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귤러(3)
엘리트 던전 공략의 날이 밝았다.
제주도에 설치된 엘리트 던전 공략 임시 본부.
거기에 수많은 각성자가 모여 긴장된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임시 본부에 모인 각성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블루션 길드의 수장이자 S급 각성자인 권왕 윤한.
가입한 길드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유일한 마법계 S급 각성자인 홍염 이초아.
검맥의 수장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인 검신 천진혁까지.
사실상 대한민국에 있는 S급 전력은 다 모였다고 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전투계 각성자 길드들까지 다수 참가했으니, 게이트 사태가 발생한 이후로 처음 모이는 라인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맞나.’
그리고 그 화려한 라인업 속에서 김태식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태식은 바로 전날에 백한영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형. 저 B급 승급했어요. 형은 안 믿었겠지만! 승급했다 이겁니다!”
“그래. 그놈의 멍청해 보이는 칼질만 덜 했어도 진심으로 축하해 줬을 텐데, 네 꼴을 보고 있으니 그게 너무 힘드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요! 얼른 엘리트 던전 공략조에 참가나 하러 가요. 이러다 늦겠어요.”
“어.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릴게.”
이때까지만 해도 김태식은 백한영이 이미 엘리트 던전 공략 참가 신청을 마치고 온 줄 알았다.
“벌써 참가 신청하고 왔어요? 저 B급으로 승급하는 거 본 후에야 할 줄 알았는데, 빠르네요.”
“무슨 소리야. 안 했는데.”
“안 했다고요? 그럼 왜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한 거예요. 곧 마감이라 빨리 가야 해요.”
“그야, 참가할 생각이 없으니까?”
김태식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자라났다.
“참가 안 한다고요?”
“어.”
“진짜로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곧 마감이라며. 얼른 갔다 오기나 해.”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잠깐만요. 그러면 저 혼자 던전 공략에 참가해요?”
“그렇겠지?”
“저번에 이번 기회를 잘 살려서 훈련을 시키니 뭐니 해놓고서, 절 버리겠다고요?”
“언제 버린다고 했어 내가.”
“이게 버리는 거잖아요.”
김태식이 항의했지만, 백한영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어지간하면 같이 가주려고 했는데, 어쩌겠냐. 선약이 잡힌걸.”
“무슨 선약이요.”
“그날 동생이랑 어디 좀 가기로 했거든. 그러니까 너 혼자 갔다 와라.”
단호했던 백한영의 말을 되새기던 김태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혼자 보낼 줄은 몰랐는데.’
김태식은 고개를 들어 임시 본부 내부를 살펴봤다.
‘아는 사람···은 없네.’
붙임성 있는 성격에 비해 김태식은 친한 사람이 적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역시 그가 수련을 좋아하는 하드워커인 게 가장 컸다.
인맥에 신경을 쓸 정도로 개인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태식의 등급의 A만 됐어도 무슨 행동을 하든 인맥이 만들어졌겠지만, 바로 어제까지 C급이었던 김태식에게 그런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날 리 없었다.
협회에서 아무리 주목해도 유망주는 유망주. C급의 각성자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내가 언제는 누구랑 같이 게이트 공략을 했다고.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겠지.’
익숙한 상황에 김태식이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김태식에게 말을 걸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뜬 김태식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각성자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윤한이잖아. 갑자기 나를 왜 찾아왔지?’
자신이 뭔가 무언가 실수라도 했나 싶어 김태식이 속으로 안절부절하고 있자, 윤한이 말했다.
“김태식 씨 맞죠?”
“네? 아. 네. 맞아요.”
“윤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윤한이 내민 손을 어색하게 잡은 김태식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S급 각성자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일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본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저기, 무슨 일이시죠?”
“별일은 없고, 그냥 안면이나 틀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S급 각성자가 이제 막 B급에 오른 각성자랑 왜 안면을 틀고 싶어 하는 거냐고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김태식은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담은 후 입을 열었다.
“저야 영광이죠. 안 그래도 평소에 권왕님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그···. 다 좋은데 그렇게 부르는 건 자제해 주세요.”
“어떤 걸 말하는 거죠. 권왕이요?”
“네. 그 호칭은 들을 때마다 좀 그래서요.”
소름이 돋는다는 듯 윤한이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다.
김태식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도 누가 권왕이라고 부르며 말을 걸면 살짝 소름이 돋을 거 같긴 했다.
찡그렸던 표정을 핀 윤한이 천천히 이어 말했다.
“무신련 소속이시죠?”
“네. 무신련의 김태식이라고 합니다.”
“백한영 씨는 공략에 참가 안 하신 거 같던데. 이유가 뭔가요?”
“어···.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
차마 여동생과 놀러 가느라 공략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못하는 김태식이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말을 거나 했더니, 형 때문이었구나.’
김태식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방금의 대화만으로도 윤한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백한영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형은 그럴 만하지.’
백한영의 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쉽게 납득하는 김태식.
윤한이 말했다.
“김태식 씨도 협회에서 주목하는 신성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이번 공략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립서비스라는 건 알았지만, S급 각성자에게 저런 소리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최대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떠나는 윤한을 보며 김태식은 생각했다.
역시 백한영이 내민 동아줄을 붙잡기 잘했다고 말이다.
“모두 모이셨네요.”
어느새 각성자들의 가장 앞으로 간 윤한이 사람들을 훑어본 후에 말했다.
“출발합시다.”
*
제주도 정중앙에 생성된 엘리트 던전 게이트는 거의 5층 건물만 한 크기였는데, 마치 고대 유적지의 문을 뚝 떼 온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엘리트 던전 게이트의 입구. 거기에 모인 각성자들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장비를 점검했다.
이제 진짜로 던전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들어갑시다.”
윤한의 말을 신호로 각성자들이 하나 둘 씩 엘리트 던전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열의 중간쯤에 있던 김태식도 사람들을 따라 엘리트 던전 게이트에 입장했다.
게이트의 경계에 김태식이 발을 들이민 직후, 세상이 빙글 돌았다.
몇 번의 던전 게이트 공략을 통해 이미 겪어본 일이었기에 김태식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봤다.
게이트 입구 부근엔 커다란 공동이 있었는데, 1차 조사에서 밝혀진 대로 몬스터는 없었다.
모든 각성자가 게이트에 진입을 확인한 윤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전에 말한 대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윤한의 말에 각성자들이 총 3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엘리트 던전 게이트의 내부는 상당히 넓었지만, 그런 내부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각성자가 공략에 참가했기에 임시로 세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그룹을 나눈 기준은 간단했다.
이초아, 윤한, 천진혁 이 세 명의 S급 각성자를 기준으로 다양한 각성자들을 효율 좋게 분배한 것인데.
김태식은 저 중 윤한의 그룹에 들어간 채로 던전을 공략하기로 되어 있었다.
“출발할게요.”
그렇게 말한 윤한이 대열의 가장 앞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윤한이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정지.”
윤한의 신호에 모두가 자리에 멈춰 섰다.
가볍게 마나를 끌어올린 윤한이 땅을 발로 찍었다. 그러자.
그르륵.
땅속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B급 몬스터, 나이트 구울이였다.
B급 몬스터가 하나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동시에 등장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그걸 상대해야 될 각성자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원거리 공격 부탁드립니다.”
윤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열의 뒤에서 원거리 각성 능력이 쏟아졌다.
콰아아앙!
마법과 각종 이능력의 폭격에 순식간에 쓸려버리는 수십 마리의 나이트 구울들.
이게 바로 각성자들의 표정이 평온한 이유였다.
예상 되로 무난히 진행되는 던전 공략을 보며 김태식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아직까지는 별거 없긴 하네.’
사실 이게 당연했다.
여기에 있는 S급 각성자가 몇 명이고 A급 각성자가 몇 명인데.
B급 각성자인 김태식이 들러리로 느껴질 정도의 라인업이 고작 B급 몬스터 수십 명에 고전할 리 없는 것이다.
그걸 확인한 김태식이 긴장을 풀었다.
백한영이 불참 선언을 해서 아주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막상 공략을 시작하니 백한영이 없어도 할만한 거 같다고 느낀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좋겠는···.’
[손님이 있군.]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김태식이 상념을 끊고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다른 각성자들도 일제히 마나를 끌어 올리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낯선 목소리가 말했다.
[손님이 아니라 불청객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우웅―!
천장, 벽, 바닥에 변화가 생겼다.
기형학적인 문양이 모습을 드러내며 불길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강력한 흑마력의 파장이 일었다.
김태식이 침을 꿀꺽 삼켰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날 재밌게 해줬으면 좋겠군.]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흑마력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며, 각성자들을 덮쳤다.
번쩍.
세상이 빙글 돌았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느낌에 눈을 감은 김태식이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뭔가. 주변이 약간 한산해진 느낌이었다.
김태식이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거대한 공동 대신 조그마한 쉼터 같은 방을 눈에 담은 김태식이 이번엔 다른 각성자를 살펴봤다.
그리고 당황했다.
‘다···어디 갔지?’
분명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던 인원이 윤한의 그룹을 뒤따르고 있었건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윤한과 김태식을 포함해 10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거 큰일 났네.”
볼을 긁으며 중얼거리는 윤한을 보며 김태식은 생각했다.
정말 큰일이 난 거 같다고 말이다.
*
아예 외딴곳에 혼자 떨어지자마자 검을 뽑아 드는 천진혁.
“잘 됐군.”
수십 명의 사람과 몬스터가 가득한 홀에 떨어져 화염을 소환하는 이초아.
“짜증 나게.”
그 밖의 각종 길드의 각성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대처 방법을 짜내고 있는 그 시간.
“오빠 언제 준비하게. 오늘 나가자며.”
“너 안 간다고 하더니 신난 거 같다?”
“내가 언제 안 간다고 했어. 그보다 얼른 씻고 나와. 오늘 둘러볼 곳이 많아서 일찍 나가야 해.”
“진짜 신났네?”
백한영, 나들이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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