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이 힘을 숨김(2)
프로글의 사체는 근처에서 게이트를 통제하고 있던 협회 직원이 수거해 갔다.
“저런 건 얼마 정도 하냐?”
“프로글이요? 쟤는 연구용으로도 쓸모가 많아서 좀 비싸요. 한 600정도?”
“저게 600만 원이라고.”
“수수료랑 이것저것 떼면 한 500만 원 정도 들어올 거예요.”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이 속으로 감탄했다.
고작 C급 게이트를 공략하고 받는 돈이 500만 원이라니.
확실히 각성자가 고수익자긴 하구나.
“B급이나 A급은?”
“몇 배씩 뛰어오르죠. 거기서 나오는 몬스터 가치도 가치인데, 공략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 보니 프리미엄이 붙거든요. 위험수당 같은 것도 붙고.”
“···등급을 빨리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더라?”
“방법은 많은데 보통은 착실히 실적을 쌓은 후 심사를 받아야죠? 단기간에는 힘들어요.”
백한영은 자신의 각성자등록증에 적혀 있는 등급을 살펴봤다.
F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있는 각성자등록증을 확인한 백한영이 김태식에게 물었다.
“F급 게이트를 공략하면 보통 얼마 정도 버냐?”
“10만 원 안팎으로 기억해요.”
“10만 원?”
“저등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가치가 거의 없거든요. 정부에서 지급하는 포상금이 수익의 전부일 걸요?”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은 생각했다.
‘너무 힘을 숨겼나?’
백한영은 각성자 등록 과정을 떠올렸다.
아까 전 백한영은 보유한 마나량과 각성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일환으로 강철 허수아비 같은 걸 때렸었다.
어지간한 실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면 낮은 등급에서 시작한다길래 툭 때리고 말았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테스트실을 날려버렸어야 했나?
“형. 근처에 F급 게이트 있는데, 이건 형이 직접 공략해 보실래요?”
“···그것도 실적으로 쳐주냐?”
“당연하죠.“
“그럼 일단 가보자.”
백학영. 각성자가 된지 약 2시간째.
힘을 숨긴 걸 아주 살짝 후회하다.
*
백한영은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9만원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벌어서 대체 언제 5억을 모으나, 라고.
다행히 낮은 등급에서는 승급이 빠르게 되긴 했지만, 그것도 C등급까지의 얘기.
B등급부터는 꽤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각정자에게 매겨지는 등급은 일종의 허가증이었다.
이 사람은 이 정도 등급의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다는 허가증.
그런 허가증을 아무렇게나 뿌린다? 그랬다가는 고등급 게이트의 공략을 실패하는 사례가 쏟아질 게 분명했다.
현재 각성자는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직업이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한다는 본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략 실패 같은 사고가 터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게 바로 심사 제도였다.
B급 이상의 등급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수여하는 시스템을 만듦으로서 만약의 사고를 최대한 방지하는 거다.
‘하지만 결국 검증만 통과하면 되는 거 아닌가?’
B급 이상의 등급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만 수여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그 철저한 검증만 통과하면 B급 이상의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와 똑같았다.
가진 힘을 다 보여주는 건 어마어마한 난리가 날 테니 절대로 피해야 됐지만, A급 각성자는 대한민국으로만 쳐도 꽤 많으니까.
그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게 백한영의 계획인 건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백한영이 A급 각성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는 문제가.
백한영은 조금 전 봤던 김태식의 실력을 떠올렸다.
확실히 김태식의 각성 능력은 놀랍긴 했다.
무림세계에서 그토록 구하기 힘들던 술법기를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소환한 술법기의 위력이 약한가? 아니었다.
김태식의 술법기는 절정고수라도 아무런 정보 없이 덤볐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라는 단서가 굳이 붙어야 된다는 얘기는, 이미 능력을 알고 있는 절정고수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각성 능력을 빼고는 진짜 구멍이 너무 많아.’
김태식은 꽤 오랫동안 검을 사용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적어도 1년 이상을. 그의 몸에 새겨진 땀의 흔적이 그 정도는 됐다.
그런데 1년 동안 검을 휘두른 사람치고는 많은 게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진짜 술법기에 잡아 먹힌 사람을 보는 느낌이네.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검이 자신을 휘두르고 있어.’
김태식이 검술을 배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김태식은 각성자로 돈을 벌자마자 가장 먼저 검술을 익히는 데 돈을 사용했었다.
다만. 마검을 소환하는 그의 능력이 문제였다.
이제 막 검의 세게에 들어선 수행자에게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 같은 게 있었다.
너무 좋은 검을 경계하라고.
일정 이상의 실력이 되기 전에 술법기 같은 걸 들면 검술이 검의 성능을 끌어 올리는 방향으로만 성장하게 되니 주의하라는 의미였는데.
김태식이 완벽히 그 꼴이었다.
검에 잡아 먹힌 검사.
그래서 백한영은 김태식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건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쟤가 C급. 실질적으로는 B급 취급을 받는 각성자라니.’
이처럼 백한영이 생각하는 각성자 등급과 현실의 각성자 등급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깊게 고민 안 하고 이 정도면 A급이겠지, 라며 힘을 보여준다? 진짜 난리가 날 수도 있었다.
백한영 입장에선 가볍게 보여준 힘도 세상을 발칵 뒤집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백한영은 머리가 아파졌다. 승급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힘을 보여 줘야 됐는데, 일상생활을 지킬 수 있는, 딱 A급 수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백한영은 고개를 들어 김태식을 바라봤다.
실질적으로 B급의 실력을 가진 김태식을 보다 보면 A급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한참을 김태식을 살펴보던 백한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감이 잡히는 대신 오직 마검의 성능을 극대화시키는 검술만 펼치는 김태식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백한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방법이 없진 않은데.’
저 상태를 해결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당분간 마검을 버리고 기본기에 집중시키면 됐다.
대충 1년 정도 검을 휘두른 거 같으니, 한 반년 정도?
그렇게만 해도 안 좋은 습관과 해괴한 검술이 싹 사라질 것이었다.
‘근데 내가 말한다고 듣나?’
무림세계였다면 그 누구든 백한영의 말 한마디에 즉시 마검을 분질러 버리고 기본기 수행에 들어갔겠지만, 현재 백한영은 F등급의 각성자.
말에 신빙성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의 백한영이 무슨 조언을 한들 김태식 입장에서는 각성자 등록을 한 지 하루도 안 된 녀석의 헛소리로만 들릴 게 뻔했지만.
그래도 말은 해줘야지.
백한영도 사람이라고, 검의 세계에 이제 막 들어선 까마득한 후배가 붙임성 있게 나오니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싶어졌다.
E급 몬스터를 정리한 김태식이 백한영을 돌아보며 밝게 웃었다.
그런 김태식에게 백한영이 다가가 한마디 하려던 순간.
애앵—!
머리 위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급지원 요청입니다. 해당 좌표 근처에 있는 각성자들은 속히 지원을 부탁합니다.]
뒤이어 백한영의 스마트폰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백한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각성자 전용 어플을 작동시켰다.
초록색으로 현재 백한영의 위치가, 빨간색으로 긴급지원이 필요한 장소의 위치가 찍혀 있었다.
백한영이 고개를 들어 김태식과 눈을 마주쳤다.
긴급 지원 요청이 필요한 장소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유지아는 A급 각성자였다.
그것도 머지않은 미래에 S급 각성자가 될 것이라 수많은 사람이 믿는, 장래가 촉망되는 각성자.
그러한 믿음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 그녀의 나이가 아직 23살이라는 게 가장 컸다.
“10분 후면 활성화될 거예요. 준비하세요.”
여느 때와 같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유지아가 게이트 공략에 돌입했다.
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자신의 앞을 지키는 걸 확인한 유지아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게이트를 바라봤다.
거의 주택 하나 크기만 한 게이트를 보며 유지아는 배 아래에서부터 묵직한 긴장이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슬슬 베테랑 각성자라고 불리는 연차에 들어선 유지아였지만, 그런 그녀라도 A급 게이트 공략은 여간 떨리는 게 아닌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A급 게이트에 어마어마한 마나가 빨려 들어갔다.
직후.
쿠웅!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에 무언가 내려섰다.
‘데스나이트!’
A급 몬스터 중에서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녀석의 등장에 유지아는 입술을 살짝 깨문 후 마나를 끌어 올렸다.
유지아가 외쳤다.
“모두 준비하세요!”
유지아의 손에서 각성 능력이 발현됐다.
쩌저적. 허공에 거대한 얼음의 창이 맺히고, 그대로 날아갔다.
콰앙!
데스나이트에 직격한 얼음의 창이 터져나간 걸 신호로.
유지아의 팀원들이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데스나이트의 검을 거대한 방패를 든 남자가 막아섰다.
쾅! 도저히 검과 방패가 만나서 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너무 완벽하게 공격이 막히는 바람에 데스나이트에게 잠깐의 틈이 생겨났고.
촤르륵. 그 틈을 노리고 마법의 사슬이 데스나이트의 팔다리를 묶었다.
“흐읍!”
방패를 든 남자의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르며 창을 휘둘렀다.
압축된 바람이 담겨있는 창이 데스나이트를 노리고 쏘아졌고. 펑! 무방비 상태로 공격에 직격 된 데스나이트가 휘청거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쩌저저적.
거대한 얼음 망치가 유지아 위에 만들어졌다가, 그대로 데스나이트를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앙!
흙먼지가 거세게 일었다.
유지아의 공격에 맞춰 뒤로 물러났던 방패를 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쓰러트린 거 아니야?”
“불길한 소리 하지 말랬지. ···근데 맞는 거 같긴 해.”
방패남의 말에 쇠사슬로 데스나이트를 묶었던 여자 마법사가 손가락으로 얼음 망치가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여자 마법사가 가리킨 곳. 그곳엔, 산산조각 난 얼음 망치와 찌그러진 데스나이트가 나란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간단했네.”
“B등급 셋과 A등급 하나가 모여서 A등급 몬스터를 낑낑대며 잡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긴 해.”
여자 마법사의 말에 방패남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유지아에게 말했다.
“공략 성공인 거 같은데 빨리 몬스터 수거팀이나 부르자. 나 오늘 소개팅 나가기로 했다고.”
“잠깐만요.”
유지아가 손을 내밀며 방패남을 제지했다.
뭔가. 뭔가 이상했다.
그녀의 시선이 데스나이트로 향했다.
갑옷째로 찌그러진 데스나이트는 완벽히 숨통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대체 왜?
왜 불안한 거지?
유지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불안의 원인을 발견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조금 전까지 A급 게이트가 있던 허공에, 돌연 수십 개의 검은 구멍이 등장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에 모두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유지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긴급 지원 요청하세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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