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50화 (50/117)

51화 이걸 깜빡했네, 미안하게 (2)

백한영이 갑자기 무신련 특별 과정을 연 건 딱히 길드원들이 미워서는 아니었다.

그가 길드원들을 훈련시키는 건 아스트레일에게 이 세계에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특이점이 있다는 걸 들은 것과 연관이 있었다.

백한영은 욕망이 가지는 파급력을 알았다.

돈과 무공 비급을 얻기 위해서도 수많은 피가 흘렀는데,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특이점?

말마따나 함선을 끌고 다른 차원을 침략하는 게 이해가 되는 수준인 것이다.

지금에야 하나로 끝났…….

…하나가 맞나? 여태 걔 말고도 잔뜩 왔던 것 같기도.

아무튼 앞으로 침략은 가속될 거고, 끊임없이 적이 나타날 텐데.

그걸 가만히 놔둘 생각은 일단 백한영에겐 없었다.

물론 백한영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양아버지를 따라 정의의 사자가 진심으로 되고 싶은 소년도 아니었다.

모든 불행을 없애야 된다 믿지도 않았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 그건 인간의 삶이 아니었으니까.

백한영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동생과, 가족과 천년만년 행복하게 사는 것.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것.

그걸 위해 절대자의 위치와 힘… 은 안 버려지긴 했지만, 아무튼 전부 놓고 지구로 귀환한 거다.

때문에 지구에 벌어지는 커다란 사건들까진 백한영이 막을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아스트레일을 백한영이 귀찮다고 안 막았다면 세상이 완전 개박살이 났을 텐데, 그 와중에 백은하와 느긋한 일상을 보낸다? 불가능했다.

그래서 막긴 하겠지만.

전부 나 혼자 막으면 내 일상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 백한영이 길드원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지금에야 뜨문뜨문 침략이 오지, 나중에 동시다발적으로 계속 난리가 나면 오키나와가 뭐야. 집에서 게임 할 시간도 없어질 게 분명했다.

그건 싫었다.

백수의 생존권을 보장해라.

‘적어도 화경(化境)의 극(極)까지 키워 놓으면 밥값은 하겠지.’

화경의 극은 무림에서도 한 시대에 몇 명 없었을 정도로 굉장히 높은 수준의 경지였지만, 백한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우선 최동협. 가능했다.

이게, 최동협의 재능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뭐, 관점에 따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백환영의 기준에선 최동협은 천재에 속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다만 자질이 뛰어났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각성 능력도, 타고난 성향도, 그리고 감각도.

극야권을 익히기에 최적화된 인재였고, 그 정도로 삼박자가 맞으면 오히려 천재보다 더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천재가 아닌 만큼 혼자서 성장하는 건 힘들겠지만, 스승이 백한영이기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신유나. 애매했는데 가능했다.

재능이 부족해서? 오히려 반대였다. 백한영의 기준으로 신유나는 천재에 속했다.

아마 신유나는 설사 백한영이 없었다고 해도 지금의 방향성, 이기어검의 극에 이르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아내고 그렇게 진화했을 것이다.

시간이야 많이 걸렸겠지만.

그런데 왜 애매하냐고?

신유나는 확실히 천재의 카테고리에 속했지만.

‘진짜’는 아니었다.

백한영이 봤을 때 이 세계에서 ‘진짜’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검신의 별호를 쓰고 있는 천 머시기밖에 없었다.

백한영보다는 아니었지만, 천 머시기 정도의 재능이면 중원에서도 충분히 천외천의 경지를 노릴 만한 인재였다.

검신이면 그 정도는 하는 게 맞지.

아무튼 얘기를 돌려서, ‘진짜’가 아닌 게 뭐가 문제냐.

결국 ‘진짜’가 아니면 특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 벽에 막히게 되고, 천재의 가장 빠른 장점인 성장 속도가 의미가 없어지게 됐는데.

그때 벽을 뚫기 위해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닌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광기, 집착, 신념 혹은 맹세.

등등의 재료가 필요했고, 이런 건 재능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성향과 관련이 있었지.

‘진짜’들은 그런 것 없어도 벽을 박살 내고 하늘로 승천하긴 했지만, 신유나는 아니었으니 위의 재료가 반드시 필요했건만.

까놓고 말해 천재들은 저런 걸 가지기 어려웠다. 워낙 삶이 쉬워서 그런가. 보통 그랬다.

실제 신유나도 위의 재료가 내면에 많이 부족한 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 부분은 백한영이 대책을 세워 놓긴 했다.

마지막으로 김태식은…….

태식아.

열심히 좀 하자. 지금보다 더.

재능이 있긴 한데 신유나보다는 아니고, 자질이 있긴 한데 최동협보다 아닌 김태식.

사실 얘가 제일 문제였다.

김태식은 검술만 파고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본인 스스로 각성 능력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은데.

이건 백한영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까진 가능했지만, 고찰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몫이었으니까.

얘가 성실하긴 하니 어떻게 되긴 하겠지만, 불안한 것도 맞았다.

‘1년. 1년 안에 전부 화경의 극에 올려놓는다.’

누가 들었다면 미친 소리라고 한마디 할 법한 말이었다.

이제 막 검강(劍罡)의 경지에 오른 녀석들을 1년 안에 화경의 극? 그게 가능했으면 제자가 많은 대문파가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백한영도 무리한 요구라는 건 알았다.

근데… 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

까라면 까.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에 백한영은 백은하의 첫 음방 데뷔 영상을 틀었다.

우리 은하 노래 잘하네.

근데 무대 의상이 살짝 짧은 것 같다?

나중에 한마디 해야겠다.

베이스캠프의 잔해를 밟으며 신유나가 앞으로 달려갔다.

“죽어!”

그녀의 각성 능력, 천상광휘가 발동됐다.

빛의 검이 허공에 늘어서고, 신유나의 의지에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해변에 때아닌 무도회가 열렸다.

빛의 검이 춤을 췄다. 백열하는 빛의 검이 원숭이 몬스터의 눈을 어지럽히고, 녀석의 생(生)로를 봉했다.

크릉.

진법이니 합격진이니 하는 건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원숭이 몬스터가 크게 발을 굴렀다.

쿠웅!

모래사장이 움푹 패며 빛의 검이 파동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빠르게 재정비를 하고 광륜봉시진(光輪封時陣)을 재차 사용할 생각인 것이다.

우웅―!

붉은 기운이 거칠게 뿜어져 나오며 원숭이 몬스터의 양손이 딱딱하게 변했다.

녀석이 땅을 박차고 신유나에게 달려들었다.

빛의 검을 제어하느라 본체에 신경을 덜 쓰고 있는 신유나가 딱 봐도 쉬운 먹잇감인 탓이었다.

“어딜!”

김태식이 적련을 거세게 불태우며 상대를 막아섰다.

화르르륵!

불꽃이 타올랐다. 마나가 듬뿍 담긴 불꽃이 이내 형태를 갖추고 검을 감쌌다.

불꽃의 검강을 만들어 낸 김태식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적련검법, 1식.

홍회일화.

불의 파도가 원숭이 몬스터의 몸 위를 질주했다.

적련검법은 백한영이 김태식을 위해 손수 제작한 검법이었다.

백한영은 딱히 자신이 만든 무공을 모든 사람이 배워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 사람에게 맞는 무공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지, 그 무공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늘 말하고 다니는 게 백한영이었는데.

그런 백한영이 김태식을 위해 검법을 만들어 준 이유는 별건 아니고.

그냥 김태식에게 맞는 검법이 없어서였다.

김태식은 애매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재능도 애매하고 자질도 애매하고. 다 어중간했다

어중간한 사람이 한계를 뚫기 위해선 가진 걸 최대한 살리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김태식이 가진 건 각성 능력이라는 중원에는 없던 해괴한 것이었다.

누가 술법기를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정하고 무공을 만들었겠는가.

그래서다, 백한영이 김태식을 위해 무공을 만든 건.

백한영이 각성 능력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있는데 안 쓰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그건 따지자면 튼튼한 몸을 안 쓰는 거랑 비슷했다.

있으면 쓰는 게 맞았다.

단. 제대로, 확실하게.

김태식의 각성 능력은 불꽃의 마검을 소환하는 능력. 때문에 적련검법은 불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불이 가지는 속성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가 있었다.

파괴, 재생, 신성.

모든 걸 재료 삼아 타오르는 강력함은 파괴를 연상시켰고, 그 후 찾아오는 새로운 시작은 재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신성함은 불과 사람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아예 불을 숭상하는 집단까지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이처럼 불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결국 불의 본질은 하나였다.

모든 것의 시작.

짐승이, 인류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단추.

근원.

그게 바로 불이었으며.

불을 모방한 적련검법은 근원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동협아! 얼른 도와줘!”

…아직 근원은커녕 파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긴 했지만. 닿아 있긴 했다.

“네, 형!”

모래를 발로 박찬 최동협이 원숭이 몬스터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극야권은 동공(動功)임과 동시에 권법이었다.

빠른 선택을 위해 육체를 개조하며 본능을 갈고닦는 극야권은 틀림없이 동공(動功) 그 자체였지만, 그렇다고 극야권에 초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본능이 강화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초식들도 있었으니까.

최동협의 몸에 짐승의 혼이 깃들었다.

짐승이 포효하며 최동협의 본능을 자극했다.

이성의 끈이 느슨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최동협이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극야권, 1식.

호왕폭성.

육체의 한계를 무시한 강력한 주먹이 원숭이 몬스터의 배에 꽂혔다

콰아앙!

딱딱해진 원숭이 몬스터의 배와 최동협의 주먹이 만나며 주변의 모래가 거세게 흔들렸다.

극야권은 본능의 힘을 키우는 무공. 당연히 본능과 상승효과를 내는 초식이 여러 개 존재했다.

호왕폭성도 그중 하나였다.

인간의 이성이 있는 이상 풀지 못하는 신체적 리미트를 풀어 버리는 초식.

신체에 리미트가 괜히 걸려 있는 게 아닌 만큼 상당히 위험한 초식이었지만, 육체가 진짜로 망가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도 본능의 힘인지라 상당히 쓸 만한 초식이었다.

촤르륵.

빛의 검이 원숭이 몬스터를 에워쌌다.

광륜봉시진이 발동된 것이다.

그 틈을 타 신유나의 검이, 김태식의 불꽃이, 최동협의 주먹이 원숭이 몬스터에게 작렬했다.

쿠웅.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 쓰러지는 몬스터를 보며 셋이 소리를 질렀다.

“됐다!”

“끝이다!”

신유나와 최동협이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베이스캠프가 망가지긴 했지만, 던전의 수호자를 잡았으니 곧 게이트가 닫힐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

“…….”

신유나와 최동협이 죽은 눈으로 베이스캠프의 잔해를 바라봤다.

게이트가 닫힐 생각을 안 했다.

무슨 말이냐.

방금 개고생하며 쓰러트린 몬스터가 던전의 수호자가 아니라 일반 몬스터라는 뜻이었고.

노숙을 해야 된다는 얘기였다.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신유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백한영이 히죽 웃었다.

“맛있네.”

감자칩이 참 달았다.

오해하면 안 됐다. 상황이 맛있는 게 아니라 감자칩이 맛있는 거다.

절대, 가볍게 던전 공략을 시킬 예정이었는데 오키나와 같은 나사 빠진 소리를 해서 정신교육 겸 생존 훈련을 시킨 것도, 애들이 고생하는 걸 보니 체증이 가라앉은 것도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