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32화 (132/159)

132화

“회전력이 좋다고 하셨지요?”

양소의 물음에 이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어느 물살에도 버틸 수 있는 군함일 것입니다. 평전선이 그러하니까요. 그리고 이 배는 평전선 더욱더 강합니다. 수많은 장수와 의논 끝에 새로 설계한 군선입니다.”

“그럼 이 양옆으로 포를 설치해서 선회를 돌리면서 포를 날려보시겠습니까? 아니면 한 면만 이용해서 화포를 날려보시겠습니까?”

“당연히 선회해야지요.”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상황을 보는 현수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현수가 예상했던 상황을 뛰어넘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힌 이야기들만 오갔다.

어떻게 화포를 운영할 것인지, 그리고 새로 만들 군함이 무게를 버틸 것인지 승선 인원은 어떻게 되는지 세밀한 사항까지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하였다.

양소가 남송의 군함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자, 경수는 그 말을 경청하였다.

‘내 돈이 더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현수는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지금 20문의 청동 화포는 남송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될 듯하다고 양소 장군이 말하네요.”

악정의 말에 이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포를 당장 한번 보고 싶군요. 그리고 가능하면 위력도 볼 수 있을까요?”

이경수가 악정과 양소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자, 악정은 다시 통역하였다.

양소는 악정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

“많은 화약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겪어보지 못한 분들은 당황하실 겁니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천천히 보시지요. 화약 터지는 소리에도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그럼 우선 화약이 우선이겠군요.”

이경수는 양소의 말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꼭 준비가 되면 보고 싶습니다.”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절도사.”

“하하, 실망이라니요. 이렇게 가슴 떨린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이번에 제대로 발명된다면 화포의 위력을 언제고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니, 그 부분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양소는 악정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양소는 현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위위경, 이 설계도를 한번 보시지요.”

양소가 다른 설계도를 꺼내어 보이자, 현수는 두 눈이 커졌다.

순간 양소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이거 완전 남송판 최무선이네?’

“처음에 보여드린 청동 화포를 개선한 화포입니다. 처음에 보여드린 화포의 장전방식은 전 장식입니다. 전장식을 사용하면 노출이 많이 되기에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걸 개선한 화포가 바로 이 화포입니다.”

희한하게 보이는 화포에 다른 이들도 유심히 살피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 화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불랑기네.”

“…예?”

현수는 손으로 작은 통을 가리키었다.

“이게 화약이 넣는 통이야. 이걸 여기에 껴서 발사하는 거지. 양소가 말한 전 장식보다는 보기보다 빠르게 장전을 할 수 있고, 피해도 줄일 수 있어. 이건 후미 장식이야. 그나저나… 이거 만들어 놓고 한 이 삼백 년 후에 기관총 만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뭐, 뭘 만들어?”

“기… 뭐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현수에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흘려들 듣게.”

현수의 말을 못 알아들었던 양소는 악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악정이 현수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자마자 양소는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구상해서 만든 설계도를 보고 단번에 알아차리다니.

일단 설명을 할 때 당시 대충 눈치를 채고는 있었지만, 자기 생각을 그대로 읽어낸 현수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었다.

그동안 고심하고 고심해서 그린 설계도였다.

그걸 한 번 보고 간파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위위경, 최무… 그 사람이 누구인가?”

정균이 현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예? 아, 아니에요. 흘려들으시라니까요. 하하하!”

현수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불랑기포를 만든 후, 최무선이라는 자가 개틀링 기관총을 만들고 엽총을 만들어내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라는 생각 말이다.

특히나 현재 최강의 보병이라고 불리는 팽배수들이 적진으로 달려가서 엽총을 사용한다면?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까 궁금했다.

그런 무기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어떤 나라도 이 나라를 침략이란 생각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위경, 왜 그런가?”

“아, 이런 무기를 만들고 생각해낸 게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말입니다. 이건 남송에서 왜 안 만들었나? 이 정도의 가치면 자네는 거의 공신급이야.”

악정이 통역을 해주자, 양소는 피식 웃음을 보이며 말하였다.

“만들기는 하였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청동 화포처럼 위력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위력을 내지 못해? 어째서?”

“저도 그 원인을 찾아내 보았지만,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몇 번이고 다시 주물(鑄物)해서 새롭게 만들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결국에는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그 원인도 찾아봐. 청동으로 일단 만들어서 한 열문… 아니, 한 오십 문 만들고 이 청동 화포도 한 백문, 이백 문 만들어버려. 호부 상서한테 넉넉하게 예산 받아서 말이야.”

현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보여준 설계도 말고 다른 화포의 종류가 있는가?”

현수가 재차 말하자, 양소는 설계도를 곧장 꺼내어 보여주었다.

“삼연총은 총 세 발이 나가지만, 이건 철환을 사용해서 연발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이야… 이걸로 거란 박살 내기 좋겠네.”

용도도 몰랐지만, 정균은 이를 보자마자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현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었다.

“승자총통, 이거까지 구상하였다고? 하, 참나…….”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런 머리를 가진 사람을 사용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예산 많이 잡아먹는다고 할지라도 이런 천재를 흔쾌히 기술자로 내줄 줄이야.

현수는 너무 놀라서 말도 잇지 못했다.

“자네, 이거 만들고 있는 거… 남송에서도 만든 것인가?”

양소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아니요. 이것도 청동으로 제작인데, 이걸 한번 보여주었더니 이런 화포는 어디에도 쓸데없다고 했습니다. 삼연총이 있으니, 필요가 없다고 해서 개발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끝내 제대로 발사가 안 돼서 예산만 잡아먹는다고 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이 화포는 둔기처럼 보인다고 실용성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양소의 말을 들은 현수는 기가 막혔다.

“아니… 이런 좋은 무기 만드는데 예산 많이 나간다고 개발을 포기시켰다고!?”

양소의 말을 들은 현수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처음에는 주전파 신료들이 강하게 밀어주었습니다. 남조의 금상 황제께서도 밀어주셨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산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병부상서가 바뀌면서 예산을 아예 지원해주지 않기로 한 것이었죠.”

“흠…….”

“물론 계속된 실패로 인해 주전파 쪽에 불신을 주기는 하였지만… 막대한 개발비로 인하여 주화파의 시선에 띄어진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막대한 개발비로 인해 양소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건 지난 남송에서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양소 장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말을 기억하는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마음껏 개발하게. 특히나 이 화포는……!”

현수는 손으로 불랑기포를 가리켰다.

“이 화포를 고려의 주력 화포로 사용할 것이네. 반드시 만들어내게. 철로 말이야.”

현수의 말을 악정이 통역하자, 양소는 다시 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위위경,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겠지만… 철로 만드는 건 아직 이릅니다. 위험성은 배가 되고요.”

“아니야. 무조건 철로 만들게. 훈련용 화포는 청동으로 만들고, 이 화포와 이건 반드시 철로 만들게. 호부에서 재원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그 자금을 댈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게.”

“무슨 말인지 압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재고(再考)해주십시오. 철이 부서지면 재활용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청동보다 더 많은 예산이 깨질 것입니다. 철을 녹였다 다시 만든다면 철의 질이 떨어져 그야말로 잡철이 됩니다.”

양소는 버려질 철을 걱정하였다.

“잡철은 농기구로 만들어서 싸게 팔면 그만이야. 자네 혹… 남송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자네에게 다시 약속하건대 개발에 실패하였다고 해서 자네를 버릴 생각은 없네. 자네를 홀대하지 않을 것이야. 또한, 실패하면 언젠가는 성공을 하게 돼 있어. 자네가 기술자이니, 이 말은 자네가 무슨 말인지 잘 안 것이 아닌가.”

“…….”

현수의 말을 듣자, 양소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위위경의 말씀처럼 반드시 개발하여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현수는 양소의 말을 듣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절도사.”

“예. 위위경.”

“주력 화포가 완성된다면, 군선에서도 사용하는 거로 하시지요. 훈련용 화포를 만들어서 포수를 가르칠 예정입니다. 해군에서도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들 위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위위경.”

“그건 그렇고, 다른 것도 한번 보여줘 봐.”

현수는 양소가 어떤 것들을 또 구상하였을지 궁금하였다.

분명 이보다 더 획기적인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현수였다.

양소는 기대에 부응하듯 다른 설계도를 꺼내어 앞에 놓았다.

도면에 그려진 것은 화포를 통해서 날리는 쇠구처럼 생겼었다.

하지만 그 크기는 화포의 들어가는 쇠구보다 작았다.

현수는 그 쇠구에 뭐가 들어갈지 판단하기 위해 내부를 그린 그림을 보았다.

내부에는 가득 들어찬 화약과 철환 그뿐만이 아니라, 철 조각 같은 게 안에 들어있었다.

‘이게 비격진천뢰의 시초 같은 건가?’

유심히 설계도를 바라보는 현수의 표정을 살피던 양소는 눈치를 보며 그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현수의 물음에 깜짝 놀랐다.

“혹시 이거 무쇠인가?”

“예. 무쇠입니다. 무쇠 안에 든 건 철환과 화약입니다. 그리고 이건 무쇠 조각이고요. 이건 무쇠로 만든 것이라, 단단하기는 하나… 부러지기 쉽고 강철에 비하여 쉽게 녹이 슬지요. 그래서 화포에 사용할 쇠구가 없으면 이걸 던져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만들기도 쉽습니다.”

양소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이게 비교적 만들기가 쉽다는 거지? 그럼 이걸 남송도 사용하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석포를 이용해서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현수는 양소의 말을 듣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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