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초인의 시대 (1)
특수 대책반 반장, 이현진은 검지로 미간 사이를 꾹 누른 후 상환판을 살폈다.
화이트보드엔 지금 추적 중인 범죄 조직의 관계도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정보들이 의미하는 게 뭘까. 지금부터 그걸 알아내야 했다.
‘안 되겠다.’
며칠째 밤샘을 해서 그런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럴 때 해결법은 하나였다. 칙. 오늘로 몇 개째인지 모를 담배에 불이 붙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고뇌하는 이현진에게 특수 대책반 요원, 이세영이 말했다.
“그러다 폐 썩겠어요.”
“피우지 않으면 폐암에 걸리기 전에 혈압이 올라서 죽겠다.”
니코틴을 보충하자 뇌가 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현진은 지난 몇 달간 했던 고생을 떠올렸다.
야금야금 시중에 퍼지던 불법 각성 강화제부터 우상향하는 각종 범죄의 숫자까지. 이 모든 게 우연히 벌어질 리 없었으니 뒤에 누군가 있었던 게 분명했지만, 워낙 조심스러운 놈들이라 알아내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골머리를 썩이다가 다중 게이트, 게이트에 생긴 대규모 변화, SS급 던전 게이트, 월드 게이트, 서울 브레이크 등의 사건을 거치며 간신히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세상이 불안정해져 장사가 워낙 잘되니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원래 일이 잘 풀릴 때 가장 조심해야 됐는데, 그것까진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 꼬리를 타고 올라가서 본체를 치기만 하면 돼.’
거기까지 생각한 이현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워낙 규모가 커 보여 이초아에게 도움을 요청했건만, 바쁘다고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해는 됐다.
이초아는 S급 각성자였다. S급이라는 단어에 담긴 무게감은 그것에 가까운 각성자일수록 잘 알았다.
그건 각성자의 정점이라는 소리였으며,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뜻이었다.
때문에 S급 각성자를 데려오면 대부분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됐다. 적을 분쇄하는 일이면 더더욱 쉽게.
이상적으로는 모든 일을 S급 각성자가 해결하는 게 가장 좋았다. 강도를 제압하는 일부터 S급 게이트를 해결하는 일까지 전부.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사람의 몸은 하나였으니까.
요컨대 효율을 따져 봐야 된다는 소리다.
진실로 S급 각성자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아니면 투입하지 않는 게 맞았다.
‘근데 이번 일은 살짝 어려워 보이는데, 바쁘다는 걸 어쩌겠어.’
그나저나 얘네는 대체 뭘까. 이현진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뇌를 쥐어짰다.
녀석들은 해외에 뿌리를 둔 조직이었다. 요즘 세대 범죄 조직이라 그런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특이점이 있었고, 점조직을 통해 밀반입한 약물을 주로 판매했다.
이처럼 놈들의 정체와 수법은 거의 알아냈지만, 가장 중요한 게 밝혀지지 않았다.
‘목적이 대체 뭐냐.’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수율 잡는 게 쉽지 않은, 심지어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각성 강화제를 집요하게 판매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의 불법은 돈이 원인이라고 보면 됐다.
돈이 되니까 한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이놈들을 봐라. 인간의 욕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는데 돈이 목적이 아니다?
이런 경우 원인을 까 보면 구역질 나는 어둠이 숨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걸 얼른 밝혀 내 대처하고 싶었지만, 니코틴을 보충한 뇌로도 이거다 싶은 정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숨을 작게 내쉰 이현진이 소파에 앉았다. 상당히 피곤했다.
잠깐 잘까. 어차피 당분간은 놈들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것도 없―.
“반장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이현진이 반쯤 잠에 빠졌던 정신을 일깨웠다.
“무슨 일이야.”
“놈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요.”
“이상하다고?”
“핵심 인력을 특정 포인트로 이동시키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거.”
매번 일정한 움직임을 보여 줬던 놈들이 갑자기 오늘에 와서 변화를 준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전부 소집해. 바로 간다.”
사건의 냄새가 났다.
* * *
“얘들아, 잘 쉬었니.”
그 말에 무신련의 길드원들이 동태눈을 하고 백한영을 바라봤다.
던전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지 고작 12시간밖에 안 됐건만, 다시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길드장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잘… 쉬었어요.”
신유나가 떨어지지 않는 입술로 간신히 대답했다. 집에 가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들었으니 실제로 잘 쉬긴 했다.
“흐음.”
백한영이 팔짱을 끼고 길드원을 훑어봤다.
얘네를 이대로 다시 훈련을 시켜도 될까. 잠깐 고민해 봤다.
음. 될 것 같았다. 각성자인데 하루 쉬었으면 많이 쉰 거지. 갈 길이 먼데 고작 이런 곳에서 하나하나 봐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기, 형.”
그때 김태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응? 왜?”
“오늘 훈련에서 빠져도 될까요.”
“어… 이유가 뭐니.”
백한영이 떨떠름하게 묻자, 김태식이 말했다.
“부모님 기일이라서, 인사를 드리고 오려고요.”
이유부터 듣기 잘했다.
하마터면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따라오라는 말부터 해서 분위기가 싸해질 뻔했다.
“다녀와. 위치는 문자로 보내 줄게.”
“네, 형.”
김태식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무실을 떠났다. 백한영은 나머지 길드원들을 스윽 쳐다본 후 말했다.
“혹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 더 있니?”
“…교관님, 저희 딱 하루만 더 쉬면 안 돼요?”
“없구나. 마침 잘됐다. 너네랑 태식이랑 실력 차이가 좀 나서 조정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걸 오늘 하면 되겠네. 전부 주차장으로 나와. 출발한다.”
* * *
납골당은 올 때마다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딱히 냉방이 강하지 않은데도 그랬다. 죽음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 걸까. 어쩌면 죽은 자들이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김태식은 고개를 들어 유골함을 바라봤다.
딱 붙어 있는 칸에 하나씩 들어 있는 유골함.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를 김태식이 손으로 쓸었다
[故 김무혁]
[故 이혜화]
그리운 부모님의 이름을 확인한 김태식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 어머니, 1년 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김태식의 아버지는 소방관,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김태식의 부모님은 같은 날 돌아가셨다. 교통사고는 아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던 두 사람은 같은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다.
8년 전. 처음 이 세계에 게이트가 열린 그날. 참 많은 사람이 다양한 사유로 세상을 떠났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서, 혼잡한 상황에 휩쓸려서.
그리고 남을 구하기 위해서.
김태식의 부모님은 이 중 세 번째 사례에 속했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 김태식의 부모님은 뉴스에 소개됐다. 절망적인 시기에 피어난 희망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것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사람들을 구하다 죽은 소방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초등학교 교사.
심지어 둘이 부부이기까지 했다. 그 아름다운 미담에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으며, 동시에 감동했다.
김태식은 어땠냐면, 모르겠다. 화가 났었던 것 같기도 했고, 울었던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의 면상에 주먹을 꽂았던 것만큼은 후회가 안 됐다.
“조금만 덜 착하시지 그랬어요.”
시간을 돌려 부모님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다.
남겨지는 어린 아들보다 사람들을 구하는 게 더 중요했냐고. 마음속에 내 생각이 있기는 했었냐고.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결국 이해하고 그리워할 거면서 왜 그리 부모님을 원망했었는지. 당시 소모된 시간과 감정이 너무나 아까웠다.
‘두 분처럼 안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유전이 참 무섭긴 한가 봐요.’
김태식은 강해지고 싶었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가장 큰 목적은 하나였다.
남들을 구하고 싶었다. 더는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우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넓었던 오지랖이 각성 능력이라는 힘을 얻게 되자 그런 쪽으로 발전한 것이다.
부모님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모여 지금의 김태식이 만들어진 거다.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년에 또 올게요.”
부모님과의 짧은 인사를 마친 김태식이 납골당을 나갔다.
내리쬐는 햇빛이 따가웠다. 납골당 안에 있을 때만 해도 추웠는데. 마치 이계에 있다가 돌아온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바다나 보고 올까.’
납골당은 김무혁과 이혜화의 고향인 바닷가 인근 마을에 있었다. 원한다면 바다를 구경하는 것도 가능했다.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바다라도 보고 오면 나아지지 않을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감정이 시간에 풍화됐다고 해도 남아 있는 게 있었으니까.
김태식은 익숙한 길을 따라 바닷가로 향했다. 한참을 이동하자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닷가에 진입한 김태식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모래사장을 보고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쏴아아―. 파도 소리가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 내려 줬다.
좋긴 좋네. 한참 동안 바다 풍경을 눈에 담은 김태식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창 훈련하고 있을 신유나와 최동협에게 합류하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 됐다.
이번엔 어디서 훈련을 하고 있으려나. 스마트폰을 꺼낸 김태식이 백한영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려 했을 때였다.
‘어라.’
누군가 김태식의 시야에 잡혔다.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 있는 금발의 소녀. 얼핏 봐선 관광객 같았지만, 옷차림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금발의 소녀는 한여름임에도 겨울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부모에게 학대받는 중이 아니라면 저런 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뻔했다.
보호자와 떨어진 상태. 즉 미아인 거다.
“얘야?”
“……!”
김태식이 다가가 말을 걸자 금발의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김태식의 표정이 굳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서, 멀리서 대충 봐서 몰랐던 사실을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몸에 상처가 많아.’
두꺼운 옷에도 가려지지 않는 멍과 흉터에 김태식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가, 겁먹은 금발의 소녀를 보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니?”
대뜸 깊게 들어가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여기서는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
금발의 소녀가 여전히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서 그런 걸까. 아니. 애초에 대화가 통하고 있긴 한 건가?
딱 봐도 슬라브계 백인으로 보이는 소녀가 한국어를 알아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김태식은 주머니에 있던 소시지를 꺼냈다. 던전 게이트로 끌려갈 것을 대비해 챙겨 놓은 거였다.
입으로 먹는 시늉을 하고 건네주자, 금발의 소녀가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는 소시지를 천천히 먹었다.
일단 한고비 넘겼네. 소녀를 안심시키는 데 성공한 김태식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이다음부터는 경찰의 영역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검은색 밴이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잔뜩 멈춰 선 건 그 순간이었다.
검은색 밴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주변을 훑어본 한 남자가 금발의 소녀를 발견하고 말했다.
“확보해.”
“꺄아아아악!”
패닉에 빠져 소리를 지르는 금발의 소녀.
그런 금발의 소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끌고 가려는 양복남들 사이에.
“뭐야, 이 새끼들은.”
김태식이 끼어들었다.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차가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