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귤러(1)
“이러면 좋은 거 아닌가요?”
게이트대책본부의 회의실에서 한 A급 각성자가 입을 열었다.
“일반 게이트 관리하는 거 엄청 빡셌잖아요. 그게 전부 던전 게이트로 바뀌면 오히려 이득인 거 같은데. 저만 그렇게 생각해요?”
“너무 1차원 적인 생각이야. 던전 게이트에 무슨 변화가 생겼을 줄 알고.”
“그건 바뀌었을 때 얘기고, 안 바뀌었으면 이제 민간 피해는 걱정 안 해도 되니 좋은 거 맞잖아요. 아니에요?”
“자자. 다들 일단 진정들 하세요.”
협회 직원의 말에 두 A급 각성자가 말다툼을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한참 전부터 회의실 앞에 서 있던 게이트대책본부의 팀장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자마자 말을 꺼냈다.
“바뀐 게이트는 현재 각국과 협동하에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거에 관한 건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이 안건에 집중하도록 하죠.”
띡. 팀장은 원격 제어 장치를 조작해 자신의 뒤에 있는 스크린 화면을 바꾸었다.
“바로 어제 발견된 던전 게이트입니다.”
“허어.”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스크린을 보고 당황했다.
그건 S급 각성자, 이초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거 뭐야. 게이트야?”
“게이트 맞습니다.”
이초아의 질문에 팀장이 빠르게 대답했다.
“저게?”
이초아가 재차 스크린을 살폈다.
여태까지 몬스터를 소환하는 차원의 균열을 편의상 게이트라고 부르긴 했지만, 정말 게이트가 문 모양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허공에 난 동그란 검은 구멍 형태였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게이트가 실제로 문처럼 생긴 게 아니었는데.
지금 스크린에 있는 게이트는 조금 많이 달랐다.
마치 고대 유적지의 입구를 뚝 떼서 가지고 온 거 같은 광경.
진짜 게이트라는 이름이 딱 맞는 모습이었다.
“등급은?”
“최소 S급. 최대는···측정불가입니다.”
“측정불가?”
팀장의 말에 이초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배부된 자료를 살펴봤다.
그리고 말했다.
“안에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도 안 했네?”
“그 문제로 여러분을 부른 겁니다.”
팀장은 스크린의 화면을 바꾼 후 입을 열었다.
“편의상 엘리트 던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이게 진짜 던전이 맞는지,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 조사에 우리를 쓰고 싶다는 얘기?”
“그렇습니다.”
“흐으음.”
이초아가 머리카락을 꼬며 생각에 잠겼다.
이 조사에 참가하는 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계산해 본 것이다.
비슷한 생각인지 회의에 참석한 다른 각성자도 동시에 입을 다물고 계산서를 두들겨 봤다.
모든 일반 게이트가 던전 게이트로 바뀌어 버린 지금 가장 급한 건 갑자기 늘어난 던전 게이트를 공략하는 일이었다.
던전 게이트를 공략하면 얻을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았다.
던전 수호자도 알짜배기였고,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 또한 일반 게이트보다 많은 걸 줬다.
때문에 대부분의 길드 및 각성자들은 제주도에 생긴 거대 던전 게이트보다는 다른 던전 게이트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어 했는데.
“제주도에 나타난 저게 던전 게이트면 급하게 조사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가려운 속을 긁어주는 말에 모두가 상념에서 깨어나 앞의 팀장을 바라봤다.
확실히 제주도에 나타난 것이 던전 게이트라면 이렇게 급하게 조사를 할 이유가 없긴 했다.
공략을 안 한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시기를 좀 늦춰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는데.
“방금 말했듯 저게 진짜 던전 게이트는 맞는지, 저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참사라도 벌어지면, 그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겠죠.”
“흠흠.”
팀장의 말에 모두가 팔짱을 끼고 뜨끔한 속을 가라앉혔다.
그걸 본 게이트대책본부 본부장 김산호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회의가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각성자들이 뭉칠 생각을 안 했다.
저들이 이기적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실제로 얼마 전 S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목숨을 걸고 공략에 참가했었으니 말이다.
다만. 던전 게이트라는 단어가 주는 포근함이 저들의 의지를 앗아가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됐다.
김산호가 보기엔 지금 제주도에 나타난 거대 게이트, 엘리트 던전은 평범한 던전 게이트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김산호의 감은 엘리트 던전을 가만히 둬선 안 된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근거가 없는 게 제일 문제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게이트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적응할 수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아직도 가끔 게이트로 인해 인명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런 현실에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타성에서 벗어나 게이트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라고 말한다고 사람들이 들을까?
어림도 없었다.
김산호는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위험이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어 머리가 아픈 탓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누군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손을 든 남자에게 쏠리자 게이트대책본부 팀장이 마이크에 얼굴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소속과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무신련의 김태식이라고 합니다.”
“무신련? 김태식?”
대체 누구길래 갑자기 나선 것일까 궁금해하던 사람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머릿속에 생겨난 물음표가 해결되는 대신 추가된 탓이었다.
“무신련은 또 뭐야. 들어본 사람 있어?”
“저런 특이한 이름의 길드를 못 들어봤을 리가 없는데. 신생 길드 아니야?”
“신생 길드가 여길 왜 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회의실에 팀장은 정숙을 요청하고 김태식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엘리트 던전 공략에 참가하는데 조건이 있나 해서요.”
“정확히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는 건지.”
“B급 이상만 가능하다, A급 이상만 가능하다 뭐 이런 거요.”
그 말에 팀장이 이해했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던전의 추정 등급이 높은 만큼 조건은 최대한 빡빡하게 잡아서, B급 이상의 각성자만 공략에 참가가 가능할 예정입니다.”
“B급?”
생각보다 빡빡한 조건에 사람들이 놀랐다.
저러면 웬만한 길드는 자신들의 주전력을 가동해야 됐다.
안 그래도 내키지 않는 엘리트 던전 공략인데, 길드의 핵심 전력까지 반드시 써야 된다?
발을 뺄 명분이 하나 더 생긴 거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눈치를 봤다.
누군가 먼저 공략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바로 동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순간.
“모두 몸을 사리느라 바쁘군.”
묵직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방금 입을 연 사람에게로 향했다.
천진혁이 말했다.
“나와 검맥은 엘리트 던전 공략에 참가한다.”
“그런 걸 상의 없이 지금 결정 내려도 돼?”
윤한의 말에 천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내 의견이 곧 검맥의 의견이다.”
“어련하시겠어. 아. 저도 참가할 게요. 부산이랑 가까운 곳에 게이트가 열려서 마음에 많이 걸리네요.”
두 S급 각성자의 참가 소식에 다른 각성자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조심스럽게 참가 의견을 내는 각성자들을 보며 김산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회의실이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가, 금세 다른 주제로 시끄러워졌다.
주로 엘리트 던전을 어떻게 공략해야 되는가로 많은 얘기가 오갔는데.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아 씨. 형이 무조건 공략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왜 제한이 B급부터야. 가서 한 소리 듣겠네.’
김태식은 세상이 많이 미웠다.
*
최대한 빠르게 엘리트 던전 공략을 하기로 회의가 마무리된 그 시각.
백한영은 소파에 앉아 자신이 나온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막 드라마가 방영됐을 때는 워낙 할 일(게임)이 많았기에 이제서야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다.
‘신기하네.’
편집을 거치니 촬영 현장과는 아예 달라진 영상을 신기하게 감상하던 백한영은,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보자마자 충동적으로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연기를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자신이 연기한 모습을 제3자의 눈으로 보니 괜히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심호흡을 해 마음을 진정한 백한영이 다시 티비의 전원을 켰다.
분장한 자신이 대사를 뱉을 때마다 움찔거리던 백한영은 드라마가 중반부에 들어선 뒤에야 몸을 비틀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됐다.
한여름의 오빠인 한백호가 동생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는 파트를 유심히 감상하던 백한영은, 문득 백은하와 어디 놀러 간 지 꽤 오래됐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가 하이라이트로 달려가는 와중에도 놀이공원 생각만 하고 있던 백한영은 한백호가 혈교도를 만나 검을 뽑는 장면에서 티비를 끄고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빠? 갑자기 왜?]
“은하 너 언제 쉬어?”
[나? 그건 갑자기 왜 물어?]
“그냥. 그래서 언제 쉬어?”
백한영의 말에 백은하는 앞으로 남은 스케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말했다.
[잠깐 쉬는 걸 말하는 거야, 아님 통째로 쉬는 걸 말하는 거야.]
“하루 통째로 쉬면 좋지.”
[하루 통째면 보름 뒤에? 그때쯤이면 지금 촬영하는 드라마도 대충 마무리돼서 여유로울 거야.]
“보름 뒤라. 이모는 언제 쉬어?”
[이모는 새 프로그램 들어가서 지금 한창 바쁠 때라. 거의 세 달 후쯤?]
세 달 후라. 그러면 이모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럼 너만이라도 데려가야겠다.”
[···정말 미안한데 오빠,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우리 둘이 놀러 간 지 좀 오 됐잖아. 그래서 같이 놀러나 가자고.”
[그···렇긴 한데.]
백은하의 반응이 미묘하자 백한영이 입맛을 다시곤 말했다.
“싫음 말고.”
[아니 누가 싫다고 했어. 갑자기 오빠가 왜 저러나 해서 그랬지.]
“그냥 <여름에 피는 꽃> 모니터링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어.”
[그거랑 놀러 가는 거랑 무슨 상관···.]
거기까지 말하고 백은하는 깨달았다.
백한영이 지금 어디를 놀러 가자고 하는 건지를.
[오빠 미쳤어?]
“왜. 뭐가.”
[진짜 미쳤나 봐. 내 나이 먹고 무슨 오빠랑 놀이공원을 가!]
“갈 수도 있지. 옛날 생각나고 좋잖아.”
물론 백은하도 백한영과 놀러 가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백한영이 말을 안 했다면 아마 본인이 먼저 놀러 가자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백한영과 놀러 가는 것 자체는 백은하도 찬성이었지만.
그래도, 놀이공원은 아니었다.
[오빠 나 연예인이야. 놀이공원 같은 데 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봐.]
“너 화장 지우고 모자 쓰면 누가 알아본다고.”
[오빠가 내가 얼마나 인기 많은 연예인인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화장 지운다고 뭐 얼마나 달라진다고 그래.]
“일단 오빠는 네 화장한 얼굴 바로 못 알아봤잖아.”
[그건 내가 너무 성장해서 그렇고!]
이 오빠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전화 너머로도 느껴졌다.
백한영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고민 좀 해볼게. 나 슬슬 촬영 들어가야 하거든? 나머지는 집에 가서 얘기하자.]
“알았어.”
그대로 통화가 끊어졌다.
백한영은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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