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게이트(1)
“누구요? 손배성 씨?”
“네.”
“손배성···. 손배성? 아. 기억났네. 이번에 임시 교관으로 보낸 사람 맞죠? 그 사람이 왜요?”
검맥의 부길드장, 김영운의 말에 검맥의 길드원이 대답했다.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무슨 문제요?”
“교관 한 명에게 각성 강화제를 썼다고 누명을 씌웠다고 합니다.”
“각성 강화제요?”
요즘 말 많은 각성 강화제가 왜 튀어나오나 싶어 김영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명인 거 확실해요?”
“안 그래도 손배성 씨가 각성 강화제가 확실하다고 난리를 쳐서 이미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각성 강화제의 ㄱ자도 발견이 안 됐다고 하더군요.”
“손배성 씨는 대체 왜 그랬대요? 그냥 미쳐서 그러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 의심받은 교관이 가르친 교육생이 너무 눈에 띄게 성장을 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김영운에게 길드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사를 강행하던 도중 검맥의 이름까지 팔아서 징계 없이 넘어가긴 힘들 거 같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뭐라고 검맥의 이름을 팔았지. 지가 검신이야 뭐야.”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김영운이 이내 말했다.
“길드에서 내보내세요.”
“정말로 내보냅니까? 손배성 씨는 A급 각성자로 검맥에서도 주목받는 인재인데.”
“방금 듣기 전까지 이름을 알지도 못했는데 주목을 받으면 얼마나 받았다고 그래요. 내보내세요. 피해를 입은 교관에게 보상도 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순순히 대답하고 물러가는 길드원을 지켜보던 김영운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작게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별일이 다 일어나네.”
고개를 바로 한 김영운이 책상을 내려다봤다.
원래라면 길드장인 천진혁이 처리했을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일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영운이 도장을 들었다.
“그 정도면 폐관수련 중독이야 진짜.”
쾅.
서류에 힘차게 도장이 찍혔다.
검신 천진혁이 폐관수련에 들어간 지 2주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
시험을 통해 B급으로 승급한 건 최동협과 신유나를 포함한 세 명의 각성자가 전부였다.
다른 각성자(주로 백한영이 가르친)들도 눈에 띄게 성장하긴 했지만, B급이 되기엔 살짝 부족했던 것이다.
신유나는 성장했다기보다는 원래 B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았지만, 아무튼.
최동협은 B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힌 각성자등록증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네.”
“그러게. 최동협이 B급도 되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네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그래. 그리고 떨어져 좀.”
최동협은 자신의 각성자등록증을 구경하는 신유나를 떨어트린 후 입을 열었다.
“B급 각성자의 등록증이 궁금하면 네 걸 보면 되잖아. 왜 굳이 내 걸 보려고 하는 거야.”
“그야 신기하니까?”
“나도 내 각성자등록증에 B가 적혀있는 게 신기하긴 한데, 어쨌든 떨어져. 더워 죽겠으니까.”
각성자등록증을 집어넣은 후 최동협이 말했다.
“근데 너 각성자등록증 갱신했으면 볼일 다 본 거 아니야? 왜 따라오는 거야.”
“이대로 누구였지? 백한영? 그 교관의 길드에 갈 예정 아니야?”
“맞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거길 네가 왜 따라와.”
“왜? 가면 안 돼?”
신유나의 말에 최동협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너 검맥에 입단 예정이잖아. 남의 길드에 가서 뭐 하게.”
“아···검맥?”
신유나의 말투가 미묘해졌다. 마치 싸워서 어색해진 친구의 이름을 들은 사람의 말투라고 해야 되나.
이상함을 느낀 최동협이 혹시나 싶어 물었다.
“설마 너 검맥이랑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흥미가 떨어졌다? 그런 느낌.”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너 검맥에 안 들어갈 거야?”
신유나가 먼 산을 바라봤다.
최동협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손배성 씨 때문에? 그건 그 사람이 이상한 거잖아. 고작 그런 이유로 검맥에 안 들어가는 건 너무 손해인 거 같은데.”
“꼭 그 사람 때문은 아니고.”
신유나가 발끝으로 애꿎은 땅만 콕콕 찍었다.
왜 저래 쟤는.
명확한 이유가 있으면 말하면 되지, 왜 빙빙 돌리는 거야.
미간을 좁히며 최동협이 말했다.
“아니면 뭔데. 백한영 씨한테 흥미라도 생겼어?”
“······.”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야?”
“몰라. 가기나 해. 백한영 교관도 내가 간다고 해서 싫어할 거 같지 않은데 왜 네가 난리야.”
퉁명스러운 신유나의 말투에 볼을 긁적인 최동협은 이내 택시에 탑승했다.
신유나의 말대로 최동협이 나설 부분은 아닌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교관님이 알아서 컷하겠지.’
그렇게 신유나와 함께 최동협은 무신련의 길드 사무실로 향했고.
“누구라고요?”
사람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백한영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사무실을 찾아왔다가 날벼락을 맞은 김태식이었다.
김태식은 느닷없이 찾아온 소꿉친구 듀오에게 허겁지겁 간식거리와 마실 걸 내놨다.
형은 왜 이런 걸 미리 말 안 해준 거야···!
속으로 김태식이 백한영을 원망하는 사이 신유나와 최동협이 사무실을 구경했다.
신유나가 말했다.
“인테리어에서 역사가 느껴지는데, 무신련은 꽤 오래된 길드인가 봐요?”
“너무 급하게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전에 있던 인테리어를 처리 못 해서 그래요. 설립된 지 반 년도 안 됐어요.”
“아하. 와. 이 과자 맛있네요. 있다가 사 가야지.”
신유나가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김태식은 이마를 짚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본인도 말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들은 사람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래선 인테리어에 돈도 못 쓰는 길드 느낌이잖아.
형이 아직 신입 길드원을 받을 생각 없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돈 들어왔을 때 바로 인테리어를, 아니. 아예 건물을 새로 짓자고 할 걸.
그랬으면 지금 새 건물이 올라가고 있고 여긴 임시로 쓰는 곳이라고 변명이라도 했을 텐데.
사무실에 잠깐 정적이 생겼다.
약간 민망한 상황에 모두 말을 아끼는 것이다.
큼큼.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며 최동협이 입을 열었다.
“그, 교관님은 어디 계세요?”
“교관? 아. 형···그러니까 길드장님이요? 오늘 사무실 들린다고는 했으니 곧 오긴 할 텐데, 제가 전화해 볼게요.”
“편하게 말하셔도 돼요. 저 이제 20살이에요.”
“저도 20살이에요.”
최동협과 신유나의 말에 김태식이 알았다는 곳 고개를 끄덕였다.
20살이면 김태식보다 한 살 어렸으니 동생이긴 했다.
“그럼 말 편하게 할게. 너네도 편하게 불러. 둘은 등급이 어떻게 돼?”
“이번에 B로 승급했어요. 얘도 이번에 B급으로 승급했고요. 태식이 형은요?”
“나는 A급이야.”
김태식은 최동협의 말에 대답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승급 결과가 늦게 나왔어도 신입, 그것도 동생과 등급이 똑같을 뻔했다.
“길드원은 몇 명이나 있어요?”
“일단 길드장님을 제외하면 내가 다야.”
“형이 다라고요? 그러면 저까지 포함해서 세 명이 전부네요. 되게 소규모다.”
“그렇지? 근데 셋? 넷이 아니라?”
김태식의 시선이 신유나에게로 향했다.
최동협이 말했다.
“쟤는 검맥에 들어갈 예정이라서 뺐어요.”
“와. 검맥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특대 유망주인가 보네. 나도 예전에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형도 검맥에 들어갈 예정이었어요?”
“말도 마라. 그때 내 가능성을 보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말이 얼마나 돌았냐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김태식.
과거라고 해 봤자 고작 몇 달 전이면서 저러는 게 웃기긴 했지만, 사정을 모르는 최동협 입장에선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침을 삼키게 됐다.
“잠깐만요.”
물론 그건 최동협의 입장이고.
신유나는 김태식의 구구절절한 과거 스토리(없음)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신유나가 최동협을 흘겨보며 말했다.
“내가 분명 검맥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말하지 않았어?”
“말하긴 했는데, 진짜 너 검맥에 안 들어가게?”
“흥미가 떨어진 게 안 들어간다는 소리잖아.”
“그럼 어떻게 하려고. 길드에 안 들어가게?”
“들어가려고 너 따라온 거 아니야.”
최동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유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이 눈치 없는 놈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작게 중얼거린 신유나가 이내 확실히 말을 꺼냈다.
“나도 무신련에 들어가고 싶다고.”
“왜?”
“아니 진짜로?”
김태식과 최동협이 동시에 대답했다.
최동협은 검맥을 놔두고 이런 소규모 길드를 선택한 신유나가 이해가 안 돼서 그랬고, 김태식은 백한영의 진면목을 모를 애가 굳이 무신련을 선택하는 이유가 이해가 안 돼서 그랬다.
신유나가 말했다.
“너를 일주일 만에 그렇게 바꾼 사람에게 나도 배워보고 싶어서. 왜? 나는 교관님한테 배워보면 안 돼?”
“그···건 아니지만.”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는 최동협이었다.
백한영의 가르침을 받고 가장 많은 성장을 한 게 최동협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니까 나까지 넷이야. 셋이 아니라.”
“알았어. 넷. 됐지?”
“응.”
대화를 일단락 짓고 눈앞에 놓인 차와 과자를 먹는 신유나와 최동협.
얌전해진 둘을 보며 김태식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형은 언제 오는 거야.
*
최동협과 신유나가 무신련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린 그 시각.
“누구요?”
“윤한 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윤한. 윤한?”
백한영은 한 남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권왕 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아하.”
권왕은 알았다. 대한민국에 있는 3대 각성자 중 하나였다.
근데 그 사람이 왜 나를?
백한영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짓자, 남자가 말했다.
“요즘 주목하고 있는 각성자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접점도 없는 사람이 자신을 주목한다는 게 신기해 백한영이 눈을 깜빡였다.
진지하게 만나본 적도 없는 거 같은데, 나를 왜 주목하고 있는 거지.
“다중 게이트 사태 때 활약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야. 들으셨구나. 부끄럽네요.”
“이번 승급 시험의 임시 교관을 맡아준 것도 그렇고. 저희 정부가 판단하기에 공익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은데, 맞습니까?”
“어느 정도는 있죠.”
동생이 살기 편한 세상이 되길 바라고 움직이는 것도 공익에 포함되지 않겠어?
“그런 백한영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건 극비니 정보취급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스윽.
남자가 백한영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 읽은 백한영이 턱을 쓰다듬었다.
재미있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번 월드 게이트 조사단에 참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홋카이도에,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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