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29화 (29/117)

월드 게이트(2)

임시로 월드 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게이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일본의 B급 각성자였다.

월드 게이트의 외관은 딱히 특이하지 않았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A급 던전 게이트 정도의 외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의 얘기고, 그 내부는 많이, 아주 많이 달랐다.

“그냥 A급 던전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까 별세계가 펼쳐져 있더라니까요?”

월드 게이트를 처음 발견한 B급  각성자의 말이었다.

던전 게이트에 던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가 뭘까.

간단했다. 던전 게이트의 내부가 말 그대로 던전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둡고 좁은 동굴, 혹은 알 수 없는 유적지의 내부 같은 형태를.

던전 게이트가 그렇다면 월드 게이트는?

이쪽도 간단했다.

말 그대로 월드 게이트가,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는 거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예 다른 세계랑 연결된 건 아닌가요?”

“마법으로 게이트 내부를 조사해 본 결과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직경 약 50km의 닫힌 차원이라고 하더군요.”

“으음.”

무림세계에 빙의 됐던 경험이 떠올라 혹시나 해 물어본 거였건만, 월드 게이트가 다른 세계랑 연결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50km라니. 확실히 어마어마한 크기긴 했다.

“근데 일본에 있는 게이트를 우리나라가 왜 조사를 하는 거죠?”

“협력 요청이 왔습니다. SS급 던전 게이트를 공략했다는 실적을 높게 본 모양입니다.”

공무원의 말에 백한영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생긴 이상현상이라 확인은 해봐야 될 거 같긴 한데, 뭔가 애매하네.’

가야 될 이유가 딱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뭔가 더 없을까 고민하던 백한영의 뇌리에 문득 월드 게이트가 생성된 지역이 스쳐 지나갔다.

거기가 일본 홋카이도였지 아마.

홋카이도 게가 참 맛있는데.

음. 가야겠다.

백한영이 말했다.

“참가할게요.”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월드 게이트 조사단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린 백한영은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처리해 될 일을 하나둘씩 해결했다.

수련장에서 검을 휘두르던 김태식이 나직이 물었다.

“저는 같이 안 가요?”

“마음 같아선 수련실에 하루 종일 박아 놓고 싶은데 따라오긴 어딜 따라와. 태식검법의 기본기가 잡힐 때까지 게이트 공략도 하지 마라.”

“태식검법이 말고 적련검법이라고 하자니까요.”

“그래 적련검법. 태식검법이나 적련검법이나 그게 그거지 까다롭기는. 아무튼 얌전히 연공이나 해. 어디 싸돌아 다니지 말고.”

“넵.”

김태식에게 주의를 준 백한영은 다음으로 신입 길드원 둘을 살펴봤다.

최동협이야 승급 시험 때부터 직접 가르치기도 했고 살살 꼬셨기에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만, 신유나가 찾아온 건 백한영의 예상 밖이었다.

백한영이 신유나에게 말했다.

“정말 저희 길드에 들어오게요?”

“네.”

“뭐 좋아요.”

온다는 사람을 굳이 막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백한영이 쿨하게 받아들였다.

백한영은 잠깐 옛날 생각을 했다.

무림세계에서도 밑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땅에 머리를 박던 사람들을 전부 받아줬었는데.

조금 굴리니까 죄다 도망가서 문제였지만.

백한영이 김태식과 최동협, 그리고 신유나를 바라봤다.

요즘은 순한 맛으로 해서 다행인 줄 알이 이 녀석들아.

“교관님?”

“무슨 일이죠?”

“아뇨 별 건 아니고, 계속 쳐다보셔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가 해서요. 그리고 말 편하게 하세요. 태식이 형도 저한테 편하게 말하는데 교관님이 존댓말을 쓰니까 뭔가 이상하네요.”

“네 맞아요.”

“···그래 알았어.”

최동협과 신유나의 말에 대답한 백한영이 슬쩍 김태식을 흘겨봤다.

교관 컨셉은 존댓말이 맞는데, 저 녀석 탓에 일이 꼬였다.

아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한영이 최동협에게 말했다.

“극야권은 좀 어때. 쓸만하지?”

“쓸만한 정도가 아니던데요. 제 각성 능력이랑도 뭔가 잘 맞는 거 같고. 진짜 찰떡이에요.”

걸괴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인의 권법이니 당연했다.

별호가 살짝 이상해 보이겠지만, 행색과 성격 때문에 그런 거고. 무공 자체는 초일류였으니 의심하지 않아도 됐다.

극야권은 본능을 극도로 증폭시키는 무공으로, 이렇게 말하면 이성을 지우고 짐승처럼 싸우는 이미지가 연상되겠지만 그거랑은 조금 달랐다.

제6감을 성장시켜 생각에 딜레이를 없애고 모든 행동을 상대보다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빠르게 하는 것이 바로 극야권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뭐, 어디까지 지향점이 그렇다는 거고 지금의 최동협은 그냥 짐승처럼 싸우는 게 맞긴 했다.

‘최동협의 각성 능력은 야수의 혼으로 신체를 다방면으로 강화하는 야수강림. 거기에 감각적으로 타고난 것도 많고. 걸괴가 봤으면 제자로 납치했을 정도로 극야권이랑 잘 맞아.’

최동협을 보자마자 극야권을 떠올린 자신을 칭찬하며 백한영이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였다.

최동협이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뭐 해요?”

“뭘 하냐니. 몰라서 물어?”

뭘 모르는 척을 하고 있어 이 녀석아, 라는 표정을 지은 백한영이 미리 준비해 놓은 나무공을 허공에 띄웠다.

혹시 다른 훈련이 준비돼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최동협은 체념한 표정으로 나무공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후웅―!

빠르게 날아오는 나무공을 최동협이 가볍게 피했다.

물론 처음에 날아온 나무공 하나만 말이다.

퍽!

두 번째로 날아온 나무공을 맞고 바닥을 구르는 최동협.

백한영이 혀를 끌끌 찼다.

“잠깐 안 했다고 그새 그 모양이라니. 너도 참 어지간하다.”

“아니 교관님. 이거 저번이랑 너무 다른데요?”

“그야 달라야지. 봐봐. 벌써 익숙해졌잖아. 계산을 하려고 들지 말고 본능적으로 피하라니까?”

나무공 훈련의 목적은 본능을 강화하는 것에 있었다.

신묘한 궤도와 절묘한 속도로 날아오는 나무공에 쉬지 않고 계속 얻어맞다 보면 저절로 생각을 그만두고 본능적으로 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건데.

아무 제약 없이 나무공을 피하는 1단계에서도 저러는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원래 철공으로 해야 되는 거 나무공으로 쉽게 해주니까 애가 정신을 못 차리네. 원본대로 해야 하나.’

성장에 필요한 고통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최동협을 지켜보던 백한영이  이내 천천히 말했다.

“출국하면 이것도 못 해주니까 오늘은 평소의 2배로 간다. 알았지?”

“네···.”

힘없이 대답하며 나무공을 피하는 최동협을 뒤로한 채 백한영이 신유나를 바라봤다.

“나한테 교육을 받고 싶다고?”

“네. 교관님.”

“그럼 일단 느낌이나 보자. 솔직히 승급 시험 때 내가 가르치던 애들 말고는 자세히 안 봤거든.”

“알겠어요.”

백한영의 말에 신유나는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허공에 늘어서는 빛의 검.

20개가 넘는 빛의 검이 신유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쐐애액―!

실체를 가진 빛의 검이 훈련장 구석에 있는 허수아비에 꽂혔다.

펑!

빛의 검이 폭발하며 힘의 여파가 훈련장 안을 훑고 지나갔다.

성공적으로 능력 시연을 마친 신유나가 내심 뿌듯한지 백한영을 바라봤다.

백한영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너는 또 뭐하니.”

“어···. 능력 시연이요?”

“검이나 뽑아. 네 허리에 있는 그게 장식은 아닐 거 아니야.”

“아. 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기에 살짝 기운이 빠진 신유나가 검을 뽑아 들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웅―!

신유나의 검에 광휘가 서린 직후. 빛에 감싸인 검이 잔상을 남기며 허공을 휘저었다.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검무를 끝까지 지겨본 백한영이 이내 입을 열었다.

“아예 싹수가 없진 않네.”

신유나가 검무를 멈추고 말했다.

“정말요?”

“검 실력 좀 보자니까 대뜸 검에 이상한 반짝이 같은 걸 묻혀서 살짝 싸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칭찬인지 욕인지 구별이 안 되는 말에 신유나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백한영이 말했다.

“방금 전의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빛의 검? 그거나 다시 써봐.”

그 말에 신유나가 허공에 빛의 검을 늘어트렸다.

백한영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마치 자신을 공격해 보라는 듯.

신유나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여기 보호 마법 같은 거 없지 않아요?”

“내가 햇병아리 공격에 당하겠냐.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공격해 봐.”

그렇다면야.

신유나가 빛의 검을 제어해 백한영을 공격했다.

다양한 궤도로 쏘아지는 빛의 검.

수없이 쏟아지는 빛의 검들을 살짝 움직여 전부 피해낸 후 백한영이 말했다.

“네가 최동협이랑 대련할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빛의 검을 잔뜩 만드는 거야?”

“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에 신유나는 눈알을 굴리며 잠깐 고민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장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이거라서요. 별로예요?”

“어. 별로야. 그리고 그게 왜 장점을 최대로 살리는 거야. 누가 그래?”

“능력 컨설팅을 해준 사람들이요. 근데 이게 맞지 않아요?”

넘쳐날 정도로 많은 마나량과 섬세한 제어력.

그리고 마나를 빛으로 만드는 능력까지.

그녀를 본 사람들은 전부 원거리에서 빛의 투사체를 폭격하는 방식을 떠올렸고, 그건 신유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백한영이 보기엔 아닌 모양이었다.

백한영이 나직이 물었다.

“네가 보는 네 궁극점은 뭔데.”

“궁극점이요?”

“그런 식으로 성장해서 닿을 수 있는 최후의 경지가 뭐냐고. 이상향이 있을 거 아니야.”

신유나가 입을 다물었다.

고민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백한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가 너였다면 빛의 검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걸 목표로 했을 거야. 너와 똑같은 수준의 검사가 빛의 검의 숫자만큼 늘어나는 거지.”

실제로 무림세계에서 그런 경지에 도달했던 무인을 백한영은 만나봤었다.

이기어검의 극한에 도달한 사람이라 정말 까다로운 상대였었지.

결국 내 손에 죽었지만.

“일단 한 개부터 완벽하게 제어하고 그다음부터 숫자를 늘려가는 식으로 하면 돼. 지금처럼 빛의 검을 무식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제어. 알겠어요.”

“일단 오늘은 빛의 검 한 개를 마치 네가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제어하는 연습부터 해봐. 내일은 내가 괜찮은 거 가져다줄 테니까.”

“어떤 거요?”

“무공.”

이기어검의 극한을 노릴 때 도움이 되는 무공 몇 개를 던져줄 생각을 하며 백한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느긋하게 일상을 즐길 계획이었는데, 가르쳐야 될 사람이 세 명이나 생기고, 일도 잔뜩 늘어났네?’

백한영은 다짐했다.

진짜 딱 이번 월드 게이트만 확인하고 1년 정도는 쉬기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

월드 게이트가 발견되고 일주일, 백한영이 월드 게이트 조사단에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3일 후.

일본의 임시 조사단이 월드 게이트 내부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이 한국에 날아왔다.

출국 예정일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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