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4)
‘왜 저러고 있지?’
고개를 갸웃거린 백한영이 벤치에 앉아있는 한유림에게 다가갔다.
백한영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백은하의 친한 언니라고 하니 나름 신경을 써주는 것이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그냥요.”
“그래요?”
원래의 백한영이었다면 여기서 그냥 갔겠지만, 동생의 친한 언니임과 동시에 동생의 직장 동료라는 한유림의 위치가 딱 한 번 더 백한영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마실 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
한유림이 입을 다물었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백한영이 슬쩍 몸을 돌렸다. 가게로 들어가서 백은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기 위해서 말이다.
“은하 오빠 씨.”
그리고 그것보다 한유림이 말하는 게 살짝 더 빨랐다.
“그냥 백한영이라고 부르세요.”
“네. 백한영 씨.”
“그래서 왜요.”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술 취하셨어요?”
지금 보니 살짝 얼굴이 붉어져 있는 느낌이긴 했다.
백한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술주정이었다니.
예전에 한 번 데인 후로 다시는 다른 사람 술주정 안 받아주기로 마음먹었는데, 여기서 걸리네.
“우울해요.”
“그래 보이세요.”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백한영은 기억을 되짚어 오늘 회식 자리를 떠올렸다.
술, 그렇게 많이 시키지도 않은 거 같은데.
이 술주정뱅이는 대체 뭘까.
괜히 말을 걸었다고 백한영이 속으로 한탄하고 있던 그때였다.
“오빠 뭐 해?”
가게 안에서 백은하가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멀쩡했는데, 차를 가져왔다 보니 술을 마시지 않은 탓이었다.
“술주정뱅이 상대?”
“그게 무슨 소리야. 응? 유림 언니 여기서 뭐 해요.”
“우울해.”
한유림의 술주정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지 바로 백은하로 타겟을 바꾸었다.
“언니 술취했네. 집에 들여보내야 될 거 같은데, 언니 매니저 어딨어요?”
“우울해.”
“음···.”
잠시 고민하던 백은하가 백한영을 바라봤다.
백한영이 설마 싶은 마음에 중얼거렸다.
“나보고 데려다주라고?”
“안 될까? 나는 주연이라 벌써 빠지긴 그래서.”
“하아.”
작게 한숨을 쉰 백한영이 백은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왜겠어. 차 키 달라는 거지.”
“······오빠 면허 정지되지 않았어?”
“진작 다 풀었지. 얼른 줘.”
“장롱면허잖아.”
백한영이 입으로 스읍 소리를 냈다.
“오빠 각성자야. 운전을 못 하겠어?”
“술은?”
“원래 안 좋아해서 안 마셨어.”
“으으으음.”
백은하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한영에게 자신의 차 키를 넘겼다.
차 키를 받아 든 백한영이 한유림에게 말했다.
“한유림 씨. 데려다드릴게요. 어디 사세요?”
“여기 살아요.”
헛소리를 하는 한유림에게서 시선을 뗀 백한영이 백은하에게 물었다.
“이거 데려다 줄 수 있는 거 맞아?”
“언니 집 내가 알아. 네비 찍어 줄게. 내 차로 가자.”
*
백한영은 차를 몰고 한유림의 집으로 향했다.
한유림의 집은 연예인들이 사는 걸로 유명한 고급 아파트였다.
하긴 탑급 배우면 돈 많이 벌만 하지.
백한영은 슬쩍 시선을 돌려 한유림을 바라봤다.
피곤했는지 잠에 든 한유림. 백한영에겐 다행이었다.
잠에 들지 않았으면 계속 술주정을 부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이제 일어날 시간이었다.
“한유림 씨. 슬슬 일어나세요. 도착했어요.”
“···으응.”
아직도 잠에서 못 깨어난 한유림을 보며 백한영은 작게 한숨을 쉬고 차에서 내렸다.
밖에서 조수석 문을 연 백한영이 한유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한유림 씨.”
“···여기 어디예요?”
“한유림 씨 집입니다. 내리세요.”
비몽사몽인 상태로 차에서 내린 한유림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아파트라는 걸 깨닫고 백한영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뇨. 은하가 부탁한 거라. 들어가세요.”
백한영의 말에 한유림은 고개를 숙이곤 아파트 입구 쪽으로 향했다.
한유림의 걸음걸이가 똑바른 걸 확인한 백한영은 운전석으로 이동했다.
이제 진짜 은하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한 백한영이 차에 탑승하려던 순간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백한영은 고개를 들어 한유림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녀가 있는 아파트 입구 쪽을.
거기에, 무언가 있었다.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백한영의 몸이 반응했다.
가볍게 발을 내딛자, 세계가 반으로 접혔다.
콰아앙!
“꺄아아악!”
바로 뒤에서 터져 나오는 한유림의 비명을 들으면 백한영은 정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흐, 흐흐.”
백한영의 앞, 거기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남자가 있었다.
백한영은 방금 자신이 막아낸 공격의 위력을 떠올렸다.
사람 하나를 죽이고도 남을 위력의 공격.
그런 걸 한유림에게 쓰려고 했다니.
명백히 악의적인 행동이었다.
백한영은 폭발을 일으킨 남자를 살펴봤다.
충혈된 눈으로 침을 흘리는 남자.
딱 봐도 제성신이 아니었다.
‘마인?’
정확히 마기가 골수까지 퍼진 사람의 모습이 저랬던 걸로 기억했다.
근데 여기에도 마공이 있나?
없을 거 같은데.
백한영이 상대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을 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날···.”
“날 뭐.”
“날 비웃지 마!”
남자의 몸에서 마나가 일었다.
뭉쳐진 마나에 의지가 부여되자.
우웅―!
마나가 순식간에 폭발 물질로 변해버렸다.
“으아아아아!”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백한영에게 폭발 마나를 던졌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고, 백한영이 있던 자리에 자욱한 먼지가 깔렸다.
남자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나를 무시하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
“너는 등급이 어떻게 되냐.”
웃음을 터트리던 남자가 표정을 굳히고 정면을 바라봤다.
먼지 속에서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각성자들은 등급이 어떤지 도통 예상이 안 간단 말이야. 그래서 너는 등급이 어떻게 되냐?”
“너, 너, 너 대체―.”
“대화를 할 상황은 아닌가 보네.”
남자의 상태를 확인한 백한영이 평온한 목소리를 한 채로 손을 들었다.
“일단 자라.”
그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
특수대책반 반장 이현진은 피로에 쩐 표정을 한 채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칙. 담배에 불을 붙인 이현진은 연기를 한차례 깊게 빨아들인 후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어때. 또 제정신이 아니야?”
“네. 지금은 진정되긴 했는데, 중독 말기라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지긋지긋한 녀석들.”
부하의 말에 진짜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현진은 담뱃불을 지져서 끈 다음 흡연실에서 나와 심문방으로 들어갔다.
미리 자리 잡고 있던 수사반 반장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 이현진이 말했다.
“쟤야?”
“어. 직접 심문하게?”
“그게 내 일인데 별수 없지.”
“그래 수고해라. 담배는 끊고.”
수사반 반장의 말에 댁이나 좀 끊어, 라고 중얼거린 이현진은 그대로 매직미러로 막힌 방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김기열?”
“······.”
“살짝 정신 돌아온 거 이미 들었어. 입 다물지 말고 대답해. 이거 어디서 얻었어.”
이현진이 김기열의 눈앞에서 투명한 비닐로 된 봉투를 흔들었다.
봉투 안에는 새하얀 약통 같은 게 들어 있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적혀있지 않아 수상한 느낌을 줬다.
“······.”
이현진의 물음에도 김기열은 입을 다물 뿐이었다.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이현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왜 하나 같이 좋게 말하면 듣질 않는 거지?”
이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기열에게 다가간 이현진이 녀석의 뒤통수를 잡고 강제로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만들었다.
“놔!”
“너 각성 범죄자의 형량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
“놓으라고!”
“보통은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사회의 공기를 맛보지 못하다가 죽어. 협력하지 않으면 너도 그렇게 될걸?”
“내, 내, 내 잘못이 아니야! 너네가 나를!”
“말해. 저거 어디서 났어.”
“으아아아아!”
발작을 일으키는 김기열을 보며 이현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텄구만.
김기열에게서 손을 뗀 이현진이 뒤로 물러났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니까요.”
어느새 심문방으로 들어온 부하의 말에 이현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은 안 풀려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지. 그래서 뭐 알아낸 거 있어?”
“일단 신상정보 싹 다 털어봤는데요. 별거 없어요.”
부하가 건넨 자료를 빠르게 훑어본 이현진이 말했다.
“F급 각성자긴 한데 특이한 이력이 없네? 이러면 사실상 일반인이잖아.”
“고소를 당한 적이 있긴 해요.”
“고소야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 정도고. 그래서 이런 애가 어떻게 각성 강화제를 얻은 걸까.”
이현진이 하얀 약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각성 강화제.
그것은 갑자기 등장한 각성자들을 연구하며 생긴 부산물 중 하나로, 부작용이 너무나 심해 지금은 생산하는 것조차 막아버린 약품이었다.
“뻔하죠. 인터넷에서 접선하고 지하철 보관소에서 수령 받았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 패턴만 벌써 몇 번째냐.”
“이번 년도만 벌써 10번도 넘긴 했죠.”
이현진이 미간을 꾹꾹 누른 후 말했다.
“각성 강화제 만드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분명 대규모 연구 시설이 있을 텐데, 왜 이리 꼬리가 안 잡히는 거지.”
“이렇게까지 철저한 애들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데. 대장은 짐작 가는 놈들 없어요?”
“수법 자체는 누구나 쓰는 방식이잖아. 짐작이고 뭐고 어딨어.”
근데 왜 각성 강화제일까.
이현진은 속으로 의문을 표했다.
각성 강화제는 제작하기 굉장히 어려운 약품이었다.
때문에 시설비와 재료비를 구하는 데만 어마어마한 돈을 써야 했는데.
그렇게 쓴 돈을 각성 강화제를 팔아 회수가 가능한가?
가능이야 하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각성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각성 강화제는 당연한 얘기지만 각성자만 복용할 수 있었다.
능력을 각성한 사람을 보고 행운아라고 표하는 요즘 시대에 각성자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당연히 적었고, 소수의 사람을 상대로 이런 상품을 팔아봤자 큰돈을 벌긴 어려웠다.
차라리 이런 수완이면 마약을 만들어 파는 게 돈이 훨씬 될 텐데.
왜 각성 강화제일까.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지만, 추측하기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답답함에 담배를 입에 문 이현진은 심문실을 나오며 부하에게 물었다.
“맞다. 그래서 쟤 누가 잡았다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각성자가 잡았다고 하던데요.”
“누구? 중독 말기까지 강화제를 처먹은 애를 저렇게 깔끔하게 잡으려면 B급은 되야 할 텐데.”
“백한영이라고 하던데요. 아세요?”
“백한영?”
부하의 말에 이현진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자리에 멈춰 섰다.
백한영. 백한영이라.
당연히 알지.
“걔 아직 여기 있어?”
“네. 사정 청취를 좀 하느라. 이제 곧 집에 갈 거예요.”
“어딨어.”
“당연히 사무실에 있겠죠?”
부하의 말에 이현진은 빠르게 사무실로 향한 후 물었다.
“여기서 백한영이 누구야.”
“저기 앉아 있어요.”
이현진은 부하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거기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백한영이 있었다.
백한영에 다가간 이현진은 그대로 백한영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너 우리 특수대책반에 들어올 생각 없냐?”
“싫은데요. 누구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