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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33화 (133/159)

133화

“위위경,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작아서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이는데.”

화약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정균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형님, 상상해보세요. 이 작은 쇠구 안에 철 조각 들이 들어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게다가 이건 무쇠입니다. 무쇠 덩어리가 굴러다니다가 펑 하고 터진다고 생각해보세요.”

현수의 말에 정균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최소한 다리는 모두 작살날 게 뻔했다.

정균은 양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양 장군, 이런 게 남송에 얼마나 있는지 아나?”

“지금은 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남송에 있을 때 병기창고에 약 4천여 개가 비축되어 있었습니다.”

“실패 요인 꼭 찾아서 만들어내게. 남송보다 먼저 이걸 만들어내면 우리가 남송보다 화포 기술이 앞설 것이야. 기술 발전에 엄청난 기여하는 것이라고.”

양소는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반드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또 다른 건 있나?”

현수는 재차 물었다.

양소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설계도를 가져왔다.

다른 걸 보여주며 설명하려 하자, 현수는 피식 웃었다.

“와…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네… 이 사람 이거 진짜 천재야 천재! 하하하하!”

현수가 양소를 가리키며 크게 웃다가 이내 양소에게 직접 물었다.

“이거 이 화포를 이용해서 만든 거지?”

현수가 승자총통을 가리키며 말하자, 양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에 화살을 넣고, 그걸 쏘아 올리는 거잖아.”

“맞습니다. 위위경.”

“위위경, 이 바퀴 달린 건 뭔데?”

정균이 물었다.

“형님, 화차(火車)라는 겁니다. 이 화포에는 여덟 개에서 열다섯 개의 철환이 들어갑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 지금 보고 있는 바퀴 달린 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현수였다.

“철환이 들어간다면서 여기는 왜… 설마?”

“맞아요. 철환에 화살까지 끼어 놓으면 얼마나 화력이 세겠습니까. 이런 화포를 가진 기병이 선두에 서서 내달리면서 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현수는 분명 들떠 있었다.

이런 화차가 수백, 수천 대가 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위위경, 진짜 사람 하나는 잘 데려오셨군요. 정말이지 소름이 끼칩니다.”

천시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내가 데려왔나? 스스로 와준 거지. 이거 남송 황제에게 엄청 고마워해야겠는데? 이런 보물을 고려에 흔쾌히 내주었으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현수의 말을 얼추 알아들은 양소는 미소를 지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그린 설계도를 보여주면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자신의 설계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건 현수가 처음이었다.

“악 장군, 또 다른 거 있나?”

현수는 양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다입니다.”

양소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니, 설계도가 이렇게 많은데… 이게 다라고?”

“나머지는 이 화포에 대해서 세밀하게 기록한 것들입니다. 화포를 설명하면서 기록한 것들을 보여드리며 이야기하려고 하였는데, 위위경께서 화포의 용도와 본질을 모두 파악하신 듯하니 기록은 보이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아, 설계도가 아니었어? 나는 이거 전부 설계도인 줄 알았는데… 기록물은 나 말고 궁금한 사람들이랑 이야기 나누어 보도록 해. 그러면 이 화포의 문제도 술술 풀리겠지. 혼자 머리 싸매지 말고, 의논하면서 해봐.”

“예. 위위경.”

“참, 그리고 예전에 말했던 청동 말이야… 그거 청동으로 사 오지 말고, 구리와 주석을 사 와서 우리가 직접 합금하면 아니 되는 건가?”

“그래도 됩니다. 시간을 좀 잡아먹기는 하지만… 합금하면 돈은 절약이 되겠지요. 그리고 위위경,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청동은 원래 청색이 아닙니다.”

“어? 청색이 아니야?”

“예. 청동은 원래 불그스름한 빛이 도는 노란색 혹은 주황색 광물입니다. 녹이 슬다 보니 청색으로 변색이 돼서 청동이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청동의 원재료를 수입해오셨다가 헷갈리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아, 그렇구먼.”

현수는 양소의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먼저 준비해야 할 게 화약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관청을 짓는다는 건 둘째치고, 화약부터 갖춰야 합니다. 더불어 취급과 보관에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악정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구하기 쉬울 수 있어도 염초를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송에서 초석을 구하면 좋겠지만, 남송에서 초석을 팔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악 장군, 뭘 그렇게 뜸 들이나.”

정균의 물음에 악정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똥오줌으로 만들어야 해서…….”

“뭐, 뭐!?”

정균은 기겁하였다.

“크하하하!”

현수는 크게 웃었다.

“이 새끼들 봐라. 그러니까 화약은 줬으니… 만들어 볼 수 있으면 만들어봐라? 큰 거 한 방 먹였네?”

“아니, 그럼 그냥 눈 딱 감고 만들면 되잖아?”

“예. 그렇지요. 하지만 그게 양이 얼마나 나올지 모릅니다.”

정균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오래된 초가지붕의 처마 밑 흙이나, 마루 밑 아궁이에서 오래된 먼지, 흙을 구해와야 합니다. 개경… 아니, 전국을 다 파헤쳐서 가져와도 많이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재료보다 월등히 많이 들어가는 게 염초인데… 이 염초를 어디 가서 쓸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악정의 말에 순간, 현수가 머릿속에 어떤 글자가 떠올랐다.

“염초 밭… 그럼 염초 밭을 만들어. 양 장군, 남송에 염초 밭이 있나?”

현수가 양소를 바라보며 묻자, 악정이 곧장 양소에게 통역하였다.

“있기는 하지요. 악정 장군이랑 그 부분에 관해 이야기해본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을 거 같습니다.”

“왜?”

“기후 특성상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장마 때문에, 염초 밭을 만들어도 생산 효율이 극히 떨어질 것 같습니다.”

“흠, 그럼 전문가들이 잘 의논해서들 해봐. 내가 뭐 화약을 아는 것도 아니고… 예산은 걱정하지 마. 알겠나?”

“예. 위위경.”

예상외로 복잡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살다 온 현수였다.

그저 만들 때까지 지원을 미친 듯이 하면,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거기에 고려는 사무역 공무역 모두 다 할 수 있는 나라였다.

이 정도의 경제력이면 수년 안에 철로 화포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그동안 남송에서 개발을 해왔다고 하였으니, 철제 화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시간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전보다는 단축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 * *

달포 후, 금나라 황실에서는 현(現)금 황제와 올출이 대면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올출이 국경에서 돌아오자마자, 황제를 알현(謁見)했다.

금나라 황제는 올출의 노고를 인정하며 위로하였다.

“고생이라니요. 장수가 전선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금의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가 올출의 손을 부여잡았다.

“태원수는 이 나라의 보배이십니다. 이 나라의 반석을 닦으셨고, 저 거대하였던 송을 남으로 몰아내셨지요. 태원수야말로 이 나라의 영웅이십니다.”

“어찌 저만이 영웅이라 하겠사옵니까. 이 금나라를 위해서 피를 흘린 전사들이 진정으로 영웅이 아니겠사옵니까.”

올출의 말을 들은 금의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돌아온 군사들에게 큰 상을 내리겠습니다. 특히 이번에 함께 출전한 완안형에게 내 어떤 상을 주어야 할지…….”

“폐하, 상이라니요. 당치 않사옵니다.”

완안 올출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금나라 황제가 내린다는 상을 거부하였다.

금나라 황제는 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시옵니까?”

“내가 몽고 쪽의 상황을 쭉 알아본 결과… 테무진 그놈이 아직 부족통합을 다 이루지 못하였더군요. 그래서 테무진과 관계가 좋지 않은 부족 하나에게 금나라 벼슬을 내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해서 테무진과 맞서게 하고 국경의 방패막이로 일단 쓸까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좋은 생각 같습니다. 하지만 금나라 벼슬을 준다고 해서 저희를 따르겠습니까?”

“따르도록 해야지요. 지원할 방안을 모두 모색해볼까 합니다. 참, 그리고 지난번 고려군 말입니다.”

“예. 폐하.”

“어떻게 보셨습니까?”

“몸을 사리는 건지 아니면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답답하였으나, 그 정신 없는 틈에도 고려군의 장수들이 지휘하는데 그때는 달라 보이더군요.”

“만약 태원수께서 보시기에… 그 고려군과 우리와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폐하, 당연히 금나라가 이길 것이옵니다.”

올출은 자신 있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지금 짐이 듣고자 하는 것은 숙부의 속마음입니다.”

금나라 황제의 말에 완안 올출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모르겠습니다.”

“예. 저도 참 고민이네요. 고려라는 나라의 속을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개판이었던 고려가 반석 위에 우뚝 서서는 갑자기 우리의 영역이 닿지 않는 함경도를 수복하지 않나, 갑자기 군사력을 증강시키지를 않나…….”

“이제는 고려가 두려워지는 국가가 되어 가는군요. 이런 고려의 상황을 남송 또한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려를 자신의 편에 두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겠지요. 가만히 지켜볼 진회의 아들이 아닙니다.”

금나라에도 진우형의 이름이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그런 진우형을 모를 리 없는 금나라의 황제였다.

“어찌하려고 하시옵니까. 폐하.”

“고려와 금나라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습니다. 이 관계를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숙부님께서 직접 고려에 다녀와 주셨으면 합니다. 듣자 하니, 남송에서 고려로 사신을 보낸다고 합니다. 고려와 남송이 손을 잡으면, 남송이 다시 군을 일으킬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협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군을 일으킨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올출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고려가 아무리 강세라 하더라도 요동성에서 바로 거란족을 앞세워서 친다고 한다면 고려는 저희를 감당할 수…….”

“저 고려가 지금 화약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십니까?”

완안 올출이 금나라 황제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었다.

“숙부께서 그걸 보셨으니,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 봅니다만.”

“남송이 고려에 준 것입니까?”

올출은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물었다.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더군요. 남송의 태상황제가 악비의 아들을 보자마자 칼을 뽑았고, 그걸 고려의 사신이 대신 맞았다는 겁니다.”

악비라는 말에 올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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