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40화 (140/159)

140화

그날 저녁.

“위위경, 이 시간에 찾아뵈어 송구합니다.”

사랑에 들어서 말하는 행수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송구하기는… 앉게.”

“예.”

행수는 현수 옆으로 가서는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 내가 말한 건 가져왔는가?”

“예. 위위경. 염료들을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구해왔으며 창고로 옮겨 두었습니다.”

“고생했네. 혹시 바쁜가?”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며칠만 개경에 좀 있게 아, 그리고 말이야 지난번에 남송에 갔을 때 구하지 못한 작물이 있지 않았나.”

“아, 예.”

“양소 장군이 그러는데 그걸 지과라고 한다는구먼. 남송에 상단이 뜨는 대로 지과라는 작물을 많이 가져오게. 그 작물을 심을 것이니 말이야. 그리고 몽고로 상단을 좀 보내볼까 하는데.”

“몽고로… 상단을 말입니까?”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몽고가 어떤지 좀 궁금해서 말이야. 금나라 사신이 와 있으니, 상단을 이끌고 갈 수 있도록 해주겠네.”

“제가 몽고를 잘 몰라 그러한데… 혹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행수의 물음에 현수는 잠시 생각하였다.

“일단 전부 초원이라고 알고 있어. 바다와 인접하지 않아, 해산물은 구경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유목 생활을 주로 할걸세.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네.”

“그럼 농사는 어떻게 합니까?”

“농사? 농사짓기 어려울 거야.”

행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럼 가지고 갈만한 품목들을 준비하겠습니다. 위위경.”

“음, 그렇게 하게. 몽고에 가면 그들의 습성이라든지 그런 것들 자세히 보고 좀 알려주면 좋겠네.”

“그리하겠습니다. 위위경.”

현수가 그만 가보라며 손짓을 하자, 행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금 사신들은 상서성 예부에 위치한 관청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지난밤은 편하게 보내셨습니까?”

이의방이 완안 올출에게 묻자, 완안 올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부에서 잘 챙겨준 덕에 푹 쉬었습니다.”

“자, 앉으시지요.”

완안 올출은 자리에 먼저 앉았다.

이에 이의방이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역관이 통역하자, 완안 올출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본국의 금상께서는 고려와 확고한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십니다.”

“아, 그러십니까? 귀국의 황제께서 고려를 잘 보아 주셔서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하하, 겸손이 과하십니다. 고려의 국력이야말로 금나라와 개 주인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지난번 제가 보았던 고려의 팽배수라고 하였던가요? 금의 철기 병 못지않은 강군이었습니다.”

“하하하! 어찌 팽배수가 금의 철기병을 당하겠습니까.”

이의방의 말에 완안 올출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수라장이었던 팽배수가 저를 지키고 살렸습니다. 결코 고려의 팽배수는 철기병 못지않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시 고려의 군사 훈련을 내가 볼 수 있습니까?”

“하하, 당연히……!”

툭.

이의방이 말을 하다가 멈추며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경건한 자세로 임하며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는 문극겸이 자신의 발을 툭 친 것이었다.

“합하, 급보(急報)이옵니다!”

“급보라니!”

이의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장 박지영이 급히 이의방에게로 다가와서는 쪽지를 건넸다.

“뭐야? 장계(狀啓)가 아니야?”

“전서구(傳書鳩)로 왔습니다.”

전서구로 왔다는 말에 이의방은 쪽지를 펼치었다.

그리고 또다시 슬쩍 이준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분위기에 취하지 마시고, 생각하며 답을 하십시오.]

짤막하게 쓰여 있는 글을 보고는 이의방이 박지영을 노려보았다.

“박 장군, 지금 장난하나! 급보가 아니잖아!”

“소, 송구하옵니다!”

“나가!”

“예. 합하.”

박지영은 곧장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금나라 측 역관이 현 상황에 관해서 설명하자, 완안 올출은 피식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의방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아, 송구합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이준의와 문극겸은 이 자리가 나오기 전날 저녁 미리 입을 맞추었다.

이준의는 혹여라도 실수가 있을까 그 흐름을 끊어 놓기에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이의방이 분위기에 취하고 사신의 말을 듣고서 생각 없이 대답하려 할 때면 그 옆에 있던 문극겸이 발을 툭 치기로 하였고, 이준의는 박지영을 시켜 갑자기 조용해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오라고 시켰다.

이의방의 성격을 모를 리 없는 신료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거기에 완안 올출 역시 분위기가 파악되었는지 눈동자를 돌리며 이의방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다시 말하였다.

“상국, 어떻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안된다고 할 걸 알면서도 완안 올출은 확신을 하기 위해 물었다.

“송구합니다만, 어찌 군사 훈련을 쉽게 보여드리겠습니까.”

“아, 예… 백번 이해합니다. 보여주시는 게 쉽지 않으시겠죠. 오히려 더 마음에 드는군요. 이 기회에 저희 금은 고려와 확고한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확고한 동맹을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저희 고려에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역관과 한 사람씩만 대동해서 이야기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완안 올출의 말에 이의방은 흠칫하였다.

‘저 둘 중의 하나는 남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완안 올출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음, 맞는 말씀이십니다. 우복야.”

“예.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사람이 적은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합하, 말씀들을 나누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염신약까지 말을 하였다.

“이 자리는 군부의 장수들이 낄 자리가 아닌 거 같습니다.”

두경승 역시 자리를 나가겠다고 말을 하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네들도 그만 나가게.”

“예. 위위경.”

현수의 뒤에 서 있던 정균, 천시호, 악정, 양소도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완안 올출이 현수를 바라보더니, 이의방에게 물었다.

“혹시 아드님 되십니까?”

“아닙니다. 위위경입니다. 황실 친위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후계자이지요.”

“하하, 그렇습니까? 지난번에 보지 못한 듯한데요?”

“아,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미리 소개하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이렇게 볼 수 있으니, 이야기하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지요.”

완안 올출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러시지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고려와 금나라가 확고한 동맹을 맺는다면 금나라에는 저희 고려에게 무엇을 주실 겁니까? 동맹이라는 게 서로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외람되지만, 남송의 사신을 먼저 만나셨을 때 남송의 사신이 뭐라고 하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그의 상응 하는 것을 내어드릴까 합니다. 물론 남송에게 위해를 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완안 올출의 말을 듣던 이의방은 말하였다.

“금을 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송의 경동 동로를 고려와 함께 치기를 원하더군요. 그리고 그 경동 동로의 반도를 고려에 내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동 동로의 반도를 내어드린다는 것을 약조한다는 문건을 가져오겠다 하였으며 더불어 남송의 황족 한 명도 고려로 보낸다고 하더군요.”

완안 올출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원수, 저도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금나라가 어째서 그렇게 많은 재화를 들여서 저희 고려에 군을 청하신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금나라로 갔던 상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금나라의 사정이 좋지 못하다고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재화를 주고 군량과 보급품까지 지원하겠다는 말을 들어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의방의 말에 완안 올출은 거침없이 답해주었다.

“모두가 우리나라의 폐하 생각이셨습니다. 나날이 강대해지는 고려를 유심히 지켜보시다가 남송이 공격한 틈을 타서 내정을 좀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보시면 될까요? 그 틈을 이용해서 고려에 사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역관의 말을 들은 이의방은 피식 웃었고, 듣던 현수는 살짝 식겁했다.

“솔직히 고려의 선황제께서… 돌아가신 이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완안 올출의 말에 이의방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하였다.

“금나라는 각국의 내부 사정을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알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희 폐하께서 고려의 변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으셨지요. 그런데 갑자기 고려가 몇 년간 암흑기를 보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번성해지더니, 지금의 고려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고려의 힘을 보고자 군을 청하신 것도 있으십니다.”

“하면… 태원수께서 고려를 보시기에는 어떠하십니까?”

“처음 고려군과 조우(遭遇)하였을 때는 고려군들이 겁쟁이들로 보였습니다만… 비로소 고려의 군사력은 금나라의 비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전투에서요. 폐하께서는 지금의 고려 군세를 가지고 요동을 공격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

완안 올출의 말을 들은 완안형은 깜짝 놀랐다.

너무나 거침없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신의 아버지 행동에 말이다.

현수 역시 완안 올출의 말에 거짓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군세를 가지고 저 요동 남부 연안 일대를 수복할까 생각하였습니다. 거란족이 있으니까요. 한때는 요동 전체를 수복할까 하였습니다.”

이의방의 말을 듣던 완안 올출은 화를 내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고려에 오기 전 황제와 나눈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군요.”

담담하게 대답하는 완안 올출이었다.

현수는 완안 올출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듣다 보니 이제는 긴장이 되었다.

“저는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온 것이고, 모든 전권(全權)을 위임받아 왔습니다. 상국 합하께서는 이 고려와 모든 국정을 책임을 지는 분이 맡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위로는 황실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다스리니,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이자 재상이지요.”

“그럼 제가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요동을 내어드리지요.”

“아버지!”

완안형이 소리치며 발끈하자, 완안 올출은 가만히 있으라며 손짓하였다.

완안형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의방과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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