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입 전쟁(1)
게이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첫째 일반 게이트.
여태까지 백한영이 처리했던 게이트들이 여기에 속했고,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를 소환했기에 나라에서 최우선으로 공략하도록 권장하는 녀석이었다.
둘째 던전 게이트.
던전 게이트는 몬스터를 소환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몬스터를 소환하긴 했는데, 세상에 소환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게임 속 던전처럼 몬스터들을 품은 채로 이 세상에 등장했고, 각성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구조였기에 정부에서는 후순위로 공략하도록 권장하는 게이트였는데.
이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던전 게이트는 일반 게이트와 다르게 무슨 몬스터가 나오는지 사전에 정보를 모을 수 있었고, 힘에 부쳐 후퇴해도 민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던전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듯 많은 각성자들이 던전 게이트로 눈을 돌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상황에서.
백한영도 던전 게이트를 찾아왔다.
물론 백한영이 던전 게이트를 찾아온 건 다른 사람들처럼 정보를 모으기 좋다든가, 후퇴하기 용이 하다든가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왜 이 타이밍에 S급 각성자가 폐관수련을 그만두는 건데.’
백한영이 던전 게이트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 근처에 있는 고등급 일반 게이트를 한 사람이 전부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서울을 넘어 전국 일주를 시작한 검신 천진혁을 떠올린 백한영은 뭐라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던전 게이트에 입장했다.
검신이라는 별호를 달고 있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 되는 게 맞았으니까.
던전 게이트의 입구는 여태까지 봤던 동그란 게이트와는 다른 직사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던전을 통제하고 있던 협회 직원에게 인증을 받은 후 게이트에 입장한 백한영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살짝 축지의 술법을 사용했을 때랑 비슷하네?’
몸이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 하는 느낌을 오랜만에 겪은 백한영은 던전 게이트의 내부를 살펴봤다.
던전 내부는 동굴을 닮아 있었는데, 중간 중간에 발광석 같은 게 있어 시야를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르륵.
백한영의 앞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현재 백한영이 들어온 던전 게이트의 등급은 A.
물론 던전 게이트의 등급이 A라고 해서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몬스터의 등급이 A인 건 아니었지만, 평균적으로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나오긴 했다.
지금 백한영의 앞을 가로막은 몬스터의 등급은 B로, 이름은 흑귀.
사냥하기 까다로운 몬스터 중 하나였지만.
서걱.
백한영에겐 요깃거리도 안 되는 상대에 불과했다.
백한영은 흑귀의 사체를 쳐다보았다.
던전 게이트라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반 게이트의 경우 몬스터 수거팀이 알아서 사체를 처리해 줬지만, 던전 게이트는 그런 식으로 사체를 처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게 각성자뿐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던전 게이트는 자신이 사냥한 몬스터를 알아서 챙겨와야 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알짜배기인 마석만 챙기든가, 아니면 대신 짐을 날라줄 저등급 각성자를 고용하곤 했는데.
백한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백한영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몬스터의 사체가 공중에 떠올랐다.
몬스터의 사체를 자신의 등 뒤에 띄운 백한영은 눈앞에 있는 갈림길 중 가장 왼쪽에 있는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레드잭 길드의 길드원인 김현성은 흑귀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은 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마석 챙겨.”
“알겠습니다.”
김현성의 말에 가방을 멘 신입 길드원이 흑귀의 사체에 다가갔다.
신입 길드원이 일 처리를 하는 동안 김현성은 고개를 돌려 다른 길드원들을 살펴봤다.
“어때?”
“뭘 어때. 평범하지.”
김현성의 말에 대답한 건 등에 커다란 타워실드를 매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 이주환이었다.
김현성은 이주환 외의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모두 연이은 전투에 살짝 체력이 소모되긴 했지만, 아직 쌩쌩해 보였다.
‘이거라면.’
김현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굳은살이 박여있는 상처투성이의 손.
그건 김현성이 여태까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최근 김현성은 벽을 하나 넘었다.
B등급에서 벽을 넘었으니 지금 실력은 A등급에 도달한 게 아닐까? 라는 게 현재 김현성의 추측이었는데.
그 생각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실적을 쌓는 것.
마침 현재 입장한 던전 게이트의 등급도 A였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실적을 쌓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코어방을 공략하는 건 어때?”
“던전 코어방을? 갑자기?”
“우리도 언제까지 B급일 수는 없잖아.”
김현성의 말에 이주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B급 4명이서 A급 던전 게이트의 코어방을 공략하자고? 던전의 수호자가 일반 몬스터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하는 소리냐?”
“당연히 알지. B급 4명이서 A급 던전의 코어방을 공략하는 게 불가능 한 것도 알고.”
“그럼 왜.”
“우리가, 진짜 B급 4명이라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김현성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주환은 문득 깨달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너.”
“이번에 벽을 넘었지. 사실상 A급이야.”
“아니. 벌써?”
“벌써는 무슨. B급에 얼마나 정체돼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주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친한 친구를 간신히 따라잡았나 싶었는데, 그새 차이가 다시 벌어진 걸 깨달은 탓이었다.
‘수련 시간을 늘려야···아니 여기서 어떻게 더 늘려.’
속으로 한탄한 이주환은 나머지 길드원을 바라봤다.
김현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재 파티는 A급 한 명, B급 3명으로 조합된 상태라는 건데, 이거라면 이론상 A급 던전의 코어방을 공략하는 게 가능했다.
“너희들은 어쩔래?”
“난 찬성.”
“나도 상관없다.”
길드원의 찬성을 받아낸 이주환이 김현성에게 말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우리도 언제까지 B급만 잡으면 살 수는 없잖아?”
이주환이 말이 끝나자마자 레드잭 길드의 길드원들이 빠르게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흑귀를 하나씩 쓰러트리며 나아가던 일행은 곧 커다란 공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호자다.”
공동에 들어서자마자 김현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공동 중앙.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다.
흑귀의 2배 정도 되는 크기를 가진 녀석은 흑귀와는 다르게 피부가 새하얬는데, 일반적인 흑귀와는 다르게 등 뒤에 커다란 창을 메고 있다는 게 특이점이었다.
녀석, 백귀가 김현성의 일행을 발견했다.
스윽.
등 뒤에 있던 창을 집어 들어 앞으로 겨누는 백귀.
김현성이 소리쳤다.
“전투준비!”
앞으로 뛰쳐나가는 김현성과 거기에 맞춰 따라 나오는 이주환.
백귀가 바닥을 박살 내며 앞으로 쏘아졌다.
콰아앙!
백귀의 창을 이주환이 막아냈다.
“큭.”
이주환이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여기서 자신이 튕겨 나갔다가는 플랜이 어그러졌다.
“좋았어!”
계획대로 이주환이 버텨낸 걸 확인한 김현성이 백귀로 뒤로 가 검을 휘둘렀다.
그걸 보며 마법사가 주문을 외웠다.
“타겟 지정. 신속.”
김현성의 몸에 설계된 마나가 깃들었다.
신체 강화 마법 덕에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김현성이 검을 휘둘렀다.
김현성의 검이 백귀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후웅!
백귀가 창을 빙글 돌리며 김현성의 검을 쳐냈다.
깔끔하게 막힌 김현성의 공격.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에겐 동료가 3명이나 있었으니까.
“흐으읍!”
이주환이 마나로 신체를 한계까지 강화한 후 백귀를 들이받았다.
그에게 섬세한 마나제어 능력 같은 건 없었다. 이주환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단순하게, 그리고 우직하게.
그게 이주환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타겟 지정. 폭염.”
“윈드 애로우.”
활시위를 당긴 궁수에게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했다.
화륵. 화살촉에 불꽃이 일었고, 동시에 궁수가 활시위를 놓았다.
콰아앙!
백귀의 머리에 화염마법이 부여된 화살이 직격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촤악.
백귀가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창을 휘둘러 연기를 걷어냈다.
그륵.
백귀가 낮게 울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자꾸 달라붙어 거슬렸기 때문이다.
창을 빙빙 돌리던 백귀가 이내 자세를 낮추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웅―!
백귀의 창에 마나가 깃들었다.
파괴의 정수. 강기(罡氣)가.
백귀가 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서걱. 깔끔하게 베이는 이주환의 방패.
고작 기를 발현시키는 게 한계인 이주환의 힘으로 강기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해다.
“김현성!”
여기까지 몰아붙였으면 이제 김현성이 해줄 차례였다.
김현성은 자신의 몸에 깃든 강화 마법들의 힘을 최대로 맛보며 검을 쥐었다.
김현성은 무공계 각성자였다.
무공계 각성자는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무공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김현성은 그 중 검술 쪽의 무공을 각성한 사람이었다.
김현성이 마나를 끌어올리며 검을 정교하게 움직였다.
백귀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김현성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각성 능력. 매화검법.
김현성의 검에서 매화향이 퍼져 나왔다.
허공에 꽃잎이 피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만개한 매화가 허공에 진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직후.
매화낙하.
꽃잎이 흩날렸다.
콰아아앙!
백귀가 있던 자리에 꽃잎이 작렬하며, 돌로 된 바닥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흙먼지가 흩날렸다.
아무리 A급 던전의 수호자인 백귀라도 강기에 직격당했는데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이겼다. 김현성이 속으로 그렇게 소리친 순간이었다.
후웅.
흙먼지를 뚫고 창날이 김현성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챙!
급하게 검을 든 김현성이 백귀의 창을 막아냈다.
백귀가 창을 휘둘러 흙먼지를 걷어냈다.
백귀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얼굴은 그을렸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정말 성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김현성!”
이주환이 다급히 소리쳤다.
백귀의 몸 상태를 보자마자 플랜A가 어그러졌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러면 바로 플랜B로 넘어가야 했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르르륵!
백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백귀의 창이 허공을 수십 번 찔렀다.
그렇게 찌른 창이 일 점으로 모이자.
쐐애애액!
대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콰앙! 거대한 폭음이 공동에 울려 퍼졌다.
김현성의 몸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그걸 본 이주환이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예상보다 백귀의 역량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러면. 젠장.’
이주환에게 백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절망적인 상황에 이주환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돌연 백귀가 걸음을 멈췄다.
“진짜 난리 났다.”
공동 안으로 걸어들어오며 백한영은 생각했다.
김태식도 그렇고 저기 쓰러져 있는 녀석도 그렇고.
각성자라는 것들은 죄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거 같다고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