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32화 (32/117)

월드 게이트(5)

일본 정부의 A급 각성자, 나카마치 후유토는 생기 없는 눈으로 사람들과 함께 월드 게이트 내부를 조사했다.

몇 시간째 월드 게이트를 조사했음에도 아무 성과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역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든 게 컸다.

후유토는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을 떠올렸다.

되도 않는 수작질과,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동참하고 있는 자신에게 환멸이 든 후유토는 작게 한숨을 쉬고 하늘을 바라봤다.

날씨는 좋네.

후유토는 생각했다.

내가 과연 동생에게 떳떳한 형이 될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상부의 요구가 더러워지는 걸 보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오래 했어.’

후유토의 부모님은 8년 전 인류가 처음 게이트와 조우했던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친인척까지 전부.

때문에 후유토의 남동생에겐 형인 후유토 본인 말고는 가족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바로 후유토가 정부 소속의 각성자가 된 이유였다.

지금은 A급 각성자지만, 한때 F급 각성자였던 후유토가 동생을 먹여 살릴 방법은 정부에 소속되는 것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후유토는 정부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F급 각성자였던 자신을 받아주고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도와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은혜를 충분히 갚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슬 드는 후유토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정부 일은 그만두자. 이츠키 씨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거야.’

그러고 보니 동생의 생일이 얼마 안 남았지.

생일 선물로 뭘 줘야 좋아할까.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어라?”

거기까지 생각한 후유토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조사를 진행하던 사람들 탓에 자잘한 소음이 났었는데, 어느새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것이다.

후유토가 조사단이 있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직후.

콰직.

상반신을 잃은 후유토의 하반신이, 땅에 널브러졌다.

*

1차 조사를 마치고 월드 게이트를 나온 이초아는 소란스러운 임시본부의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길래 저러는 거지.

아까 수작질을 당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이초아가 소란의 중심으로 향했다.

소란의 중심엔 일본의 조사단이 있었는데, 상당히 격양된 상태였다.

“다시 말해봐.”

“그러니까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본 측 책임자의 말에 일본의 S급 각성자, 엔도 이츠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유토는 이런 곳에서 죽을 애가 아니야.”

“하지만 변고가 생긴 게 아니면 현실적으로 수십 명의 소식이 갑자기 끊길 이유가―.”

“닥쳐.”

이츠키는 책임자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희가 처음에 말한 실종자 얘기가 거짓말인 걸 모를 거 같아?”

“······.”

“너네 정부가 자기네 소속이 아닌 우리들과 한국 측을 따돌리고 모든 성과를 독차지하려 한 걸 내가 모를 거 같냐고. 후유토가 곤란해질까 봐 입 다물고 있던 거야. 그러니 조금 닥치고 있어.”

이츠키의 말에 일본 측 책임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모든 각성자가 모여있는 곳에서 대놓고 저런 말을 할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끝까지 지켜본 이초아가 아까부터 자신의 옆에 있던 한국 측 각성자에게 나직이 질문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실종자가 생긴 모양입니다.”

“몇 명이나요?”

“듣기로는 팀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팀 하나면 수십 명이 한 번에 사라졌다는 뜻인데,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한 번에 사라진 거면 확실히 무슨 일이 생겼다고 보는 게 맞긴 했다.

그나저나. 이초아가 목을 긁적이곤 말했다.

“쟤네는 자국 내의 각성자까지 속였나 보네요?”

“저 많은 인원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상하긴 했습니다.”

“···저도 예상하긴 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초아가 뻘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이츠키가 일본의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바로 수색에 들어간다.”

“지금 당장이요?”

“그래. 한시가 급한 상황이야.”

일본 측 각성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월드 게이트에 재진입할 생각인 것이다.

한국 측 각성자가 조심스럽게 이초아에게 물었다.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도와줘야겠죠.”

수작질을 부린 게 아니꼽긴 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진짜 실종자가 생겼다면 도와주는 게 맞았다.

상대가 쓰레기라고 똑같은 쓰레기가 될 필요는 없었으니까.

“모든 사람을 동원할까요?”

“예비팀은 빼도록 해요. 팀 하나가 갑자기 증발해 버린 위험한 상황이에요. 충분한 실력을 갖춘 사람만 데려가는 게 맞다고 봐요.”

“알겠습니다.”

한국 측 각성자와 얘기를 마친 이초아가 일본 측 책임자에게 다가갔다.

이초아가 말했다.

“처음에 말했던 실종자가 사실 없다는데, 정말인가요?”

“아니. 그.”

“변명은 나중에 하시고 정보나 똑바로 제공해 주세요. 사람들이 실종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정확히 어디쯤이죠?”

“···수색맵을 드리겠습니다.”

이초아는 일본 측 책임자가 건네준 지도를 받아들었다.

‘벌써 여기까지 갔다고?’

정말 알차게도 훑고 다녔다고 생각하며 이초아는 수색맵을 들고 한국 측 각성자에게로 돌아왔다.

저 멀리에서 일본 측 각성자들이 월드 게이트에 재진입하는 걸 보며 이초아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재정비가 끝나는 대로 게이트에 진입하도록 해요.”

*

월드 게이트에 재진입한 이초아는 수색맵에 적힌 곳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솔직히 이초아는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보다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그럼에도 만약 살아 있다면 빠르게 행동해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도 맞았다.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하며 이초아는 양국의 조사단을 따라 한참을 움직였고, 이내 실종 추정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이런.”

옆에서 누군가 침묵을 깨고 작게 중얼거렸다.

비슷한 기분이었던 이초아가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봤다.

정면에, 피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후유토?”

이츠키가 멍하니 중얼거리며 하반신만 남은 시체에 다가가려고 했을 때였다.

이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참혹한 현장과는 별개로 무언가가 이초아의 감각을 건드렸다.

빠르게 현장을 훑어본 이초아의 눈에 피와, 그 밑에 깔려 있는 흙이 들어왔다.

‘흙?’

흥건한 피와 사람의 정신을 건드리는 풍경 탓에 알아채기 힘들었지만, 흙의 상태가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삽으로 퍼 올렸다가 덮어놓은 것 같다고 해야 되나.

거기까지 생각한 이초아의 뇌에 벼락이 쳤다.

“모두 땅을 조심하세요!”

이초아의 외침이 공터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콰직.

끔찍한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자극했다.

“으아아아!”

일본 측 각성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각성 능력을 발동시켰다.

목표는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동료의 하반신을 먹어 치운 괴물이었다.

콰아아앙!

허공에 생성된 암석이 괴물에게 꽂히며 소음이 터져 나왔다.

폭발한 암석에서 나온 흙먼지가 괴물의 모습을 가렸다.

기괴한 괴물의 모습이 가려져서일까. 암석을 소환한 각성자가 속으로 잠깐 안심을 했고.

퍽.

그게 방심으로 작용한 건지 암석을 소환한 각성자의 배를 흙먼지를 뚫고 나온 발톱이 꿰뚫어버렸다.

“모두 물러서!”

심상치 않은 적의 등장에 이츠키가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능력을 발동시켰다.

이츠키의 그림자가 거칠게 흔들리더니, 그 안에서 검은색 개들이 쏟아졌다.

각성능력. 암영세계(陰影世界).

그림자로 이루어진 들개무리가 기묘한 포효를 내질렀다.

―――!

마치 환상과도 같은 느낌의 포효가 공터를 훑고 지나가고.

그륵.

각성자를 둘.

아니.

수십 명을 도륙 낸 괴물이 천천히 움직였다.

‘처음 보는 몬스터야.’

이초아가 마나를 끌어 올리며 적의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했다.

땅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의 외관은 기괴했다.

근육으로 이루어진 두더지 인간 같다고 해야 되나.

정상적인 생명체 느낌은 아니었다.

‘S급이다.’

처음에 하반신을 뜯어먹힌 각성자와 배가 꿰뚫려 죽은 각성자의 등급은 둘 다 A급으로, 허무하게 당한 것치고 상당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각성자들을 단번에 해치워 버렸다?

저 괴물의 강함이 A급을 한참 선회한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됐다.

우웅―!

이초아가 마나를 끌어올리자 그녀의 붉은 단발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에 맞춰 그림자 개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

그림자 개가 두더지 괴물의 어깨를 물어뜯고.

이초아의 마법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콰아아앙!

불꽃의 창 두 개가 두더지 괴물의 어깨에 꽂히며 폭발했다.

성공적으로 공격을 적중시킨 상황이었지만, 이초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미동도 없어.’

아무리 급하게 준비한 마법이라지만 아무 피해를 입지 않다니.

전투가 험난해질 걸 예상한 이초아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이츠키가 입을 열었다.

“거기 마법사.”

“네?”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사용해라. 시간은 내가 벌어줄 테니까.”

“상대는 S급 추정이에요. 제 도움 없이 혼자서 가능하겠어요?”

“가능하냐고?”

스스스스.

이츠키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자신의 그림자에 손을 가져다 댄 이츠키가 씹어 뱉듯이 말했다.

“하게 만들어야지.”

이츠키의 그림자가 자신의 주인을 덮쳤다.

그림자로 된 전신슈트를 입은 이츠키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두더지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몸에 두른 그림자를 마치 검처럼, 도처럼, 창처럼 쓰며 두더지 괴물을 상대하는 이츠키.

그런 이츠키를 보며 이초아는 곧장 마법을 준비했다.

1층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는 주문의 탑.

신중하고, 그리고 천천히 완성되는 주문의 탑 각 층계에 법칙이 하나씩 새겨졌다.

1층에 주문을 제어하는 법칙이 새겨졌다.

2층에 주문을 응축하는 법칙이 새겨졌다.

3층에 주문의 형태를 갖추는 법칙이 새겨졌다.

4층에 주문의 속성을 바꾸는 법칙이 새겨졌다.

5층에 주문의 형질을 변질시키는 법칙이 새겨졌다.

이윽고 6층.

주문의 본질을 뒤흔드는 법칙이 새겨졌다.

화륵.

허공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이 덩치를 키우며 형태를 갖췄다.

그건 용이 되지 못한 재앙이었다.

용이 되지 못했기에 하늘을 날지 못하고, 그렇기에 용의 신통력을 쓰지 못하는 이무기.

녀석이, 재앙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이무기가, 두더지 괴물을 덮쳤다.

소환계 주문. 강철이.

효과는, 적을 증오를 연료 삼아 끝없이 불타오르는 것.

화르르륵!

재앙의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현재 이초아가 쓸 수 있는 최대 위력의 마법에 직격당한 두더지 괴물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이츠키가 자신의 기술을 발동시켰다.

그림자로 만든 장도를 허리춤에 찬 이츠키.

이츠키가 빠르게 발도했다.

그림자로 된 도가 검집에서 초고속으로 뽑혀 나오며 기다랗게 늘어났다.

서걱.

채찍처럼 늘어난 그림자 도가 두더지를 깊게 베고 지나가고.

쿵.

두더지 괴물의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승기가 넘어왔다.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초아가 재차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에야말로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펑!

두더지 괴물의 몸이 풍선 터지듯 펑 터져버리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츠키와 이초아를 포함한 일본과 한국의 모든 각성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꿈틀거리는 기괴한 살덩어리가, 두더지 괴물의 몸을 펑 터트리며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초아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 녀석이 방금 전 싸웠던 두더지 괴물보다 훨씬 윗줄의 괴물이라고.

살덩어리 정중앙에 박여있는 커다란 눈알이 번쩍 눈을 떴다.

2차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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