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귤러(4)
“상어랑 물고기가 같이 있는데 안 잡아먹는 게 신기하지 않아?”
“너 감상하는 포인트가 살짝 이상한 거 같다?”
백한영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은하는 이곳저곳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런 백은하의 뒤를 따르며 백한영은 고개를 들어 아쿠아리움 천장을 바라봤다.
머리 위에 펼쳐진 유리로 만든 바다에 물고기 무리가 지나갔다.
푸른색으로 반사되는 빛 덕에 바닷속으로 들어온 거 같은 느낌을 주는 아쿠아리움이었지만, 정작 백한영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물이 안 새는 건 신기하네’
누가 들었으면 감수성이 메말랐다고 한 소리 할 만한 생각을 하며 백한영은 아쿠아리움 내부를 돌아다녔다.
반응을 봐서 알겠지만 아쿠아리움은 딱히 백한영이 오고 싶었던 곳은 아니었다.
이왕 놀러 갈 거면 여기도 가고 싶다고 백은하가 제안했기에 따라온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백한영의 감수성으로는 아쿠아리움을 온전히 즐기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좀 있다가 갈 놀이공원도 재밌어 보여서 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동생이 재밌게 즐기면 그만이었기에, 백한영은 지금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한참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던 백은하가 이내 백한영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오빠. 재미없어?”
“평범해. 그나저나 인기 연예인이 어쩌니 하더니, 아무도 안 알아보네. 왜 호들갑을 떨었어.”
“···마스크랑 선글라스로 꽁꽁 싸매고 있으니까 그렇잖아. 그리고 말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오빠도 모자 같은 거 쓰라니까.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누가 나를 알아본다고 그래.”
백은하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는 백한영.
드라마 단역으로 잠깐 출연한 자신을 사람들이 알아볼 거라 여기지 않는 것이다.
<여름에 피는 꽃>의 시청률과 한백호라는 캐릭터가 준 파급력을 알았다면 생각이 좀 바뀌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백한영은 방금 말한 사항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저기요?”
백한영과 백은하에게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백한영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건 사람을 바라봤다. 젊은 여자였다.
“혹시 드라마에 나오시지 않았나요.”
여자의 말에 백한영은 저렇게 꽁꽁 싸맸는데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네. 은하가 유명 연예인이긴 하구나,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뒤이어 나온 여자의 말을 듣고 눈을 끔뻑였다.
“그···한백호 역할로요.”
“예? 저요?”
백한영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자는 백은하를 알아본 게 아니라, 안일한 인간 하나를 혼내주러 온 자객이었다.
“···아닌데요.”
“네? 아니에요?”
“오빠. 그러니까 모자라도 쓰랬지. 네 맞아요. 한백호 역할로 출연했었어요.”
대중을 상대로 차갑게 대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 백은하가 바로 끼어들며 상황을 수습했다.
“허업!”
여자가 백은하를 알아보고 입을 막았다.
한백호, 그러니까 백한영을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 것인데, 거기에 백은하까지 같이 있으니 놀란 것이다.
“뭐야?”
“연예인인가?”
주변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백한영과 백은하를 바라봤다.
텄네 텄어.
주변의 반응을 확인한 백한영은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백은하와 함께 빠르게 아쿠아리움을 벗어났다.
인파가 없는 곳에 도착한 후 백은하가 말했다.
“내가 알아본다고 했지.”
“진짜네. 왜 알아보는 거지.”
“···오빠 혹시 <여름에 피는 꽃> 시청률 몰라?”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어떻게 알아.”
“그럼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는 조심 좀 해. 아 배고프다.”
백은하가 배를 훑으며 말했다.
슬슬 점심을 먹을 시간이긴 했다.
백한영이 말했다.
“어디 가고 싶은 가게 없어?”
“오빠가 그렇게 말할 거 같아서 미리 예약해 놨어. 얼른 가자.”
*
김태식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으며 진정시켰다.
김태식은 각성자. 당연히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를 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무리 윤한 님이 있다고 해도 이 인원만으로 S급 던전 게이트를 공략했을 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나?’
8명 정도의 인원을 훑어본 김태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김태식은 자신을 믿었다.
언젠가 자신이 A급을 넘어 S급이 될 거라고, 그럴만한 재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런 만큼 김태식은 현재 자신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B급. 그것도 아직 A급이 되기엔 갈 길이 먼, B급 중에서도 밑바닥의 실력.
그게 바로 김태식이 생각한 자신의 위치였다.
고작 그 정도의 인간이 최소 S급, 최대는 얼마인지 추정도 안 되는 특수 게이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00명을 넘는 인원과 함께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에 김태식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이곳에 오기 전 김태식은 백한영이 정말로 엘리트 던전 공략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냉정히 판단했었다.
자신과 친한, 최소 S급의 각성자인 백한영이 같이 공략에 참가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B급의 실력으로 엘리트 던전 게이트 공략에 참가하는 건 객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사실 김태식은 엘리트 던전 공략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백한영이 괜찮으니 그냥 참가하라고 계속 설득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집에서 최근 백은하가 출연했다는 드라마나 보고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됐다.
김태식은 제주도로 떠나기 전, 갑자기 김태식의 어깨를 짚으며 ‘자 이제 됐다.’라고 말하던 백한영을 떠올렸다.
‘그래서 뭐가 괜찮은 건데요 형.’
일단 지금까지는 하나도 안 괜찮았다.
“계속 여기에 있어 봤자 답이 나올 거 같지는 않네요.”
강제 이동 후 5분 만에 윤한이 빠르게 판단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무언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합류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이동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윤한의 말에 각성자들이 모두 찬성했다.
본인들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이런 긴급 상황에서 S급 각성자의 판단을 거슬렀다간 안 좋은 꼴을 당할 수 있었기에 순순히 말을 들은 것이다.
윤한, 김태식과 함께 강제 이동된 각성자는 그 둘을 제외하고 총 6명이 있었는데, 지원직이 2명, 근접 전투직이 1명, 원거리 전투직이 3명으로 나름 밸런스는 잘 맞았다.
‘근데 이러면.’
김태식은 근접 전투직이 윤한과 자신을 포함해 총 셋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자신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해진 탓이었다.
윤한이 대부분의 부담을 지긴 하겠지만, 여기는 추정 등급 S인 던전 게이트.
윤한이 흘린 일부의 몬스터를 잠시 묶어두는 것도 김태식에겐 꽤나 부담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원래 김태식은 이번 공략에서 최대한 각성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백한영이 김태식을 던전에 보낸 거기도 했고, 그래서 검도 기가 막힌 걸로 하나 마련한 상태였건만.
아쉽게도 지금은 한가롭게 훈련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적어도 김태식은 그 정도로 정신이 나간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작게 심호흡을 한 김태식은 윤한의 바로 뒤에 섰다.
윤한을 따라 조심히 이동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넓은 방이 나타났다.
마치 궁전의 회랑을 연상시키는 방 사이드엔 검은색 갑옷이 수십 개가 배치돼 있었다.
윤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색 갑옷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릉.
검은색 갑옷이 검을 뽑아 들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데스나이트인가. 작게 중얼거린 윤한이 마나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최대한 자기 보호에만 신경 써 주세요.”
윤한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두 주먹에 마나를 모은 윤한이, 마나의 형질을 변화시켰다.
마나에 파괴의 정수가 깃들었다.
마나, 강기(罡氣)를 두 주먹에 모은 윤한은 그 상태에서 강기의 중심에 강력한 인력을 발생시켰다.
윤한의 의지에 반응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압축되는 강기.
강기를 적당히 압축시켰다 싶었을 때쯤, 윤한이 두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압축된 강기(罡氣), 강환(劍丸)이 데스나이트 무리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데스나이트의 3분의 1을 쓸어버린 윤한이 주먹에 권기를 씌운 채 패잔병 무리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적을 얼마나 만날지 모르니 최대한 마나와 체력을 비축하는 방향으로 전투를 치르려는 것이다.
‘몇 마리 이쪽으로 온다.’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데스나이트 두 마리가 윤한을 피해 김태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김태식이 능력을 사용했다.
허공에 생겨난 붉은 검을 잡은 김태식에게 데스나이트가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콰앙!
아군의 각성 능력인 반투명한 방패에 막히는 대검.
땅을 발로 때린 김태식이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뒤로 달려 나갔다.
김태식의 몸에 바람이 깃들었다. 지원계 각성자의 능력이었다.
늘어지는 시야 속에서 김태식은 마나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데스나이트가 몸을 돌리며 김태식에게 대검을 휘둘렀지만.
그것보다 김태식이 아주 살짝 빨랐다.
마검, 적련의 검날에 불꽃이 모였다.
오른발을 내딛으며, 김태식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검날에 모인 불꽃이 해방됐다. 김태식이 이를 악물었다. 한계까지 마나를 모아서 그런가, 제어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마치 4번 타자가 스윙을 하듯 크게 검을 휘두른 김태식의 검에서 불꽃이 쏘아졌다.
화르륵!
코앞에서 쏘아진 거센 불길을 뒤집어쓴 데스나이트가 중심을 살짝 잃은 그 순간.
“염동 포탄.”
염동력을 뭉쳐 만든 포탄이 데스나이트의 몸통에 직격했다.
콰앙!
A급 염동력자의 공격을 무방비로 맞고 데스나이트가 그대로 쓰러졌다.
동시에 옆에서 따로 전투를 치르던 아군 각성자 쪽에서도 승전보가 들려왔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 김태식이 고개를 들어 전장을 바라봤다.
윤한의 손에 하나 둘 씩 고철 덩어리가 되어 가는 데스나이트.
승기가 기울었다는 걸 확인한 김태식은 이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아니야.’
김태식이 특별히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정확히는 백한영을 만나기 전과 똑같이 했을 뿐인데.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상자는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럼 조금 쉬고 바로 출발하죠. 나오는 몬스터의 수준을 보니 최대한 다른 팀과 합류를 해야될 거 같네요.”
윤한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김태식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았다.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은 의구심을 애써 무시한 채 말이다.
*
“자유이용권 성인 2명 부탁드립니다.”
“자유이용권 성인 2명 확인했습니다. 포인트 카트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직원에게 카드를 건넨 백한영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사람이 가득한 놀이공원을 시야에 담았다.
백한영, 놀이공원 도착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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