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5화 (15/117)

영입 전쟁(3)

김태식이 검을 휘둘렀다.

상하로, 좌우로, 사선으로.

어떠한 기교 없이, 그저 기본기를 갈고 닦기 위해 묵묵하게.

“형이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이거 맞아요?”

···별로 묵묵하진 않은 거 같지만, 아무튼 김태식은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백한영이 말했다.

“맞다니까. 의심하지 말고 계속 해.”

“아니 저도 의심하는 건 아닌데, 이 정도는 평소에도 해서요. 뭔가 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한 얘기죠.”

“너는 지금 뭔가를 추가할 때가 아니라 뺄 때야. 기본기에만 집중해.”

“옙.”

얌전히 다시 검을 휘두르는 김태식을 보며 백한영은 음료수를 쪽 빨았다.

김태식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굳이 하나를 콕 집자면 이상한 습관이 덕지덕지 붙은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잘못된 습관이 하나만 붙어도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개를 달고 있었으니, 제대로 된 성장을 할래야 할 수 없었던 건데.

그런 잘못된 습관들은 현재 백한영의 지도하에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었다.

“태식아. 기본에 집중하라니까. 자꾸 기교 넣을래?”

“솔직히 형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똑같이 했는데, 기교가 들어갔어요?”

“어. 들어갔어. 다시 해.”

백한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김태식이 재차 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김태식은 자꾸 이게 맞는지 헷갈려했지만, 백한영은 김태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당사자는 인지하기 힘든 문제였다. 경지가 낮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래 식칼이 제 자루를 못 깎는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알아채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더 빠르게 틀이 잡히네. 하긴 재능이 있으니까 혼자서 그런 이상한 검술을 만들 수 있는 거긴 해.’

김태식은 협회에서 주목하는 유망주. 각성 능력도 좋았지만 가진바 재능도 훌륭했다.

순전히 제대로 된 지도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 잘못 성장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백한영은 문득 각성자와 각성자를 지원하는 전반적인 시스템에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많은 각성자를 만난 건 아니지만, 일단 만나본 각성자는 죄다 문제가 있던데.’

그리고 백한영이 봤을 때 대부분의 경우가 제대로 된 지도를 받지 못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추측해 보면 각성자 교육 시스템은 나름 완성된 거 같았는데, 그 결과가 김태식과 어제 만난 김현성이다?

무언가 근본부터 잘못된 게 아닌가, 라는 게 백한영의 의견이었다.

“후우.”

김태식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백한영에게 다가왔다. 그새 수련이 끝난 모양이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백한영이 말했다.

“태식아.”

“네. 형.”

“각성자들은 대체로 어떤 식으로 훈련을 받냐?”

“훈련이요? 각성 능력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전투 훈련을 말하는 거예요?”

“둘 다.”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은 잠시 고민하고는 입을 열었다.

“협회에서 기본 교육을 해주긴 하는데, 보통 길드에서 받거나 개인 교습을 받아요.”

“그래? 어떤 식인데.”

“여러 가지죠. 각성 능력을 성장시키는 법이라든가,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이라든가.”

“넌 그 중 어떤 훈련을 받았냐?”

“당연히 둘 다죠.”

둘 다 받았는데 넌 왜 모양이냐, 라고 말하는 대신 백한영은 다른 걸 물어보기로 했다.

“너는 어디서 훈련을 받았는데. 길드?”

“아뇨. 개인 교습이요. 저는 길드가 없어서.”

“없다고?”

의외였기에 백한영이 되묻자, 김태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낮은 등급일 때는 혼자 활동하는 게 낫기도 하고, 그냥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B급은 찍은 다음에 길드에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미뤄두고 있었어요.”

“그럼 길드는 잘 모르겠네. 개인 교습이라도 말해봐라. 어떤 식으로 가르쳐주냐?”

“개인 교습이요? 보통 무공계 각성자가···.”

“됐다. 더 말 안 해도 돼.”

무공계 각성자라는 말에 흥미가 싹 사라진 백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돌아갈 채비를 갖췄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된다. 형은 이만 가볼게.”

“형 잠깐만요! 물어볼 게 있어요! 진짜 형이 허락할 때까지 각성 능력 쓰지 마요?”

“정 위험하면 써야겠지만, 한 번 쓸 때마다 기본기 훈련을 한 달씩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절대 안 써야겠네요.”

당분간 고생길이 열린 걸 직감한 김태식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백한영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남자가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꿀밤 때리고 싶어지니까.

*

백한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별로 지치진 않았지만, 어딜 가나 달라붙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게 다 백한영이 너무 뛰어난 탓이었다.

지난 다중 게이트 사태로 관계자들은 이미 백한영의 등급을 S급이라고 결론 내린 지 오래였다.

소속이 없는 S급 각성자? 후안무치라고 욕을 먹더라도 어떻게든 데려와야 하는 인재였다.

S급 각성자가 어떤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 지난 8년 동안 직접 봐왔기에 더욱 그랬는데, 이건 뭐 방법이 없었다.

영입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을 죄다 두들겨 팰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시간이 약이라고, 계속 무반응이면 점차 사그라들긴 할 텐데.’

조용해지기 전까지 전 세계에 있는 길드가 자신을 한 번 찔러보고 갈 예정인 게 백한영의 입장에선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왜 전 세계냐고? 방금 전에 귀화 요청을 받고 온 참이거든.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도 아니고. 왜 이리 귀찮게 하는 사람이 많은지.

차라리 확 길드에 들어가 버려?

아무런 이득이 없어서 영입을 거절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귀찮게 구는 사람이 계속 나오면 백한영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길드에 몸을 의탁해 버린다는 최후의 수단을 말이다.

근데 남의 밑에 들어가는 건 성미에 맞지 않은데, 좋은 방법 없나.

그렇게 백한영이 계속되는 영입 제안을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을 때였다.

삑삑삑삑삑. 띠리링.

누군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은하겠지 싶어 마중 나갔던 백한영은 낯선 사람을 보고 자리에 멈춰 섰다.

“한영아.”

낯선 여자가 백한영에게 뛰어와 와락 안겼다.

백한영은 낯선 여자를 그대로 안아주며 머리를 굴렸다.

갑자기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온, 30대로 추정 되는 낯선 여자.

맥락상 자신의 이모인 이지선일 확률이 100퍼센트였다.

백한영이 표정을 관리했다.

얼굴을 보고 알아본 게 아니라 맥락을 읽고 알아봤다는 걸 들켰다가는, 처음 백은하를 못 알아봤을 때처럼 한바탕 난리를 칠 게 분명했으니까.

“은하한테 소식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얼굴 좀 만져보자 한영아. 진짜 깨어났구나.”

“음. 네.”

“연기 잘하더라. 연예인 할 거야?”

“그건 아니고요.”

“그럼 진짜 각성자···.”

이지선이 말을 하다 말고 백한영에게서 떨어졌다.

조카가 기어다닐 때부터 지켜봐 온 경험으로 지금 백한영이 왜 저런 미묘한 반응인지 눈치챈 것이다.

“한영아.”

“네.”

“너 지금 이모 못 알아봤지.”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백은하와 마찬가지로 빽 소리를 지르는 이지선.

백한영은 하하 웃으며 빠르게 말을 돌렸다.

“이모 안색이 좋네요? 외국에서 맛있는 거라도 먹었어요?”

“그럴 리가 있니. 진짜 다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안 하기로 맹세했어.”

이지선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SNS 저격에 파벌 싸움에, 논란은 왜 그렇게 계속 생기는 건지. 진짜 머리 다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이모 무슨 프로그램 때문에 해외 나갔다고 했죠?”

“K-POP 아이돌 서바이벌 해외편. 으으.”

진저리가 난다는 듯 자신의 팔을 쓸어내리는 이지선의 얼굴을 백한영이 찬찬히 살펴봤다.

세월의 흔적이 아주 약간 느껴지는 이지선의 얼굴. 백한영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이지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그래?”

“이모 사고 싶은 거 없어요? 먹고 싶은 것도 되는데.”

“갑자기 왜 그래. 그러면 한영이 너는 먹고 싶은 거 없어? 이모가 간만에 솜씨 좀 발휘하고 싶은데.”

“이모부터 말해요. 저한테 바라는 거 없어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아무거나?”

백한영의 말에 이지선이 잠깐 움찔했다.

마음속에 바라는 게 있긴 했던 모양이다.

백한영이 말했다.

“부담 없이 말해요. 돈도 많은데 뭐든 사줄게요.”

“···그러면 맛있는 거라도 먹자. 와. 한영이가 사주는 밥도 먹고. 인생 모를 일이네.”

백한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이지선이 말한 게 정말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이모.”

“으응.”

“그냥 부담 없이 말해요. 정 아니다 싶으면 제가 거절하면 되니까요.”

“부담 없이?”

“네. 부담 없이.”

백한영의 말에 이지선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생각만 한 거다? 진짜 해달라는 건 아니고.”

“네. 말해보세요.”

“이모가 이번에 바로 예능에 들어가는데, 거기에 은하랑 네가 나오면 대박이겠다, 라고 하긴 했어.”

“예능이요?”

갑작스러운 말에 백한영이 그렇게 묻자, 이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찰 예능이라고 최근 유행하는 건데, 요즘 은하가 대세잖아? 거기에 드라마를 캐리해서 한참 주가가 오르는 너까지 같이 나오면 대박이지 않을까, 뭐 그런 거야.”

“확실히 그러긴 하겠네요.”

“이제 막 깨어난 애한테 이런 거 부탁하는 것도 좀 그렇고, 사실 대중의 관심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 너무 진지하게 고민 안 해도···.”

“할게요. 그거.”

백한영의 말에 이지선이 눈을 끔뻑였다.

“한다고?”

“네. 그게 뭐 별거라고. 언제 촬영인데요?”

“좀 걸려. 근데 진짜로?”

“제가 뭐든 말해보라고 했잖아요. 예능 정도야 출연할 수 있죠.”

어린 나이에 자신과 백은하를 책임지느라 고생한 이지선에게 그 정도도 못 해주려고.

어차피 드라마도 나갔는데 예능 하나 정도야 충분히 나갈 수 있었다.

“예능은 그냥 나가줄 테니까 이모가 그동안 사고 싶어 했던 것도 말해요. 저 돈 많다니까요?”

“얼마나.”

“저 A급 각성자예요. 은하한테 얘기 안 들었어요?”

“너한테 직접 들으라고 자세한 건 말 안 해주더라. 근데 A급 각성자라고?”

이지선의 눈이 커졌다. 설마 백한영이 벌써 A급 각성자일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이지선이 눈동자를 굴린 후 말했다.

“고민한 다음 말해도 돼? 사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아서.”

“얼마든지요. 아. 집은 말 안 해도 돼요. 이미 이사는 하기로 했어요.”

“알았어.”

이지선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걸 보며 백한영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 얼굴을 보기 위해 무림세계에서 귀환한 거라고 볼 수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예능이라.

태식이한테 요즘 예능이 뭐가 있는지 좀 물어봐야―.

우웅.

갑작스러운 진동음에 백한영이 상념을 끊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백한영님. 저는 일선화 길드의···.]

백한영은 바로 차단 버튼에 손을 올렸다.

하다 하다 핸드폰 번호까지 알아내서 난리를 치네.

이러다 집까지 찾아오겠어.

백한영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진짜 조치를 취해야 될 거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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