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X 귀환합니다(2)
점심쯤 느지막하게 길드에 출근한 백한영은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즉시 김태식에게 전화를 했다.
“긴급 지원 나갔다고? 전부?”
[네. 형.]
“뭐 어딘데 지금.”
[강원도인데요. 이게 저희가 오기 전에 누가 이미 현장을 해결해 버려서 전투는 없었어요. 일단 혹시 몰라서 지금 몇 시간째 대기 중이에요.]
“적당히 마무리됐다 싶으면 돌아와. 너네 할 거 많아.”
[···네.]
마치 산책 도중 집에 돌아가자는 소리를 들은 개처럼 김태식이 힘없이 대답했다.
통화를 종료한 백한영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강원도면 지금 당장 출발해도 몇 시간은 걸릴 텐데, 그동안 뭐 하지.
백한영은 흘긋 시계를 봤다. 1시. 점심시간이었다.
밥 먹고 와서 <오랜 사이> 모니터링이나 해야겠다.
속으로 그렇게 정한 백한영은 바로 건물 밖으로 나가 자주 이용하는 식당으로 향했고.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 치킨 좀 사주시면 안 될까요?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누구세요.”
정신 나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백한영의 말에 홍유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운 좋게 차를 얻어타고 서울에 온 것까진 좋았지만, 손에 땡전 한 푼 없다는 걸 깨닫고 말았는데.
그 와중에 치킨 냄새를 맡는 바람에 정신이 나가버렸던 것이다.
“내가 못 살아 진짜.”
홍유진의 뒤에서 마법사, 엘레나 크래프트가 끼어들었다.
엘레나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집 애가 가끔 이상한 짓을 해요.”
“아뇨. 괜찮습니다.”
외국인인데도 한국말을 참 잘한다고 생각하며 백한영은 홍유진의 일행을 살펴봤다.
‘···얘네 뭐지?’
아무리 요즘 각성자들이 특이한 장비를 하고 다닌다지만, 저렇게 일상복까지 특이한 사람들은 또 처음이었다.
자기가 진짜 판타지 세계의 마법사라도 되는 양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하나.
마찬가지로 자기가 판타지 세계의 수녀라도 되는 양 새하얀 수도복을 입고 있는 여자가 하나.
잘은 모르겠지만 디자인이고 재질이고 현대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씩 둘.
그리고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귀가 특이하게 생긴 여자까지.
솔직히 말해 가까이하고 싶은 외관들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마음이 넓다고 여기는 백한영이 아니었다면 진작 도망갔을 것이리라.
백한영은 엘레나 뒤에서 치킨 가게에 시선을 고정한 홍유진을 바라봤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백한영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모에게 몸을 의탁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외식은커녕 고기 하나 제대로 먹기 힘들었던, 하굣길 식당 창문을 통해서만 맛있는 음식을 구경하던 그 시절을.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렇게 간절한 걸 보니 그냥 두기 그렇네.
백한영이 말했다.
“치킨 그거 얼마나 한다고. 좋아요. 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백한영이라고 합니다.”
“어찌 제가 그러겠습니까. 참고로 저는 홍유진이라고 합니다.”
“허허.”
역시 정신이 살짝 이상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백한영은 홍유진의 일행을 데리고 바로 앞에 있는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나까지 포함해서 6명이니 인당 1마리씩 6마리···는 힘들겠지. 대부분이 여자고.
백한영은 슬쩍 홍유진에게 물었다.
“다들 얼마나 드세요?”
“다 한 마리는 너끈하게 먹습니다. 얘들이 보기랑 다르게 대식가라.”
“그럼 한 마리씩 시켜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 치킨 한 마리는 피자로 가능할까요?”
“피자요?”
갑자기 웬 피자. 백한영이 의아하게 여기며 홍유진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중에 고기를 못 먹는 애가 있어서요.”
“피자에도 고기가 들어갈 텐데 그건 괜찮나요?”
“이게 고기를 먹으면 큰일이 난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못 먹는 거라서요. 심리적인 요인? 이런 거 때문에 고기의 식감을 싫어하는 거라. 피자면 괜찮을 거예요.”
실험해 본 결과 그랬어요, 라고 덧붙이는 홍유진.
홍유진의 말에 귀가 남보다 살짝 긴 엘프 궁수, 티냐 나피스도 한마디 보탰다.
“참고로 저는 고기를 먹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오해할 그게 있나요?”
“유진님의 동향 사람은 엘프를 풀만 먹는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읍.”
말을 하다 말고 입이 손으로 막히는 티냐.
티냐의 입을 막은 그냥 도적, 이엘이 백한영과 눈을 마주쳤다.
“하하하.”
메마른 웃음을 흘리는 이엘.
백한영이 눈을 빛냈다.
늘 말하지만 백한영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이미 상대의 말을 다 들어버린 와중 입을 다급히 막는다고 해서 백한영의 추리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단체로 정신이 나갔구만.’
백한영은 홍유진의 일행을 슬쩍 둘러봤다.
옷차림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아무래도 저 사람들은 자신이 판타지 세계에 산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컨셉이든가.
상대가 컨셉을 잡고 있으면 가면을 벗겨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 백한영은 대충 장단을 맞춰보기로 했다.
“어디 먼 곳에서 오셨나 봐요.”
자신의 질문에 나올 대답으로 백한영은 크게 세 가지를 예상했다.
당황스러워하거나, 신나서 자신들의 설정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솔직하게 부천에 사는데요? 같은 말을 하거나.
백한영의 말에 홍유진이 치킨 냄새를 맡다 말고 빠르게 대답했다.
“먼 곳이긴 해요. 아예 다른 차원이라서.”
“야.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하지만 치킨 선생님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홍유진과 이엘이 말싸움을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알았다.
설정충이었구나.
“이세계 출신이시구나. 어쩐지 옷차림이 그렇더라고요.”
“···제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역시 선생님.”
설마 자신의 말을 믿어줄 거라(아님) 예상하지 못했던 건지 홍유진이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진짜 이세계에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오면 푹 쉬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여기도 몬스터가 있지 뭐예요.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오더라고요.”
“그 심정은 대충 이해가 됩니다만.”
귀환했더니 세상에 게이트가 열려있던 경험을 되새긴 백한영이 살짝 공감한 후 이어 말했다.
“이세계에선 무슨 일을 하셨나요.”
“이야. 말하기 부끄럽네요. 용사였습니다.”
“···용사면 마왕도 죽였겠네요.”
“많이 고생했죠.”
독하다 독해. 아직도 컨셉이 안 벗겨져?
“언제 귀환했나요. 오늘?”
“아까 막 귀환했습니다. 귀환했더니 강원도 산골이라 서울까지 오는데 고생 좀 했죠.”
···강원도? 흠.
백한영은 김태식과 애들이 강원도에 긴급 지원을 갔던 걸 떠올리며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김태식이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했다고 했는데.
아니겠지.
백한영은 다시금 홍유진을 살펴봤다.
단련된 몸이긴 했지만···. 한 세계를 구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
‘음?’
백한영은 홍유진의 안에서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그건 백한영이 최근에 봤던 살덩어리 괴물과 무림세계에서 죽였던 신과 비슷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검이면 성검 아닌가?
아니. 진짜였다고?
각성자들이 워낙 특이한 능력이 많긴 했지만, 저게 각성 능력이라기엔 신의 기운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백한영이 중얼거렸다.
“진짜 이세계에서 오셨어요?”
“선생님 설마 안 믿으셨던 건가요?”
“아뇨. 믿었죠. 다시 확인해 본 겁니다.”
“역시 선생님.”
색안경을 벗어 던지자 새로운 게 눈에 들어왔다.
돌이켜 보면 귀가 살짝 긴 여자부터 평범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진짜 엘프라고요?”
“선생님.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사실 안 믿었죠.”
“엘프가 고기를 먹는다니 신기해서요. 하하.”
그러고 보면 백한영도 무림세계에 빙의했다가 돌아왔는데, 남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세계에서 용사 노릇도 할 수 있지.
세상을 구한 용사라기엔 많이 약한 거 같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얘기 자체는 진짜 같았다.
“이제 막 귀환해서 돈이 없으셨던 거구나.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생각인가요? 각성자?”
“맥락상 각성자가 몬스터를 잡는 직업 같은데, 맞나요?”
“네. 맞아요.”
“그렇다면 각성자는 좀···.”
홍유진이 슬쩍 눈을 피했다.
혹시 각성자 일을 하면 길드에 영입해 볼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홍유진의 반응이 영 아니었다.
백한영은 의아해했다.
각성자 일이야 굳이 하지 않아도 됐다. 싸움에 지쳤다면 편하게 쉬고 싶을 수도 있었으니까. 백한영도 그랬다.
하지만 저건 그래서 눈을 피한 느낌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될까.
할 능력이 안 돼서 곤란해하는 사람의 느낌?
그래. 그게 맞겠다.
백한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약해 보이긴 했지만, 정말 저게 다였다고?
마왕 죽였다며. 세상 구했다며.
용사 맞아 이거? 거짓말 한 거 아니야?
백한영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다른 분들은?”
“흠흠.”
헛기침을 하는 엘프와 새하얀 수녀복을 입은 여자. 아무래도 저 둘도 각성자 일을 할 형편은 아닌 듯했다.
5명 중 셋이 나가리면 뭘 못하겠네.
홍유진의 일행을 길드에 영입할 기대를 접은 백한영이 이내 막 도착한 치킨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며 말했다.
“얼른 드세요. 따듯할 때 먹어야 맛있어요.”
“잘 먹겠습니다!”
허겁지겁 치킨을 입에 집어넣는 홍유진.
백한영은 치킨을 한입 먹으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 녀석한테 인간의 몸은 차원을 못 넘으니 포기하라고 말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잘만 넘네?
술법사들 이거 죄다 맹탕이었잖아.
나중에 만나면 또 한 소리 듣겠다.
만날 일은 없겠지만.
*
실제로는 8년, 느낌만으론 거의 30년 만에 치킨을 먹은 홍유진은 배를 빵빵하게 채운 채 거리를 걸으며 말했다.
“어때. 이게 치킨이라는 거야.”
“네가 산 것도 아닌데 잘난척하기는. 맛은 있더라.”
“확실히 용사님의 고향 음식이에요. 피자라고 했나요? 환상적이었어요.”
치킨과 피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대답하는 엘레나와 세피아.
“맛이 없던 건 아닌데,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
그리고 둘의 평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엘.
이엘이 봤을 때는 치킨이나 피자나 그냥 기름진 음식에 불과했는데, 환상적이라는 단어는 조금 오버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티냐. 너는 어땠는데?”
“음. 과연 유진님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음식다웠습니다.”
“그치? 이엘 너는 심술보 좀 집어넣어. 너 말고 다 맛있다잖아.”
“심술보가 아니라,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
“집어넣어.”
억울해하는 이엘을 계속해서 놀리는 홍유진에게 엘레나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쩌긴. 집부터 구해야지.”
홍유진은 이세계에서 가져온 약간의 보석들을 떠올렸다.
차원 포탈의 용량 문제가 있어서 많이 가져오진 못했지만, 당분간 먹고살 걱정이 없었다.
“그 후에는.”
“그 후에?”
“아까 백한영 그 사람 말대로 네가 각성자 일을 할 수도 없잖아. 거기에 우리들은 신원불명의 이세계인이기도 하고.”
엘레나의 말에 홍유진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얘기였구나. 그건 생각해 둔 게 있어.”
“불안한데···.”
엘레나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경험상, 홍유진이 저런 소리를 할 때는 헛소리일 확률이 80퍼센트가 넘었으니 말이다.
홍유진이 말했다.
“인터넷 방송이라고, 나만 믿고 따라와.”
“진짜 불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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