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40화 (40/117)

언니, 친구, 그리고(1)

이세계에서 귀환한 용사파티를 만나고 다음 날.

백한영의 스마트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한유림:<오랜 사이> 잘 봤어요. 재밌더라고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의 보답으로 식사라도 사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백한영은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손가락을 멈췄다가, 스크롤을 올려 여태까지 한유림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한유림:저번엔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보답으로 밥이라도 사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나:시간이 나면요.]

[한유림:안녕하세요. 한영 씨. 혹시 바쁘지 않다면 식사라도 사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나:죄송해요. 요즘 바빠서.]

[한유림:한영 씨 저 한유림이예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 해서 연락해 봤어요. 식사라도 사고 싶은데, 어떠세요?]

[나:바빠서. 죄송.]

각각 게임을 하느라, 게임을 하느라, 게임을 하느라 바빴던 걸로 기억했다.

백한영은 다시 최근에 온 메세지를 확인했다.

‘···<오랜 사이>를 봤다는 건,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전부 봤다는 거겠지?’

온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오랜 사이>를 본 사람들 사이에선 백한영이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놈인 게 까발려진 지 오래였다.

능력은 있지만 한량 기질 또한 있다는 게 <오랜 사이>를 본 시청자들이 백한영에게 내린 평가였는데.

그렇다 보니 이번에도 바쁘다고 메세지를 보내기 살짝 민망한 백한영이었다.

실제로 안 바쁘기도 했고.

아니. 바쁘긴 했는데, 게임을 하느라 바쁜 거라. 이걸 상대가 알고 있다면 역시 거절하기 좀.

백한영은 머리를 긁적이고 답장을 보냈다.

[나:언제든지 괜찮습니다.]

[한유림:그ㄹ러면 ㅈ제가 시간을ㄹ 보고 빠른ㄴ시일내에 일정을.]

1초 만에 오는 답장.

스마트폰으로 너튜브라도 보고 있었나 보다.

‘은하랑 친한 언니기도 하고, 그리고 고맙다고 밥을 산다는데 한 번 정도는 얻어먹을 만하지.’

무작위 테러에서 목숨을 구해줬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이렇게 계속 메세지를 보내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아예 은하까지 껴서 셋이서 먹을까? 이거 괜찮네. 한유림 씨는 애초에 은하랑 친한 사이잖아.’

자신의 기가 막힌 아이디어에 감탄한 백한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백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왜.]

“너 한유림 씨랑 친하지?”

[친하지. 왜?]

“별 건 아니고. 한유림 씨랑 밥 먹게 됐는데, 너도 같이 먹으면 어떨까 해서.”

[···잠깐만 오빠. 나 얘기를 못 따라가겠어. 오빠가 유림 언니랑 밥을 왜 먹어?]

“저번에 도와준 거 있잖아. 그거 보답을 하겠다는데?”

당연하지만 백은하는 백한영이 한유림을 목숨의 위기에서 구해준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거 몇 달 전 아니야? 이제서야 밥을 먹는다고?]

한참 전의 일의 보답을 지금에서야 받는다고 하니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바빴어.”

[오빠 평소에 뭐 하고 지내는지 이제 다 아는데 바빴다고?]

“······진짜야.”

백한영은 처음으로 <오랜 사이>에 출연한 걸 후회했다.

은하한테 일상생활이 다 까발려질 줄 알았으면 출연하지 말걸···!

[왜 유림 언니랑 밥 먹는지는 알겠는데, 거기에 내가 왜 껴?]

“너랑 한유림 씨랑 친하니까. 싫어?”

[언니랑 밥 자체는 엊그제도 먹었어.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싫다 좋다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거기에 끼면 얼마나 그림이 이상해지는지 설명하려던 백은하는 이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걸 설명하고 있는 것도 웃기네.

백은하가 단호히 말했다.

[바빠서 안 돼. 오빠 혼자 가.]

“아쉽네.”

진심으로 아쉬워 한 백한영은 통화를 끊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 먹고 싶다고 해야지.

삼겹살?

*

백은하의 오랜 친구인 유지아는 최근에 본 한 예능을 떠올렸다.

‘한영 오빠, 아니. 백한영 씨가 딱 적격인데.’

자기도 모르게 백은하의 말투를 써버렸던 유지아는 급하게 정정한 후 펜을 빙글 돌렸다.

<오랜 사이>에서 김태식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던 백한영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생에 적합해 보였건만, 그렇다고 초빙하기엔 자신의 길드를 운영하느라 바쁜 사람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실제로 백한영 씨가 가르쳤던 교육생들의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지. 승급 시험에서 B급으로 승급한 최동협을 제외해도 그래.’

이미 누군가를 가르치는 능력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는 백한영이었기에 더더욱 자신의 길드에 선생으로 초빙하고 싶었지만, 혹 민폐가 아닐까 걱정이 되는 유지아였다.

‘만약 초빙만 할 수 있으면 우리 길드의 근접 전투 직군 애들한테 도움이 많이 되겠지. 그리고.’

유지아는 마나를 끌어 올려 허공에 얼음을 만들었다.

‘나도.’

비록 능력의 근간부터 달랐지만, 백한영 정도의 실력자라면 꽉 막혀 있는 S급의 벽을 뚫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유지아는 얼음을 지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번에 교관 역할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셨으니 보답으로 뭐라도 드려야겠다.’

원래 진작에 해야 됐던 일이었지만, 그동안 워낙 여러 일들이 터지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 승급 시험 때만 해도 손배성이 난리를 치지 않았던가?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뭘 좋아하실까.’

유지아는 백은하와 나눴던 얘기, 라기보다는 백은하가 혼자 떠들었던 그녀의 오빠에 대한 TMI를 기억해 냈다.

‘고기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맞나?’

백은하에게 물어보면 확실하겠지만, 그러면 그걸 네가 대체 왜 묻냐고 할 게 뻔했기에 그냥 유명 브랜드의 한우 선물세트나 보내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유지아는 바로 선물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사무실에 있어봤자 더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유지아는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고.

“영화는 근데 갑자기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모르셨어요? 이 영화 은하도 나와요. 카메오로 잠깐이긴 하지만. 물론 저도 나오고요.”

“진짜요?”

기둥 뒤로 냉큼 숨었다.

유지아는 고개를 슬쩍 내밀어 방금 대화를 나눈 남녀를 확인했다.

“걔가 자기 얘기를 안 해서. 그나저나 은하가 나온다라.”

“꽤 재밌어요. 시나리오부터 잘 빠진 영화라서요. 한영 씨도 좋아하실 거예요.”

“은하가 나온다라.”

백한영 씨랑, 영화배우 한유림? 저 사람이 여길 왜.

것보다 내가 왜 숨었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린 유지아는 다시금 백한영과 한유림을 확인했다.

나란히 매표소로 향하는 둘.

얼핏 듣기로는 은하가 나오는 영화를 보려는 거 같던데, 그게 뭔지는 유지아도 알았다.

조용히 백은하가 출연한 영화표를 구매한 유지아는 백한영과 한유림을 쫓아 매점으로 향했다.

“팝콘은 무슨 맛 좋아하세요?”

“카라멜이죠 무조건.”

“은하도 카라멜 좋아하던데, 남매끼리 입맛이 똑같네요?”

“그래요?”

10명 붙잡고 무슨 팝콘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7명은 카라멜이라고 할 텐데 의미부여 뭐야.

유지아가 멀리 떨어진 매대에서 치즈 맛 팝콘을 구매하며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은하는 치즈 맛도 좋아하는데, 카라멜만 좋아하는 거 아닌데.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건 나쁜 짓인데···.

유지아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백한영와 한유림을 바라봤다.

그새 팝콘과 콜라를 구매하고 상영관으로 입장하는 둘을 따라 유지아도 1관으로 입장했다.

좌석에 앉은 유지아는 조심히 팝콘 박스를 껴앉고 상영관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 엘틴.]

백은하의 화장품 광고가 지나가고, 영화가 시작됐다.

1시간 50분 후.

유지아는 텅 빈 팝콘 박스와 음료수 컵을 들고 상영관을 나왔다.

‘재밌네?’

별생각 없이 따라서 본 영화였는데, 상당히 재밌었다.

로맨스와 청춘이 섞인 장르의 영화라고 해야 되나. 한유림의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첫사랑 연기가 아주 제대로였다.

잠깐 출연한 백은하도 상당히 인상 깊었고.

이 정도면 올해 하반기를 지배할 영화라고 봐도 무방―.

‘뭐 하고 있는 거야 유지아. 네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야?’

상념에서 벗어난 유지아는 다급히 쓰레기를 버리고 백한영과 한유림을 찾았다.

은하의 친구로서 그 둘을 감시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음에도(아님) 그걸 망각하다니. 실수였다.

‘카페에 갔네?’

영화 관람 후 카페라는 정석적인 코스를 밟는 둘을 따라 유지아는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카페로 들어갔다.

백한영과 살짝 떨어진 자리에 앉은 유지아의 귀에 둘의 대화가 들어왔다.

“커피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예전에 카페인이 몸에 안 받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은 별 상관없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안 먹게 되네요.”

“은하도 그러던데, 남매가 비슷하네요?”

확실히 은하도 커피를 별로 안 좋아했다.

잘 알긴 하네?

대화는 주로 한유림이 말을 걸고 백한영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영화 감상평 보니까 잠깐 출연했는데도 은하 칭찬이 많던데, 축하한다고 선물이라도 주는 게 어때요?”

“선물. 괜찮네요. 어떤 걸 주는 게 좋을까요?”

“은하가 악세사리 하나 사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거 잘 모르는데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참 대화를 나두더니 카페를 나가 악세사리 매장으로 향하는 백한영과 한유림.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한유림이 팔찌 하나를 꺼내 차며 말했다.

“은하가 이런 스타일 좋아하는데, 어때요?”

“저는 잘 몰라서. 예쁘긴 하네요. 그걸로 하죠.”

“같이 고른 건데 제가 반 낼게요.”

“아뇨. 동생 주는 선물인데 제가 사는 게 맞죠.”

한유림이 고른 팔찌를 일시불로 구매한 백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슬슬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죠.”

그 말에 한유림은 예약해 놨던 고깃집으로 백한영을 안내했다.

유지아도 뒤늦게 둘을 따라 고깃집에 입장하려 했지만, 가게 직원의 제지가 들어왔다.

“손님 죄송합니다. 지금 자리가 없어서. 합석이라면 가능하긴 한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합석할게요.”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기에 유지아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혼자 앉아 있는 여자의 테이블에 가 앉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미리 앉아 있던 선글라스를 낀 붉은 머리의 여자와 인사를 마친 유지아는 이내 백한영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여긴 불판이 없네요?”

“고기를 구워서 주는 가게라. 은하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편하다고.”

“아하.”

거기까지 들은 유지아는 거의 반나절 동안 생각만 했던 말을 속으로 외쳤다.

‘또 은하야? 또?’

확실히 이런 스타일의 고깃집을 은하가 선호하긴 했다. 옷에 냄새가 적게 밴다고 좋아했으니까.

여태까지 한유림이 꺼낸 은하에 대한 얘기는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만 하면 은하 얘기를 꺼내니 저 인간 대체 뭐야? 라는 불만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유지아였다.

은하가 출연하니까 영화 같이 보죠.

은하도 카라멜 맛 팝콘 좋아하는데.

은하도 커피 안 좋아하는데.

은하가 악세사리 사고 싶어 했는데.

은하. 은하. 은하. 은하.

고작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유림의 입에서 은하 얘기가 몇 번이나 나온 건지 모르겠다.

‘불순해.’

유지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하던 유지아는 이내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일단 아무 음식이나 시키고 저 둘을 계속 감시할 생각이었던 건데.

‘응?’

유지아가 눈을 깜빡였다.

앞에 앉은 여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이상한 걸 깨달은 것이다.

여자는 테이블도 창문 밖도 아닌 가게 안을 보고 있었는데, 그 방향이 유지아에게 상당히 익숙했다.

‘저 사람은 백한영 씨를 왜 자꾸 보고 있는 거지. 혹시 스토커?’

자기가 한 짓은 생각나지도 않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눈앞의 여자를 곰곰이 뜯어보던 유지아는 문득 상대의 외관이 상당히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유지아가 눈앞의 여자에게 조심히 물었다.

“저기.”

“네?”

“혹시 이초아 씨 아니세요?”

그 말에 불은 머리 여자, 이초아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대답했다.

“맞는데, 무슨 일이죠?”

“아까부터 저쪽을 보고 계시는 거 같아서요. 저분이랑은 무슨 사이세요?”

"무슨 사이?"

유지아의 말에 이초아는 잠깐 멈칫하고는, 테이블에 있는 물을 한 잔 들이켰다.

목이 탄 모양이다.

이초아가 말했다.

“옆집 사람이에요.”

“네?”

“옆집 사람이라고요.”

유지아가 당황했다.

옆집 사람···은 대체 어느 정도의 사이인 거지?

···친구 오빠보다는 먼가?

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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