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군사들은 속히 줄을 서서 배식을 받도록 하라!”
박지영이 외치자, 장교들이 군사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의방은 장수들과 먼저 앞으로 나가서는 국그릇에 미리 퍼 놓은 뭇국을 들고, 짚에 싸인 주먹밥 두 개를 받아 들고서 조용한 곳으로 장수들과 이동하였다.
그러더니 주먹밥을 하나 먹기 시작했다.
투툭!
소금간과 참기름의 고소함 덕분에 맛은 기가 막혔다.
“하하하!”
이의방은 먹으면서 웃었다.
이렇게 보잘 것도 없는 주먹밥이 참기름과 소금 두 가지로 훌륭한 맛을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장수들 역시 만족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주먹밥을 먹고 있는 군사들의 표정도 매우 밝았다.
“국물 한번 시원하다.”
“고기라도 들었으면 좋을 텐데, 아쉽네…….”
근처에서 아쉬워하는 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의방은 자기도 뭇국을 먹으면서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 중랑장.”
“예. 합하.”
중랑장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고깃국을 얼마나 먹이나?”
“훈련하다가 잡은 멧돼지, 노루, 사슴 등을 주로 먹입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사골을 공수해 먹이고 있습니다.”
“사골은 서경에서 보내는 게냐?”
“예. 사골은 서경 유수께서 보내주십니다.”
“음, 그렇구만… 자주 고깃국을 먹일 수 있도록 최대한 조치를 취하겠네.”
“명심하겠사옵니다. 합하.”
“그만 가서 먹게.”
“예. 합하.”
중랑장 황호철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합하, 박작성, 오골성까지 들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습니까? 혹여라도 금나라에서 공격이라도 한다면…….”
“전멸(全滅)이지.”
이의방의 말에 장수들은 주먹밥을 먹다가 안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에 이의방은 피식 웃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걱정들 하지 마.”
장수들을 안심시키던 이의방은 주먹밥을 계속 먹기 시작했다.
“흠, 동치미 국물이라도 있으면 좋겠군.”
“바로 대령하겠사옵니다.”
“아니야, 아니야… 뭇국이면 되었어. 마저 들어.”
“예. 합하.”
황호열은 자리로 돌아갔다.
이의방은 주먹밥을 다 먹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군사들에게로 향하자, 박지영은 먹던 주먹밥을 들고 먹으면서 이의방을 따라갔다.
“먹을 만하냐?”
“아, 예!”
이의방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군사들을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
“많이들 먹어. 부족하면 더 먹도록 해.”
“예! 합하!”
군사들은 외치며 답하였다.
* * *
며칠 후.
역수 고개를 떠난 후, 서경에 당도 한 이의방이었다.
서경에 당도하자, 군사들을 쉬게 하였고 서경 유수 조위총과 이의방 그리고 휘하의 장수들은 공성 장비를 살피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금나라와 남송에서 쓰던 석포를 개량하였습니다. 여기에 무거운 모래나 돌을 추로써 사용하는 겁니다. 그럼 이 모래나 돌을 올린 추가 내려가면서 돌을 날리게 되지요. 지렛대 원리인 겁니다.”
“음, 인력(人力)으로 하는 것보다 배의 힘을 내겠구먼.”
“그러하옵니다. 합하.”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이의방은 궁금한 얼굴로 조위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리 오게.”
조위총이 만든 사람을 부르자, 한 사내가 급히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서경 군기시장입니다.”
“이거 자네가 만든 건가?”
“그러하옵니다. 합하.”
“자네가 한번 다시 설명을 해보게나.”
“금나라, 남송에서도 자주 쓰는 석포가 이것입니다.”
“그래, 우리도 사용하고 있지.”
“이 선풍포를 한 번 쏘려면 오십여 명이 필요하지만, 이건 네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이 지렛대를 이용해서 돌리면 줄이 이 바퀴로 당기게 되고, 이 위로 돌을 올렸다가 망치로 내려치면 날아가는 구조입니다.”
“허허허…….”
이의방은 설명을 듣더니 웃었다.
“이거 서경에도 보배가 있었구만… 혹시 이 설계 도안을 가지고 있는가?”
“예. 합하.”
“서경 유수, 설계 도안을 군기감으로 보내서 만들게 해야겠네. 화포를 설치하기 전에 이런 새로 만든 석포를 배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하겠사옵니다. 합하.”
“또한 군기 시장에게 소은병 석 관을 상으로 내리게.”
“예. 합하.”
“감사하옵니다. 합하.”
“하하, 감사하기는… 이런 공성 병기를 만들어 낸 이에게 마땅한 상을 주는 게 맞다고 봐. 나는.”
군기시장은 고개를 숙이었다.
“유수, 이러한 석포는 서경에 설치하였나?”
“이번에 새롭게 만든 것이라, 설치는 아직 못하였습니다. 거란정벌을 마치신다면 본격적으로 생산을 해볼까 합니다만.”
“그래. 설치는 해놓는 게 좋겠지. 그나저나 이 큰 걸 들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혹시 조립식인가?”
“예. 합하.”
군기시장의 답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립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까?”
“몇 번 시험을 해보았습니다만… 평탄한 평지면 오차범위 없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때릴 수 있었사옵니다.”
“음…….”
“군사들이 스스로 조립하기에 앞서 이곳에서 몇 번 훈련을 시켜보는 게 어떻겠사옵니다?”
이의방은 조위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로다. 석포는 얼마나 준비되었나?”
“팔십여 대가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음…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각 상장군은 군사들을 준비하여 석포 훈련을 하도록 하라.”
“예! 합하!”
상장군들은 바로 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경 유수 조위총 역시 군사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서경 부유수 장군 우위선에게 명을 내려 준비를 시켰다.
이의방은 석포를 보다가 각종 준비된 공성 병기를 살피었다.
기병과 보병을 제지할 수 있는 검차, 성문을 깨부수는 충차, 높게 만든 탑 위로 궁수를 올려보내 성곽에 배치된 군사를 상대할 수 있는 정란, 이동식 사다리 운제, 아군을 보호하는 쇄문도차까지 여러 공성 장비들을 살펴보았다.
그중에는 특히 충차가 많이 개량되어 있었다.
뒤에는 사슬이 달려 있었고, 충차의 몸채는 철로 만든 거대한 호랑이가 달렸다.
그야말로 웅장한 충차였다.
“대단하구먼… 철로 호랑이 모양을 만든 충차라?”
이의방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떠하십니까? 일단 만들어 놓고 보니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있어 보이는군… 대고려의 위상이 서려 있어. 금방이라도 잡아 먹을듯한 호랑이의 표정이 사실 같아 보여. 적들이 보면 아우성을 치겠어. 그나저나 이 정도의 크기면 철이 많이도 들어갔겠군.”
“아, 예. 그러하옵니다. 합하.”
“얼마나 만들었나?”
“이십여 개를 만들었습니다.”
“철은 얼마나 들어갔어?”
“팔백 근이라고 들었습니다.”
“팔백 근? 허, 그래. 그 정도는 들어가야 이렇게 웅장하게 만들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들고 가. 팔백 근짜리 호랑이를 수레에 실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이 호랑이를 가져갈 수 있는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오, 그래?”
“이동식 사다리 운제 바퀴보다 좀 더 크게 만든 수레입니다. 조립식 충차도 실어서 나를 수 있습니다. 다만, 군사들의 도움이 꽤 필요할 듯합니다.”
“아, 그래. 이동만 할 수 있으면 되었지. 소는 얼마나 필요하겠나?”
“세 두면 되더군요.”
“그럼 소가 육십 마리가 들어간다는 거군. 식량 대용으로도 나쁘지 않겠어.”
이의방은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한번 더 충차를 바라보았다.
호랑이 머리와 육중해 보이는 몸통, 그리고 꼬리까지 완벽하였다.
그리고 누가 호랑이를 새겨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두꺼운 쇠사슬 세 개를 이용해 매달아 놓았고, 꼬리 부분에도 당겨서 성문을 내리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또한 충차 위에는 군사들을 방어할 수 있도록 각선을 잡은 방패가 있었고, 그 아래로는 잘 깎은 통나무 들이 틀을 잡아 주고 있었다.
“공격할 때 저 가죽 위로 물을 잔뜩 뿌리고 가야겠구먼.”
“그러하옵니다. 합하.”
이의방은 몸을 돌아서더니, 군사들을 불렀다.
“여기 군사들 쭉 서서 사슬 잡고 당겨보라 해봐.”
“예. 합하.”
부장 박지영이 곧장 군사들에게 명을 내리자, 군사들은 사슬을 한 사람씩 길게 부여잡았다.
“아, 잠시만…….”
“응? 왜?”
군기시장이 급하게 멈추게 하였다.
“성문에 버금가는 시험용 성문을 만들어서 몇 번 시험을 한 적이 있사옵니다. 그걸 가져올 수 있도록 윤허해 주실 수 있으시옵니까?”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군기 시장의 표정에 이의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군기시장은 급히 자리를 옮기었다.
얼마 후, 사람들과 수레에 실린 성문 크기에 성문이 실려왔다.
수레에 실린 충차를 내리고는 성문을 단단하게 받칠만한 기둥을 땅에 박기 시작했다.
망치로 말뚝을 박듯이 기둥을 박자, 군기시장이 이의방에게로 다가왔다.
“합하, 이제 되었사옵니다.”
“음, 그래… 시행하라!”
“예! 합하!”
군사들은 외치며 사슬을 부여잡았다.
뒤로 쭈욱 빠지며 사슬을 당기자, 철로 만든 호랑이가 뒤로 쭉 빠지었다.
촤라락!
이때 군사들이 사슬을 놓았다.
콰앙!
성문을 때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군사들은 다시 사슬을 부여잡고 끌어당기며 반복적인 행동을 하며 성문을 강하게 때렸다.
콰앙!
쾅!
콰앙!
군사들은 쉬지 않고서 같은 반복으로 공격하였다.
콰아앙!
소리와 함께 빗장이 부러지는 게 눈에 들어오자, 이의방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전투 상황을 비추어 보았을 때, 팽배수가 충차병들을 방어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이것도 군기시장이 만든 것인가?”
“아니옵니다. 군기시에 소속되어 있는 공성 장비를 맡은 곳에서 개량해서 만든 것이옵니다.”
“하하하, 유수.”
“예. 합하.”
“이걸 만든 이들에게도 상을 후하게 내리게. 또한 군기시에 크게 잔치를 베풀어주게나.”
“그리하겠사옵니다. 합하.”
“뭐,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는데… 내가 너무 나서는 건가?”
“아니옵니다. 합하. 하옵고… 제가 한마디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음, 이야기해 보게.”
“서경에 계시다가 겨울에 출병하는 게 어떠하시옵니까?”
서경 유수 조위총의 말에 이의방은 물었다.
“어찌해서?”
“요동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겨울이 나을 것입니다. 압록강이 얼 테니 말입니다.”
“부교(浮橋)를 만들면 되지 않나.”
“합하, 곧 겨울이 옵니다. 굳이 부교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오실 때를 대비하시지요.”
“유수의 말씀이 옳은 듯하옵니다. 합하.”
뒤에 있던 박지영의 말에 이의방은 잠시 고민하였다.
“이미 장수들과 이야기를 다 끝냈는데…….”
“다시 한번 더 점검하는 게 어떠하시옵니까? 겨울이면 모든 보급도 차질없이 준비시킬 수 있습니다.”
“아니야. 칼을 뽑은 마당에 겨울까지는 기다릴 수 없어. 그 겨울이 되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흥화진에 전령을 띄우게. 부교 공역 어찌 되어가는지 말이야.”
“예. 합하!”
박지영은 곧장 답하며 군사를 불렀다.
이의방은 천천히 서경 군기시를 다시 둘러 보았다.
“화살은 어찌 되어가나?”
“차질없이 준비 중이옵니다. 지금 육위의 군사들이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의 양을 확보를 해두기는 하였습니다.”
조위총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기시는 이 정도면 되었고, 이제 관아로 들어가세.”
“예. 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