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하하하! 젊은 사람이 기백이 대단하구먼. 우리가 남송과 손을 잡는다면 그럼 우리 고려에 무엇을 주겠는가?”
이의방의 물음에 진우형은 말하였다.
“남송은 금나라의 곡창지대인 경동 동로를 칠 것입니다. 경동 동로를 완전히 수복하면 반도를 고려에 넘겨 드리겠습니다.”
경동 동로라는 말에 이의방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그 반도 일대를 남송이 내어준다면 고려에 있어서는 전라도에 버금가는 곡창을 가지게 되는 셈이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땅이었다.
“합하, 신중하게 생각하시지요. 금나라 사신도 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의방을 너무나 잘 아는 문극겸은 이의방이 혹여나 바로 찬성을 할까 싶어 황급히 이의방의 말을 막았다.
문극겸이 말할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자, 이의방은 정신이 번쩍 드는지 문극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야지… 하하하!”
신료들도 이의방처럼 혹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반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신료들도 있었다.
“합하, 경동 동로는 금나라 입장에서 절대 내어줄 수 없는 영토이옵니다. 그런 영토를 남송이 공격해 되찾는다는 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더불어 남송의 이야기만 듣고 금나라를 협공(挾攻)하다가 일이 커질 수도 있는 문제이옵니다. 남송은 주화파와 주전파로 나누어진 지 수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주화파가 주전파를 돕지 않는다면 자칫 잘못하다간 고려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할 수 있습니다.”
동지추밀원사 염신약의 말에 이의방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그렇지. 자네 말에 일리가 있어.”
진우형은 뒤에서 그들의 말을 통역을 통해서 듣다가 말하였다.
“제가 주화파의 수장입니다.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약조하지요.”
“흠, 이보시오.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도 모르는 거지 않소? 내가 우리 신료들 견해를 들어보니 옳은 소리요. 국가 간의 일도 한 치 앞을 모르는 거 아니겠소이까. 더군다나 전쟁이라는 게 아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부분 아니겠소. 전쟁을 한번 일으키면 고려 전역의 백성이 고생하는데 어찌 전쟁을 쉽게 생각하겠소이까.”
“…….”
“마침 금나라 사신도 고려 땅에 와있으니,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본 후에 신료들과 의논하여 그 답을 내어드리겠소이다.”
진우형은 역관의 말을 듣고는 답하였다.
“말뿐인 약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약조를 하겠다는 말이오?”
“상국 합하께서 남송과 손을 잡으신다고 하시면, 경동 동로의 반도를 내어드린다는 황제 폐하의 문건(文件)을 가져오겠습니다. 더불어 남송의 황족 한 분도 고려로 보내겠습니다.”
이의방은 그 이야기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황제가 허락하겠는가? 다급해서 내뱉는 듯한 말인 듯싶은데… 지금 한 말을 남조의 황제들께서 아시면 어쩌려고 하시오? 그런 무책임한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외다. 만일 정말 그대가 진심으로 우리와 손을 잡고 싶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시구려.”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에 진우형은 물었다.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은… 저희가 먼저 경동 동로를 공격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의방은 진우형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였다.
남송 입장에서 저리도 금을 공격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고 말이다.
대체 무얼 얻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신은 그만 객관으로 돌아가 답을 내어 드릴 때까지 기다려 주시구려.”
이 이상 이의방에게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진우형이 지금 주위에 앉아있는 고려의 신료들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예부 상서 증효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먼 길 오셨으니, 객고(客苦)도 잘 푸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 위위경에게 이야기하면 될 것이오.”
“감사하옵니다. 상국 합하.”
두 사람은 이의방에게 읍(揖)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니, 저렇게까지 나오는 이유가 뭐야? 시원하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의방은 신료들에게 물었다.
“합하, 일단은 북조의 사신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고 생각하시지요. 지금 남송의 말만 듣고 의견을 나누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냥 남송 사신에게 대체 왜 이러는지 물어보면 될 일을 가지고…….”
“그렇지 않습니다. 금의 사신도 왔다고 하는데 물어보면 대답해주겠습니까?”
“예. 금나라 황실이 아직 건재(健在)한데 끝이라니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혹시 몽고로 인해서 금나라가 끝날 거라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요? 수없이 한동안 고전(苦戰)을 해왔다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몽고라는 말에 이의방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응양군 상장군, 서경에 있을 당시 금나라 상인들을 자주 만났다고 하였지?”
“예. 합하. 유수로 있을 당시, 인사차 그들을 만난 적은 있습니다.”
“그럼 지금 남송은 몽고 믿고 금나라 치자고 하는 거야?”
이의방은 이게 사실이면 어이가 없었다.
이에 현수가 끼어들어 물었다.
“내부 사정이 너무 안 좋은 듯하다고 전에 저에게 말한 적 있으시죠?”
“아, 예. 위위경.”
“근데 내부 사정이 안 좋으면… 우리한테 금을 갖다 바칠 일도 없었던 거 아닙니까?”
“없지요…….”
“잠깐만. 이거 지금 북조가 우리 간 본 거야? 수만의 군사의 보급까지 챙기겠다 하였는데 내부의 사정이 안 좋으면 절대 그럴 수가 없는데.”
“합하,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저희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먹이고 보급하고 녹까지 준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저들은 급한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강성해지는 고려를 틈을 타서 노린 것일 수도 있지요.”
북조가 이렇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하는 이의방이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들 생각하고… 폐하께서 명 하신 대로 선관서에서 음식 준비 잘 돼 가는지 자네들이 좀 챙기게.”
“예. 합하.”
이의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위경은 나 좀 보세.”
“예. 합하.”
현수는 곧장 이의방을 따라 나갔다.
이의방의 숙소에 들어서 자리에 앉아 이의방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우형 그자가… 양소의 안 사람과 눈이 맞은 사람 맞냐?”
“예. 맞습니다. 합하, 헌데 어찌 그러시는지요.”
“양소하고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예. 알겠습니다. 이 말뿐이신지요?”
“아니, 너 상단 가지고 있지? 그 상단을 몽고 쪽으로 한번 보내볼 수 있겠냐?”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문제가 있다면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겁니다. 상단을 보내려고 하면 그 준비를 해서…….”
“금나라가 있지 않으냐. 이번에 올출이 오니, 잘 되었다. 올출은 몽고를 누구보다 잘 알 거야. 그를 통해서 한번 시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조속히 상단으로 인편(人便)을 보내겠습니다.”
현수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남송과 몽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남송이 몽고의 사정을 지금 잘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구나. 몽고가 금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손을 잡고 금을 치려고 하는지 분간이 안 되니까 머리가 복잡하구나.”
현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이었다.
수백 년이나 이른 한글 반포와 더불어 말도 안 되는 경제력을 갖춘 고려였다.
거기에 내정문제까지 싹 다 갈아엎어 버린 탓에 고려는 어느 나라에도 꿀리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
특히 저 남송에서 쫓아내듯 보낸 남송판 최무선 양소에, 함경도에서 만난 악정, 그리고 수많은 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았을 인물들까지.
인재(人才)들이 참으로 많았다.
바뀌어 버린 역사를 생각하니, 현수도 머리가 복잡해지고 아파 왔다.
약관의 테무진도 원 역사대로라면 이리저리 열심히 도망쳐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약관(弱冠)의 나이로 부족 통합을 이루고 있다니.
앞으로 이 고려와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지 머릿속이 복잡해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의방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원 역사대로였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믿기 힘들 만큼 고려의 변혁(變革)을 가져왔다.
“현수야… 현수야… 야!”
이의방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 현수는 이의방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게냐?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송구하옵니다. 잠시 생각을 좀 한다는 게…….”
“생각? 무슨 생각을 했는데?”
“아, 별거 아니옵니다.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 너도 생각이 복잡하겠지. 한편으로는 조용한데 밖은 시끄러우니… 거기에 남송이냐 금나라냐 생각도 해야 하고.”
“합하.”
“응?”
“화포개발을 좀 더 당겼으면 합니다.”
“지난번에 호부에서 금병 백관을 달라고 해서 주었는데… 그새 다 쓴 것이냐?”
“아니옵니다. 백관으로는 부족할 듯싶어 말씀드립니다.”
현수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개발하는데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더 필요한데?”
“삼백 관은… 더 필요할 듯합니다.”
“삼, 삼백관?!”
이의방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합하의 자산과 각 신료들이 재산이 모두 호부로 다 들어갔습니다. 일단 그걸로…….”
“아니, 그래도 그렇지… 화포 제작하는데 그렇게 많이 들어가?”
“그냥 만들어서 사용해도 되옵니다. 하지만 철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철이라… 철을 고집하는 이유가 뭐냐? 나도 화포가 궁금해서 지난번에 양소를 불러서 물어는 보았다만, 네가 유독 철을 고집한다면서?”
“아, 예… 화포를 철로 주조를 한다면 앞으로의 철은 다양성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지금은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훗날 철로 배도 만들고…….”
“X친 놈.”
철로 배를 만든다는 소리를 들은 이의방은 인상을 찡그리며 현수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이놈아, 다 널 X친놈으로 볼 거다. 무슨 철로 배를 만들어… 쯧.”
혀를 차며 한심하게 현수를 바라보는 이의방이었다.
“그냥 그렇다고 치시죠. 하하하!”
“그래, 그렇다고 치자. 철로 만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기는 한데…….”
“합하, 항시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저를 믿어 주시면 아니 되겠사옵니까?”
“내가 너를 안 믿던 적 있더냐? 그냥 청동으로 만들면 어떻나 싶어서 그렇지. 양소의 말로는 포문을 깎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더구나. 조금만이라도 오차가 나도 포탄이 나가는데 휘어버린다고.”
양소가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던 걸 이의방에게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내심 양소가 부담을 하고 있나 라고 생각한 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