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화 (1/117)

프롤로그

딱히 세상이 밉지 않았다.

야망도 없었다.

복수? 조금 하긴 했지만 주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저 검을 휘둘렀다.

계속. 쉬지않고.

그리고 그게, 백한영이 한 세계의 정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

무림세계에 빙의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백한영은 이제는 익숙해진 자신의 몸을 천천히 내려다봤다가, 고개를 들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많은 걸 이뤘지만, 백한영은 이 모든 걸 버리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니. 많은 걸 이뤘기에 더욱 돌아가야만 했다.

백한영은 세상에 있는 모든 술사를 긁어모아 만든 법진을 작동시키며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하나뿐인 동생의 얼굴을.

잘 있을까 모르겠네.

귀향의 술법이 빛을 내며 발동됐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백한영도 몰랐다.

근데 그냥.

그냥 좀 돌려보내 줘라.

이 정도면 많이 했잖아.

법진에서 나오는 빛이 세상을 덮는 걸 느끼며 백한영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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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다(1)

어렸을 때 백한영은 몸이 약한 아이였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약했다.

열사병에 걸리는 건지 더위를 먹는 건지, 여름만 되면 병원에 꼬박꼬박 입원했었거든.

그때 모은 쿠폰을 사용하면 한 번쯤 공짜로 병실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라진 옛 추억에 불과하긴 했다.

백한영도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게 병원 천장이 아니었다면 옛 추억을 굳이 돼새김질하지 않았을 것이다.

“으···.”

백한영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 몸에 신음을 냈다.

예상했던 패턴이었기에 백한영은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상반신만 일으켜 세웠다.

오래전 백한영은 무림세계에 빙의했다.

독약을 먹고 죽은 사람의 몸에 빙의된 순간 백한영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자신의 원래 몸은 어떻게 됐을까'였다.

원래 내 몸은 어떻게 된 걸까.

지금 차지한 몸의 주인이 대신 빙의됐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식물인간이 됐을까?

생각으로만 알아낼 수 없는 문제였고, 그래서 금방 잊어버린 의문이었지만, 그러한 의문은 백한영이 고향으로 귀향하고 싶어졌을 때 다시 떠올랐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소리인데.

만약 원래의 몸이 이미 백골이 됐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막 무림세계에 빙의됐던 백한영은 알아낼 수 없는 문제였지만, 저 생각을 했을 당시의 백한영은 세계의 정점이었고.

손가락만 까딱해도 답을 알려줄 사람이 널려있었다.

그렇게 휘하에 있는 술법사들을 모은 백한영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오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영혼의 끈이 어쩌고, 항상성이 어쩌고 어려운 소리를 했지만, 요컨대 현실의 백한영의 몸이 살아 있는 상태라고 술법사들이 말한 것이다.

그 뒤로는 뭐 일사천리였다.

친히 서역까지 출동해 진정한 의미로 세상의 모든 술법사를 긁어모은 백한영은 귀향의 술법을 발동시켰고.

이렇게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백한영은 상반신을 일으킨 상태로 주위를 둘러봤다.

넓은 방이 보였다.

사람은 없었다. 1인실이라는 뜻이다.

‘······이모가 돈이 많았던가?’

백한영은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갈 곳을 잃은 자신과 여동생.

그런 우리를 받아준 이모.

이모는 방송작가였다. 그래서 돈을 안 버는 건 아니었지만, 막내였기에 월급 자체는 적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 당시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진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무림세계에서 보낸 시간만큼 흐르진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아무리 현대의학이 좋아졌다고 해도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이 살아남았을 리 없었으니까.

즉 아무리 길어도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는 얘기인데.

고작 10년 만에 막내 방송작가가 이런 1인실을, 그것도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이 계속 쓰게 할 정도의 돈을 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됐다.

돈 많은 이모부라도 생겼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백한영은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해 볼 게 있었다.

백한영은 무림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첫 살인의 충격 같은 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은 아직도 생생했다.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것처럼.

그래서 백한영은 무림에서의 일이 한낱 꿈이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무림에서 겪은 모든 일이 정신병자의 망상일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확인이 필요했다.

그 모든 게 현실이었고, 망상이 아니라는 확인이.

백한영이 손가락을 세웠다.

현재 백한영의 몸은 극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백한영의 예상대로 그의 육체가 약 8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만 있었으니 백한영의 몸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수준이었지만, 이런 몸으로도 백한영은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육체는 비록 초기화됐지만.

한 세계의 정점에 이르렀던 정신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백한영이 의지를 세웠다.

그건 혈겁을 일으켰던 괴물을 막기 위해 세웠던 의지기도 했고.

그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던 흑막을 베기 위해 세웠던 의지기도 했다.

마음속에 있는 검을 검집에서 뽑아낸 백한영은, 그대로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그었다.

땡그랑!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철봉이 잘려 나가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오케이. 증명완료.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백한영은 안심한 표정으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 비싼 1인실은 누가 돈을 내고 있는 거냐.”

설마 원래 세계로 돌아온 게 아니라 재벌집 막내아들 백한영, 이런 평행세계로 온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백한영이 하고 있을 때쯤.

드르륵.

누군가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병실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피곤한 표정을 한 채로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손가락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메세지라도 보내는 모양이었다.

하아.

여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 모든 근심이 담긴 한숨이었다.

‘저 예쁜 얼굴로 저러는 건 낭비인데. 안타깝네.’

메세지를 다 보냈는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백한영과 눈이 마주쳤다.

“······.”

“······.”

“어···. 어···. 어?”

처음엔 상황을 이해 못 하던 여자가 이내 눈을 크게 뜨며 손가락으로 백한영을 가리켰다.

여자가 말했다.

“진짜야?”

“가짜는 아닌데요.”

“진짜냐고!”

여자는 백한영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침대로 뛰어왔다.

그렇게 뛰어온 기세 그대로 백한영에게 안기려던 여자는, 그가 환자라는걸 깨닫고 심호흡을 했다.

낯선 여자에게 백한영이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꿈 아니지 이거. 한 대만 때려줘. 응. 확인이 필요해.”

“괜찮으세요?”

“진짜···진짜···꿈 아니지.”

여자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지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하는 여자.

갑작스러운 상황에 백한영은 일단 여자의 등을 쓸어주었다.

‘저러면 이불에 화장 다 묻을 텐데. 내가 청소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한참을 등을 쓸어주자 조금 진정됐는지 오열하는 대신 훌쩍이기만 하는 여자.

이제 좀 대화가 가능하겠네.

백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가만히 있었지만, 아까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정말 죄송한데, 누구세요?”

백한영의 질문에 여자는.

“···야!”

빽 소리를 내질렀다.

*

백한영에겐 5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다.

이름은 백은하.

백한영이 무림세계에 빙의될 당시 15살이었으니 8년이 지난 지금은 23살의 성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백한영에겐 변명할 여지가 있었다.

그 쪼그맣던 애가 성인이 된 것에 더해 화장까지 했는데, 한 번에 못 알아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거기다 백한영은 무림 세계에서 수십 년을 보내기까지 했으니 더욱 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지만.

“어떻게 동생 얼굴을 잊어버릴 수 있어.”

“미안하다니까.”

그런 사정을 백은하는 이해해 주지 않았다.

아니. 이해했지만 그냥 서운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오빠와의 재회에 성공했는데, 정작 오빠는 자신을 못 알아봤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돈을 냈다고?”

“그렇다니까.”

“어떻게?”

“이것저것 열심히 해서 벌었지.”

놀랍게도 백한영의 병원비를 대고 있던 건 백은하였다.

물론 지금은 성인이니 일반적인 병원비 정도야 낼 수 있겠지만, 1인실의 병원비를, 그것도 8년 동안 지불하는 건 현재 백은하의 나이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게. 그게 가능한 세상이 열려있었다.

‘게이트라니. 그건 또 무슨.’

무림세계에 빙의했다가 돌아오니 게이트가 열려있었다.

백한영에게 일어난 일을 한 줄로 요약하면 그랬다.

덕분에 각성자가 된 백은하가 살벌한 병원비와 각종 치료비를 댈 수 있게 됐지만, 그거랑 별개로 어안이 벙벙한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예인이라고?”

“응.”

“네가?”

백한영이 백은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아니 잘 자란 건 맞지만, 연예인 할 정도냐고 물으면 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쁜 얼굴을 어둡게 쓰는 게 안타깝다고 생각한 주제에 굉장히 짠 평가를 내리는 백한영.

친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도 안 되는 평가를 받은 백은하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솔직하게 칭찬하면 될 텐데. 부끄러워하긴.”

“뭘 부끄러워해.”

“알았어 오빠. 그런 걸로 할게.”

“얘가 안 보던 사이에 이상해졌네. 그래서 그 뭐야. 각성자 일은 안 위험해?”

동생이 설명해 준 게이트라는 게 워낙 위험천만했기에 백한영이 걱정하며 묻자, 백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

“왜?”

“생산계 각성자거든. 현장에서 안 뛴다는 말씀.”

“그렇다면 다행인데.”

솔직히 동생이 검을 들고 몬스터를 잡으며 돈을 벌었다고 하면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을 텐데, 그건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심한 백한영이 이내 백은하에게 물었다.

“나한테 돈은 얼마나 썼어?”

“돈? 왜?”

“그냥. 그래서 얼마나 썼어.”

“정확히는 모르겠어.”

각성자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번다. 백은하처럼 희귀한 생산계 각성자라면 더더욱.

거기에 더해 백은하는 연예인이었다. 그것도 생산계 각성자라는 신기한 포지션과 최상위권의 외모 덕에 탑급은 아니라도 그 바로 아래 급은 되는 연예인.

당연히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 위치였지만.

“···빚이 있다고?”

“응···.”

돈을 그렇게 벌고도 백은하에겐 빚이 있었다.

그녀가 돈을 흥청망청 써서는 아니었다.

그냥 백한영이 돈 먹는 하마라 그랬던 거지.

물론 백은하가 단순히 식물인간 환자를 연명시키는 데 모든 돈을 쓴 건 아니었다.

생산계 각성자와 유명한 연예인이 버는 돈은 그렇게 적지 않았으니까.

그럼 대체 왜 빚이 있는 것이냐.

간단했다.

단지 백은하는 백한영이 깨어나는 걸 너무나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부터 생긴 신기한 치료법을 전부 사용해 봤다. 그냥 그런 이야기였다.

“그래서 빚이 얼마나 있는데.”

“5억 정도.”

“많기도 하다.”

백한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약 8년 동안의 젊음을 쏟아부어 번 돈을 다 날리고도 5억이라는 빚이 있는 백은하의 처지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치료비는?”

“그것도 꽤 많이 썼어. 그래서 왜?”

“아니야.”

사실 지금 이게 백한영이 굳이 현대로 돌아온 이유기도 했다.

원래의 육체가 살아있다는 건 식물인간 상태, 혹은 다른 영혼이 대신 육체를 사용 중이라는 얘기였는데.

만일 식물인간 상태라면 누군가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돈을 내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돈을 내고 있는 게 동생이나 이모라면 돌아가는 게 도리에 맞다고, 백한영은 생각한 것이다.

자꾸 돈 얘기를 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동생을 보며 백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돈을 벌 방법부터 찾아봐야 될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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