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다(2)
“퇴원이요?”
백한영의 담당 의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안 것이다.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쓴 의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한영 씨. 지금 깨어난 지 1주일도 안 된 거 혹시 아시나요?”
“벌써요? 시간 참 빠르네요.”
“몸이 너무 망가진 상태라 아직 재활운동도 시작 못 했는데, 퇴원이 될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퇴원 얘기는 왜 꺼내신 거예요?”
“그야. 더는 입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백한영의 말에 의사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며 수많은 환자를 담당했기에 백한영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한 것이다.
‘병원이 답답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퇴원은 안 되지.’
의사가 재차 입을 열었다. 현재 백한영의 몸 상태를 설명하고 왜 퇴원이 불가능한지, 언제쯤 퇴원이 가능한지 말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보다 백한영이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는 게 빨랐다.
“······.”
“어때요?”
“환···자의 몸은 아니네요?”
백한영의 굵은 팔뚝을 보며 의사가 고개를 좌로 기울였다.
이상하다. 분명 근육이 다 퇴화됐을 텐데.
뭐지.
몰래카메라인가?
“분명 침대에 누워만 있으시지 않았나요?”
“앉아 있기도 했죠.”
“재활운동을 시작한 적은···. 아니 했어도 1주일만에 저게 될리가 없는데?”
패닉에 빠진 의사를 보며 백한영은 걷었던 소매를 원래대로 되돌리곤 말했다.
“퇴원해도 되죠?”
*
백한영의 퇴원 소동은 보호자인 백은하까지 불려 온 후에야 마무리 됐다.
정밀검사 후 문제가 없으면 퇴원해도 된다는 쪽으로.
그렇게 백한영은 정밀검사를 받았고.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오빠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니까. 병원에서도 괜찮다고 했잖아.”
“그래도···.”
백은하가 불안한 표정으로 백한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환자복이 아니라 일상복을 입은 백한영을 보자 이상한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백은하가 백한영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백은하가 백한영의 윗도리에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백한영이 당황하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봐.”
백은하가 백한영의 윗도리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배가 살짝 보이도록.
백은하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백한영의 배를 손가락으로 쿡 찌른 백은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로 빨래 해도 되겠네. 이 병원은 헬스장 시설이 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 1주일 만에 복근도 만들 수 있고.”
“헬스는 무슨 헬스야. 그냥 누워만 있었어.”
“피부 상태는 왜 그렇게 좋은 거야. 병원에서 맛있는 거라도 줬어?”
“병원 밥은 병원 밥이더라. 1인실이고 뭐고 가차 없이 맛없던데?”
윗도리를 원래대로 되돌린 백은하가 백한영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오빠. 설마 각성했어?”
“각성은 안 했지.”
“안 했다고? 근데 그 몸이 말이 돼?”
백은하가 사람의 신체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삐쩍 말랐던 몸이 일주일만에 저런 탄탄한 몸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았다.
일반 상식을 벗어난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이면 보통 각성이라는 이상한 게 끼어들어 있다는 걸 백은하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본인부터가 그 이상한 각성자였으니 당연했다.
백한영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각성은 아니야. 각성은.”
“그럼 뭔데.”
“나중에 얘기해 줄게. 얼른 집에나 가자. 배고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백은하에게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각성을 한 게 아니었기에 켕길 것도 없었다.
‘일주일 동안 환골탈태를 조금씩 하긴 했지만, 그게 각성한 건 아니잖아?’
환골탈태는 무공이지 각성이 아니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게 백한영의 논리였다.
정말 딱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수준의 말장난이었지만, 이게 백한영도 어쩔 수가 없었다.
무공이 뭔지 설명하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무림세계에 대한 얘기도 같이해야만 했는데, 그런 무거운 얘기를 백은하에게 굳이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백은하를 따라 그녀의 차에 탑승한 백한영은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이모는 언제쯤 한국에 들어온 데?”
“나중에. 오빠 보고 싶다고 울더라.”
“그럴 거 같아서 이모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일어난 거 말하지 말라고 한 건데.”
“어떻게 그래. 나중에 이모한테 무슨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백한영은 자신의 이모인 이지선을 떠올렸다. 무림세계로 빙의됐던 당시 이모의 나이가 26살이었으니, 지금은 34살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백한영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겨 입을 열었다.
“이모 그래서 결혼은 했어?”
“······그 얘기 이모한테 절대 하지 마.”
“못했구나. 남자친구는?”
“······그 얘기도 하지 마.”
이모에 대한 걸 백은하에게 미리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백한영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한강 다리 위로 접어든 자동차.
그가 체감하기론 수십 년에 보는 한강의 풍경은 썩 나쁘지 않았다.
공기가 나쁜 게 흠이긴 했지만, 이런 느낌도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한 백한영은 시선을 창밖에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일은 좀 어때?”
“어떤 일? 각성자? 연예인?”
“둘 다.”
“음.”
그 말에 백은하는 잠시 고민하고는 말했다.
“둘 다 할만해.”
“구체적으로는?”
“각성자 일은 길드에서 쪼아대서 짜증 나고 연예인 일도 악플이나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있긴 하지만. 응. 둘 다 할만해. 재밌어.”
“그래?”
백은하의 말에 백한영은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첫날에 봤던 은하의 어두운 얼굴은 대체 뭐였던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꺼림칙했다.
이건 물어봐야겠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백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애앵—!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사이렌 소리가 곧 한강 전체로 울려 퍼지는 걸 확인한 백한영이 백은하를 쳐다보며 물었다.
“전쟁이라도 난 거야?”
“오빠는 처음 보겠구나? 게이트 경보야. 가끔 있는 일이고, 이미 각성자들이 전부 대기하고 있을 거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1급 게이트 경보. 1급 게이트 경보. 양화대교 근처에 있는 시민 여러분은 신속히 대피를···.]
당황했을 오빠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던 백은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말을 멈추고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1급 게이트 경보···?”
백은하의 눈이 흔들렸다.
1급 게이트 경보가 떴다는 건 S급 게이트가 열릴 예정이라는 뜻이었으니까.
S급 게이트는 국가적 재난.
한 번 열리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S급 게이트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백은하가 다급히 창밖을 바라봤다.
양화대교 옆. 한강 위 허공.
그곳에, 조그마한 점이 찍혔다.
직후.
조그마한 점이 마나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한강 위를 뒤덮는 거대한 구멍으로 모습을 바꿨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S급 게이트의 위용에 백은하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지금 이곳엔 백은하 본인뿐만 아니라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오빠도 있었다.
절대.
절대로 안 돼.
백은하가 재빨리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한영에게 얼른 차에서 내려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자고 말하기 위해서.
“오빠?”
하지만 백은하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텅 빈 조수석만 있을 뿐이었다.
*
백한영은 한강 수면 위에 발을 붙이고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어마어마한 기를, 이 세상에선 마나라고 불리는 그것을 빨아들이고 성장한 게이트가 이윽고 힘들게 무언가를 세상에 꺼내려 하고 있었다.
—————!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몸체가 한강에 떨어지며 거대한 물결이 일었다.
괴물이 포효를 내질렀다. 괴물의 포효를 정면에서 받으며 백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기하게도 생겼네.’
곰벌레를 몇십 미터의 크기로 키우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백한영이 보기엔 그랬다.
물론 생긴 것만 그렇고 놈이 안에 품은 기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긴 했지만.
무림세계에서 대요괴라고 불렸던 놈들과 비슷할 정도의 기운을 품은 거대 곰벌레를 바라보던 백한영은,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여기가 무림세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팔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 일이 끝나면 검부터 구하던가 해야지 원.’
이미 옛날 옛적에 검이 필요 없는 경지에 오른 백한영이었지만 막상 검이 없으니 허전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한순간도 검을 몸에서 떼어내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거대 곰벌레의 입 주변에 어마어마한 마나가 모이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S급 몬스터답게 다짜고짜 주위를 무차별로 공격하려는 거대 곰벌레를 보며 백한영은.
마음속에 있는, 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
서울 모처에 있는 게이트대책본부 회의실.
그곳에서 부하의 보고를 듣던 본부장이 신음을 내뱉었다.
“으음···.”
부하가 가져온 자료를 재차 훑어본 본부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가 또 발생할 수도 있다고?”
“그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본부장은 머리가 아파 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S급 게이트가 매우 잘 해결됐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은 말 그대로 천운.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이번과 똑같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본부장 직위를 내려놔야만 했다.
본부장이 말했다.
“이유는?”
“차원균열의 크기가 급속도로 커진 게 이유긴 합니다만.”
“갑자기 크기가 커진 원인은 알 수 없다 그 얘기인가.”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8년간 여러 일을 거치며 안정됐던 차원의 균열에 문제가 생긴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했다가는 8년 전의 대공황이 재현될 수도 있겠어.’
처음으로 게이트와 인류가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우울한 표정을 짓던 본부장이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해결한 사람은 찾았나?”
“아뇨. 아직.”
“반드시 찾아. 가서 무릎 꿇고 비는 한이 있더라도 붙잡아야 해.”
그렇게 말한 본부장이 고개를 돌려 회의실 앞을 바라봤다.
본부장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회의실 앞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진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반으로 갈라진 거대 곰벌레와, 그런 거대 곰벌레와 함께 반으로 잘려버린 하늘 사진이 말이다.
충격적인 걸 넘어 경이로운 사진을 보며 본부장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을 찾은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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