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급 시험(3)
대련이 성사되자마자 백한영은 피지컬 테스트를 받을 때부터 주시하고 있던 17번 교육생에게 의사를 물었다.
“저보고 공개 대련을 하라고요?”
당연하지만 17번 교육생은 별로 내키지 않아 했다.
“싫으면 안 해도 되고요.”
“그. 누구랑 대련을 하라는 거죠?”
“그건 결정이 안 났는데, 손배성 씨라면 지금 싸고돌고 있는 25번 교육생을 출전시키지 않을까요?”
“25번이요?”
그 말에 17번 교육생, 최동협은 고개를 돌려 25번 교육생을 바라봤다.
“저 녀석이 나온다고요.”
“아는 사이세요?”
뭔가 아는 사이인 눈치라 백한영이 그렇게 묻자, 최동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에요. 그나저나 쟤랑 대련을 하는 거면 제가 질 텐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야, 지니까요?”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듯 최동협이 말했다.
최동협과 25번 교육생, 신유나의 사이는 늘 그랬다.
공부도. 게임도. 운동도.
심지어 나이가 들어 성별의 차이로 최동협이 운동을 이길 때가 됐을 때는 각성인가 뭔가 하는 게 생겨 다시 차이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는 어렴풋이 느끼고 말았던 신유나와의 차이는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
희귀한 각성 능력을 얻은 신유나와 흔하디흔한 강화계 능력을 얻은 최동협.
특대 유망주인 신유나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최동협.
둘의 차이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했다.
뻔하다고, 최동협은 생각했지만.
“질 거 같으면 17번 교육생 안 불렀죠.”
“제가 이긴다고요? 지금 이대로 붙어도요?”
“그건 당연히 아니고요. 아주 약간의 조율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건 최동협의 생각이고.
백한영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그래서 하실 거예요?”
백한영의 말에 최동협은 약 15년 분량의 과거를 떠올렸다가, 25번 교육생, 신유나를 바라봤다.
최동협이 신유나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된 지 얼마나 됐을까.
1년? 2년? 5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오래됐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있다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백한영이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련 그거. 할게요.”
마음속 깊은 곳에 늘 신유나를 한 번쯤 이겨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던 최동협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대련이 성사된 뒤로도 백한영은 딱히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아. 최동협을 정해진 시간 외에도 가르치긴 했는데, 그건 원래도 하려는 거였으니 제외였다. 희망자가 있다면 누구나 정해진 시간 외에도 가르칠 계획이었거든.
참고로 많은 교육생들이 시간 외 수업에 참가했다가, 첫날에 최동협이 굴러지는 걸 보고 죄다 포기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무림시절에 비하면 굴린 것도 아닌데. 요즘 애들이란. 쯧.
“정신이 드세요?”
“······.”
“아직 정신이 있네요. 이제 내일이면 대련인데, 계속 누워 있어도 되겠어요?”
“······.”
백한영의 말에 좀비처럼 일어나는 최동협.
그런 최동협을 향해 공중에 떠 있던 나무공들이 날아들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나무공을 피하던 최동협은 등 뒤에서 날아온 나무공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땅을 굴렀다.
백한영이 시계를 봤다.
시침이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1시면 슬슬 마무리할 시간인데.
백한영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최동협을 바라봤다.
저 정도면 뭐 괜찮겠지.
“수고하셨어요. 내일 대련 날이니까 얼른 가서 쉬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괜찮아요? 방으로 데려다드릴까요?”
“전 괜찮으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최동협의 말에 백한영은 바로 훈련실을 떠났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백은하의 얼굴이나 볼 생각이었다.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본 최동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뒤질 거 같네.’
거의 일주일 동안 최동협은 백한영에게 집중 교육을 받았다.
간단한 무공구결을 외우고 나무공을 피하는 훈련을 일주일 동안 받은 최동협이었지만, 딱히 무언가 달라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달라지긴 했지만, 고작 이 정도의 변화에 달라졌다는 말을 붙여도 되나 싶은 최동협이었다.
처음엔 나무공을 피하지도 못하고 사정 없이 두들겨 맞다가, 이제 좀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신유나를 이길 수 있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훈련에서까지 나무공을 전부 피해내지 못하고 땅에 널브러졌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망이 없었다.
“모르겠다 이제.”
최동협은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배정된 숙소로 이동했다.
기절할 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뜨자,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머리를 베개에 붙이자마자 수면에 빠져버린 것이다.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최동협은 멍한 상태로 몸을 씻은 후 대련실로 향했다.
대련실은 각종 마법이 설치돼 있어 대련자를 완벽히 보호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으로, 대련실에서라면 부상의 걱정 없이 마음껏 싸울 수 있었다.
대련실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 있던 백한영이 최동협을 반겼다.
“왔어요? 몸 상태는 좀 어때요.”
“죽을 거 같아요.”
“딱 좋네요.”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련실을 관리하는 마법사에게 가 다양한 조정을 받은 최동협은 이내 대련실 위로 올라갔다.
관중석엔 사람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손배성이 은근슬쩍 여기저기에 홍보를 하고 다닌 덕이었다.
“얼굴이 많이 죽어있네.”
최동협의 맞은편에 누군가 올라오며 말을 걸었다.
신유나였다.
지난 일주일간의 고행길을 머릿속에 떠올린 최동협은 살짝 몸서리를 친 후 입을 열었다.
“그러는 너는 얼굴이 환하네. 별로 긴장 안 했나 봐?”
“너랑 이러는 것도 한두 번이야 긴장을 하지.”
“말에 뼈가 있네. 이번에도 네가 이길 거라는 뜻이야?”
“여태까지 그랬잖아.”
여태까지 그랬다고 또 그러라는 법은 없지, 라고 대꾸해야 될 타이밍에 최동협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자신이 있진 않았다.
뭔가 눈에 띄게 달라졌으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자신 있게 말을 못 하는 것이다.
“퍽이나 그러겠다.”
적당히 대꾸한 최동협은 미리 준비한 건틀릿을 착용하며 교관을 바라봤다.
심판 겸 중재자 역할을 맞은 교관, 유지아가 천천히 말했다.
“마법 때문에 부상의 위험은 없지만, 되도록 살상력이 높은 기술은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우웅―!
대련실에 마나가 주입되며 마법이 발동됐다.
보호 마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한 걸 확인하자마자 유지아가 입을 열었다.
“시작해 주세요.”
유지아의 말에 신유나와 최동협이 동시에 전투태세를 갖췄다.
검을 뽑아 드는 신유나와 두 손을 앞으로 내미는 최동협.
아직까지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최동협은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신유나를 이길 수 있을까.
최동협은 자신이 아는 신유나의 강점을 떠올렸다.
우선 신유나는 마나량이 괴물 같았다.
C급임에도 검맥에 입단을 확정 지은 것만 봐도 신유나가 얼마나 괴물 같은 마나량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냐? 마나를 제어하는 능력은 더욱 뛰어났다.
신유나의 섬세 하고 강력한 마나 제어 능력은 마나를 빛으로 바꾸는 그녀의 각성 능력, 천상광휘를 발동시킬 때 더욱 두드러졌다.
빛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신유나를 보면 왜 그녀가 특대 유망주인지 잘 알 수 있으리라.
때문에 신유나를 이기기 위해선 괴물 같은 양의 마나를 바탕으로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쾌속의 공격을 전부 피해낼 필요가 있었는데.
그 공격들을 전부 피해낸 후 신유나에게 접근한다고 승산이 있냐?
검에 미친 놈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검맥에 입단 예정인 신유나가 근접전을 못 할리가 있나.
딱히 접근에 성공한다고 유리한 것도 아닌 게 신유나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 아.’
신유나의 몸 주위에 빛으로 만들어진 검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최동협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슉. 빛의 검이 최동협에게 쏘아졌다.
정확히 최동협의 다리를 노리고 쏘아지는 빛의 검.
최동협은 몸을 살짝 틀어 빛의 검을 피했다.
여기까지는 쉬웠다.
이다음이 문제였지.
촤르르르륵.
수십 개의 빛의 검이 허공에 늘어서더니, 최동협에게 쏘아졌다.
예상했던 전개에 살짝 멈칫했던 최동협은, 될 대로 되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최동협의 서커스가 시작됐다.
쏟아지는 빛의 검 사이를 최동협이 마음껏 누볐다.
‘어라.’
최동협은 이상함을 느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일주일 전만 해도 막막했던 신유나의 공격이, 어째서인지 너무나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고,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빛의 검을 쳐내고, 피하고, 막아내며 앞으로 전진한 최동협은.
이윽고 신유나를 목전에 둘 수 있었다.
당황한 신유나가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광휘가 서린 검이 최동협의 팔을 노리고 날카롭게 쏘아졌지만.
스윽.
살짝 징그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며 신유나의 공격을 간단히 피해버린 최동협은 자신의 각성 능력을 사용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최동협의 주먹에 야수의 혼이 깃들었다.
콰아앙!
최동협의 건틀릿이 신유나의 몸에 꽂히며 강렬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신유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던 신유나가 바닥에 한 번 튕기고 떨어졌다.
그 순간 유지아가 외쳤다.
“거기까지!”
승패가 결정 난 것이다.
멍한 표정을 한 최동협은 멀쩡한 자신의 몸이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는 신유나를 바라보다가, 백한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신유나를 쓰러트린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백한영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타입에겐 본능을 단련하는 무공이 딱 맞지.’
몸을 쓰는 감각을 타고났지만, 너무 뚜렷한 이성 때문에 브레이크가 자꾸 걸리는 최동협 같은 부류는 야성을 깨우는 종류의 무공 하나만 던져주면 대부분이 해결됐다.
‘최동협 쟤 괜찮네.’
여기서 백한영이 말하는 건 최동협의 재능 얘기가 아니었다.
사실 최동협의 재능 자체는 그다지 특출나지 않았다.
백한영의 마음에 든 건 재능이 아니라, 지난 일주일간의 지옥 훈련을 군말 없이 따라온 독기였다.
저 정도면 키워볼 만하네.
길드에 영입해도 괜찮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최동협에 대한 판단을 백한영이 끝냈을 때였다.
“인정 못 해!”
손배성이 대련장으로 뛰어 올라오며 소리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했냐뇨. 당연히 열심히 가르쳤죠.”
“시치미 떼지마! 고작, 고작 일주일 사이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 리가!”
눈이 뒤집힌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손배성은 문득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 그걸 썼구나.”
“뭐를 말하는 거죠.”
“시치미 떼지마! 각성 강화제를 쓴 거 아니야!”
각성 강화제?
그거라면 백한영도 익히 아는 약물이었다.
각성 강화제에 취해 탑급 배우인 한유림을 공격했던 범죄자를 잡은 게 백한영이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백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각성 강화제면 불법 약물이잖아요. 그런 걸 제가 쓸 리가 있나요.”
“거짓말하지 마!”
손배성이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말했다.
“아니라면 증명해 봐. 네가 나보다 뛰어나다는걸.”
“증명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이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한영이 유지아를 쳐다봤다.
대련실 시스템을 작동시켜달라는 의미였다.
그걸 보며 손배성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약간 억지를 부리긴 했지만, 대련이 성립만 됐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서 이긴 후 네 만행을 똑똑히 까발려 주마.’
백머시기를 철저하게 때려눕혀 뭉개진 자존심을 회복한 후,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는 증거까지 확보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며 손배성은 백한영을 노려봤다.
대련실에 재차 마나가 주입됐다.
보호 시스템이 발동됐다는 소리였다.
유지아가 백한영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 하시게요?”
“저쪽에서 원하는데 어쩌겠어요.”
“하아. 알겠어요. 그럼, 시작하세요.”
또 유지아와 노닥거리는 백한영을 보며 이를 악물었던 손배성이 시작하라는 말에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백한영! 감히 주제를 모르고 설치고 다니다니. 네게 검맥의 이름이 얼마나 무거운 건지 똑똑히 느끼게―.”
털썩.
말을 하다 말고 손배성이 땅에 쓰러졌다.
교관급이 서로 붙는다는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달아올랐던 대련실 내부에 적막이 감돌았다.
손배성을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해치운 백한영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동협 씨랑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어디 방 하나 없나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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