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1)
엘리트 던전 공략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심지어 사상자도 거의 없이.
S급 던전, 그것도 공략 후 추가된 여러 정보로 인해 SS급으로 상향 조정된 던전을 공략한 거치고는 이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대한민국은 현재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아침, 낮, 저녁, 심야 뉴스가 이번 엘리트 던전 공략에 대한 얘기로 도배됐을 정도니 말 다 했다.
각성자의 힘이 곧 국력인 세상에서 SS급 던전을 세계 최초로 클리어한 건 명백한 희소식이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현상이었지만.
세상의 분위기와 반대로 관계자들은 지금 편두통으로 고생 중이었다.
“정말 누가 해결한 건지 몰라?”
“저번 S급 게이트 사태랑 똑같네요. 신비인이 와서 쥐도 새도 모르게 해결 후 실종.”
“그래서 그 신비인이 대체 누구냐고!”
이유는 간단했는데, 대중에게 이번 던전 공략에 대해 자세히 밝혀야 되는 타이밍에 정작 던전 공략의 MVP가 누군지 감도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천진혁 님이 클리어한 거로 퉁치면 안 됩니까?”
“그런 짓을 천진혁 님이 허락할 리가.”
“그렇다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해결해 줬다고 발표할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신비인도 신원을 별로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거 같은데, 숨겨주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요?”
“···대충 모두의 힘으로 클리어했다고 뭉개. 특정 인물이 해결했다는 식으로 거짓말 했다가는 나중에 감당 안 된다.”
대중에게 발표한 정보를 완벽히 정한 관계자들은 이번엔 던전 클리어 보상의 배분을 살펴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 무신련은 대체 뭐길래 보상 순위 1등이에요?”
“나도 몰라. 이번에 신설된 길드라고 하더라고.”
“A급 각성자 백한영, B급 각성자 김태식···. 아 김태식은 곧 A로 승급 예정이네요. 아무튼 승급까지 고려해도 A급 각성자 두 명이 끝인데, 어떻게 보상 순위 1등이죠?”
“검신 님과 권왕 님이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하더라.”
“왜요?”
“나도 몰라. 검신 님이랑 권왕 님이 말하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 거지.”
상사의 말에 각성자 관계자는 자료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미스테리하네.”
*
길드 사무실, 그곳에서 김태식과 마주 앉은 백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왜 보상 순위 1등이냐?”
“그러게요.”
백한영은 길드 계좌에 입금된 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상 리치 로드에게서 나온 돈이 전부 입금된 상황에서 백한영이 말했다.
“너 뭐 했냐?”
“하긴 했죠. 형 소환했잖아요.”
“그거 말고 인마. 내가 거기에 간 건 다른 사람은 모르잖아.”
“···모르겠는데요. 아. 윤한 님이 형한테 관심 가지는 거 같긴 했어요.”
“관심을 좀 가졌다고 이 돈을 다 준다고?”
백한영이 재차 길드 계좌의 잔고를 살펴봤다.
786억.
금전감각이 망가진 백한영도 살짝 놀랄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 길드 계좌에 찍혀 있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안 되긴 하죠.”
“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지. 주니까 받긴 하는데. 거참 이해가 안 되네.”
입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면서 부드럽게 통장을 쓰다듬는 백한영.
백한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라갔다.
‘이제 돈 좀 펑펑 써도 되겠다.’
백한영, 자본주의 졸업 완료.
“이런 경우 돈은 어떻게 배분하냐? 업계 표준으로 말해봐.”
“사전에 상세하게 조율한 게 아니면, 지분을 따져보고 그에 맞춰서 배분하죠? 이번 경우는 형이 그냥 다 먹는 쪽이 보통이에요”
“그래?”
그 말에 잠시 고민한 백한영은 김태식의 계좌에 10억을 보냈다.
던전에서 구르느라 고생했으니 적당히 챙겨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형님!”
“됐어 인마. 이거나 받아.”
과장되게 허리를 숙이는 김태식에게 백한영이 무언가를 툭 던졌다.
허겁지겁 허리를 펴며 백한영이 던진 물건을 받아내는 김태식.
김태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뭐예요. 책?”
“무공서야. 이해 안 되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무공서라고요?”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이 책을 펼쳤다가, 덮었다.
책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형. 저 한자 잘 모르는데요.”
“쯧.”
작게 혀를 찬 백한영이 이번엔 다른 책을 김태식에게 던졌다.
재차 책을 받아 펼쳐본 후 김태식이 말했다.
“번역본이 있으면서 왜 처음부터 이걸 안 준 거예요?”
“원래 무공서는 한자로 적어야 제맛이야.”
“아하.”
백한영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김태식이 무공서를 살펴봤다.
“검법이네요?”
“네가 검을 쓰니까 당연히 검법이지.”
“근데 이거.”
김태식이 침을 삼켰다.
무공에 대해 김태식이 많은 걸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그도 백한영이 건네준 무공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해온 거지?’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백한영에게 감탄한 김태식은 이내 지금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이 검법 이름이 뭐예요?”
“이름?”
“네. 무슨 검법인지는 알고 익혀야 되잖아요.”
“이름이라. 어···태식검법?”
백한영의 장난 같은 말에 김태식이 허허 웃고는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요.”
“장난 아닌데?”
“아니라고요?”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서 생각 안 하고 있다가 네가 물어봐서 방금 정했어. 네가 쓰라고 만든 검법이니까 태식검법. 딱이지 않아?”
그 말에 김태식이 입을 벌리고 무공서를 내려다봤다.
이게, 형이 만든 거라고?
단순히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우물인 줄 알았는데, 우물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 검강(劍罡)을 발현했다길래 만들어 온 거니까 제대로 익혀. 이상한 짓 하지 말고.”
“형.”
김태식이 감동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진짜 무신련에 들어오길 잘한 거 같았다.
김태식의 리액션에 백한영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사람들이 태식검법의 유래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때.”
“형.”
“어. 왜.”
“다 좋은데 검법 이름은 조금 더 고민해 보죠?”
“···그래.”
검법의 이름이 태식검법이 되는 걸 막아낸 김태식은 다시 무공서를 펼쳤다.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빠르게 무공서를 읽고 백한영에게 궁금한 걸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 김태식에게 백한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태식아.”
“네 형.”
“검은 어디서 구하는 게 제일 좋냐?”
“검이요?”
뜬금없는 말에 김태식은 무공서를 덮고 백한영을 바라봤다.
김태식이 말했다.
“형 검 필요 없지 않아요? 며칠 전에 보니까 그냥 막 쳐다만 봐도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던데.”
“필요 없긴 한데, 그거랑 가지고 다니는 거랑은 별개지.”
“그러면 생산계 길드에 가는 게 제일 빠르고 좋죠? 생산계 각성자가 만드는 물건이 진짜 기가 막히거든요.”
“무슨 길드가 있는데?”
김태식이 자신의 손가락을 꼽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금혼이 업계 탑이긴 한데, 요즘 살짝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비추고요. 금혼을 제외하면 성휘랑 블랙해머 정도? 아. 청풍도 요즘 한창 뜨고 있어서 추천이에요.”
“청풍?”
들어본 이름에 백한영이 반응했다.
청풍이면 은하가 있는 길드인데.
그러고 보니 언제 한 번 청풍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기로 했지.
이참에 겸사겸사 확인이나 해볼까.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백한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검법은 외우기만 해놔. 멋대로 익히진 말고.”
“이걸 다 외우라고요?”
“그럼 안 외울 생각이었냐. 쇼핑하고 올 테니까 그 안에 다 외워놔.”
“···알겠어요.”
*
청풍은 요새 가장 떠오르는 생산계 길드였다.
청풍이 주목받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 뛰어난 각성자가 많이 가입돼 있는 게 가장 컸다.
“저번달 매출 어때?”
“상승세입니다. 아무래도 금혼이 휘청거리는 게 저희한테 호재로.”
“야야. 그 얘기는 하지 마. 입방정 떨다가 괜히 엮일라. 우리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이득만 야금야금 챙기는 거야. 알겠지?”
경영부 팀장의 입을 단속한 청풍 길드의 부길드장, 방상철이 손수건으로 땀투성이의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그···백은하는 요즘 어때?”
“시간에 여유가 생겼는지 길드에 들리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실적도 어느 정도 쌓여서 B급으로 승급도 가능합니다”
“그러게 진작 각성자 일도 하라니까.”
백은하는 C급, 실력으로 쳐도 B급 정도에 불과한 각성자였지만, 청풍 길드의 집중 관리 대상 중 하나였다.
유명 연예인인 백은하가 길드에 가져다주는 이득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백은하 B급 승급 신청 넣고 네가 붙어서 케어 좀 해줘. 잘만 키우면 A급도 가능한 각성자야.”
“알겠습니다.”
“그럼 이 다음은 길드장님의 요구사항인데―.”
“저. 부길드장님?”
갑자기 회의실에 들어온 길드원 탓에 말이 끊긴 방상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무슨 일이길래 그래.”
“그···. 무기 제작 의뢰가 들어와서요.”
“무기 제작? 그런 거까지 내가 해결해 줘야 돼?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해야 될 거 아니야.”
“이게 제 선에서 처리하기엔 금액이 상당합니다.”
“얼마길래 그래.”
5억 미만이면 바로 한 소리 해 줄테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방상철에게 길드원이 말했다.
“최소 일···억이고, 그 위로 얼마를 써도 상관이 없다고.”
“뭐 얼마? 일억?”
이게 고작 일억짜리 안건을 가지고 호들갑을,
“아뇨. 일억이 아니라 일백억입니다.”
“······얼마라고?”
“일백억입니다.”
방상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님 어디 계시지? 얼마나 기다리셨어?”
“방금 응접실로 모셨습니다.”
“당장 안내해.”
방상철은 길드원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빠르게 달려갔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바르게 고친 방상철은 헛기침을 해 자신의 목소리 상태를 점검한 후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청풍 길드의 부길드장, 방상철이라고 합니다.”
응접실에 있는 젊은 남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방상철은 곧장 상대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아 네. 부길드장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원래라면 길드장님이 나오셔야 했는데, 지금 길드에 안 계셔서.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할 거까지야.”
방상철의 명함을 품에 집어넣은 후 남자, 백한영이 말했다.
“아까 직원분과 얘기를 나눠보니까 돈 생각 안 하고 만들면 백억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견적 좀 짜주세요. 얼마가 나와도 상관없으니까.”
백한영의 말에 방상철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돈의, 돈의 신이 강림했다.
이건 기회였다. 이 기회를 잘 살리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검을 제작한 길드 같은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바닥에서 유명세는 곧 돈이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의뢰를 놓쳐선 안 됐다.
“언제부터 제작에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최대한 빨리요. 아. 별개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뭐든 말씀하시죠.”
어떤 물음에든 대답해 줄 각오를 다지며 방상철이 말했다.
방상철의 마음가짐이 전해진 걸까. 백한영도 편안한 마음으로 궁금한 걸 물었다.
“청풍 길드의 복지가 어떻게 되죠?”
백한영의 말에 방상철이 순간 멈칫했다.
너무 뜬금없는 소리가 백한영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저희 길드 복지를 대체 왜 궁금해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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