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게이트(6)
경직된 긴장이 각성자들 사이에 맴돌았다.
기껏 괴물을 쓰러트린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놈이 쌩쌩한 상태로 튀어나온 거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다.
살덩어리에 두 다리가 생겨났다. 두 팔이 생겨났다.
목이, 얼굴이 생겨났고.
이윽고 몸이 생겨났다.
괴물이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모두가 미간을 꿈틀거린 순간.
[―――.]
녀석의 입이 열리며, 사람의 정신을 일그러트리는 느낌의 기묘한 파장이 주위를 훑고 지나갔다.
이초아는 머리를 붙잡고 생각했다.
방금. 방금 그게 뭐지.
설마 대화를 시도한 건가?
몬스터와 대화를 해 평화롭게 일을 해결하는 상상을 잠깐 한 이초아가 거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저건 그런 종류의 생명체가 아니었다.
애초에, 저게 생명체인지도 의문이었다.
“모두 정신 차려!”
엔도 이츠키의 외침에 각성자들이 정신을 부여잡고 마나를 끌어올렸다.
각양각색의 각성 능력이 살덩어리 괴물에게 쏟아졌다.
불꽃이, 얼음이, 폭풍이.
빛이, 신성력이, 어둠이 살덩어리 괴물에게 작렬했고.
멈춰섰다.
―――!
시간이 되돌아갔다.
불꽃이, 얼음이, 폭풍이, 빛이, 신성력이, 어둠이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물론 반가운 마음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 적의를 담아서.
콰아아아앙!
자신의 각성 능력에 그대로 당한 각성자들이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살덩어리 괴물이 쓰러진 각성자들을 훑어봤다.
녀석이 입맛을 다셨다.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이츠키가 이를 악물고 각성 능력을 발동시켰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이츠키의 그림자가 펄럭이며 덩치를 키우더니, 용의 머리로 변했다.
용의 아가리가 살덩어리 괴물을 씹어 먹기 위해 땅을 짓누르며 앞으로 쏘아졌다.
그림자로 만든 전신슈트를 착용하며 이츠키가 소리쳤다.
“마법사! 지원 부탁한다!”
그림자 용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가는 이츠키.
이초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지원을 부탁한다니.
대체 어떻게?
이초아는 마치 시간을 되감는 듯한 살덩어리 괴물의 능력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어떤 종류의 능력인지 상상도 안 가는 상황에서, 무작정 들이박는다고 성과가 나올까?
오랜 경험상 그렇지 않다는 걸 이초아는 잘 알았다.
그리고 이초아가 쓸 수 있는 최대 위력의 마법이라고 해봤자 6위계 소환계 주문인 강철이가 끝이었는데.
그 마법이 과연 두더지 괴물보다 훨씬 윗줄로 보이는 괴물에게도 통할까?
아니라고 봤다.
아니라고 봤지만.
마법사의 냉정한 이성이 상황을 판단했다.
전투에서 이길 확률이 희박해 보인다고 저 괴물에게서 도망가는 선택을 고르는 건,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도망치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는 시점에서 이초아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였다.
‘확률은 높여야 해.’
여태까지 써왔던 마법만으론 큰 효과를 보기 힘들었다.
여기선 도박을 하는 게 맞았다.
쾅! 살덩어리 괴물과 그림자 용이 부딪히며 거센 폭발이 일어났다.
이초아가 눈을 감았다.
전장의 소음이 멀어지고, 이초아의 의식이 깊은 곳으로 하강했다.
이초아에겐 부모가 없었다.
거기엔 특별한 사정은 없었다.
그러니까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화재로 사망했다던가 하는 사정이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처음 세상을 기억할 때부터 보육원에 있었던 이초아에게 부모란 창작물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초아에겐 친구가 없었다.
성격 탓에 친구는커녕 친한 사람조차 찾기 힘든 사람이 바로 이초아였다.
이초아에겐 스승이 없었다.
S급이 되기 전까지 그녀의 가능성을 높게 쳐준 사람은 없었다.
고아에 성격까지 더러운 이초아를 데려다 가르치고 싶은 어른을 적어도 이초아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초아는 완벽해지고 싶었다.
그건 결점이 없다는 의미의 완벽이 아니었다.
그 어떤 상황에도, 그 어떤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부모가 없더라도, 친구가 없더라도, 스승이 없더라도.
홀로 오롯이, 세상에 우뚝 서고 싶다는 의미의 완벽이었다.
눈을 뜨자 어두운 방과 그 방 정중앙에 자리 잡은 책장이 보였다.
이초아가 책장에 다가갔다. 방 안에 놓인 책장엔 넓은 수납공간이 민망하게 딱 한 권의 책만이 꽂혀 있었다.
천천히 책장에 손을 뻗은 이초아가 단번에 책을 뽑아 들었다.
책의 이름은.
완벽의 파편이었다.
우웅―――!
이초아의 마나가 거칠게 끓어올랐다.
주문의 탑이 건설됐다.
1층, 2층, 3층, 4층, 5층, 6층까지 순식간에 건설되는 주문의 탑.
원래라면 여기서 주문을 완성했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론 부족했다.
한계를 뛰어넘어야 됐다.
이초아는 일본으로 오기 직전까지 붙잡고 있던 주문을 발동시켰다.
완벽의 파편을 기둥 삼아 주문의 탑 6층 위에 새로운 층이 건설됐다.
삐걱거리며 완성된 탑의 7층에 법칙이 새겨졌다.
주문에, 심상을 부여하는 법칙이.
화르륵!
완벽의 조각을 중심으로 불꽃이 거세에 타오르며 형태를 갖췄다.
그건 용이 되지 못한 재앙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재앙이 타락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어갔을 때의 모습.
불꽃의 용.
화룡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7위계 소환계 주문.
화룡의 숨결.
화아아악!
불꽃의 기둥이 살덩어리 괴물에게 직격했다.
그 여파만으로 흙이 녹고, 주변의 공기가 밀려났다.
“좋았어!”
등 뒤에 그림자로 날개를 만든 이츠키가 그대로 살덩어리 괴물을 향해 쏘아졌다.
이츠키의 양손에 그림자가 뭉쳤다.
기세를 몰아서 살덩어리 괴물에게 치명타를 먹이려는 것이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발동하지 못했던 7위계 주문을 성공시킨 이초아는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저 끝이 안 보이는 괴물을 쓰러트리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
살짝 상기된 기분으로 이초아가 후속 마법을 준비한, 그때였다.
―――.
무언가가 벌어졌다.
‘···어라.’
이초아는 이상함을 느꼈다.
눈 깜빡하는 사이, 세상에 변화가 발생했다.
이초아의 시선이 자신의 옆에 있는 이츠키에게로 향했다.
저 녀석이 원래···여기에 서 있었던가?
머릿속에 일그러진 물음표를 담은 이초아가 이번엔 살덩어리 괴물을 바라봤다.
저 녀석은 왜 멀쩡한 거지?
그리고, 화룡의 숨결은 어디로 간 거지?
꿈인가?
여태까지 꿈을 꾼 건가?
이초아는 자신의 볼을 꼬집고 싶어졌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
기묘한 파동이 이츠키를 훑고 지나갔다.
쿨럭.
이츠키가 피를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패닉에 빠진 이초아를 살덩어리 괴물이 바라봤다.
조금 전 피를 토하며 쓰러진 이츠키를 떠올리며 이초아가 다급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살덩어리 괴물이 공격하기 전에 선수를 칠 생각인 건데.
이초아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자신의 행동이 발악도 못 된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살덩어리 괴물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꿈틀거렸다.
끝을 예감한 이초아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화륵.
불꽃의 창이 살덩어리 괴물을 향해 쏘아졌다가,
멈춰 섰다.
―――.
시간이 되감기듯 이초아를 향해 빠르게 되돌아오는 불꽃의 창.
자신의 마법에 꿰뚫릴 위기에 처한 이초아가 이를 악물고 방어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고.
서걱.
그것보다 약간 더 빠르게 누군가가 불꽃의 창을 두 동강 냈다.
이초아가 멍하니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 백한영이 말했다.
“저게 왜 지구에도 있냐. 귀찮게시리.”
*
――의 유일한 목적은 저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생명체를,
별을,
모든 걸 잡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위로, 저 높은 곳으로 승천하는 것이 ――의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자신의 세계에서라면 ――은 절대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자신의 세계의 유일한 법칙은 ――이었고, 유일한 신 또한 ――이었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힘을 축적하며 승천의 때를 기다리던 ――은 새로운 세상으로 터전을 옮겼고, 금세 불청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은 하수인을 만들어 벌레들의 청소를 지시했다.
거기까지는 늘 있던 일이었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딱 거기까지만 그랬다.
놀랍게도 새로운 벌레들은 ――의 하수인을 쓰러트리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
――은 간만에 군침이 도는 기분이 들었다.
양질의 먹잇감의 등장에 ――은 친히 벌레들을 상대해 줬다.
벌레들이 강인한 생명력을 뿜을 때마다 ――은 먼 옛날 죽어가던 별의 기운을 취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벌레들은 그때 이상의 즐거움을 주리라.
한참을 벌레들과 놀아주던 ――은 곧 빠르게 벌레들을 정리했다.
온몸이 양질의 먹잇감을 취하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탓에 더는 못 참게 된 것이다.
요리조리 도망치던 벌레를 정리한 ――은 저 멀리에서 앵앵 대던 벌레를 정리하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렸다.
간만에 포식할 생각에 ——은 입가를 쭉 찢으며 웃었다.
서걱.
갑자기 난입한 누군가가 자신을 방해하기 전까지 말이다.
감히. 감히 나를 방해해.
――이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자신의 기분을 망친 벌레에게 지옥이 뭔지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은 분노에 가득 찬 상태로 불청객을 바라봤고.
불청객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은 깨달았다.
불청객이 누군지. 자신이 무엇을 상대하려고 한 건지.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것인지를.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파헤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안돼.
안돼.
안돼——!
*
월드 게이트 임시 본부로 귀환한 백한영은 지금이 맛집 여행을 다닐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실종자요?”
“네. 지금 긴급히 수색에 들어갔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여러분은 왜 여기 계신 거죠?”
“예비인 C팀은 임시 본부에서 대기 하는 걸로 결정이 나서 그렇습니다.”
“아하.”
하긴 사람이 수십 명이 실종된 긴급한 상황에 아직 짬이 덜 찬 햇병아리를 데려가는 건 좀.
백한영이 말했다.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죠?”
“얼마 안 됐습니다. 고작해야 수십 분···.”
“알겠습니다.”
C팀의 각성자의 말에 백한영은 빠르게 대답하고는 월드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만요 예비 인원은 본부에서 대기하기로―.”
C팀의 각성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한영이 월드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예비고 뭐고 사람이 진짜로 실종된 상황에서 계속 대기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월드 게이트에 처음 들어온 백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딘가 익숙한 곳이었다.
‘음.’
백한영이 고개를 돌려 월드 게이트 중앙을 바라봤다.
저긴가.
백한영의 앞으로 한 발짝 움직이자, 세상이 주욱 늘어났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백한영은 불의 창을 두 동강 낸 후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건.’
백한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한없이 익숙한 종류의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백한영이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저게 왜 지구에도 있냐. 귀찮게시리.”
백한영은 무림세계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해치웠던 녀석이랑 느낌이 비슷한 게 그놈의 유년기라도 되는 모양인데.
만약 그렇다면 그냥 평범하게 상대해선 안 됐다.
백한영은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대부분이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아직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있었다.
그. 이초아라고 했었나?
미안한데 잠깐 기절시킬게.
지금부터 사용할 힘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백한영이 속으로 계획을 짜고 있을 때였다.
[―――!!!!!!]
살덩어리 괴물이 괴상한 포효를 내지르더니,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파헤쳤다.
왜 저래 쟤는.
자신의 얼굴이 뭉개지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벅벅 얼굴을 긁는 살덩어리 괴물.
자해를 시작한 녀석을 백한영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 순간.
녀석의 손이 자신의 목으로 향했다.
직후.
펑!
녀석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엥?”
진짜 간만에 당황한 백한영이 감각을 곤두세워 주변을 훑어봤다.
녀석이 도망이라도 갔나 싶어 수차례 확인한 백한영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진짜 어이없지만, 녀석이 정말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그것도 단지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백한영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억울하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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