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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53화 (153/159)

153화

현수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수안궁주가 찻잔을 내밀며 차를 따라 주었다.

“하아~!”

“안 피곤하십니까?”

“세 분을 보고 있으면 피곤하기는커녕 마음이 편합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고 뜨끈한 차를 한 모금 마시었다.

“세분 궁에는 자주 들어가십니까?”

“예, 두어 번씩 들어가서 인사 올립니다. 태후마마와 태비마마께서 위위경의 안부를 여쭙습니다.”

“하하하하, 송구하네요, 가까이 있어도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니.”

“이해하십니다.”

“이해를 해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수는 그렇게 말을 하며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었다.

“위위경, 말씀하신 국수가 준비되었습니다.”

“들이게.”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하인들이 들어와서는 국수를 상위에 올려 두었다.

“탕에 물 좀 받아 놓거라.”

“예, 위위경.”

하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새로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현수가 젓가락을 들고서 국수를 먹자 연희궁주가 술병을 들어 술잔에 술을 따랐다.

“천천히 드시지요.”

“아, 맛있어서요. 하하하하.”

현수는 국수 몇 젓가락을 들고서는 술을 한 모금 마시었다.

술을 한 모금 마시니 그동안 쌓여왔던 피로가 스윽 풀리는 듯하면서 살짝 피곤함이 느껴졌다.

수안궁주가 술을 한잔 더 따라 주었다.

현수는 국수 몇 가닥 남지 않은 걸 바로 먹고서는 다시 술을 마시었다.

“치워도 될까요?”

김 씨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이 누워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곤히 잠만 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현수는 미소가 지어졌다.

“아, 저…….”

“예, 말씀하세요.”

“양소 장군 일로 그러해서 말인데요.”

양소라는 말에 현수는 몸을 돌아섰다.

“무슨 일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병부시랑 최세보의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둘째 딸 아이의 일로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둘째 딸이 양소 장군을 마음에 둔 거 같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서 의논을 하러 오셨습니다. 나이는, 열여덟이고요.”

“열여덟? 둘째가… 양소를 좋아한다? 하하하하 뭐 좋아할 일인지… 참.”

최세보의 둘째 딸의 나이는 올해 열여덟, 양소의 나이는 서른하고도 둘이니 아직 시집도 갔다 오지 않은 딸을 양소에게 보낸다고 하면 최세보의 성격으로 멱살을 잡아 버릴 인물이었다.

“흠…….”

“다른 사람이랑 혼인하려고 하지도 않고 생각도 없던 차였는데, 양소 장군을 마음에 두고 있다 합니다.”

“두 사람 혼인해도 될까요? 그래도 혼인이라는 게…….”

수안궁주 왕 씨의 물음에 현수는 피식 웃었다.

“못할 거 뭐 있습니까. 양소와 최세보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세 분은 최세보 부인과 잘 의논이나 하여 준비나 해주십시오.”

현수는 이걸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복이도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가 현수는 곧 물었다.

“그 둘째 성격 어떻습니까?”

“좋다고 합니다. 착하고…….”

“겉으로만 좋으면 뭐합니까. 시커먼 속내가 있을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 하였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김 씨는 현수의 말을 이미 이해하였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으라는 법 없습니다. 혹시 모르는 거예요. 둘째 딸 이야기는 천천히 다시 생각해봅시다.”

현수는 처음에는 좋았지만 복이가 생각나니 생각을 다시 고쳐먹었다.

“아니면 내가 입적시켜 버릴까.”

“예?”

“복이 말이에요. 내 족보에 입적을 시킬까 하는 생각입니다.”

“양소 장군이 허락하겠습니까.”

“허락하지 않겠지요. 제 핏줄을 남의 호적에 입적시킨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뭐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요. 혼례도 당사자가 좋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현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몸을 돌아서며 아이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참 빨리도 크네요.”

“예,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수안궁주 왕 씨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위위경 물이 준비되었사옵니다.”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현수는 곧바로 몸을 돌아섰다.

“부인, 내 등 좀 밀어주시겠습니까?”

연희궁주 왕 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위위경.”

현수는 연희궁주 왕 씨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보름 후.

고려군을 지켜보던 거란군 장수들이 침을 꿀꺽 삼키었다.

쇄문도차와 전호피차를 모두 치우고 그 주위에는 정란과 공성병기 석포가 있었다.

산에 모든 나무를 대부분 뽑아 버리고 산을 최대한 평탄화 시켜 놓았다.

“산을 평탄화했다고?”

전면에는 석포를 배치하고 후방에는 정란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늘 충차를 가지고 오는 길은 그대로였다.

양쪽 주위에 모두 같은 형태의 석포가 있는 것을 본 거란군 장수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거란군사들 역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저들은 며칠간 공격할 생각도 없이 먹고 훈련을 하며 쉬고 있을 뿐이었다.

재대로 된 공격, 아니 소규모 전도 하지 않고 있었고, 적장들이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 보일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거란군 장수들은 답답하기만 하였다.

“오늘 밤 기습을 시도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우리가 보고 있던 산들이 없고 모두 평야처럼 변한 곳에 무슨 기습을 하자는 건가. 그냥 놈들이 먼저 공격해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거란군 장수들은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합하. 준비를 모두 마쳤사옵니다.”

“합하, 맹화유가 모두 준비되었사옵니다.”

맹화유가 준비되었다는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초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맹화유 위에 짚단을 올리고 염초를 사용해서 화력을 향상시키려는 생각이었다.

고려에서도 만든다고 하지만 그 양이 미세하여 그동안 남송에서 사 온 염초를 사용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전군, 공격 준비를 해라.”

“예! 합하!”

“북을 치고! 소라를 불어라! 공격 준비 한다!”

“예! 상장군!”

이영령의 명에 고개를 숙였다.

“대열을 갖추도록 북을 치고 소라를 불어 신호기를 올려라!”

“예! 장군!”

단상에 있던 신호기를 담당한 군사 하나가 붉은색 깃발을 들어 올리며 흔들었다.

두웅! 둥! 둥! 둥!

부우우우우~!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소라 소리를 들은 군사들은 시선을 모두 돌렸고 깃발까지 확인한 후에야 빠르게 움직였다.

공성병들은 모두 각 공성 병기가 위치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고 멀리서는 소수레를 이용해서 맹화유를 가득 실어 석포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군사들이 모두 집결을 하며 대열을 갖추었고 상장군들은 모두 단상에서 내려가 말을 타고서 군사들 사이로 앞으로 나아 갔다가 맨 앞에 서서는 말머리를 돌리며 단상에 오른 이의방을 바라보았다.

이의방은 가만히 다시 살피더니 단상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석포를! 날려라! 다 태워버려라! 태워 버릴 수 있는 건! 다! 태워버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의방의 목소리였다.

“석포를 날려라!”

“석포를 날려라!”

석포를 날리라는 명령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석포에 불을 붙이자마자 일제히 은성으로 석포를 날렸다.

후우웅~!

기름 항아리가 은성으로 날아갔다.

쨍그랑!

화아악~!

기름 항아리가 성곽으로 떨어지면서 깨지자 맹화유와 염초로 인하여 화력이 배가 되었다.

“으아아악!”

제대로 맹화유에 맞은 군사들이 불이 붙었고 삽시간에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가득히 군사로 성곽을 메꾼 탓에 성곽에 서 있던 병사들의 피해가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부, 불을 꺼라! 불을 꺼라!”

거란군 장수들이 외쳤다.

하지만 미친 듯이 기름 항아리가 날아오는 탓에 불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거란군은 뒤엉키고 뒤엉켰다.

미리 준비한 솥에 끓는 기름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기름이 쏟아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였다.

“으, 으아아아!”

삽시간에 불이 붙었고 불을 피해서 성곽 밖으로 떨어지는 거란군 그리고 안으로 뛰어내리는 거란군사들이 속출했다.

민가에까지 기름 항아리가 떨어지자 삽시간에 민가에 불이 옮겨붙었다.

불이 다른 민가로 번지자 삽시간에 민가 쪽은 생지옥이 되었고 불을 피해서 달아나는 백성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쉴새 없이 떨어지는 기름 항아리들과 고려군의 전략에 치를 떠는 거란군 장수들이었다.

“흠, 건안성에서 쓰려고 한걸 여기서 다 쓰는구먼. 박 장군.”

“예, 합하.”

“흥화진으로 파발을 뛰어라. 맹화유와 염초가 더 필요하다고.”

“그리하겠사옵니다. 합하.”

박지영은 곧장 자리에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성곽과 성안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걸 이의방은 한참이나 가만히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굉장한 피해를 주었으나 지휘관이 유능해서인지 아니면 수하들이 유능해서인지 천천히 불길들이 잡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의방은 그 광경을 보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전군! 성을 넘어라~!”

“전군! 진격하라!”

상장군들이 외치자 부장들이 군사를 이끌면서 성으로 진격했다.

정면에는 쇄문도차가 앞서고 보병들이 뒤를 따랐고 성문 쪽으로는 충차가 앞서서 나아 갔다.

석포는 군사들이 다다를 때까지 계속 기름 항아리를 날렸다.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거란군 측에서 제대로 불길을 잡아가기 시작하였고, 거란군은 본격적으로 활을 쏘며 고려군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날아오는 화살 공격이었다.

하지만 쇄문도차와 더불어 팽배수에 방패에 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았고, 고려군이 일정 거리에 들어서자 석포 공격이 멈추어졌다.

쇄문도차가 멈추어 서고 쇄문도차 뒤로 궁수와 쇠뇌병이 자리를 잡으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 뒤로는 다연발 쇠뇌가 놓이면서 쉴 새 없이 많은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탁! 탁! 타타탁!

곳곳에서 사다리를 바닥에 놓고 성곽에 걸치기 시작하자 팽배수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란군들은 고려군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곳곳에 기름을 뿌리며 역으로 불을 붙여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끝까지 올라오는 고려군은 야차뢰와 낭아박을 이용해 사다리에서 떨어트리기 시작하였고 창을 가진 거란군은 사다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공격하라!”

상장군들이 선두에 서며 군을 지휘하였고 최원호는 궁수들을 이끌면서 아군을 보호하며 성곽을 향해 쏘도록 하였다.

궁수들은 신중하게 아군이 맞지 않도록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콰아앙!

충차가 성문을 때리기 시작하자 거란군은 곧장 충차로 기름을 쏟아부으며 불화살을 쐈다.

순식간에 충차에 불이 붙었고, 공성 병들은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물을 퍼서는 충차에 불길을 바로 잡았다.

콰아앙! 쾅! 쾅!

고려군은 계속해서 충차로 성문을 쉴새 없이 때렸고, 성문은 쉽게 뚫릴 기미가 안 보였다.

여느 때보다 은성의 성문은 완고했다.

“군사를 더 투입하라!”

“예! 합하!”

박지영은 곧장 소리쳤다.

“군사를 더 투입하라!”

박지영의 외침에 기수가 깃발을 올리며 진격의 신호를 알렸다.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가 울렸다.

뿌우우우우~!

나팔 소리도 함께 들리자 본진에 있던 장수들과 군사들이 앞으로 나아 갔다.

치열하게 펼쳐지는 전투였다.

팽배수들이 거의 다 올라갈 때쯤이면 거란군 창병이 팽배수를 밀어내거나 아니면 창으로 찔러 죽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팽배수들은 그런 것을 보며 겁을 먹기보다는 독기로 뭉쳐서 어떻게든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쓰러진 사다리를 다시 부여잡고서 성곽에 걸치며 올라가는 군사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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