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36화 (36/117)

관찰 예능(2)

청풍 길드 건물 내부를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최근 떠오르는 생산계 길드인 탓에 평소에도 정신이 없긴 했지만, 유독 그 정도가 심한 느낌이었는데.

왜 그러냐면.

“VVVIP한테 나갈 검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해. 물건을 건넨 후에 하자가 발견되면 대가리 숙이는 걸로 안 끝나는 거 알지?”

“확인하겠습니다.”

“응접실 청소도 다시 해. 진짜 중요한 자리야. 이번에 좋은 인상 보여주면 이런 의뢰 한 번 더 하실 줄 누가 알아?”

“알겠습니다.”

오늘이 바로 청풍 길드에 돈의 신이 강림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길드원에게 지시를 내린 청풍 길드의 부길드장, 방상철이 손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았다.

어제 연락을 받은 것치고는 준비를 굉장히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부동의 생산계 길드 1위였던 금혼이 흔들리는 지금 성휘, 블랙해머, 우리 청풍 셋 중에서 업계 탑이 나온다.’

어떤 분야든 1위는 상징성과 더불어 돈이 따라오는 자리였다.

얻을 수 있다면 얻는 게 무조건 좋았고, 당연히 청풍도 1위 길드를 목표로 달리고 있었는데.

그런 청풍에게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날이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청풍이 1위 레이스의 선두에 오르는가 오르지 못하느냐가 결정이 날 테니 말이다.

‘237억···!’

방상철은 자신들이 제작한 검의 가격을 떠올리곤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로 쳐도 각성자 무기 하나에 이 정도의 돈이 들어간 적은 없었다.

심지어 돈의 신이 이것보다 더 써도 된다고 했음에도 청풍의 능력으로는 짜내고 짜내도 저게 한계였다는 걸 생각하면, 가히 역사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방상철은 장담했다.

우리가 이번에 만든 검으로 인해 전세계 생산계 길드에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다려라 금혼.

좀 꺼져라 성휘, 블랙해머.

우리는 1등으로 올라간다···!

“부길드장님. VVVIP가 방문했습니다.”

“드디어!”

방상철이 흥분된 표정을 하고 응접실로 달려갔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방상철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고.

“······?”

응접실 내부 풍경을 확인한 후 당황했다.

응접실에 VVVIP가 있는 건 예상 내였지만, 그 외의 인원들이 있는 건 예상 밖인 탓이었다.

“아. 오셨네요.”

“네. 그, 다른 분들은···?”

뻘쭘하게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방상철이 말하자, 백한영이 깜빡했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말을 안 했는데, 제가 지금 예능 촬영 중이라서요.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예능? 방송? 공중파?

방상철의 뇌가 팽팽 돌아갔다.

이건 기회였다.

청풍의 앞날이 창창하다는 걸 대중들에게 알릴 기회.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방상철의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자본주의의 미소였다.

*

처음 백한영이 청풍에 간다고 했을 때 담당PD는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냥 백은하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무기 제작을 맡겼다고요?”

“생산계 길드에 방문할 이유가 그거 말곤 없죠.”

그게 아니라는 걸 약간의 대화를 나눈 후에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백한영 씨도 각성자였지.

사전 조사를 통해 백한영이 무려 A급 각성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담당PD였지만, 12시간 동안 게임을 하려 했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기라.

각성자에 대한 소재는 늘 수요가 있었다. 스테디셀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A급 각성자면 꽤 괜찮은 무기를 쓰겠지. 한 컷 건졌다.

라는 생각을 하며 담당PD는 백한영을 따라 청풍에 도착했고.

“···얼마라고요?”

“237억 원입니다.”

“237억···?”

카메라를 향해 자본주의 미소를 한껏 짓는 방상철의 말에 넋이 나가버렸다.

백한영은 방상철이 가져온 고급스러운 목함을 열어 그 안에 있는 검을 꺼내 들었다.

‘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백한영은 오늘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나왔다.

무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지 오래기도 했고, 그냥 각성자들이 만들었다는 무기에 기대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아니.

상상 이상으로 괜찮았다.

“백한영 씨의 요구사항을 최대로 반영했습니다.”

백한영은 청풍에 제작 의뢰를 넣으며 딱 한 가지를 부탁했다.

검에서 불꽃이 나가느니 사용자의 신체를 강화하느니 하는 것들은 싹 다 빼고, 순수하게 튼튼하고 날카롭게, 검 본연의 기능에 집중해서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사실 백한영이 요구한 거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검을 튼튼하게 날카롭게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원래 하던 게 그런 건데.

그러나 튼튼하고 날카롭게 뒤에 200억 이상을 써서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백한영의 부탁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사실상 한가지 기능을 200억 이상을 써서 강화하라는 얘기였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게임도 아니고. 돈을 무한히 쓴다고 장비의 성능이 무한하게 올라갈 리가 있나.

때문에 원래라면, 그러니까 다른 길드였다면 백한영의 요구에 난색을 보였겠지만.

청풍은 달랐다.

다른 건 몰라도 백한영의 요구만큼은 백 퍼센트 들어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백한영이 목함에서 꺼내든 별처럼 새하얀 검을 조심히 쓸었다.

우웅―!

그것만으로 검이 기분 좋게 울었다.

자신의 신이 지상에 임한 걸 목격한 광신도처럼.

“음.”

“어떻습니까? 설명을 좀 드리자면···.”

“괜찮네요.”

덤덤한 반응을 보여주며 가볍게 검을 톡 두들긴 백한영이 이내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검에 어떤 소재를 썼는지부터 시작해서 한계에 도전한 수많은 각성 능력 활용 및 그 모든 걸 한데로 묶은 길드장의 각성 능력에 대해 설명하려던 방상철은, 백한영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는 재빠르게 스탠스를 바꿨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이 검 이름은 어떻게 되죠?”

기본적으로 무기에 이름을 짓는 건 제작자의 권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백한영이 그렇게 묻자, 방상철이 대답했다.

“성단검(星鍛儉)입니다.”

“흐음.”

성단검이라.

나쁘지 않았다.

백한영이 말했다.

“편의성 정도는 챙겨도 된다고 했는데, 뭔가 없나요?”

“안 그래도 언제 물어보시나 했습니다. 검을 잡고 형태변환이라는 키워드를 강하게 떠올리면···.”

“오.”

방상철이 시키는 대로 하자 머릿속에 여러 액세사리 모형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자, 성단검이 바로 팔찌로 형태를 바꿨다.

내가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예전엔 검에 쓸데없는 기능을 집어넣는다고 뭐라 했었는데, 요즘은 그냥 좋기만 하네.

세월의 힘을 실감한 백한영은 팔찌로 변한 성단검을 팔에 착용한 후 방상철에게 물었다.

“근데 은하가 만든 검은 언제 주시나요?”

“안 그래도 지금 마무리 중이라고 합니···.”

“저 왔어요!”

여동생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백은하가 자신의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응접실 책상에 자신이 가져온 고급스러운 목함을 내려놓은 백은하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자. 오빠가 의뢰한 검.”

“이거거든.”

백한영이 싱글벙글 웃으며 목함을 열었다.

그걸 보며 담당PD가 방성철에게 간단한 질문을 했다.

“저건 얼마 정도 하나요?”

“4억 정도 합니다.”

“4억···.”

4억.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상당한 가격이었지만, 앞에서 237억을 들은 후라 그런가. 그렇게 비싸 보이지 않았다.

“오!”

목함 안에 들어있던 검은색 장검을 꺼내든 백한영이 짧게 감탄했다.

밤하늘을 닮은 어두운 색깔의 검날과 거기에 새겨진 새하얀 별들이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은하 디자인도 잘하네?”

“디자인은 외주 준 거야.”

“우리 은하 사람 잘 쓰네.”

희희낙락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백한영이 응접실의 빈공간으로 이동한 후 말했다.

“잠깐 검 좀 휘둘러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애초에 그런 용도로 쓰라고 만들어 놓은 응접실이었기에 공간은 충분했다.

검을 든 백한영이 가볍게 검을 움직였다.

상하로, 좌우로, 사선으로.

검법의 기본 중의 기본. 삼재검법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춘 백한영이 들고 있는 검을 천천히 쓸어내리자, 백은하가 급하게 변명을 쏟아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검은 내 특기가 아니야. 연습 기간이 짧기도 했고. 제대로 된 게 안 나올 거라고 나는 진작에 경고했···.”

“이거 좋네.”

백은하의 말을 끊은 백한영이 동생이 만든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아주 마음에 들어.”

확실히 백은하가 만든 검은 본인의 말대로 문제가 많았다.

일단 무게중심이 엉망이었다. 무기의 무게중심이 엉망이다? 그 순간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쪽에 집중한 검 특유의 느낌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문제점이 많았다.

많았지만.

그럼에도 백한영은 백은하가 만든 검이 마음에 들었다.

무게중심? 손에 들리기만 하면 그게 설사 나뭇가지라도 어떤 것이든 벨 수 있는 백한영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검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지 않은 거? 이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검에 휘둘릴 시기는 이미 옛적에 지난 백한영은 검에서 불이 뭐야. 용이 튀어 나가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검을 고를 때 검의 성능보다는 취향을 신경 쓰는 영역에 들어선 백한영이었고, 그런 백한영의 기준으로 백은하가 만든 검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유?

동생이 밤낮을 새며 열심히 만든 검인데 당연히 마음에 들지.

왜 안 들겠어.

“이 검은 이름이 뭐야?”

“···안 정했어. 오빠가 정하든가.”

“그래? 마치 밤하늘이 담긴 것 같은 검이니까, 은하제일검은 어때?”

“······그거만 아니면 돼. 다른 걸로 해.”

백은하를 살짝 놀린 백한영은 진지하게 검의 이름을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평생 쓸 검이니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데.

한참을 고민하던 백한영이 이내 결정을 내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심(淸心)이라고 하자.”

검, 청심을 허리춤에 착용한 후 백한영이 말했다.

“그래서 은하야 너 언제 퇴근해? 식사나 하러 가자. 이모까지 같이 셋이서.”

“나도 같이?”

카메라 뒤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이지선이 갑자기 자신이 언급된 탓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당연히 이모도 같이 먹어야죠. 바빠서 집에 못 들어오니까 아예 일을 하면서 밥을 먹어야겠어요. 같은 집에서 사는데 식사를 여태까지 한 번 밖에 같이 못 한 게 말이 돼요?”

“은하 씨 퇴근해. 오늘 할 일 다했어.”

바로 눈치 빠르게 끼어들며 백은하를 퇴근시키는 방상철.

부길드장의 허가까지 받은 백한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배터지게 먹을 준비 해요. 안 본 사이에 이모 얼굴 푸석푸석해진 게 방송국에서 밥을 제대로 안 주는 거 같아요.”

“밥은 잘 줘···. 밥은···.”

힘없이 중얼거린 이지선이 담당PD를 바라봤다.

이러면 편집본에서 이 프로그램의 작가가 백은하와 백한영의 이모라는 걸 설명해야 될 텐데, 방송적으로 괜찮은 거 맞아? 라는 의미였는데.

담당PD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 몰라. 될 대로 되라지.

*

백한영의 첫 예능 촬영으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오랜 사이> 1화가 방영되는 날이 찾아왔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친오빠가 남자친구라고 세상이 막 떠드는데, 진짜. 오빠가 있는 사람들은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아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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