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8화 (18/117)

이레귤러(2)

엘리트 던전 공략 결정일로부터 일주일 후.

2차 조사단이 파견됐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언데드형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다.

2.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의 등급은 A다.

위의 사실이 밝혀졌을 때 각성자들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일반 몬스터의 최소 등급이 A라니. 여태까지 그런 던전 게이트가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등장해 버리고 만 것이다.

“언데드라. 골치 아픈 놈이 걸렸네?”

오션뷰가 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윤한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이 무투파라 신성 계열 각성자가 없는데. 너희는 좀 어때?”

“검이면 충분하다.”

“없다는 뜻이구나. 이걸 어쩌지. 어디서 빌려오기라도 해야 되나···.”

언데드는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강하고, 급소라고 부를만한 곳이 적고, 심지어 종류에 따라서는 부활하는 녀석도 있었다.

때문에 언데드를 상대하는 걸 좋아하는 각성자는 적었고, 윤한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는데.

하필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 걸려버린 것이다.

물론 언데드라고 완벽하진 않았다.

언데드는 신성 계열 각성자라고 불리는 게임 속 힐러나 사제 같은 능력에 굉장히 약했기에 준비만 제대로 하면 언데드만큼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도 없었다.

신성 계열 각성자가 워낙 적어 준비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어렵긴 했지만, 아무튼 아예 무적인 몬스터는 아니라는 소리다.

“너답지 않군. 권왕. 겁이라도 먹었나?”

“누가 겁을 먹어. 네가 너무 걱정이 없는 거야.”

윤한이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이초아도 참가하긴 하지만, 걔는 후열이라 결국 너랑 내가 공략조를 이끌어야 될 텐데. 아무 준비 안 할 거야?”

“검이면 충분하다.”

“너는 그렇겠지. 근데 너네 길드원은 어쩌게. 걔들은 검만으로 안 충분할 거 같은데?”

“이번 공략엔 나 혼자만 참가할 예정이다.”

“···그런 중요한 걸 지금 말해준다고?”

윤한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곤 말했다.

“저번엔 자신의 뜻이 곧 검맥의 뜻이니 어쩌니 하더니, 결국 혼자 공략에 참가한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대체 왜?”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공략에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불필요할 일이 어딨···.”

거기까지 말하고 윤한은 깨달았다.

천진혁이 왜 불필요하다는 말을 꺼낸 건지 말이다.

“와.”

윤한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뭔가 이상하다 했어. 사람이 갑자기 바뀔 리가 없는데 말이야.”

천진혁은 검에 미친 인간이었다.

오직 검술의 경지를 올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거기에 필요한 일과 필요 없는 일로 세상을 구분하며 살아온 사람이 바로 천진혁이었는데.

그런 천진혁이 게이트 공략을 한답시고 전국을 돌아다닐 때 윤한은 살짝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만큼 세상이 흉흉하구나 생각하고 넘겼었다.

실제로 천진혁도 세상을 신경 쓰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 천진혁도 조금씩 바뀌는구나, 라며 신기해했었건만.

아니었다.

“너 순전히 깨달음을 수습하려고 돌아다니는 중이구나. 난 네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나 했다.”

천진혁이 게이트 공략을 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닌 것도, 엘리트 던전을 공략하겠다고 나선 것도.

전부 자신의 깨달음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불필요하니까다.

자신의 깨달음을 수습하는데, 다른 사람은 방해물에 불과하니까.

저런 인간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다시 겪으니 새로운 기분이 드는 윤한이었다.

물론 천진혁이 세상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서울 인근의 게이트만으로도 깨달음을 수습할 수 있음에도 굳이 전국을 돌아다닌 걸 보면 세상을 신경을 쓰고 있는 건 맞았다.

다만, 우선순위가 좀 달랐다.

세상이 주고 깨달음이 부가 아니라.

깨달음을 수습하는 게 주고, 세상이 부였다.

그랬기에 이번 던전 공략에서 방해가 된다고 검맥의 길드원을 빼버리는 판단을 내린 거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건 어디까지나 서브, 덤이었으니까.

“마음에 안 들면 나를 빼면 된다.”

“누가 공략조에서 널 빼겠냐. 진짜 이 검에 미친 새끼를 어쩌면 좋아.”

아마 천진혁의 실력이 조금만 부족했으면 검신이 아니라 검귀나 광검 같은 별호가 붙었을 것이었다.

윤한은 한숨을 쉬고 다시 엘리트 던전에 대한 자료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검에 미친 새끼라도 검맥의 길드장인지라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말하는 걸 보니 다 글렀다.

‘진작 좀 말해주지. 말하는 걸 보니 협회는 물론이고 검맥 걔네도 자신들이 공략에 참가 안 하는 걸 모르고 있을 거 같은데, 이러면 미리 짜놨던 편성이···. 아. 그래. 내 잘못이다. 그렇게 당해 놓고 너무 안일했네. 처음부터 물어봤어야 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윤한은 현재까지 엘리트 던전 공략에 참가하기로 한 길드의 목록을 살펴봤다.

음.

나쁘지 않은데?

거의 올스타 수준의 화려한 라인업을 보니, 사실 검맥이 빠져도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살짝 올라왔다.

‘검맥이 빠진 건 큰 손실이긴 한데, 워낙 쟁쟁한 녀석들이 많다보니 큰 문제는 없을 거 같네.’

이러면 그냥 편성을 살짝만 바꾸면 될 거 같았다,.

윤한은 공략에 참가한 길드의 목록을 주르륵 훑어보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백한영 걔는 참가 안 하는 거 같다?”

“흥미가 없나 보지.”

“너 몰랐어? 저번 회의 중간에 갑자기 끼어든 무신련인가 하는 그거 백한영 길드야.”

“그런 건 모른다.”

“그때 백한영네 길드원이 말한 거 생각하면 던전 공략 자체는 흥미가 있어 보였는데, 왜 참가 명단에 없지?”

윤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백한영의 등급은 A.

참가 조건을 가뿐하게 상회하는 등급인 만큼 원한다면 바로 참가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참가 명단에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혹시 상황을 보고 참가할 생각인가?”

“흥미가 없는 걸 수도 있다.”

“그러면 회의에 왜 참석했냐고. 그냥 구경하러?”

윤한은 천진혁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천진혁이 또 헛소리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번에 실력 좀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입맛을 다신 윤한이 어디론가 전화로 걸었다.

검맥이라는 커다란 전력이 빠진 지금, 이 일을 상의해야 될 곳이 너무나 많았다.

*

윤한은 헛소리 취급하고 넘겼지만, 천진혁이 한 말은 사실 정답에 가까웠다.

“이번에 기회 좀 잘 살려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형 기다려 봐요. 지금 협회랑 등급 조정에 대해서 상의 중이라니까요.”

···근데 그럴만 했다. 던전을 훈련소로 생각하는 미친놈이 천진혁 말고 또 있을 거라고 윤한이 어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이 뒷짐을 진 채로 말했다.

“진작 열심히 좀 하지. 이 형 실망이 크다.”

“형 저 진짜 열심히 했어요.”

“네가 열심히 했으면 옛적에 B급이 됐겠지.”

“형이 A급을 바로 찍어서 등급 상승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나 본데요. 원래 등급 상승이 바로바로 되는 게―.”

“어깨.”

백한영이 빠르게 팔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목검이 김태식의 어깨를 쿡 찔렀다.

“기껏 시간 내서 대련해 주는데, 집중을 못 하면 어떡하니 태식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죠. 알겠습니다. 저 이제 대답 안 하고 대련에만 집중합니다.”

마나로 몸을 강화한 김태식이 백한영에게 달려들었다.

김태식의 검이 좌에서 우로 움직였다.

가로베기.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하는 기술.

이번 대련의 목적이 최근에 연마했던 기본기를 점검하는 것이었던 만큼 김태식도 기본 기술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동작이 크다 태식아.”

백한영의 눈엔 영 아니었다.

백한영의 목검이 김태식의 검에 착 달라붙었다.

“어···. 어?”

마치 자석에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검에 당황하는 김태식.

백한영이 말했다.

“동작이 크다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때와 상황을 가려야지. 너는 모든 동작을 쓸데없이 크게 하는 경향이 있어.”

김태식은 마검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다.

강력한 화속성의 마나를 품고 있다가, 그걸 방출하는 능력을 가진 마검을 소환하는 각성자.

때문에 김태식의 검술 또한 거기에 맞춰 발전했다.

강력한 화속성의 마나를 방출하면 그에 상응하는 반동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런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김태식은 여러 가지 기교를 부렸는데, 그중 하나로 동작을 크게 해 힘을 크게 싣는 게 있었다.

물론 김태식이 매번 화속성의 마나를 방출하는 건 아니었지만, 워낙 능력을 사용하는 횟수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범한 칼질에도 동작을 크게 하는 습관이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다시 해봐.”

백한영이 김태식의 검을 자유롭게 풀어주며 말했다.

김태식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긋는 수직베기였다.

“쯧쯧.”

백한영은 혀를 차고는 한 끗 차이로 김태식의 검을 피하며 목검으로 김태식의 다리를 쿡 찔렀다.

“거리를 재는 감각도 엉망이고, 상대의 움직임도 대충 보고, 진짜 난리 났다.”

김태식의 검이 백한영에게 닿지 못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림도 없는 검을 휘둘러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방금 김태식의 검은 절정고수는 당연하고 1류의 경지만 되도 맞아주기 어려운 엉망진창의 검이었다.

단순히 동작이 커서 그런 건 아니었다.

김태식에게 동작을 크게 하는 버릇만 있었다면 백한영도 각성자들이 죄다 나사가 빠진 상태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그 정도의 버릇은 무림세계에서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태식의 문제는 그거 하나만이 아니었다.

거리를 재는 감각이 엉망인 거? 원거리에서 화속성의 마나로 다 쓸어버리면 되는데 거리를 재는 감각이 성장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대충 보는 거?

이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속성의 마나를 광범위로 방출하면 상대의 움직임이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화염의 파도에 휩쓸려 버릴 녀석에 불과한데.

수준 이상의 적을 만났다면 김태식도 벽을 느끼고 생각이 좀 바뀌었겠지만, 김태식의 현 등급은 C.

아무리 실제 실력이 B라고 해도 여태까지 상대해 온 몬스터는 C, 높아 봐야 B가 다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여태 김태식은 벽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백한영의 질타에 김태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나아진 거 맞아요?”

“나아진 게 그거야 이 녀석아.”

원래는 저거 말고도 마나를 종종 과하게 쓰는 버릇이라든가, 여러 가지 검로가 주어졌을 때 괴상한 선택지를 고르는 버릇도 있었는데, 그런 버릇들은 지금 당장은 사라진 상태였다.

몇 주간 백한영의 철저한 통제하에 기본기를 수련하다 보니 나름 감을 잡은 것이다.

재차 검을 드는 김태식에게 백한영이 입을 열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건 거리를 재는 감각이야.”

“왜요?”

“왜요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아웃이야. 거리를 못 재는 검사가 얼마나 모순적인 건지 감도 못 잡은 거니까.”

“···뭔가 팁 같은 거 없어요?”

“팁?”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우선 봐. 그게 시작이고 나머지는 다음이야.”

“우선 본다라.”

“원래 이런 건 실전을 겪어야 팍팍 느는데. 왜 C급이어서. 안 되겠다. 너 이번 던전 공략에 참가 못 하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형한테 와. 던전 공략에 참가한 수준으로 굴려줄 테니까.”

그 말에 김태식은.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B급으로 승급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

“됐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엘리트 던전 공략 하루 전.

김태식. B급으로 승급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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