태를 확인한 김태식은 그대로 보안실을 벗어나 특별 사용실로 향했다.

“‘이봐, 어딜 가는 거야.’”

“‘안녕하세요.’”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신입인가? 신입이 온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는데.’”

“‘반갑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김태식을 미심쩍게 바라봤지만, 대부분은 그냥 정신이 이상한 놈이라고 여기고 넘어갔다.

“‘뭔가 이상한데. 너, 소속이 어디야.’”

“으으음.”

아닌 경우는 빈방으로 불러서 대화를 나누면 됐다.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을 넘기고, 의심하는 사람을 담그며 한참을 이동한 김태식은 특별 사용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만 엄청 따로 노네.’

다른 곳은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분위기인 것에 비해 이곳은 칙칙하다고 해야 되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있었다.

열쇠를 꺼낸 김태식은 조심히 특별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 관리실 안은 김태식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탈출자를 처벌하는 공간이라는 얘기와 반드시 며칠 후에 시체를 치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김태식은 고문실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막상 본 특별 관리실은 고문실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김태식은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매만졌다. 특별 관리실 안 풍경을 보니 예전에 치료했던 충치의 감각이 살아났다.

‘치과 침대가 왜 이렇게 많아.’

무엇을 목적으로 저렇게 많은 치과 침대를 들여놓은 걸까. 피 냄새가 나지 않는 걸 보면 고문 목적은 아닐 것이다.

방 안을 둘러보던 김태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여기에 소냐의 오빠가 있을 거라고 했건만, 치과 침대만 많고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는?’”

어느새 밖으로 나온 소냐가 김태식에게 물었다.

김태식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예상 밖이었다.

‘다른 곳으로 빼돌린 건가?’

어쩌지. 처음으로 돌아가 정보부터 다시 모아야 하나. 지금도 살짝 아슬아슬한데 그럴 여유가 있을까.

잠깐 고민한 김태식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여기에 계속 머물러 봤자 좋을 게 없었다.

김태식이 소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소냐를 들어서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소냐도 김태식에게 안기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지지직―. 특별 관리실을 밝히던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김태식이 적련을 소환하면서 마나를 최대로 끌어 올렸다. 화르륵! 적련에서 거센 불꽃이 피어오르며 어둠을 밝혔다.

동시에.

“‘쥐새끼가 들어왔군.’”

섬뜩한 목소리가 김태식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며.

김태식의 시야가, 암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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