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거요?”
“글쎄요… 고려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현수가 예부 상서 유응규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사신분들 안내를 잘 해주시지요.”
“아, 예…….”
현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다원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뭐? 정말 남송 사신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어?”
“예. 합하.”
유응규는 늦은 시간에 천동택으로 찾아와 이의방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의방에게 이야기하였다.
“흠…….”
“합하,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지켜보자고. 해금하면 분명 자기들도 손해가 엄청 날 것인데… 금나라를 통해서 거래한다고 치더라도 금나라가 이익을 볼 게 뻔할 것이고.”
“해금하면 조정에서 반대할 거라 하였지만, 남송 사신 이부상서 진우형이 반드시 해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유응규의 말을 듣던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부 상서는 어떻게 보는가? 자네의 생각 말이야. 금나라가 좋겠어, 아니면 남송이 좋겠어?”
“양국의 사신의 말을 들어보고 합하께서 결정하시지요.”
“그래,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나는 예부 상서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네.”
“제 생각은 금나라입니다. 합하께서 다음에 요동을 정벌하려 하신다면… 지금 이 시점의 손을 확고히 잡아야 하는 건 금나라입니다.”
“어째서?”
이의방은 유응규에게 물었다.
“합하께서 처음에 요동 정벌을 말씀하신 이후로 숱하게 생각을 해왔습니다. 금나라 사신과 이야기가 오고 가기 시작하면 합하께서는 금과 손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요동을 내어 달라고 해보시옵소서. 그럼 금 사신으로 오는 올출이 거기에 대해 말할 것이옵니다. 그 이야기가 잘 되면 고려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 그런데 참으로 골치가 아파. 금나라 말이야… 금나라가 정확히 내부의 사정이 좋은지 나쁜지 그걸 알 수가 없어. 다시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는단 말이야.”
“군을 요청하였을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나라 사신이 오면 속 시원하게 한번 여쭈어보십시오.”
“답해줄까?”
“올출이 올 정도면 금나라도 무슨 사정이 있는 듯싶사옵니다.”
“그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자네 말에 일리가 있어. 금 사신이 개경 인근에 도착하였다고 하면 자네가 직접 나가 맞이하게.”
“예. 합하.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나와 한잔하겠나?”
“예. 합하. 주시면 감사하겠사옵니다.”
“하하, 술 한잔 잘 안 먹는 자네가 이렇게 먹는다고 하니 내 마음이 다 편하구만.”
이의방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퉁이로 가서는 줄을 당기며 사람을 불렀다.
* * *
며칠 후, 금나라 사신 일행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올출은 백발인 모습이었지만, 정정한 모습이었고 풍채는 이의방과 비슷하게 널찍한 풍채를 지녔다.
거기에 올출의 옆에는 젊은 장수도 있었는데 올출의 아들, 완안형이었다.
“원로(元老)에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소이다. 오는 길에 불편함은 없으시었소?”
역관이 통역하자, 올출은 답하였다.
“예. 폐하. 고려국에서 보내주신 금오위 군사들의 호위 덕에 오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사옵니다. 더군다나 예부 상서가 직접 마중 나올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대답하는 완안 올출이었다.
“금나라 황제께서는 강녕하시오?”
“예. 폐하. 아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매우 강녕하십니다.”
올출의 말을 들은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원수께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연회를 준비하였으니, 연회장으로 가십시다.”
황제의 말에 완안 올출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자,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예부 상서 유응규가 올출을 안내하며 연회장으로 향하였다.
주악이 울리며 무희들이 춤을 추었고, 올출은 이의방과 나란히 자리에 앉아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항상 이야기만 들었는데… 이렇게 고려 무희들의 춤을 직접 보니 정말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원수. 자, 드시지요.”
이의방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술을 권하였고 한 잔씩들 마시자, 완안 올출은 술병을 들어 이의방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며 주고받았다.
“그나저나 진짜 악비의 아들이 여기 있습니까?”
완안 올출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왼편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붉은색 관복 세 번째 자리입니다.”
이의방의 말에 올출은 자세히 보고 싶은지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에 이의방은 큰 소리로 악정을 불렀다.
“악 소경!”
이의방의 부름에 악정은 시선을 돌렸다.
이의방이 가까이 오라며 손짓하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의방에게로 다가갔다.
“합하, 찾으셨사옵니까.”
“어. 여기 태원수께서 자네를 보고 싶어 해서 불렀네.”
“아, 예…….”
악정은 고개를 숙이었다.
완안 올출이 지그시 악정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악비의 아들 맞네. 이목구비가 또렷해. 하하! 내가 여기서 악비 아들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여진어로 호탕하게 말하는 완안 올출의 말을 알아들은 악정은 고개를 숙이었다.
“나중에 객관으로 와서 한잔하겠나?”
완안 올출이 묻자, 악정은 이의방을 바라보았다.
이의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악정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는 완안 올출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태원수께서 먼저 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니네, 내가 영광이지. 하하하!”
올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악정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상국께서는 저희 금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대국이지요. 남송보다 아주 큰 나라입니다.”
완안 올출은 미소를 지었다.
“상국, 제가 젊었을 때 말입니다. 송의 두 황제와 황족들을 끌고 금으로 돌아가면서 무얼 가지고 금으로 돌아왔는지 아십니까?”
완안 올출의 말에 의의방은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셨습니까?”
“서적과 서화, 황궁의 보물들을 가져갔지요. 그중에는 고서들도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황궁 서고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고서 들이 있습니다.”
완안 올출은 그렇게 말하면서 술을 마시었다.
“남송이 고려에 무얼 제안하였습니까?”
이의방은 올출의 말을 듣고서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은 연회를 즐기시고 다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아, 그렇게 합시다. 오늘은 나를 환대해 주는 날인데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하하!”
완안 올출이 크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리자, 이의방 역시 술잔을 들어 올리며 술을 마시었다.
* * *
한편, 군기감에서 만든 철책을 세밀하게 살피어 보던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수정하면서 만들어 낸 철책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여기 기둥 사이에 철망을 끼었군.”
“예. 그리고 여기 이 철사를 중간중간에 엮어서 더 튼튼하게 보강하였습니다. 위위경께서 말씀하신 높이보다 조금 더 높게 하였고요. 땅에 박아야 하니 말입니다.”
현수는 군기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만들면 함경도와 북계 일대에 설치하는 건 문제가 없겠군.”
“그럼 합하께 이렇게 진행한다고 아뢰면 되겠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이니, 두 사람이 완성되었다고 싶으면 아뢰게.”
“예. 위위경.”
현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 그나저나 화포는 어떻게 되어가나?”
“양 장군과 의논하면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양소 장군이 화포를 설계한 것을 바탕으로 화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보세.”
“예. 이리로 오시지요.”
현수와 군기감장, 정 그리고 양소는 함께 군기감 안으로 들어갔다.
자물쇠 다섯 개를 걸어 잠근 군기감 병기창고로 들어서자, 새로 만든 화포가 눈에 들어왔다.
“성능은 시험해 보았나?”
“아직입니다. 가능하면 합하께서 참관하시는 게 좋을 듯해서요. 그리고 사신이 왔기에 아직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현수는 군기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포를 이리저리 살피어 보았다.
남송의 화포와 고려에서 만든 화포는 크기부터 달랐다.
고려에서 양소가 만든 화포는 인터넷 검색하면 자주 볼 수 있는 천자총통 모양이었다.
“양 장군, 화약은 어찌 되어 가나?”
“차질 없이 차근차근 준비되어 가고 있습니다. 군기감장께서 보내주신 기술자들 덕에 아무 탈 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유황은? 차질없이 들어오나?”
“예. 남송에서 밀거래를 통해 구해오고 있습니다.”
“양은?”
“오백 근 정도 됩니다.”
“그 이상으로 구해봐.”
“하지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초석은 원체 남송에서 금지된 품목인지라… 오백 근도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
양소가 천천히 한마디씩 내뱉으며 말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초석은 내 상단을 통해서 더 구해보겠네. 군기감장, 철은 문제없이 들어옵니까?”
“예. 철은 아무 문제 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철로 화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주물은 어찌 되어 가나?”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남송에서도 만들었을 당시를 기초하여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먼저 훈련해야 하니, 청동 화포 백문을 먼저 만들고 추후에 더 추가해서 만들까 합니다.”
“청동 만들 재료들은?”
“꾸준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옵고… 호부에서 금 삼백 관을 추가로 더 보내왔습니다.”
“그래? 아끼지 말고 쓰게 필요하면 더 이야기하고.”
“예. 위위경.”
현수는 이것저것 군기감 창고를 살피었다.
“위위경, 연회에 안 가셔도 됩니까?”
“지금 연회가 중요한 게 아니네. 이것들이 중요하지. 내가 안 가도 합하께서 계시고, 많은 신료가 있는데 굳이 내가 가서 뭐하나.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와서 자네들이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였구먼.”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위위경.”
“하하하!”
현수는 크게 웃었다.
“우리끼리 나중에 한 잔씩 하지.”
현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아서서 군기감 창고 밖으로 나가자, 양소가 현수의 뒤를 따랐다.
“위위경.”
“왜 그러나?”
“제가 전에 악 장군과 술 한잔 마시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작물을 하나 찾으시려다가 못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 감자 같은 건데… 쪄먹는 거였네. 그런데 왜?”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봐도 지과(地科) 같아서요.”
“어?”
현수는 발길을 멈추어서 양소를 바라보았다.
“뭐, 뭐라고?”
“지과 말입니다.”
“지과?”
“예. 쪄먹고 구워 먹고 할 수 있거든요. 꿀도 발라 먹고.”
“근데 왜 남송에서는 못 찾았지?”
“고구마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몰라 듣고 모른다고 하였겠지요. 긴가민가하기도 하고 애매해서 지과를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그럼 나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던지… 근데 그 지과… 그거 지금 쪄먹을 수 있어?”
“물론이지요. 밤마다 복이와 자주 먹었던 겁니다.”
“지금 남송 가면 구할 수 있나?”
“제가 듣기로는 포감국에서 따로 들여오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포감국? 아, 포감국!”
포감국이라는 말에 현수는 씩 미소를 지었다.
“거기 가면 구해올 수 있나?”
“대리국에서도 먹는 작물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남송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론이지요.”
“고맙네, 양 장군!”
현수는 양소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고려에서 먹는 지과의 맛은 어떠할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