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5)
“너 우리 특수대책반에 들어올 생각 없냐?”
“싫은데요. 누구세요?
백한영은 자신의 앞에 앉은 이현진을 살펴봤다.
피로에 찌든 얼굴. 담배 냄새. 그리고 몸에 가득 찬 마나까지.
‘각성자인가?’
보유한 마나가 김태식보다 많은 걸 보면 A급일지도 몰랐다.
이현진이 말했다.
“그래? 아쉽네.”
“그 특수대책반이 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그러는 거죠?”
“각성자 범죄를 해결하는 곳.”
각성자 범죄라.
백한영은 아까 자신이 쓰러트린 폭발 능력을 가진 각성자를 떠올렸다.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잡는 사람도 평범해선 안 되겠지.
확실히 이현진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 같긴 했다.
“제가 잡은 범죄자 때문에 찾아온 건가요?”
“걔를 막 심문하고 온 참이긴 한데, 그거 때문은 아니야. 그냥 네가 있다니까 온 거지.”
“절 아세요?”
딱히 활동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안다는 소리에 백한영이 신기해 그렇게 묻자 이현진이 말했다.
“네 승급 심사 회의에 참석했었거든. 그때부터 우리 팀에 넣고 싶어서 관심 있게 보고 있었지.”
“그래요? 근데 특수대책반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요.”
백한영은 기껏 현대로 돌아와 놓고 범죄자 추적 같은 칙칙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뭐 나도 제안만 해본 거야. 나중에 마음 바뀌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생각해 볼게요.”
이현진이 건네는 명함을 챙긴 백한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집에 언제쯤 갈 수 있는 건데.
*
[한유림:저번엔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보답으로 밥이라도 사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한유림의 문자에 시간이 나면요, 라고 에둘러 대답한 백한영은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서 티비를 틀었다.
티비를 틀자 어느 채널이든 각성자 테러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유명 연예인이 테러 당할뻔했다는 점이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은 것이다.
‘점점 심해진다는 건 최근에도 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건가?’
백한영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최근에 정말 각성자 범죄가 늘고 있는지 검색하기 위해서 말이다.
띠리링.
물론 백한영이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사용한 건 인터넷이 아닌 통화 버튼이었다.
[여보세요? 형? 무슨 일이에요?]
“태식아 바빠? 뭐 하고 있었어?”
[바쁘진 않은데, 그냥 형이 말했던 책들 보고 있었죠.]
“그러면 물어볼 게 있는데, 너 각성자 범죄에 대해 잘 아냐?”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은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일반인보단 잘 알죠? 그건 갑자기 왜요?]
“최근 빈도수가 어때. 늘어나고 있다던데?”
[아. 뉴스 보셨구나. 네 맞아요. 유의미하게 늘어나고 있어요.]
김태식은 최근 일어나는 각성자 범죄들을 백한영에게 설명해 주었다.
“각성 강화제?”
[네. 사실상 그게 제일 문제예요. 복용하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마약이라고 봐도 무방해서.]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은 그놈들은 왜 미련하게 그런 걸 먹는 거냐, 라는 소리를 하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의 힘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인지, 그걸 얻기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는 이미 질리도록 봐왔기 때문이다.
‘이걸 가만히 놔둬도 되나?’
백한영은 자신을 특수대책반 반장이라 소개한 이현진을 떠올렸다.
능력 자체는 출중해 보이긴 했는데, 믿을 만하다고 물으면 영.
일단 품행이 불량한 게 백한영의 마음에 걸렸다.
과연 그런 놈이 제대로 범죄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백한영은 전에 받은 이현진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다가, 피식 웃은 후 전화번호부에 연락처만 저장했다.
범죄자를 추적하는 칙칙한 일은 이제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고 있는 게 웃겼다.
여동생의 빚을 갚는다는 급한 불도 껐으니, 당분간은 쉬는 것만 생각하고 싶었다.
‘아직 갚을 돈이 많긴 한데, 한 번에 19억을 일시불로 줬으면 당분간은 쉬어도 되잖아.’
백한영은 약 1억 원 상당의 현금이 들어 있는 자신의 통장을 떠올렸다.
딱 이거만 다 쓰고 다시 열심히 일하자.
백한영이 말했다.
“태식아.”
[네 형.]
“요즘 애들은 뭐 하고 노냐?”
[요즘 애들이요? 형은 나이를 얼마나 먹었다고 그런 소리를 해요.]
“그게 중요하니. 그래서 뭐 하고 노는데.”
[···게임 같은 거 하지 않을까요?]
사실 김태식도 요즘 애들이 뭐 하고 노는지는 잘 몰랐다.
아직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는 김태식은 하루의 대부분을 수련을 하며 보내는 수련광이었으니까.
“게임? 뭐 말하는 거야. 오락실?”
[무슨 오락실이에요. 형 그 세대는 아니지 않아요? 아닌가? 아무튼 그런 거 말고 이것저것 있잖아요. PC게임이라든가 콘솔게임이라든가.]
“PC게임이라.”
백한영은 컴퓨터를 써본 적이 없었다.
백한영이 무림세계로 가기 전에도 또래 아이들은 죄다 컴퓨터를 끼고 살았던 걸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었지만, 집안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이번에 컴퓨터나 사봐?’
그러고 보니 예전에 컴퓨터를 그토록 사고 싶어 했었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라 까먹고 있었지만, 막상 뭔가를 하려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태식아.”
[네 형.]
“컴퓨터 사는 거 도와줄 수 있냐?”
[물론이죠.]
*
자신의 방에 설치된 컴퓨터를 작동시킨 백한영은 느릿한 손으로 마우스를 움켜잡았다.
“이게 클릭이에요 형.”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옆에 있는 김태식의 훈수를 들으며 백한영은 컴퓨터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형 저 바빠서 슬슬 가볼게요.”
“그래. 도와줘서 고맙다 태식아. 나중에 검술이나 좀 봐줄게.”
김태식을 돌려보낸 백한영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원하는 문장을 입력했다.
요즘 애들이 하는 게임. 엔터.
정보가 쏟아졌다.
백한영이 원하는 정보가 아니라, 요즘 애들이 얼마나 막 나가는지에 대한 얘기가 주르륵.
백한영은 방금 나간 김태식에게 연락을 하려다, 한번 참고 다른 검색어를 입력했다.
인기 게임. 엔터.
이번엔 그나마 백한영이 원하는 내용이 올라왔다.
[모바일 게임 1위 게임 창천지로]
‘창천지로? 이게 제일 인기가 많은 게임인가 보네. 근데 나는 PC게임을 하려는 건데 모바일은···. 아 PC로도 되는구나.’
백한영은 창천지로의 설명을 읽어봤다.
PC랑 모바일 둘 다 되고. MMORPG에.
장르는, 무협?
이거다.
백한영은 바로 컴퓨터에 창천지로를 다운로드했다.
‘오 움직인다.’
<검신백한영>이란 캐릭터를 생성한 백한영은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캐릭터를 움직였다.
<검신백한영>이 검을 휘둘러 허수아비를 쳤다.
5. 7. 허수아비 위에 <검신백한영>이 입힌 데미지가 올라왔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백한영도 저게 굉장히 낮은 수치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자 힘을 모아 강하게 허수아비를 타격하는 <검신백한영>.
···별로 재미없는데?
요즘 애들은 정말 이런 게임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을 무렵, 백한영에게 시스템이 한가지 기능을 알려줬다.
바로 자동사냥이라는 기능을 말이다.
“······.”
백한영은 커서를 움직여 자동사냥을 클릭했다.
그러자 <검신백한영>이 알아서 몬스터들을 잡기 시작했다.
띠리링.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레벨이 오른 걸 보며 백한영은 충동적으로 게임을 꺼버리려다, 이게 요즘 애들(아님)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게임(아님)이라는 걸 깨닫고 딱 오늘만 더 해보기로 했다.
일단 자동사냥은 그만뒀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건 별로 재미없었으니까.
게임은커녕 컴퓨터조차 처음 만져본 백한영은 빠르게 창천지로에 적응했다.
레벨업을 할수록 스탯이 올랐고 스킬이 생겨났다.
스킬 앞에 [노말]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지만, 백한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화려한 컨트롤로 몬스터를 쓸어버렸다.
익숙하지 않아서 버벅였던 거지, 익숙해지기만 하면 백한영이 고작 게임의 컨트롤을 못 할리가 없었다.
점점 높아져 가는 레벨을 보며 백한영은 게임에 살짝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새로 얻은 스킬들을 분석해 최적의 스킬 분배를 찾아낸 백한영은 사냥 속도가 조금 빨라진 걸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인기가 많은 거구나.’
레벨이 낮을 때는 몰랐는데, 레벨이 높아지니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백한영은 창천지로에 점점 빠져들었다.
기어코 100레벨을 찍은 백한영은 [특수 사냥터 이용 가능!] 이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시스템이 안내하는 대로 특수 사냥터에 입장했다.
‘와. 여기는 경험치랑 돈을 거의 2배로 주네?’
일반 사냥터의 2배 가까이 되는 보상에 눈이 돌아간 백한영이 신나게 몬스터를 잡기 시작했다.
띠리링.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레벨업 소리를 들으며 다음 몬스터를 잡으려던 백한영은, 자신의 캐릭터를 가로막는 그림자에 마우스를 멈추고 채팅을 봤다.
[매화검수:자리요.]
‘뭐야 얘는.’
분명 백한영이 한참 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사냥터인데 자리라니.
진짜로 이곳이 <매화검수>의 자리였다면 쿨하게 넘겨줬겠지만, 자신의 것이 확실한데 넘겨줄 이유가 없었다.
[검신백한영:왜 여기가 당신 자리란 말이오. 내가 한참 전부터 사용한 곳인데.]
일단 백한영은 신사적으로 대처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인데 검을 뽑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매화검수:아 됐다. 그냥 죽으세요.]
하지만 <매화검수>는 딱히 말로 풀 마음이 없었다.
바로 검에서 매화향기를 풍기는 <매화검수>를 보며 백한영은 작게 혀를 차고 [노말]검기를 사용했다.
기어코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는구나.
[노말]검기가 서린 검을 <검신백한영>이 휘둘렀다. 촤악! <매화검수>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깔끔하게 들어간 검기에 백한영은 다음 스킬을 준비했다.
[노말]횡소천군 후 이어지는 [노말]팔방풍우.
이게 백한영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스킬연계였다.
[매화검수:끝났어요?]
“···어라.”
너무 아무렇지 않은 <매화검수>의 모습에 백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콰아앙!
<검신백한영>이 있던 자리에 떨어지는 거대한 매화잎에 눈을 끔뻑였다.
[사망하셨습니다. 신규 유저 보호 기간의 효과로 경험치와 재화를 잃지 않습니다.]
유령 상태가 된 채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백한영에게 <매화검수>가 채팅을 쳤다.
[매화검수:뭐가 <검신백한영>이야. 요즘은 개나 소나 검신이라고 하고 다니네.]
······.
백한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근 몇 년간 백한영에게 이 정도의 데미지를 준 사람은 <매화검수>가 처음이었다.
마른세수를 해 흥분된 심장을 가라앉힌 백한영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창천지로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그러니까, 돈을 써야 된다 이거지?’
어쩐지 뭐만 하면 화면에 유료상품이 뜨더라니. 그게 복선이었을 줄이야.
원래 백한영은 게임에 돈을 쓰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때문에 창천지로가 미친 과금 게임이라는 걸 사전에 알았다면 처음부터 아예 손도 대지 않았겠지만.
돈으로 따귀를 시원하게 맞은 지금은 살짝 생각이 달라져 있었다.
개나 소나 검신이라고?
진지하게 살면서 그런 문장을 들어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백한영은 짧은 목표를 세웠다.
자신에게 모욕을 준 <매화검수>를 잡아다 무릎을 꿇릴 거라는 목표를.
백한영은 공략 사이트에서 시키는 대로 유료상품을 하나하나 구매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오직 승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1053489원]
일억 원을 자랑하던 백한영의 통장 잔고는, 백만 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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