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42화 (42/117)

서울 브레이크(1)

게이트 대책본부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부하 직원의 등장에 게이트 대책본부 본부장, 김산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급하게 대책본부를 찾아온 사람의 입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나온 경우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쉬지 않고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던 부하 직원은 이내 호흡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던전 브레이크? 어디에?”

최근 던전 브레이크가 너무 자주 발생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김산호가 그렇게 물었고.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인근 전체입니다!”

상상도 못 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 브레이크(1)]

서울 전역이 사이렌으로 뒤덮였다.

“모두 침착히―!”

콰앙!

사람들을 다독이던 경찰관의 목소리가 폭음에 묻혔다.

기기긱.

철근이 구겨지는 소리가 경찰관의 고막을 자극했다.

침을 꿀꺽 삼킨 경찰관은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가, 비명을 참아냈다.

가로등을 구겨버린 몬스터가 입맛을 다시며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구겨진 가로등을 콘크리트에서 뽑아버린 몬스터가 그대로 사람들을 향해 거대한 철 덩어리를 휘둘렀다.

동시에.

화륵.

불꽃의 검강이 철 덩어리와 함께 몬스터를 깔끔하게 두 동강 내버렸다.

적련을 역소환한 김태식이 경찰관에게 다가가 말했다.

“얼른 사람들을 대피시켜 주세요. 몬스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침착하게 이동 부탁드립니다―!”

재차 사람들을 다독이는 경찰관을 뒤로한 채 김태식이 작게 심호흡을 했다.

여태까지 김태식이 쓰러트린 몬스터만 해도 벌써 5마리째였다.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됐음에도 5마리면 굉장히 빠른 페이스였는데, 문제는 이렇게 많이 죽였음에도 몬스터가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태식이 형!”

다른 피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흩어졌던 최동협도 김태식에게 합류했다.

최동협이 말했다.

“제 쪽은 전부 해결했어요.”

“부상자는?”

“다행히 없었어요. 형은요?"

“나도. 일단 유나 쪽으로 합류하자. 아직 안 온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콰아앙!

김태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신유나가 있는 곳이었다.

김태식과 최동협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폭발의 중심지. 그곳에서 신유나가 허공에 세 자루의 빛의 검을 소환했다.

신유나의 주위를 둥둥 떠다니던 빛의 검이 하얗게 불타올랐다.

백열의 중심에 선 신유나가 검을 어깨 위로 눕히자 온몸에 불꽃을 두른 몬스터가 포효를 내질렀고.

세 자루의 빛의 검이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자유롭게 허공을 누비는 빛의 검. 마치 빛으로 된 원에 갇힌 모양새가 된 몬스터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별거 없어 보이는데,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륜봉시진(光輪封時陣).

극한에 이르면 시간조차 붙잡을 수 있는 합격진을 성공적으로 발동시킨 신유나가 앞으로 쏘아졌다.

움직임이 제한돼 탈출구가 정면밖에 남지않은 몬스터가 양손에 불꽃을 머금은 채 신유나에게 달려들었고.

그녀의 검이 망설임 없이 허공을 꿰뚫었다.

서걱. 깔끔하게 몬스터를 베어버린 신유나는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늘어트린 채 전장을 바라봤다.

그륵.

아직도 주변에 몬스터가 가득했다.

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신유나가 빛의 검을 사방에 퍼트렸다.

재차 광륜봉시진을 발동해 순식간에 몬스터를 쓸어버릴 계획이었던 건데.

“야수강림!”

그것보다 먼저 최동협이 몬스터 사이에 뛰어들었다.

짐승의 혼이 깃든 최동협의 주먹이 가차 없이 몬스터의 얼굴을 두들겼다.

퍼억!

수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피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머리가 날아간 몬스터의 시체가 땅에 쓰러지고, 몬스터의 피로 샤워를 한 최동협이 입을 열었다.

“신유나 너 괜찮아?”

“나는 괜찮아. 오히려 네가 좀 심각하네.”

“이거 내 피 아닌데?”

“알아 나도.”

적당히 대답한 신유나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빨리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다른 곳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아이고.”

그리고 살짝 늦게 현장에 도착한 김태식이 적련을 소환하며 중얼거렸다.

“이럴 때 한영이 형 있으면 든든할 텐데. 대체 어디 계신 거지.”

*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

“네. 정부에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신속히 지원해 달라고 합니다.”

검맥의 부길드장, 김영운은 길드원의 말에 속으로 한탄했다.

‘하필 이럴 때.’

아직 검신 천진혁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외부와 차단된 특수 훈련실에서 수련 중인 천진혁에게 연락을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김영운은 알았다.

그 검에 미친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수련을 멈추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가능한 인원을 전부 동원하세요.”

“알겠습니다.”

길드원에게 명령을 내린 김영운은 허리춤에 검을 찬 후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크르르.

밖으로 나가자마자 몬스터와 조우한 김영운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찰나의 순간 뽑힌 검이 몬스터를 반으로 갈라버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김영운이 검맥의 부길드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조직을 운영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검맥의 2인자가 되는 건 불가능했다.

검맥은 검을 신앙하는 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

덩치가 커지며 처음 설립할 때의 이념을 지니고 있는 길드원이 자연히 적어지긴 했지만, 창단 멤버 중 하나인 김영운까지 그렇진 않았다.

아직 마음속에 날카로운 검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김영운이 뒤따라 나오는 길드원에게 말했다.

“A급 각성자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팀을 만들어 서울 전역을 지원하세요. 한 팀당 5명 정도면 될 겁니다.”

“부길드장님은 어떻게?”

“저는 단독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이런 긴급 사태에 김영운 같은 강자가 다른 사람과 우르르 몰려 다니는 건 낭비였다.

신속히 팀을 꾸리는 길드원을 지켜보던 김영운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에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갔다.

피난민을 습격하는 몬스터를 반으로 베어버린 김영운은 옆에서 몬스터를 처리하는 다른 각성자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해가 없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군.’

8년 전 처음 게이트가 열린 후로 각성자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서울은 사실상 각성자 포화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고 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거 같지 않았다.

김영운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후 마나를 끌어올렸다.

‘전투가 벌어졌군.’

날카로워진 그의 감각에 다수의 일반인과 몬스터, 추가로 미친놈 하나가 날뛰고 있는 것이 잡혔다.

감각이 가리키는 곳으로 이동한 김영운은 이내 몬스터 여럿을 피떡으로 만들고 있는 근육질의 거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용대하님이셨군요.”

“이거 누구야. 검맥의 부길드장님 아니야.”

김영운의 말에 대한민국 10대 길드 백두의 길드장, 용대하가 몬스터 하나를 땅에 대충 던지며 대답했다.

용대하가 말했다.

“잘나신 검신 님은 어디 두고 댁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지? 길드원을 지휘해야 되지 않나?”

“긴급 사태입니다. 쓸데없는 신경전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군요.”

“그래서 검신은 어디 있어.”

“폐관수련 중입니다.”

김영운의 말에 용대하가 끌끌 웃었다.

“그럼 글렀군.”

검신이 검에 미친 인간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고, 당연히 거기엔 용대하도 포함됐다.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인 천진혁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에 용대하가 혀를 차자, 김영운이 말했다.

“그래도 사태가 심각해지지 않을 거 같아 다행입니다.”

“심각해지지 않을 거 같다고?”

“비록 피해는 있겠지만, 금방 진압될 거라는 얘기입니다.”

용대하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부연 설명을 하는 김영운.

하지만 용대하는 김영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뭘 모르는군.”

“제가 어떤 걸 모른다는 거죠?”

“그 안이한 사고방식만 봐도 모른다는 걸 알 수 있지. 여기서 끝일 거 같아?”

용대하가 자신의 코를 톡톡 치며 말했다.

“불길한 냄새가 이렇게 풀풀 나는데 끝일 거 같냐고.”

“그놈의 촉 얘기입니까. 이미 대규모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는데 여기서 특이사태가 또 발생할 거 같진 않군요.”

“냉철한 척하면서 희망 사항만 늘어놓고 있군. 그러니 네 실력이 안 느는 거다. 김영운.”

김영운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S급의 벽에 몇 년째 막혀 있는 김영운의 상태를 S급의 벽을 반쯤 부순 용대하가 지적한 탓이었다.

김영운이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말했지만 쓸데없는 신경전을 하고 싶지―.”

“잠깐.”

용대하가 김영운의 말을 끊었다.

김영운이 입을 다물었다.

그도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용대하와 김영운이 하늘을 바라봤다.

직후.

콰아아아앙!

둘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

허공에 맺힌 얼음의 창이 몬스터를 노리고 쏘아졌다.

끝없이 나타나는 몬스터의 행렬에 유지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고깃집에서 나오자마자 전투를 시작한 탓에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유지아가 손을 들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쩌저저적.

얼음이 피어났다.

유지아가 다수의 얼음 뭉치를 소환해 몬스터를 처리하던 중, 거대한 화염의 파도가 몬스터 무리를 덮쳤다.

“진짜 끝이 없네!”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단숨에 태워버리며 신경질을 내는 이초아.

덕분에 여유가 생겼기에 유지아는 나머지 몬스터를 정리한 후 안전지대에 멀뚱히 서 있던 한유림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네? 아. 괜찮아요.”

유지아의 말에 한유림이 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이제 더는 몬스터가 없음에도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어보던 한유림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다급히 말했다.

“한영 씨는요?”

“백한영 씨라면 제가 아까 보냈어요.”

한유림의 말에 대답한 건 막 마나를 회복한 이초아였다.

“네? 혼자서요? 그래도 돼요?”

“그 사람 그래 보여도 A급이라 괜찮아요. 동생 걱정하는 거 같길래 그냥 보냈어요. 아마 말 안 했어도 뛰쳐나갔을걸요?”

“···정말 괜찮은 거 맞죠?”

“A급이라 괜찮다니까요.”

한유림을 안심시키며 이초아는 머릿속에 근처의 대피소를 떠올렸다.

이대로 계속 일반인을  데리고 다닐 수 없으니 한유림을 우선 대피소에 데려다 놓을 생각이었던 건데.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근처에서, 거대한 폭음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이초아는 한유림과 유지아를 놔두고 소음의 중심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손님이 많군.]

김영운과 용대하와 대치 중인, 용인(龍人) 하나와 조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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