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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귀환했다-14화 (14/117)
  • 영입 전쟁(2)

    백한영은 던전 게이트의 코어방을 천천히 살펴봤다.

    반으로 갈라진 방패를 들고 있는 남자가 하나.

    검을 놓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하나.

    멀쩡해 보이는 마법사와 궁수가 하나씩 둘.

    아. 별 도움이 안 돼 보이지만 가방을 멘 남자도 하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총 다섯이서 몬스터 하나를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백한영이 봤을 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륵.

    백귀가 백한영을 보고 낮게 울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에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다.

    자신을 노려보는 백귀에게 시선을 주는 대신 백한영은 조금 전 자신이 봤던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태식이도 기괴했는데 쟤는 한술 더 뜨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저런 게 튀어나오는 거야?’

    김현성이 사용한 검술은 백한영에게 굉장히 익숙한 검술이었다.

    매화검법. 그 유명한 화산파를 상징하는 검술로, 백한영과 인연이 깊었던 사람이 주로 사용했던 검술인 만큼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쟤는.’

    백한영은 땅에 누워있는 김현성을 바라봤다.

    김현성의 사용한 매화검법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기괴했다.

    ‘검법이 무슨 게임 스킬이냐고.’

    매화검법은 매화를 닮기 위해 만들어진 검법.

    숙련될수록 매화향을 풍기는 특징이 있었고, 김현성이 보여준 것처럼 완전한 매화를 피워낼 정도면 화산파 내에서도 귀중한 취급을 받는 고수였건만.

    김현성의 검법은 고수라기엔 너무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장담할 수 있었다.

    김현성은 매화검법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매화검법의 유래도, 매화검법을 만든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지향점도.

    아무것도.

    때문에 김현성의 매화검법은 텅 비어있었다.

    그의 검엔 검의는 담겨있지 않았고, 그의 검로 또한 의념이 함께하지 않는 공허한 길이었다.

    심상은 어떤가. 매화검법의 유래조차 모르는 인간의 심상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을 리 없었다.

    말 그대도 텅 비어 있는 검.

    그게 바로 김현성의 검법이었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김현성은 매화를 피워냈다.

    백한영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기요.”

    “···네?”

    코앞에 던전의 수호자가 있다는 걸 잊기라도 한 것 같은 백한영의 평온한 목소리에 김현성이 멍하니 대답했다.

    백한영이 말했다.

    “죄송한데 무슨 능력을 각성하셨나요?”

    “그, 무공계 각성자인데요. 매화검법이라고.”

    “매화검법인 건 봐서 알아요. 무공계요?”

    “네.”

    백한영은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저 무공계라는 각성 능력이 이 사태의 원인인 거 같다고 말이다.

    크아아아앙!

    자신을 무시해서 화라도 난 건지 백귀가 울부짖었다.

    백귀의 창이 무섭게 회전했다.

    회전력을 이용해 그대로 백한영을 찌를 계획이었던 건데.

    “가만히 있어.”

    백한영의 말 한마디에 시간이 정지했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백귀를 잠깐 쳐다본 백한영이 이내 김현성에게 물었다.

    “도와드려요?”

    “네?”

    “도와드리냐고요.”

    김현성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백한영을 바라봤다.

    이 사람은 뭐지.

    김현성의 시선이 백한영의 뒤에 둥둥 떠 있는 몬스터의 사체에 고정됐다.

    너무 태연한 모습도 그렇고, 저 뒤에 둥둥 떠 있는 사체들도 그렇고, 굉장히 이상한 것투성이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백한영이 고개를 돌려 백귀를 바라봤다.

    백귀를 압박하고 있던 무형의 기세를 푼 백한영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김현성의 검에 손을 뻗었다.

    “어?”

    자신의 검이 허공을 날아가 남의 손에 잡히는 걸 본 김현성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지만, 백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들었다.

    게임에서 <매화검수>를 만나지 않나, 매화검법을 쓰는 각성자를 만나지 않나.

    진짜 화산파랑 뭐가 있나.

    백한영은 꽤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검귀. 표정이 왜 그러지? 드디어 화산파에 들어오고 싶어졌나?’

    ‘···미친 소리 그만하고 지혈부터 해.’

    ‘지혈. 그렇군. 그나저나 방금 어땠나.’

    매화향이, 제대로 퍼지지 않았나.

    백귀가 몸을 웅크렸다가, 스프링처럼 몸을 늘리며 그대로 앞으로 쏘아졌다.

    백귀의 창이 빠르게 회전했다. 목표는 백한영의 목.

    백귀의 창날에 서린 강기가 창과 같이 회전하며 심상치 않은 기류를 만들었다.

    김현성과 레드잭의 길드원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백한영이 무방비 상태로 백귀의 창에 꿰뚫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빠르게 쏘아진 백귀의 창이 백한영에게 닿기 직전.

    백한영의 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김현성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다.

    허공에 매화의 꽃봉오리가 생겨났다.

    백한영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꽃봉오리가 늘어났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를 늘려가던 꽃봉오리가 공동을 가득 메운 순간.

    매화가 만개했다.

    손으로 심은 매화의 향기는 십 리를 가지만.

    마음으로 심은 매화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공동에, 매화의 향기가 몰아쳤다.

    “······.”

    김현성이 입을 다문 채 던전 코어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비록 반쪽짜리 검사였지만, 그런 그도 알아챈 것이다.

    방금 백한영이 보여준 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는 것을.

    “방금 그게. 대체 뭐죠?”

    “매화만리향.”

    김현성의 말에 나직이 대답한 백한영은 매화향에 휩쓸려 쓰러진 백귀의 사체를 허공에 띄우며 물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 보상을 어떻게 나누죠? 아시는 분?”

    *

    레드잭 길드 사무실.

    그곳에서 김현성과 일행이 흥분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A급?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아무리 적게 잡아도 S급이에요. 통성명하기 전까진 검신 천진혁님인 줄 알았다니까요?”

    “어 그래. 현성아. 알겠는데 잠깐···.”

    “막 매화가 코어방을 가득 채우는데, 진짜 이건 직접 봐야 해요.”

    “현성아 알겠는데···.”

    “아직 길드가 없다던데, 무조건 영입해야 해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에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면서 데려와야···.”

    “잠깐 현성아 진정 좀 해봐.”

    말을 쏟아내는 김현성을 진정시킨 레드잭의 부길드장, 구상일이 차분한 목소리로 김현성에게 말했다.

    “백한영이라면 우리 길드 영입 리스트에 이미 있어.”

    “이미 있다고요?”

    “그래.”

    구상일이 태블릿PC를 조작해 김현성에게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

    “얼마 전에 있던 다중 게이트 사태에 대한 내용이야. 읽어봐.”

    태블릿PC를 받아 든 김현성이 그 안에 담긴 자료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김현성이 말했다.

    “이거 백한영 씨가 해결한 거였어요? 유지아 씨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소문이 퍼지긴 했는데,  백한영이 해결한 거 맞아.”

    “이때 F급에서 A급으로 바로 승급했어요? 이러면 더욱 영입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설마 백한영 씨가 거절했어요?”

    “아니. 그건 아니야.”

    구상일이 이마를 짚었다. 지난 몇 주 동안의 고생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냥.”

    “그냥 뭐요?”

    “그냥 연락이 안 돼.”

    구상일이 한탄을 시작했다.

    “다중 게이트에 연관 됐다는 거 확인하자마자 영입 시도를 했는데,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왜요?”

    “왜긴 왜야. 게이트 공략을 안 하니까 그렇지.”

    부길드장에 오르면서 수많은 사람을 본 구상일이었지만, 그런 구상일도 게이트를 공략하다 말고 갑자기 연기를 하러 가는 사람은 백한영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요 일주일 동안은 집 밖으로 나오질 않던데, 이럼 방법이 없지. 아마 우리 말고 다른 길드도 똑같은 상황일걸?”

    “그러게요. 이렇게 화려하게 데뷔했으면 대형 길드에서도 노리고 있겠네요.”

    “듣기로는 검신의 길드도 노리고 있다고 하더라.”

    “아.”

    김현성이 낮게 탄식을 뱉었다.

    레드잭 길드가 유망하고 꽤 괜찮은 길드긴 했지만, 다른 대형 길드와 비교하면 확실히 처지는 곳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검신 천진혁의 길드도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사실상 레드잭 길드에 승산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구상일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근데 아직 몰라.”

    “네? 대형 길드도 끼어들었으면 저희는 답 없는 거 아닌가요?”

    “원래 저런 괴짜 타입은 대형 길드니 소형 길드니 하는 거에 관심을 안 두거든. 그냥 자신의 마음에 드냐 안 드냐의 차이라, 우리도 조건만 제대로 준비하면 충분히 영입할 수 있어.”

    “그러면.”

    김현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백한영과 함께 게이트를 공략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 것이다.

    그런 김현성에게 구상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그것도 얼굴을 봐야 가능한 거지. 대체 왜 이리 신출귀몰한 건지 모르겠어. 집에 틀어박혀서 종일 수련이라도 하나?”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확실히 수련에 미쳐있어도 안 이상하겠네요.”

    백한영 정도의 실력자도 수련에 미쳐있는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돌아가자마자 수련을 시작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김현성이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무렵.

    “그러니까 어디서 나오셨다고요?”

    “검맥에서 나왔습니다.”

    백한영은 사람 하나를 만나고 있었다.

    검맥에서 나온 남자가 백한영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최산이라고 합니다.”

    “검맥이라면.”

    “검신 천진혁님이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로 유명하죠.”

    “아하.”

    유명하고 자시고 처음 들어봤지만,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넘긴 백한영이 이내 최산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백한영 씨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검맥에요?”

    “그렇습니다.”

    최산의 말에 백한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길드라. 그러고 보니 은하도 길드에 가입했다고 했었지.

    청단인가 청풍인가 하는 곳이었을 텐데 아마.

    거기도 언제 한 번 확인해봐야 되는데, 언제쯤 가지.

    “백한영 씨?”

    “아. 네.”

    “혹시 지금 결정하시기 어려우시다면 추후에 연락을 주셔도.”

    “아뇨. 지금 결정할게요. 길드에 들어가면 검맥에서 저에게 뭐를 해줄 수 있죠?”

    “많은 걸 해드릴 수 있죠.”

    백한영의 물음에 최산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각종 장비 및 영약 지원은 물론이고, 저희 검맥에 오시면 다른 대형 길드에선 누릴 수 없는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거요?”

    “검신 천진혁님의 가르침입니다.”

    검신의 유무. 그게 바로 다른 길드와 검맥의 차이점이었으며.

    다른 길드가 검맥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였다.

    “검맥의 모든 길드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지만, 백한영 씨 정도라면 충분히 천진혁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아하.”

    “어떤가요. 결정하셨나요?”

    “네. 그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확 기울었네요.”

    최산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백한영이 자신의 의견을 수락하리라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견학부터 하시죠. 준비해 놨습···.”

    “거절할게요.”

    “···네?”

    “검맥에 안 들어간다고요.”

    그렇게 말한 백한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럼 수고하세요.”

    당황하는 최산을 놔두고 백한영은 협회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을 나가자마자 새로운 사람들이 우르르 달라붙으며 백한영에게 말을 걸었다.

    “백한영 씨! 혹시 저희 길드에―.”

    “안 사요.”

    “백한영 씨? 시간이 되신다면 저희와―.”

    “안 산다니까요.”

    사람들의 말을 단호히 끊으며 백한영은 생각했다.

    길드 이거.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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