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34화 (34/117)

월드 게이트(7)

한국과 일본이 월드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새로 나타난 형태의 게이트인 만큼 월드 게이트의 관심도는 상당히 높았고, 그런 월드 게이트가 공략됐다는 소식에 수많은 나라에서 자세한 정보를 공유해달라고 아우성을 쳐댔지만.

정작 공략에 성공한 당사자들은 마땅히 알려줄 정보가 없어 끙끙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한일 각성자 관계자들이 받은 월드 게이트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실종자 발생. 수색 시작.]

[사망자 확인 및 W-01과 조우. 전투 발생.]

[W-02와 조우. 전투 발생. 부상자 다수.]

여기까지는 어느 곳에나 있는 흔한 보고서였지만.

[W-02 자살.]

여기서부터 관계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살이라니. 몬스터가 우울증에 걸리기라도 했다는 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리 몬스터가 자살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S급 각성자인 엔도 이츠키와 이초아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도망이라도 친 거 아닐까요?”

“보고서에는 신체가 펑 터져버렸다고 적혀 있는데?”

“몬스터잖아요. 겉으로는 죽은 것처럼 보여도 본체는 몰래 도망갔을 수도 있죠.”

“확실히.”

그렇게 관계자들이 W-02가 자살한 게 아니라 도망친 거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을 때쯤.

“진짜 유년기 같은 거였나 보네.”

백한영은 살덩어리 괴물이 자살하며 남긴 황금색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살덩어리 괴물이 남긴 보석은 무림세계에서 봤던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작았는데,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무림세계에서 죽였던 놈의 유년기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뭐, 신이라고 자칭하던 녀석의 유년기인 만큼 살덩어리 괴물이 어디 가서 무시당할 녀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백한영도 간만에 진심으로 상대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건데.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다니. 상당히 아쉬웠다.

백한영은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사람이 참 신기해. 그토록 일상을 즐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진심으로 싸울 기회가 생기니까 몸이 달아오르네.’

백한영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검의 끝을 본 자였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백한영 정도의 경지에 오른 자들은 결국 전투를 어느 정도 즐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기나긴 여정에서 리타이어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백한영은 전투를 너무 즐긴 탓에 살짝 질린 상태긴 했지만, 기본적인 성향 자체는 그렇다는 얘기다.

백한영은 황금색 보석, 신성의 핵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무림세계에선 그냥 깔끔하게 베어서 없애버렸었다. 백한영에게 쓸모가 없기도 했고,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술법사 할배가 그걸 대체 왜 없앴냐고 날뛰었던 게 기억에 남기도 했고.

이건 일단 챙겨 놓자.

나중에 쓸모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결정을 내린 백한영은 신성의 핵을 품에 집어넣은 후 젓가락을 들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음식을 먹어볼 시간이었다.

신선한 해산물이 올라간 덮밥을 한입 떠먹으며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 가이센동 잘하네.

아주 맛있어.

*

“살 만한가 봐요?”

침대에 누워 스위치를 가지고 놀고 있던 엔도 이츠키는 갑자기 병실을 찾아온 이초아의 말에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덕분에.”

“괜찮은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내장이 곤죽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걱정했었는데.”

“호들갑은.”

말은 저렇게 해도 이츠키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었다.

내장으로 누군가 공기놀이를 한 거 같은 상태였다고 해야 되나. 마법과 신성력이 등장한 세상이 아니었다면 지금 같이 깔끔한 치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츠키가 스위치를 종료하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 왜 찾아왔어.”

“병문안이죠. 과일 바구니 보면 모르겠어요?”

“정말 그게 다야?”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고요.”

병원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이초아가 말했다.

“그때 봤어요?”

“뭐를.”

“알잖아요. W-02라는 명칭이 붙은 몬스터가 죽는 순간 말이에요.”

“그거라면 이미 증언했는데, 너도 알지 않아?”

이츠키의 말에 이초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대답했다.

“자세한 건 말 안 했잖아요.”

“으음.”

“어떻게 생각해요. 그 녀석, 정말 죽은 게 맞을까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던 이츠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해두겠는데,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때 내장이 댄스파티를 즐기던 중이라 정신이 혼미했거든.”

“어림짐작으로만 말해줘도 돼요.”

“그거라도 괜찮다면. 내가 보기엔 녀석은 죽은 게 맞아.”

“왜요?”

이츠키가 친절히 설명에 들어갔다.

“그때 녀석이 내지른 비명에서 겁먹은 애송이 같은 냄새가 났거든.”

“비명이라기보다는 그냥 괴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쯧. 이래서 마법사들이란. 한 끗 차이로 생사를 오가는 근접 전투 직군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는 게 있다고.”

“그래서 그게 녀석이 죽은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이초아의 말에 이츠키는 살덩어리 괴물의 최후를 떠올렸다.

자신의 얼굴을 마구 파헤치다, 비명을 지르며 펑 터져버린 녀석의 최후를.

이츠키가 말했다.

“네가 가까운 미래에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고 치자. 어떤 상상을 하든 그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널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래?”

“갑자기요? 음. 피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보통 그렇지. 그래서 녀석도 그런 거야.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최악의 사태를 피한 거지.”

설명을 들었음에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이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망갔을 수도 있지 않아요?”

“도망? 내가 보기엔 녀석에겐 그런 여유조차 없었어. 초월적인 공포를 마주해 정신이 나간 상태로 자살한 게 맞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속으로 그렇게 덧붙인 이츠키가 볼을 긁적였다.

직감에 불과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으니 살짝 민망한 것이다.

이초아가 말했다.

“초월적인 공포라니. 대체 뭘 본 걸까요?”

“내가 아닐까? 그때 내장이 포크댄스를 추고 있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조용히 필살의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거든.”

“대체, 뭘 본 걸까요.”

이츠키의 말을 무시하며 이초아는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그때 있던 사람이라고는 자신과 이츠키, 그리고 딱 맞게 도착한 A급 각성자 백한영밖에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쳐다보는 것만으로 내장을 쉐이크로 만들어 버리는 괴물이 겁먹을 만한 존재는 없었을 텐데.

대체 무엇이 녀석을 자살로 몰고 간 걸까.

혼자 고민해서 알 수 없는 문제였기에 이츠키를 만나러 온 것이었건만, 딱히 수확은 없었다.

이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적을 이뤘으니 슬슬 돌아갈 생각인 것이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얼른 쾌차하세요.”

“그래. ···근데 혹시 시간이 나면 같이.”

“수고하셨습니다.”

끼익.

이초아가 뒤도 안 돌아보고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던 말이 도중에 끊겨버린 이츠키는 갈 길을 잃은 눈으로 병실 문을 바라보다 이내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며 중얼거렸다.

“···같이 밥이나 먹자,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어.”

엔도 이츠키. 0.5고백, 1차임 달성.

병원 밖으로 나온 이초아가 머리카락을 어지럽게 헝클어트렸다.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귀국도 미루고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음에도 수확이 없어 답답한 것이다.

이초아는 작게 고개를 젓고 걸음을 옮겼다.

‘됐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 더는 신경 쓰지 말자.’

살덩어리 괴물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걸 그만두기로 한 이초아는 이번엔 다른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신이 불의 창에 당하기 전 돌연 난입하며 도움을 준 백한영을.

‘그 정도는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보답을 하는 게 맞지. 응.’

나중에 밥이라도 사면 되지 않을까? 라며 백한영에게 보답을 할 방법을 생각하던 이초아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백한영의 연락처를 모른다는 것과, 연락처를 알만한 지인을, 그걸 넘어 애초에 지인 자체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만났을 때 권유하면 되겠지.’

살짝 아날로그 방식을 채택한 이초아가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얼른 한국으로 귀국해 이번 월드 게이트에서 얻은 성과를 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

월드 게이트 공략을 성공하고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백한영은 굉장히 바쁘게 지냈다.

무슨 말이냐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즐겼다는 얘기였다.

“아니. 좀 빼봐 얘들아. 우리가 숫자가 적은데 대체 왜 갖다 박는 거야.”

오늘도 귀신 들린 아군과 씨름을 하는 백한영.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승리를 쟁취한 백한영이 바로 마우스를 딸깍였다.

부정적인 태도, 욕설, 의도적으로 적에게 죽음. 클릭.

후우. 귀신 들린 아군을 전부 신고, 아니. 퇴마를 해 줌으로써 제정신을 차리게 도와준 백한영이 자신의 점수를 확인했다.

챌린저 1647점.

1등이었다.

“드디어 찍었네.”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은 백한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미친 게임 다시는 하나 봐라.

백한영은 월드 게이트 공략을 끝내자마자 한가지 맹세를 했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하게 쉬기만 하자고.

물론 벌여놓은 일이 있으니 길드원을 가르치는 일은 꾸준히 해야겠지만, 그 외의 시간은 진짜 여가를 보내며 지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백한영은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을 하며 보내게 됐는데.

그냥 게임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한가지 목표를 세웠다.

랭크 시스템이 있는 게임에서 1등을 하고 말겠다는 목표를 말이다.

랭크 시스템이 있는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게 뭔지 검색해 본 백한영은 레전드 오브 레전드, 통칭 레오레를 발견하게 됐고.

즉시 아이디를 만들어 1등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캐릭터도 생소하고 그냥 이것저것 생소해 패배만 거듭했던 백한영이었지만, 금세 익숙해지고 연승가도를 달렸다.

게임에 대한 개념은 잡혀있지 않아도 압도적인 컨트롤로 상대 캐릭터를 찢어버리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물론, 그것도 다 팀에 귀신 들린 이가 잡히기 전까지의 얘기긴 했다.

[미드안주면달림(서포터):미드 주셈]

[검신백한영(미드):그대는 서포터인데 어찌 미드를 달라 한단 말이오.]

[미드안주면달림(서포터):5, 4, 3, 2, 1]

[미드안주면달림(서포터):ㅇㅋ]

당시의 백한영은 저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지 못했다.

비록 게임이 시작되고 30초 만에 알게 되긴 했지만, 당시엔 그랬다는 거다.

[검신백한영(낭인검객):대체 왜 자꾸 적에게 죽어주는 것이오. 이유가 무엇이오.]

[미드안주면달림(설인):미드차이]

[검신백한영(낭인검객):대화를 요청하오.]

[미드안주면달림(설인):미드차이]

그날 백한영은 아무 이유 없이 적에게 죽어주는 놈을 한 번, 갑자기 적에게 아군의 위치를 계속 말해주는 놈을 한 번, 꾸중을 들었다고 기지에서 춤을 추는 놈을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 귀신 들린 놈을 만나게 됐고.

세상에 정신 나간 놈이 많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게 됐다.

그 뒤로는 뭐. 고행길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나날이 펼쳐졌다.

귀신 들린 놈들과 그놈들을 퇴치하기 위해 발악하는 백한영의 싸움이 약 한 달간 이어졌고.

결국 승리한 건 백한영이었다.

챌린저 1647점 1등에는 그러한 사람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백한영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길드에 출근해 햇병아리들을 교육할 시간이기도 했고, 바람을 좀 쐬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 순간이었다.

―♪

스마트폰에서 백은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화가 온 것이다.

백한영이 스마트폰을 꺼내 귓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한영아!]

“어. 이모. 왜.”

이모, 이지선이 전화를 건 이유가 궁금해 백한영이 묻자, 그녀가 빠르게 대답했다.

[저번에 약속했던 거, 아직 유효하지?]

“약속? 내가 뭐 사준다고 했던 거?”

생각나는 게 그거밖에 없어 백한영이 그렇게 말하자, 이지선이 다급히 외쳤다.

[그거 말고! 예능 말이야 예능!]

이지선의 말에 백한영이 이마를 탁 쳤다.

예능.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지 참.

잊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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