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예능(1)
정작 본인은 몰랐지만, <여름에 피는 꽃>이 방영됐을 때 세상은 백한영의 얘기로 굉장히 시끄러웠다.
백한영에 관한 영상 수십, 수백 개가 전부 백만을 훌쩍 넘기는 조회수가 찍혔다고 하면 대충 짐작이 갈 거다.
알고리즘의 신을 세뇌라도 한 건지 쇼츠 동영상을 틀기만 하면 <여름에 피는 꽃> 1화 하이라이트가 쏟아져 나왔고, 거기에 더해 고공행진을 하던 <여름에 피는 꽃>이 최근 5년간 나온 작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찍으며 백한영의 인기는 정점에 달했었는데.
아쉽게도 볼 게 넘치는 요즘 세상에서 그 인기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에 비하면 놀랍도록 사그라들었다고 해야 되나.
알아보는 사람이 1/10 정도로 줄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백한영을 예능에 섭외하는 건 한창 핫할 때 안 데려오고 왜 이제서야? 라는 말이 나오기 딱 좋았지만.
이게. 그렇지가 않았다.
사그라들었던 백한영에 대한 관심을 다시 타오르게 한 건 한 인터넷 게시물의 영향이 컸다.
<이거 백은하 아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백은하와 백한영이 아쿠아리움 돌아다니는 사진)
맞나?
┗백은하 맞네.
┗┗옆에 쟤는 같이 드라마 출현했던 애 같은데, 예능 촬영 같은 거 아님?
처음 게시물이 올라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여름에 피는 꽃>이 진작 종영돼 관심이 별로 안 가기도 했고, 그냥 촬영이겠지 싶어서 넘어간 것이다.
다만.
<백은하 얘 남친 생겼나 본데?>
(백은하와 백한영이 놀이공원에서 노는 사진)
(백은하가 백한영의 뒤에 서서 귀신의 집에 입장하는 사진)
그냥 촬영이라기엔 저 둘이 너무 돌아다녔는데?
┗진짜네?
그것도 사진이 하나만 있었을 때의 얘기.
아쿠아리움을 넘어 놀이동산에도 하하 호호하며 돌아다니는 백한영과 백은하의 사진이 추가로 배포되자, 사람들의 관심이 펑 하고 폭발했다.
<내가 저번에 봤는데 둘이 재밌게 놀더라>
(회전목마 앞에서 대기하는 백은하와 백한영을 멀리서 찍은 사진)
회전목마 타면서 둘이 사진도 찍어 주고 난리 났던데?
┗와. 진짜 남자친군가 보네?
┗┗쟤 <여름에 피는 꽃>에서 오빠로 출연했던 애 아닌가? 촬영하다가 사귄 건가.
원래 사람의 심리라는 게 조용히 있다가도 자신이 관심을 받을 각이 생기면 한마디씩 보태게 돼 있었다.
누군가 물꼬를 트자 백한영과 백은하를 목격한 얘기가 하나둘씩 추가되기 시작됐고.
이윽고 사이버 렉카까지 충동했다.
[뿌슝빠슝. 유명 연예인 백은하에게 남자친구가?]
[인기 드라마 <여름에 피는 꽃>의 남매, 현실에선 애인?]
원래 인기 연예인의 연애사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쉬운 것도 없었다.
커뮤니티와 동영상 사이트를 점령하다시피 하며 순식간에 다시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백한영.
그 상황에서 백은하는.
“무슨 남자친구야!”
당연히 펄쩍 뛰었다.
인기 동영상 사이트에 백한영의 얘기가 도배됐을 때 백은하는 바로 해명문을 발표하려고 했다.
오빠랑 둘이서 놀이동산에 놀러 갔다는 얘기를 하는 건 꽤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친오빠를 자신의 남자친구라고 사람들이 오해하게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백은하를 막아선 사람이 있었으니.
[은하야. 잠―깐만 기다려 볼래?]
시청률에 미친 광인(狂人).
애인은 없지만 애 둘은 있는 낭랑 34세, 이지선이었다.
사실 이지선은 백한영을 섭외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본인이 괜찮다고 했어도 최근에 간신히 깨어난 백한영을 예능에 부르긴 좀 그렇기도 했고, 까놓고 말해 지금은 더 핫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굳이 백한영을 부를 이유가 없었던 건데.
이러면 사정이 달라졌다.
이지선의 방송작가 뇌가 풀 가동됐다.
백은하는 출연할 때마다 시청률을 몰고 다니는 방송계의 블루칩이었고, 백한영은 그 백은하의 오빠였다.
이 시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캐릭터성이 확보된 거나 다름없었는데.
세간의 관심이 쏠린 상태까지 추가?
이건 먹힐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이지선은 살짝 갈등했다.
방송작가의 영혼과 이모의 영혼이 싸움이 붙은 것이다.
방송작가:너 아니면 백한영과 백은하가 동시에 출연하는 그림을 뽑아낼 수 있을 거 같아? 이걸 하지 않는 건 직무 유기야. 시청자들을 생각해.
이모:우리 조카가 자기 생각 안 해준다고 울더라.
“아니. 우리 한영이는 안 울어. 애초에 그런 애가 아니야. 너 누구야.”
이지선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백한영이었다.
빠르게 앞뒤 상황과 예능에 출연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설명하는 이지선.
그 모든 설명을 들은 백한영은.
[예능 정도야 출연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 말고 사고 싶은 건 정했어요? 늘 말했지만 가격대는 상관없어요.]
“한영아 사랑해!”
쿨하게 승낙했다.
다시 말하지만 백한영은 어린 조카 둘을 책임지느라 고생한 이지선을 위해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의향이 있었다.
*
<오랜 사이>는 이번에 VBS에서 새로 편성된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흔히 관찰 예능이라고 부르는 종류 예능이었다.
스타의 일상을 꾸밈없이 보여주는···척 연출을 해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관찰 예능의 핵심이었는데.
때문에 관찰 예능은 기존 예능들과는 촬영방식도, 대본도 상당히 달랐다.
“이모 진짜 저 할 거만 하면 돼요?”
“스타의 일상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저는 스타가 아닌데요?”
“은하가 스타잖아. 그나저나 딱 알맞게 이사 잘했다. 우리 은하 집이 이 정도는 돼야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고급 아파트의 내부를 만족스럽게 훑어보며 이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한영이 말했다.
“이거 이모 집이기도 한데요? 이 좋은 집 놔두고 왜 자꾸 방송국에서 사는 거예요.”
“다 사정이 있단다 조카야.”
아련한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본 이지선이 백한영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집을 떠났다.
자연스러운 그림을 담기 위해 촬영현장엔 최소한의 인력만 놔두는 것이다.
“으음.”
백한영이 카메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진짜 뭘 하라는 거지.
드라마는 대본이라도 있었지. 예능은 그런 것도 없어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런 게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이모를 불러서 가이드라인이라도 달라고 해야 되나?
잠깐 고민하던 백한영은 이내 카메라에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평소처럼 하라고 했으니 평소처럼 하면 되겠지.
백한영이 방으로 들어가자 딱 한 명 남아있던 카메라 감독과 담당PD가 뒤따라 들어왔다.
백한영은 컴퓨터를 켜고 손을 풀었다.
자. 오늘도 귀신들린 불쌍한 어린양들을 구원해 보실까.
그로부터 2시간 후.
백한영의 방에 누군가 들어왔다.
“한영아.”
“······.”
“한영아?”
“잠깐만요.”
허무하게 잘려버린 아군 서포터와 원거리 딜러 대신 무호흡으로 적을 썰어버린 백한영이 심호흡을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캐리.”
“한영아.”
“아. 네. 이모.”
“게임 그거 언제까지 하니?”
“어···. 평소만큼요?”
“그게 어느 정도니?”
이지선의 말에 백한영은 눈알을 굴린 후 대답했다.
“12시간 정도요?”
“···아까 했던 말을 번복해서 미안한데, 다른 것도 좀 해주지 않을래? 너무 똑같은 그림만 나오면 좀 그렇거든.”
“아하.”
하긴 똑같은 것만 하는 게 방송적으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납득한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게임을 돌렸다.
딱 한 판만 더 하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
“······.”
“왜요?”
“아무것도 아니야···.”
힘없이 말하며 방을 나서는 이지선.
뭔가 싶어 눈을 끔뻑이던 백한영은 게임이 잡히는 소리에 바로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하고 캐릭터를 골랐다.
잠시 후 1:5로 혼자서 적을 쓸어버리며 게임을 끝낸 백한영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메라 감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챌린저 게임 아니에요?”
막내 라인인 카메라 감독은 상당히 젊은 편이었는데, 때문에 레전드 오브 레전드, 속칭 레오레에 대해서도 굉장히 잘 알았다.
프로 경기도 자주 봤기에 카메라 감독은 방금 백한영이 만난 유저들이 전부 유명한 프로라는 걸 알아봤는데, 그 사이에서도 날아다니는 백한영이 신기해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해버린 것이다.
“맞아요. 레오레 잘 아시나 봐요?”
“와. 프로를 하셔도 되겠어요.”
“안 그래도 문의는 많이 왔는데, 생각은 없어요.”
카메라 감독의 질문에 대답한 백한영은 컴퓨터를 끄고 가볍게 씻은 후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담당PD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출근합니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간 백한영은 자신의 애마에 올라탔다.
백한영의 애마는 독일의 유명 자동차 회사의 엠블럼이 박혀있는 녀석으로, 거의 10억에 가까운 가격을 자랑하는 모델이었다.
“이야.”
감탄하는 카메라 감독과 담당PD를 태운 백한영은 그대로 차를 몰고 자신의 길드로 향했다.
카메라를 이끌고 길드에 돌입한 백한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 김태식을 만날 수 있었다.
“형? 이게 다 뭐예요?”
“촬영. 내가 말 안 했던가?”
“안 했어요···.”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는 김태식.
김태식이 말했다.
“무슨 촬영이요? 저희 길드 홍보하는 거예요?”
“아니. 그냥 예능 촬영. 제목이 뭐였죠? <오랜 사이>, 이거 맞나요?”
“네 맞아요.”
“관찰 예능? 그런 거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평소처럼 하면 돼. 알았지?”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대로 하는 거라면 별 문제 없겠지.
카메라 감독에게 사무실을 풀샷으로 찍어달라고 지시한 담당PD가 백한영에게 물었다.
“여기는 무슨 길드인가요?”
“무신련이라고, 제가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입니다.”
“백한영 씨의 길드라고요?”
“아직 소규모라 크게 자랑할 건 못 됩니다.”
담당PD가 속으로 감탄했다.
평소처럼 지내라고 하니까 바로 게임을 12시간 동안 하려고 들길래 그냥 돈많은 한량인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건실한 사람이었다.
“백한영 씨는 길드에서 보통 무슨 일을 하세요?”
“그건···지금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백한영이 김태식을 쳐다봤다.
대충 눈치껏 행동하라는 의미였다.
김태식을 데리고 길드 건물 지하에 있는 훈련실로 간 백한영은 방구석에 있는 연습용 목검을 집어 든 후.
“간다 태식아.”
김태식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어깨. 어깨. 다리가 비었잖아. 허리. 얼씨구. 발놀림이 그게 뭐냐. 내가 보법도 신경 쓰랬지.
한참 동안 김태식을 괴롭힌 백한영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김태식이 터덜터덜 구석으로 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평소의 루틴대로 김태식을 가르친 백한영이 담당PD에게 말했다.
“이게 제 평소 일과입니다.”
“···이게요?”
“길드원들을 가르치는 거죠. 무공을 가르치는 건 자신 있거든요. 전국에 있는 각성자 여러분. 자신이 재능이 있다 싶으면 무신련으로 오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알차게 길드 홍보를 한 백한영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김태식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니 길드 가입 문의가 쏟아지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백한영을 담당PD가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담당PD는 조금 전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불쌍할 정도로 두들겨 맞는 김태식과, 즐겁다는 듯(오해) 김태식을 두들기던 백한영을.
저런 모습을 보여주면 아무도 안 올 거 같은데.
음.
알아서 하겠지.
담당PD가 김태식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백한영에게 다가가 물었다.
“더 하실 일은 없나요?”
“원래는 다른 길드원들도 가르치는데, 걔네는 오늘 일이 있어서. 일단 오늘은 없네요.”
“그래요? 그럼 이 다음 일정은 뭔가요?”
담당PD의 말에 백한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은하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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