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43화 (43/117)

서울 브레이크(2)

김영운은 하늘에서 떨어진 용인(龍人)을 훑어봤다.

3m를 넘기는 덩치를 가진 용인은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압박감을 줬지만, 김영운은 다른 부분을 주목했다.

‘창?’

용인은 특이하게도 어깨에 창을 걸치고 있었는데, 풍기는 분위기나 자세 같은 게 억지로 무기를 든 몬스터의 그것이 아니었다.

숙련된 무인의 기세를 느낀 김영운이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고.

“내가 말했지. 불길한 냄새가 풀풀 난다고.”

용대하가 김영운의 앞으로 걸어 나가며 끌끌 웃었다.

용대하의 눈이 반짝였다.

얼핏 봐도 S급은 넘어 보이는 용인을 보고 피가 끓어오른 것이다.

그런 용대하와 김영운을 보며 용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사 하나에 권사 하나라. 수준을 파악하기엔 딱 적당하군.]

용인의 말에 용대하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대화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성이 있군. 하긴 그러니까 창 같은 무기도 쓸 수 있는 건가?”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인간. 하긴 너희 인간은 늘 그랬지.]

용인이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익숙하다는 듯.

“오만은 무슨. 남의 세계에 와서 깽판 치는 놈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용대하가 지지 않고 받아쳤지만, 용인은 관심 없다는 듯 창대로 어깨를 두들기며 주변을 훑어봤다.

[손님이 많군.]

이초아가 현장에 도착한 건 딱 그 순간이었다.

용대하가 이초아를 확인한 후 말했다.

“이걸로 우리는 세 명 그쪽은 한 명인데, 어때. 똥줄 좀 타기 시작하나?”

[개미가 하나건 셋이건 똑같지.]

용인이 어깨를 두들기던 창을 똑바로 쥐고 자세를 낮췄다.

순식간에 달라진 용인의 분위기에 이초아가 허겁지겁 마나를 끌어 올리며 물었다.

“저건 대체 뭐죠?”

“저도 모릅니다.”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김영운도 마나를 끌어 올렸고.

용대하가 움직였다.

발밑에 있는 아스팥트를 박살 내며 용인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용대하가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도저히 사람의 주먹과 창이 부딪혀 난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소음이 도시에 울려 퍼졌다.

[무식하군.]

그 어떤 미학도 느껴지지 않는 주먹질에 용인이 세로 동공을 작게 만들며 중얼거렸다.

단련된 육체를 보고 뛰어난 권사인 줄 알았건만, 까보니 동네 양아치 같은 주먹질이 튀어나온 거다.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칭찬 고맙군!”

하지만 용인의 반응에도 용대하는 크게 웃으며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용대하의 몸 안에 웅크리고 있던 마나가 움직였다.

오른쪽 주먹으로 모인 마나에 용대하의 의지가 깃들자, 그의 각성 능력이 발동됐다.

우웅―!

붉은 기운이 담긴 용대하의 주먹이 용인의 창대를 두들겼다.

콰아앙!

거대한 힘의 폭격에 용인의 거체가 뒤로 살짝 밀려났다.

용대하의 각성 능력은 특별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각성자 중 반 이상이 가지고 있는 강화계 능력의 소유자였으니 당연했다.

거기에 더해 그의 각성 능력은 심플했다.

마나를 이용해 신체를 강화한다. 그게 끝이었다.

원래 능력이라는 건 조건이 붙을수록 강해졌다.

가령 짐승의 혼을 불러들인다든가, 아니면 상대의 공격을 흡수해 저장한다든가.

아무리 강화계 능력이 간단한 경우가 많다고 해도 용대하의 능력은 심하게 단순했는데.

때문에 용대하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의 능력엔 응용을 넣을 부분이 없었다.

기교를 부릴 부분 또한 없었다.

그저 우직하게, 신체 강화란 이름의 우물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용대하는 앞을 가로막는 벽을 구겨버리고 S급의 경지에 발을 반쯤 집어넣고 말았다.

백한영이 봤다면 그게 무슨 비효율적인 짓이냐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사람이 강해지는 방법론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중원에서도 선천적으로 괴력을 타고난 사람은 늘 있었다.

괴력도 타고나고 기교도 완벽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보통은 한 가지만을 타고나기 마련이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무공과 성장 방법이 이미 수두룩 빽빽하게 널려 있었지만.

용대하는 몰랐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를.

다른 길이 있는지,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몰랐다? 사실 이것도 올바른 표현은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믿었다.

뼈가 부서져도, 근육이 전부 파열돼도.

정신이 마모돼도, 남들이 모두 앞서갈 때 뒤처져도, 세상이 정신병자라고 손가락질해도.

이게 옳다고 정했으니 믿는다.

그게 용대하가 품은 신념이었고.

그를 S급의 경지에 비빌 수 있게 해준 유일한 동력이었다.

“뱀대가리가 제법이구나!”

용대하의 주먹이 한발 한발 묵직하게 떨어졌다.

뒤로 천천히 물러나며 용대하의 주먹을 받아 내는 용인.

얼핏 봐선 용대하가 몰아붙이는 형국이었지만, 당사자인 용대하는 알았다.

지금 자신의 주먹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대로는 안 되겠군.

용대하가 마약이 펑펑 솟구치고 있는 머리를 굴렸다.

적의 강함은?

아군이 도움을 줄 수 있는 타이밍은?

다른 각성자들의 지원은?

근처에 이용할 만한 사물은 있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고, 이내 뇌가 한가지 답에 도달했다.

잘 모르겠고 그냥 큰 거 한 방 먹여주자.

용대하의 마나가 여태까지 없던 규모로 크게 격동했다.

강화계 각성 능력의 핵심은 능력과 육체 간의 줄다리기에 있었다.

육체의 한계에 맞춰 몸이 부서지기 직전까지 강화를 하는 게 강화계 각성자가 부릴 수 있는 최대의 기교라고 할 수 있었는데.

용대하는 그 부분에서 살짝 느슨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다.

육체는 어차피 고치면 그만. 중요한 건 순간의 파괴력이다.

용대하의 육체가 한계에 가깝게 강화됐다.

육체가 비명을 질렀지만, 용대하는 멈추지 않았다.

이걸로는 부족해.

저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이것보다 더.

더 많은 힘이 필요해.

용대하의 온몸에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육체의 붕괴가 시작됐다.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강화가 진행된 탓이었는데.

그럼에도.

용대하는 쓰러지지 않았다.

쩌적.

반쯤 찌그러져 제 역할을 못 했던 S급의 벽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용대하는 거대한 힘이 담긴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이게 남조선 꿀주먹이다 이 새끼야!”

용대하의 주먹과 용인의 창끝이 만나며 바닥에 둥그런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힘과 힘의 충돌에 거대한 파동이 주위를 훑고 지나갔다.

아스팔트에 가뭄이 들고, 주위 건물의 유리창이 죄다 박살 났다.

상대와 힘겨루기를 하느라 두 명의 몸이 멈춰 섰고.

미끄러지듯 용인의 옆을 지나치며 김영운이 검을 뽑아 들었다.

모여있던 마나가 폭발하며 김영운의 검이 엄청난 속도로 용인의 옆구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챙!

용대하를 상대하던 힘을 살짝 빼 창 자루로 김영운의 검을 막아내는 용인.

화륵.

그리고 그런 용인의 머리 위에, 불꽃의 기둥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7위계 소환계 주문. 화룡의 숨결이 직격했음에도 이초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월드 게이트 때의 경험을 통해 이 정도론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흐으읍!”

용대하가 최후의 힘을 끌어모으며 불꽃의 기둥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법에 당해 정신 못 차리고 있을 용인에게 S급의 경지에 기어코 도달한 주먹을 먹여줄 생각이었던 건데.

[흠. 이 정도인가.]

불꽃의 기둥 안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와 용대하가 급하게 몸을 틀었다.

촤아아악!

불꽃의 기둥이 갈라지며 용인의 창이 허공을 꿰뚫었다.

창끝을 타고 쏘아진 마나가 용대하를 맞추고 저 멀리 있는 건물에 닿았다.

구구구궁!

거대한 구멍이 뚫린 상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용대하가 작게 기침을 했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용대하에게 용인이 말했다.

[아무런 미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철학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찰 없는 주먹의 한계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지···랄하네.”

용대하가 말을 쥐어 짜냈다.

한계를 넘어선 신체 강화를 한 직후에 용인의 공격을 받아낸 탓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젠장.”

상황이 안 좋아진 걸 깨달은 김영운이 재빨리 각성능력을 발동시켰다.

용인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가 누적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연달아 공격하는 게 가장 승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인데.

[너는 더하군.]

그마저도 용인의 창에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검을 아예 뽑지도 못하게 자루 끝으로 손잡이를 눌러버린 용인은 그대로 창을 회전시키며 김영운의 턱을 후려쳤다.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을 나는 김영운.

김영운을 한 방에 기절시킨 용인이 이내 창끝을 용대하에게 향했다.

다 고만고만했지만, 그중 그나마 까다로웠던 용대하의 숨통을 확실히 끊기 위해서였다.

[다음 생엔 조금 더 정진하도록.]

용인의 말에 용대하는 이를 악물며 주먹에 마나를 모았다.

이대로 순순히 당해줄 수 없었다.

[호오. 근성은 좋군.]

용인의 창끝에 마나가, 강기(罡氣)가 모였다.

다 죽어가는 사냥감을 상대로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화르륵!

이초아가 급하게 발동한 마법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지만, 용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호신강기(護身罡氣)로 모든 마법을 막아낸 후 입을 열었다.

[잘 가라 인간.]

용인의 창이 적의 심장을 노리고 움직였다.

용대하가 힘겹게 주먹을 들어 올렸지만, 누가 봐도 역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창이 용대하의 주먹에 닿은 순간, 용인이 창 자루를 거세게 쥐었다.

그대로 용대하의 주먹을 꿰뚫고 녀석의 심장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이었던 건데.

파지지직!

누군가 창을 막아내며 용인의 턱을 가격했다.

[흠.]

가볍게 불청객의 공격을 피해낸 용인이 상대를 보며 살짝 감탄했다.

[쥐새끼처럼 숨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군.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이 내가 기척을 놓칠 줄이야.]

“그야 도적이거든.”

용사파티의 도적, 이엘이 칭찬해 줘서 고맙다는 말투로 대답한 후 용대하와 김영운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당신들은···?”

“지나가던 행인입니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이초아에게 이세계 용사, 홍유진이 그렇게 대답한 후 주변을 살펴봤다.

전투불능인 용대하와 김영운을 확인한 홍유진은 이내 눈앞의 적, 용인을 바라봤다.

여유롭게 창으로 어깨를 두들기는 용인.

수많은 공격을 맞았음에도 비늘 하나 그을리지 않은 용인을 보며 홍유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 좋은데.’

홍유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용인이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느낀 것이다.

‘안 좋아.’

속으로 안 좋다는 말을 반복하며 홍유진이 마른 입술을 적셨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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