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다(3)
“······.”
“······.”
돌아가는 차 안은 매우 조용했다.
말이 없어진 백은하와 동생의 눈치를 보는 중인 백한영이 원인이었다.
백한영은 눈동자를 굴려 백은하의 입가를 살펴봤다.
티가 나지 않게 약간이긴 했지만, 입이 삐죽 나와 있었다.
‘삐졌구나.’
백은하가 들었다면 어이가 없어져 째려볼 것 같은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백한영.
물론 백은하가 살짝 토라진 건 맞았지만, 그거 때문에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아니었다.
현재 백은하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정신없던 와중 오빠가 말도 없이 사라져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간 순간, 하늘이 갈라지는 걸 목격했으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입이 살짝 나온 건 오빠라는 인간이 동생을 걱정시켜 놓고 예전에 이거 맛있게 먹지 않았냐며 태연하게 뻥튀기를 들고 나타난 게 크긴 했지만, 아무튼 그거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진짜 안 먹을 거야?”
“···저녁 먹어야 하잖아.”
백한영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백은하가 그대로 자동차의 속도를 올렸다.
백은하가 단단히 삐졌다는 걸 깨달은 백한영이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댔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백한영과 백은하를 태운 자동차가 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음.”
차에서 내린 백한영이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굉장히 익숙한 아파트였다.
“아직도 여기 살아?”
“왜? 우리 집이 어때서?”
“아니 그냥. 좋아서 그래.”
백한영은 아직도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옛집에 거주하고 있는 백은하에게 뭐라고 하려다, 급하게 말을 돌렸다.
자신의 몸을 치료하느라 빚이 5억이나 생긴 시점에서 백은하에게 주거지를 고를 자유가 없었을 게 뻔하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그럼 이모도?”
“같이 살지.”
“이모가 왜 아직도 결혼을 못 했는지 알 거 같기도 하네.”
다 큰 조카를 아직도 데리고 사니까 남자친구를 못 사귀지, 라고 생각하며 백한영은 백은하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8년 전의 기억을 되새긴 백한영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향수에 젖으면서.
그리고 말했다.
“기억에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네?”
벽지부터 시작해서 바닥, 가구, 가전제품까지 싹 다 바뀌어 있는 집은 백한영의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리모델링 좀 했어.”
혹시 백은하가 부모님과의 옛 추억 때문에 이 집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진짜 말 그대로 이사할 돈이 없어서 이곳을 쓰고 있나 보네.
백한영이 각오를 다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오빠가 돈 빨리 벌어다 줄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가구까지 싹 맞춤인 걸 보면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얼른 돈을 벌어서 이사를 시켜주든가 해야겠다.
집을 두루두루 살펴본 백한영은 이내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별생각 없이, 그저 자신이 지낼 곳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
백한영은 순간 시간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무슨 말이냐면, 무림세계에서 보냈던 수십 년의 시간이 사실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순간 했다는 얘기였다.
백한영이 무림세계로 이동했을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방.
먼지가 살짝 쌓여 있었긴 했지만, 기껏해야 일주일 치 정도에 불과했다.
마치 누군가가 딱 일주일 전부터 청소를 그만둔 것처럼.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 있는 백한영에게 백은하가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자기 방 멋대로 건드리면 화나잖아? 오빠 취향도 잘 모르는데 멋대로 리모델링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건 원래 자기가 직접 골라야.”
“은하야.”
“···응.”
“배고프다. 밥 먹자.”
백한영의 말에 백은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퇴원 기념으로 저녁을 만들어 주기로 한 만큼 평소보다 힘을 살짝 더 써 음식을 조리한 백은하는 모든 음식을 식탁으로 옮긴 후 백한영을 불렀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백한영은 백은하의 부름에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백한영이 식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늘 혹시 이모도 와?”
“이모는 한국 들어오려면 꽤 걸린다고 했잖아. 갑자기 왜?”
“둘이 먹을 양은 아니어서.”
“얼마나 많다고 그래. 얼른 앉아서 먹어.”
백은하의 말에 백한영은 일단 숟가락을 들었다.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백은하를 살짝 쳐다본 백한영은 우선 김치찌개를 입에 넣었다.
“어때?”
“맛있네.”
백한영은 무림세계에서 절대자였다.
상상 속의 음식이 먹고 싶다고 말만 해도 요리사가 비슷한 요리를 100가지 준비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소리다.
당연히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또한 요리사에게 재현시킨 지 오래였고, 실제로 백한영은 귀향의 술법을 발동시키기 전날까지 김치찌개를 먹었었다.
그래서 백한영이 김치찌개를 오랜만에 먹었다, 막 이런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백은하의 김치찌개엔 울림이 있었다.
“요리 잘하네.”
“MSG 좀 팍팍 넣었어. 오빠 퇴원 기념이라.”
“요리 잘하네.”
백한영은 백은하가 차려준 반찬을 하나씩 집어 먹었다.
하나 같이 다 맛있었다.
백한영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백한영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백은하는 15살 중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한영과 백은하의 보호자였던 이지선이 일을 하느라 바빴기에 식사 같은 건 전부 백한영이 차려줬었는데, 그랬던 백은하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저녁을 만들어 주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백한영이 말했다.
“고마워 은하야.”
“뭐가.”
“그냥 이것저것 다. 우리 은하 다 컸네?”
“예전에 오빠가 밥해주던 백은하가 아니라고.”
백한영의 칭찬에 백은하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의기양양해져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백은하를 보며 백한영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게이트가 열리는 바람에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려는 것이다.
“근데 은하야.”
“응.”
“너 무슨 일 있어?”
“일? 무슨 일?”
백한영은 귀환 첫날에 봤던 백은하의 어두운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번에 너 막 어두운 표정으로 문자 보내고 그랬잖아. 그거 왜 그런 거야.”
“아. 그거.”
백은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부모님에게 잘못한 걸 들킨 어린애처럼.
“별거 아니야. 오빠는 신경 안 써도 돼.”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말 해. 무슨 일이야.”
“아. 진짜 별거 아닌데···.”
백한영의 계속된 물음에 백은하는 말끝을 흐리고는 천천히 이어 말했다.
“그냥 빚 때문에 그래.”
역시 빚 때문이었나.
“얼마라고 했지. 5억?”
“응. 근데 진짜 별거 아니야. 오빠 나 백은하야 백은하. 내가 한 달에 얼마 버는 줄 알아?”
“얼마나 버는데.”
“5억 정도는 금방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벌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백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게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진짜로 괜찮아서 하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백한영은 이참에 모든 걸 확실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빚은 왜 생긴 거야. 치료비?”
“···효과가 좋다는 치료법 TO가 갑자기 나는 바람에 급전이 좀 필요했어.”
“나한테 여태까지 총 얼마나 썼어. 빚까지 합해서.”
백한영의 말에 백은하가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되짚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충 50억 정도?”
“50억이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에 백한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저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나?
쟤가 지금 탑급 근처의 연예인이지 데뷔했을 때부터 그러진 않았을 거 아니야.
생산계 각성자까지 겸하면 가능한가?
백한영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이게 무려 50억 어치의 몸뚱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백한영이 중얼거렸다.
“······돈 빨리 벌어야겠네.”
“돈은 왜 자꾸 벌어야 한대. 내가 오빠한테 쓴 돈이 아까울 거 같아? 그리고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몸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당분간 좀 쉬어. 나 돈 많이 벌어.”
“그냥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그렇게 말한 백한영은 백은하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탁 정리를 도운 후 거실 소파에 가 앉았다.
돈이라.
안 그래도 최대한 빨리 돈을 벌 예정이었던 백한영이었지만, 자신을 치료하는데 50억이 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빨리 벌고 싶어졌다.
백한영은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티비에선 이번 S급 게이트 사태의 영향으로 각성자에 대한 지원 및 혜택이 전폭적으로 늘어날 예정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하는 싫어하겠지만.’
백한영은 저 각성자인가 뭔가가 돼볼 생각이었다.
각성자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들.
몬스터에서 나오는 부산물의 가치가 상당한 만큼 각성자는 대부분이 고수익자였는데.
현대에서의 삶을 제외한 대부분의 삶에서 검을 휘둘러 온 백한영에게 정말 딱 알맞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죽이는 건, 백한영이 제일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근데 나 이미 뭐 하나 잡았잖아. 그건 어쩌지?’
백한영은 오늘 막 따끈따끈하게 잡은 S급 몬스터의 처리를 잠깐 고민한 후 결정했다.
살짝 아깝긴 하지만, 그냥 모르는 척하자고.
S급 몬스터를 잡은 보상을 받기 위해선 우선 본인이 S급 몬스터를 잡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는데, 여기서부터 좀 걸렸다.
증명이 어려워서는 아니었다. 백한영이 S급 몬스터를 잡았다고 믿게 만드는 거 자체는 쉬운 일이었다.
증명을 원하는 즉시 하늘을 갈라버리면 그 누가 백한영의 말을 의심하겠는가.
하지만 백한영의 입장에서 그런 짓을 하기 좀 그랬다.
백한영은 자신의 가진 힘이 어떤 소란을 불러일으킬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백한영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세간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뻔했다.
S급 헌터도 뛰어넘은 EX급 헌터의 등장이라고?
제발 세계를 구해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반응하겠지.
그리고 위의 반응이 나오는 순간 백한영의 일상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유명 연예인인 백은하도 사생활이 없는 수준이겠지만,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관심이 백한영에게 쏟아질 게 분명했다.
집 앞에 깔리는 기자? 그건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아마 전 세계가 백한영 하나만 바라보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지.
국가는 물론이고 대중까지 백한영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주목할 것이었고.
그런 관심은 하지 말라고 미리 경고한다고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포기다.
당장 필요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고.
어차피 각성자 일을 시작하면 돈을 빠르게 벌 수 있는데 굳이 오랜만에 즐기는 동생과의 일상을 망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백한영은 티비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의 일이 결정됐으니 내일 날이 밝는 데로 각성자 등록부터 하면 되나.
백한영이 각성자 일을 한다고 하면 백은하가 반대하겠지만, 원래 뭐든지 허락 보다 용서를 받는 게 쉬웠다.
그래도 오빠인데 너무 뭐라고는 안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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