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입 전쟁(4)
“길드를 만든다고요?”
“어.”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고.”
백한영이 길드를 만들려는 건 귀찮게 하는 사람들 때문이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김태식을 비롯한 각성자를 만나 보며 백한영은 의문을 느꼈었다.
저게 진짜 맞아? 라고.
마검에 휘둘리는 김태식, 자신의 검법이 뭔지도 모르고 쓰는 김현성.
물론 백한영이 그 둘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해도 성과가 나왔으니까.
김태식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B급 각성자의 실력을 얻었고, 김현성도 A급 각성자의 실력을 얻음과 동시에 매화를 화려하게 피워냈다.
각성자로서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일단 여기서 스택이 하나 쌓였다.
두 번째로 백한영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도 말해서 입이 아프지만, 백한영은 무림세계에서 절대자였다.
사람을 부리는 게 익숙한 인간이었다는 거다.
절대자로 살다가 현대로 귀환해 자기가 직접 하거나, 김태식 하나만 부려 먹으려고 하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고.
진작 자신의 수족을 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여기서 스택이 두 개 쌓였다.
그 상태에서 수많은 길드가 귀찮게 하는 것까지 더해지니,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길드 비슷한 건 진작 계획하고 있던 거야. 왜? 나는 못 만들어?”
“아뇨. 길드를 설립하기 위해선 조건을 충족시키긴 해야 되는데, 형은 A급이라 충족시키고도 남아요. 그 부분은 걱정 없을 거예요.”
“그러면 왜 그런 반응이야.”
“그야 예상 못 했으니까 그렇죠. 갑자기 형이 길드를 만들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요.”
하긴. 그렇긴 했다. 백한영 본인도 자기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백한영이 말했다.
“나를 포함해 두 명만 있어도 길드 설립이 가능하지?”
“어···. 제가 길드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 두 명에 A급 각성자가 포함돼 있으면 가능할 거예요. ···근데 두 명이요?”
“어 두 명. 왜?”
“너무 인원이 적어서요. 그거면 길드가 아니라 사실상 팀이네요. 한 명은 당연히 형일 테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구예요?”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이 뭘 묻냐는 듯 무심히 입을 열었다.
“너.”
“네?”
“너라고.”
“저라고요?”
김태식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랑 같아서 말은 안 했는데, 저 검맥이랑도 커넥션이 있는 슈퍼 유망주인데요?”
“검맥 걔네 헛소리만 하고 영 별로더라. 그냥 형이나 따라와.”
“아니. 형이 오라면 가긴 하죠. 근데 진짜 딱 저 하나만 영입할 거 아니잖아요. 비전 있어요?”
“비전? 있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길드 벤치마킹했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길드? 김태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고 길드면 검맥인데, 뭐를 벤치마킹했어요?”
“검맥 걔네 천진혁인가 뭔가 하는 애가 가르침을 준다고 꼬시더라? 그래서 그거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지.”
“···설마 형이 가르침을 준다고 홍보해서 애들 영입하게요?”
“그걸 목적으로 만든 거기도 하거든.”
무림세계에 있을 때처럼 길드를 굴릴 생각은 없지만, 소수의 재능 있는 애들은 모아다 훈련을 시키면 그래도 밥값을 하지 않을까.
“으음.”
“너 반응이 미묘하다. 못 믿겠어?”
“저야 당연히 형을 믿죠. 근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급하게 길드를 확장할 생각은 없으니까 나머지는 천천히 구하면 돼. 그래서 태식이 너 내 길드 들어오는 거 맞지?”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백한영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길드라고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김태식이 말했다.
“그래서 길드는 언제 만들게요 형?”
“언제긴. 지금 바로지.”
*
길드를 설립하기 위해 김태식과 함께 호기롭게 각성자 관리청을 찾아간 백한영은, 길드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의 앞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안 된다고요?”
“네. 안 됩니다.”
백한영의 길드 설립, 시작부터 암초에 걸리다.
“왜요?”
“타인을 사칭하는 의도가 있는 길드 명은 만들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죄송합니다.”
사칭 아닌데.
백한영은 자신이 작성한 서류를 내려다봤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길드명:검신련
진심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건만, 담당자의 눈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진짜 안 되나요.”
“힘들 거 같습니다.”
“형. 검신련이 뭐예요. 벤치마킹만 해야지 이름까지 따라 하면 어떻게 해요.”
따라 한 거 아니라고.
답답해 미칠 거 같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검신 천진혁을 따라 한 게 아니라 무림세계에서 진짜로 검신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테니 말이다.
백한영은 새로운 서류를 받아 개인정보를 적어 내리며 생각했다.
그래. 누가 이미 검신을 선점했으면 어쩔 수 없지. 언제부터 내가 검신이라는 별호에 집착했다고.
검신 너 해라.
그냥 내가 다른 거 할게.
“이대로 해주세요.”
“이대로요?”
담당자가 서류를 내려다봤다.
거기엔 조금 전과는 살짝 다른 문구가 적혀있었다.
길드명:무신련
담당자가 고개를 들어 백한영을 바라봤다.
백한영이 말했다.
“무신련은 괜찮죠?”
“...알아보겠습니다.”
약간의 시작이 지나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던 담당자가 백한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한영의 길드 명. 무신련 확정.
*
검신 천진혁은 폐관수련을 마치자마자 미뤄뒀던 게이트 공략을 진행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천진혁의 게이트 공략 순회공연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기어코 부산에 있는 고등급 게이트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몬스터를 두 동강 낸 천진혁이 다음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 했을 때였다.
“너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누군가 말을 걸었다.
천진혁에게 말을 건 남자는 무투가를 연상시키는 짧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실제로 무투가라도 되는지 팔뚝의 굵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남자의 말에 천진혁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왜 안 하던 짓 하냐고. 너 게이트 공략 안 좋아했잖아.”
“게이트 공략을 안 좋아한다라. 내 입으로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네 착각 아닌가? 권왕.”
권왕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권왕, 윤한이 진저리를 치며 대답했다.
“권왕은 무슨 권왕이야. 멀쩡한 이름 놔두고 대체 왜 그렇게 부르는 건지 모르겠네. 설마 너는 검신이라고 부르면 좋아하냐?”
“나쁘지 않지.”
“돌겠네 진짜.”
작게 한숨을 쉰 윤한이 이내 천진혁에게 물었다.
“너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건 느끼나 봐? 갑자기 안 하던 짓 하는 거 보면.”
“게이트가 많을수록 차원이 불안전해진다는 얘기가 있으니, 일단 줄이는 게 좋겠지.”
처음 게이트가 열리고 8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최근 정도로 어수선했던 적은 드물었다.
S급 게이트가 열리지 않나, 다중 게이트가 열리지 않나.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던 천진혁이 굳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게이트를 줄이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근데 부산까지 굳이 와야 했어? 여긴 나한테 맡기면 되잖아.”
“너한테? 내가 왜 그래야지?”
“그래 너 잘났다. 네가 다 해 먹어라.”
나름 윤한도 S급인데, 그냥 무시를 해버리는 천진혁.
익숙한 일이었기에 윤한은 혀를 작게 차는 걸로 말을 마치고는 천진혁이 깔끔하게 두 동강 낸 몬스터를 바라봤다.
천진혁이 쓰러트린 몬스터는 A급으로, 천진혁은 물론이고 윤한에게도 한 끼 식사 정도에 불과한 놈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숨 쉬듯 잡을 수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얘는 뭐 볼 때마다 강해지냐. 자기가 괴물이라고 시위하는 거야 뭐야.’
그새 경지가 높아진 천진혁과 자신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는지 속으로 가늠하며 윤한이 말했다.
“근데 서울에 S급 추정 각성자 나왔다며. 좀 알아?”
“백한영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안다.”
“안다고? 네가?”
방금 봐서 알겠지만 천진혁은 같은 S급인 윤한마저 관심 밖으로 놓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S급도 아니고, S급 추정인 신입을 알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만나보기라도 했어? 어떻게 알았데.”
“만나보진 않았지만 대충은 안다. 그래서 왜 묻지?”
“아니. 나는 부산이 본거지라 서울 소식이 느리잖아. 그래서 혹시 뭐 새로운 소식 없나 물어본 거지.”
“새로운 거라.”
윤한의 말에 천진혁이 얼마 전에 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름다웠던 검의 궤적과 그 안에 담겼던 극도로 통제된 힘을.
천진혁이 말했다.
“괴물이다.”
“···미안.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 줄래?”
“그 나이에 벌써 귀가 먹은 건가. 괴물이라고 말했다.”
설마 내가 귀를 먹었겠냐.
윤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곤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괴물이라니. 저 단어가 저 괴물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어느 정도길래 그래.”
“나는 저번 S급 게이트를 해결한 사람이 백한영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내가 백한영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닌데, 식물인간 상태에서 이제 막 깨어났다는 건 알거든? 근데 걔가 최근에 나타났던 S급 게이트를 해결했다고? 그게 말이 돼?”
“나는 그런 건 모른다. 단지 백한영의 실력만 볼 뿐. 내가 본 백한영은 충분히 그럴 실력이 된다.”
“으음.”
윤한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천진혁이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는데.
그럼 진짜 백한영이 S급 게이트를 해결했다고?
“그 사실 몇 명이나 알아.”
“다른 사람한테 말한 건 네가 처음이다.”
“그래?”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백한영을 우리 길드로 데려오는 게―.
‘어라.’
윤한이 상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천진혁. 너도 느껴지―.”
윤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진혁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허공을 땅처럼 밟으며 부산 상공으로 날아오른 천진혁이 기감을 최대로 열고 주변을 훑어봤다.
천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게이트에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
빠르게 낙하해 땅에 착지한 천진혁이 게이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C급으로 추정되는 게이트는 동그란 타원형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이건.”
어느새 뒤따라온 윤한이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반 게이트의 모습이, 마치 네모난 직사각형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던전 게이트잖아.”
천진혁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를 마친 후 천진혁이 말했다.
“협회에 확인이 끝났다.”
“뭐래.”
“아무래도 방금 확인한 대로 일반 게이트가 던전 게이트로 바뀐 모양이더군.”
“몇 개나.”
윤한의 말에 천진혁이 나직이 대답했다.
“전부.”
*
세상에 있는 모든 게이트가 던전 게이트로 바뀌어버렸을 때.
우웅―!
제주도 한가운데에 거대한 던전 게이트가 생성됐다.
추정 등급 최소 S급. 최대 측정불가.
그게 21시간 만에 거대 던전 게이트를 발견한 각성자 협회의 1차 조사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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