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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귀환했다-4화 (4/117)

검신이 힘을 숨김(1)

“다음···백한영 씨?”

“네.”

“여기 있습니다.”

백한영은 각성자 협회 직원이 건넨 네모난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각성자등록증. 등급은 F.

마법적 처리가 됐는지 매끈한 표면을 자랑하는 등록증을 살펴보던 백한영은, 직원의 말에 고개를 바로 했다.

“아시겠지만 연수 기간엔 지정된 멘토와 함께 다니셔야 되요.”

“멘토랑은 언제쯤 연결될 수 있나요?”

“그건 바로 될 거예요. 운이 좋으시네요.”

각성자 등록을 마친 백한영은 센터에서 나오자마자 멘토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각성자 등록을 한 백한영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연수와 관련해서 문자를···.]

[어디 계시죠?]

길게 보낸 문자에 비해 굉장히 짧은 대답. 백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위치는 왜 묻는 거지?’

백한영은 일단 자신의 위치를 알려줬다.

위치를 알려주는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김태식에게 알겠습니다, 라는 답장이 온 직후.

“백한영 씨?”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백한영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아. 네. 김태식 씨?”

“네. 김태식입니다.”

그 말에 백한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방금 김태식이 나온 건물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조금 전까지 백한영이 머물렀던 각성자 센터가 맞았다.

“혹시 계속 저기에 있으셨나요?”

“언제 멘티한테 연락이 올 줄 몰라서요.”

그 말에 백한영은 속으로 허허 웃었다.

설마 자신의 멘토가 멘티를 빨리 보고 싶다고 협회 건물에서 5분 대기를 하는 미친놈이었을 줄이야.

진짜 상상도 못 했다.

나쁜 건 아니었다.

의도야 어쨌든 의욕이 있다는 좋은 일이었으니까.

백한영이 김태식에 대한 평가를 속으로 대충 마친 순간, 김태식이 그에게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8살입니다.”

실제로는 그거보다 더 많았지만, 백한영은 그냥 육체의 나이인 28살을 불렀다.

진실을 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기도 했고.

그냥, 좀 젊어 보이면 좋잖아.

“와. 28살이면 저보다 형인데, 굉장히 동안이시네요?”

“저희 집 유전자가 좀 좋아서요.”

“전 21살인데 그냥 말 편하게 하세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그래. 너도 말 편하게 해.”

붙임성이 좋은 김태식을 보며 백한영은 살짝 피곤해졌다.

솔직히 백한영이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그런 백한영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태식이 재차 입을 열었다.

“형 게이트 공략은 언제쯤 하고 싶어요? 형이 괜찮으면 저는 지금도 되는데.”

“지금 당장도?”

“지금 당장도요.”

“그럼 그렇게 하자.”

그 말에 김태식은 백한영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자신의 자동차에 탑승한 김태식이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백한영에게 물었다.

“형. 이 근처에 C급 게이트 하나 있는데, 여기 괜찮아요?”

“어차피 나는 구경만 하는 거니까.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

“그럼 누가 채가기 전에 바로 등록할게요.”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각성자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어플을 실행시킨 백한영은 근처에 있는 C급 게이트 위치를 확인했다.

‘차로 한 30분 정도 거리에 있네?’

등급이 맞지 않아 공략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메세지를 확인한 백한영은 그대로 어플을 종료한 후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봤다.

차를 출발시키기 전, 백한영을 한번 훑어본 김태식이 말했다.

“형은 무기 같은 것도 없네요? 강화계 각성자예요?”

“비슷해.”

현재 백한영은 아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검을 빠르게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긴 했었지만, 막상 이것저것 알아보니 이게 돈이 여간 깨지는 일이 아니라 잠시 보류한 것이다.

어차피 검이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수준이 아니기도 했고, 잠깐 쓸 싸구려 검에 돈을 쓸 바에는 그냥 맨손으로 다니다 제대로 된 걸 마련하는 게 백배 나았다.

백한영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김태식이 이내 오디오를 조작하며 물었다.

“노래 틀어도 되죠?”

“네 차인데 뭘 허락까지 맡아. 틀어도 돼.”

백한영의 말에 김태식은 바로 오디오를 작동시켰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백한영은 음악을 듣자마자 사레에 들린 것처럼 기침을 했다.

“형? 괜찮아요?”

“괜···찮긴 한데. 그, 저 노래 부른 가수 이름이 뭐냐?”

“아니 형. 백은하 몰라요?”

알지. 아니까 당황했지.

백한영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유명한 연예인인 건 알았는데, 노래까지 불렀었구나.

진짜 바쁘게 살았네?

“형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 있다가 왔어요? 어떻게 20대가 백은하를 몰라요?”

“산에 있다가 오긴 했어. 근데 은하가 그 정도야?”

“요즘 제일 유명한 연예인이잖아요. 티비만 틀어도 나올걸요.”

“그 정돈가.”

이게 백한영도 지난 일주일 동안 정보를 안 모은 건 아니었다.

백한영이 백은하가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걸 아는 것도 정보를 열심히 모은 덕이었으니까.

근데 알아둬야 되는 게, 백한영은 육체 나이만 28살이고 실제로는 그거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손가락을 까딱하면 아랫사람이 알아서 모든 걸 해주는 삶을 너무 오래 만끽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백한영이 모은 정보라고 해봤자, 병실을 들락날락거리던 간호사와 의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은 게 전부라는 소리였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놔두고 말이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정보를 모았으니, 백한영이 백은하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형은 백은하 별로예요?”

“듣기는 좋네.”

“그죠? 제가 진짜 팬인데, 백은하가 데뷔했을 때부터 봤거든요···.”

자신이 백은하를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지 알리고 싶은 건지 아예 팔만대장경을 읊기 시작하는 김태식.

동생의 일대기에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던 백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식의 말을 듣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근데 너 검은 트렁크에 있어?”

“아뇨? 저도 형처럼 무기 안 가지고 다녀요. 왜요?”

“그래?”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이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백한영의 시선이 김태식의 손으로 향했다.

김태식의 손에는 백한영이 익히 잘 아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가 검사라는 뜻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걸 잘못 볼 리가 없는데, 무기를 안 가지고 다닌다니.

뭐 검술을 취미로 익히기라도 했다는 소리인가?

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생각에 잠기는 백한영.

“형. 도착했어요.”

그런 백한영에게 김태식이 게이트 인근에 차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차에서 내린 백한영은 김태식을 따라 게이트가 발생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게이트가 발생한 곳은 서울 외곽의 공용 주차장이었다.

통제된 주차장에 들어선 백한영이 자신의 앞에 있는 검은 구멍을 보며 말했다.

“저건 바로 안 열리네? 저번에 본 S급 게이트는 바로 열리던데.”

“아니 형. 모든 게이트가 그랬으면 진작 나라 망했어요. 잠깐만요.”

김태식이 어디론가 전화를 돌렸다. 게이트 공략을 진행하기 위해 협회 직원을 부른 것이다.

김태식의 말대로 저번에 백한영이 봤던 S급 게이트는 이레귤러에 속하는 이상 상황으로, 보통 게이트는 그런 식으로 바로바로 열리지 않았다.

게이트가 열리기 위해선 일정 시간 동안 차원에너지를 모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김태식이 전화를 돌리고 5분 후. 협회 직원이 주차장에 나타났다.

협회 직원은 자신이 들고 온 장비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게이트에 무언가를 불어넣었다.

바로 차원에너지였다.

“···저래도 돼?”

“그냥 빠르게 열리는 것뿐이라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저 기계 발명되기 전에는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앞에서 텐트치고 기다렸어야 됐는데. 세상 참 좋아졌네요.”

이제 21살인 애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태식아.

그리고 너 각성자 몇 년 차야. 정말 텐트 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려 본 적 있긴 해?

김태식의 발언에 백한영이 속으로 어이없어 하고 있을 때, 게이트를 활성화시킨 직원이 장비를 회수하며 말했다.

“10분 후면 열릴 거예요.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게이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대답한 김태식은 협회 직원이 떠나자마자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형 잘 봐요. 제가 각성자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제대로 보여줄게요.”

“화이팅.”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이 굉장히 의욕적인 목소리로 응원을 했다.

응원에 힘입어 김태식이 몸을 이리저리 풀었다.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구르륵.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마치 개구리를 닮은 몬스터가.

개구리라기엔 덩치가 너무 크긴 했지만, 생김새 자체는 그랬다.

“프로글인가. 체액 묻으면 짜증 나는데.”

거대 개구리, 프로글을 보며 작게 중얼거린 김태식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백한영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김태식을 바라봤다.

각성자가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얘기를 조금 전으로 돌려서, 백한영은 김태식을 보자마자 검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시선이, 습관과도 같은 간격이, 발달한 근육이.

그리고 손에 박힌 굳은살이 김태식이 검사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백한영의 예상과는 다르게 김태식은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덕분에 백한영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잘못 볼 리가 없으니 김태식은 검을 쓰는 사람이 분명 맞는데,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하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백한영은 생각했다.

자신이 틀릴 리 없으니 이건 둘 중 하나라고.

김태식이 거짓말을 했든가, 아니면 취미로 검을 익힌 사람이든가.

하지만 백한영의 예상과는 다르게 김태식은 둘 중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백한영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취미로 검을 익힌 것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프로글이 이내 김태식을 발견했다.

프로글이 볼을 부풀리며 공격을 준비했다. 그와 동시에 김태식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달려 나가는 김태식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불꽃을 담금질해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디자인의 검이.

각성 능력. 마검소환. 적련.

마나를 최대로 끌어올린 김태식이 달려간 기세를 담아 검을 휘둘렀다.

검날을 따라 흘러나온 불꽃이, 그대로 프로글에게 쏘아졌다.

화르르륵!

불꽃이 프로글을 장작삼아 거세게 타올랐다.

개구리 형 몬스터인 프로글의 약점은 불.

심지어 방금 공격은 그냥 불도 아니고 마력이 듬뿍 담긴 불꽃이었다.

프로글이 버틸 수 있을리 없는 것이다.

털썩. 숨이 끊어진 프로글이 땅에 쓰러졌다.

마검을 역소환한 김태식이 몸을 돌려 백한영을 바라봤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방금 전투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형 어땠어요?”

“어? 어. 괜찮네.”

김태식의 물음에 백한영이 적당히 대답했다가, 궁금한 게 생겨 입을 열었다.

“너 등급이 뭐였지? D?”

“C급이요. 근데 이게 제가 아직 실적이 없어서 그렇지, 실력 자체는 B급이라고 하더라고요. 협회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B라고?”

“제가 그 정도예요 형.”

백한영의 반응을 놀라움으로 해석한 김태식의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

김태식의 나이는 이제 21살. 아직 관심이 많이 고픈 나이였다.

입꼬리가 제어가 안 되는지 입가를 꿈틀거리는 김태식을 무시한 채 백한영은 조금 전의 전투를 복기했다.

프로글이야 실력 차이가 너무 났으니 논외였고, 대부분을 김태식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데 사용했는데.

‘···그게 B라고?’

백한영이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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