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합하, 저희가 군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병부상서 이문저의 말에 이의방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만들 거니까 앞으로 참고들 하라고. 그리고 호부 상서.”
“예. 합하.”
“군선을 새로 만들 군선을 서해 해군 절도사 이경수와 의논하여 재원을 만들어 보내주도록 하게.”
“예.”
“그리고 서해 해군 절도사 이경수를 모든 해군을 통솔할 해군 대장군으로 승차시킬 것이네. 해군 대장군은 모든 해군을 통솔하기도 하고, 해안가 일대와 그 일대의 성까지 모두 관할 지역으로 삼게 할 것이야. 또한, 각 6위에 상장군과 같은 정3품의 관직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육위 상장군 직책을 가진 자라고 할지라도 해군에 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관여할 수는 없네. 바다 위에서 싸우거나, 상륙할 때 어떤 상황에서든 해군 대장군의 명을 따라야 할 것이야.”
“예! 합하!”
“더불어 해군 대장군 역시 육군에 관여는 할 수 없어. 다만… 육군과 해군이 함께 훈련하거나 싸울 때는 이견(異見)을 조율하여 함께 움직이는 것은 허할 것이다. 형부 상서는 내가 한 말을 식목도감에서 법안으로 제정하도록 하라.”
“예. 합하. 그리하겠사옵니다.”
“호부 상서, 형부 상서.”
이의방은 두 상서를 콕 짚으며 말하였다.
“강화도에 성을 쌓을까 하는데 전국의 사찰에서 조세를 더 거두어들이게. 그리고 전국에 있는 무당들한테도 조세를 거두어들여.”
“사찰과 무당들… 말이옵니까?”
호부 상서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사찰과 무당을 딱 꼬집어서 말하는 이의방이었다.
이해 못 한 두 사람은 연유를 물었다.
“어째서 사찰과 무당입니까?”
“몰라서 묻는 게야? 아니면 알면서 묻는 게야? 사찰에는 백성이든 귀족이든 가져다 바치는 제물이 얼마야. 거기에 털어서 안 나 올 사찰이 없을까?”
“…….”
“거기다가 무당들은 어때? 허구한 날 점이나 부적이다 굿이다 하면서 귀족들에게 뜯어내는 금액이 얼마야? 그들에게 조세 좀 더 걷는다고 해서 흠이 좀 날 거 같아? 다 가지고 오라는 것도 아니고.”
“…….”
“사찰이든 무당이든 조세를 거두면서 한번 털어봐. 또 뭐가 나올지 알아. 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합하, 함경도는 물론이고 강화도에 성을 쌓고 군영을 짓는데 전혀 조세가 부족하지가 않사옵니다.”
“부족하기 전에 채워두면 좋잖나. 안 그래?”
“예. 합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호부 상서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이에 형부 상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군기감장.”
“예. 합하.”
“함경도와 북계에 설치할 철책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어?”
“현재 진행 중이기는 하오나, 함경도에서 북계까지 모두 설치하려면 철광이 많이 필요할 듯하옵니다. 지금은 틀은 잡았사오나, 제대로 만들려면 각 지방에서 철광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싶사옵니다.”
이의방은 군기감장 남궁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광을 남송이나 외국에서 들여올 수 있을 만큼 들여오게. 들여와서 빨리 만들어봐. 그리고 공부상서. 군영과 성을 쌓는 데 있어서 인력이 더 필요할 테니, 인력 보충해서 함경도로 올려보내게.”
“예. 합하.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대부분의 신료가 알 건 다 알고 있었다.
“합하.”
묵묵히 듣고 있던 현수가 입을 열었다.
“위위경, 말하게.”
“제가 내기로 한 재산 8할 말이옵니다.”
“음… 그게 왜? 물거품 됐으니까 안 내겠다고?”
이의방의 표정이 싹 굳어지자,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강화도 성 쌓는 거에 보태겠다는 말씀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하하하하!”
이의방은 굳은 표정이 싹 가시었다.
“그럼 나도 약조한 것처럼 내 재산 전체를 내놓아 성과 함경도 재건에 보태야지!”
“아, 그럼 저도 약조한 금액을 호부로 보내겠습니다.”
“저도 보내겠습니다.”
순간 영문을 모르는 신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
문극겸이 당황해하며 묻자, 병부상서 이문저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요동 정벌을 하게 된다면 저희가 재산을 좀 내어 보태기로 하였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무산이 되는 거 같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였는데… 다행입니다.”
“예. 맞습니다. 재산이 함경도와 강화도에 성을 쌓는데 보태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허허… 이거 다들 실성을 한 것이오? 호부에도 재원(財源)이 충분한데 어째서…….”
좌복야 이준의는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다른 신료들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뭐, 우리끼리 한 이야기입니다. 좌복야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시겠지요?”
이의방이 이준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도 내놔야 한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준의는 약간 식겁하며 이의방의 시선을 피하였지만, 따가운 이의방의 시선은 계속하여 느껴졌는지 눈을 딱 감고 외쳤다.
“치, 칠할 내겠습니다!”
“오, 그게 정말이십니까!?”
“하하하, 좌복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 또한 좌복야를 따라 저의 칠할을 내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문공께서도요? 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칠할 내놓겠습니다.”
감문위 상장군 최원호도 역시 내놓겠다고 말하자, 곧이어 천우위 상장군 최숙청도 칠할을 내놓겠다며 말하였다.
중서문하성에 모인 신료들이 자기가 가진 재산 일부를 뚝 때어 놓기 시작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이루어지자, 이의방은 짙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에 중서문하성은 훈훈한 기운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 * *
중서 문화성을 나온 후, 현수는 이경수와 함께 위위시에 들어서 악정, 천시호, 정균, 양소를 대면하고 있었다.
양소는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모든 것들을 보여주려 하였다.
위위시 위위경 집무실 아주 깊숙한 곳에 보관한 것들을 이제야 꺼내 보인 양소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수는 화약과 화포를 만들 기술자이자, 육위 장군인 양소를 관료들에게 소개하였다.
“여기는 육위 장군이자, 위위시 소경인 정균, 악정, 천시호, 양소입니다. 양소 장군은 화약과 화포의 개발자이기도 하고요.”
“아, 그렇습니까? 서해 해군 절도사 이경수라고 합니다.”
이경수는 네 사람에게 정중히 인사하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절도사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정균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고, 다른 장수들 역시나 인사를 하며 반갑게 이경수를 맞이하였다.
“자, 그럼 시작하지. 양소 장군,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나?”
현수의 물음에 악정이 통역하자, 양소가 답하였다.
“현재 군기감장, 군기감정이 손기술이 좋고 이해력이 뛰어난 자들을 60인을 보내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모두 이해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화약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여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만 설명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 소송의 말을 악정을 통해서 들은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초부터 확실하게 다지려고 하는 양소의 꼼꼼함이 느껴진 현수는 미소를 짓더니, 품속에서 묵직한 전대를 꺼내어 양소에게 내밀었다.
“해동통보 사백 냥이네. 자네가 앞으로 관리할 사람들이니 아끼지 말고 베풀도록 하게.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미리 저택에서 챙겨온 전대를 현수가 양소에게 건네자, 양소는 고개를 숙이었다.
“화약과 화포 제작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나?”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소 장군이 남송의 관청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세밀하게 짓고 있습니다.”
“하하, 그러한가? 안전하게 짓는다면 다행이지. 완성된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하군.”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관청이 어떻게 지어질지 기대하게 되었다.
“자, 그럼 설계도를 펼치게.”
현수의 말에 양소는 곧장 상위에 놓인 수많은 설계도를 펼치었다.
먼저 첫 장은 남송이 가진 청동 화포였다.
청동 화포를 보며 양소는 설명하였다.
“남송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청동 화포입니다. 무게는 700근입니다. 쇠구와 더불어 단석을 사용하는 화포이죠. 지금 남송에서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화포입니다. 쇠구와 단석을 사용하지만, 철환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철환은 200~250발이 들어가며 이거 연발로 터지는 순간 구슬 비가 내릴 것입니다. 공격해 들어오는 보병은 대부분 초토화됩니다.”
양소의 말을 악정이 번역하였다.
“흠… 철환을 쓰면 구슬 비가 내려 보병을 초토화한다라…….”
이경수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재차 양소에게 물었다.
“군선에서 혹시 사용해본 적 있습니까?”
이경수의 질문에 양소는 고개를 저었다.
“송나라 군선에서 이 화포 한번 써봤다가 배가 완전히 부서질 뻔하였지요. 그 후로는 군선에서 사용하지를 않고, 대신 이걸 사용합니다.”
양소가 이경수에게 다른 설계도를 보여주자, 현수는 깜짝 놀랐다.
‘이게… 송나라에 있다고? 명나라에나 있던 게 아니었나?’
현수가 설계도에서 본 건 삼안총(三眼銃)이었다.
“여기에 화약과 철환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당기면 삼 연발이 나가기에 삼안총이라고 합니다. 군선에서 이걸 사용합니다. 이게 삼안총의 초기의 모습입니다.”
양소는 설명을 하며 다른 설계도를 꺼내어 보였다.
“돌죽창이라고 하는 겁니다. 삼안총의 시초라고 볼 수가 있지요.”
악정이 양소의 말을 통역해주자, 이경수가 물었다.
“이걸 혹시 사용해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활용할 수 있는 포수가 없습니다.”
“그럼 그 포수를 언제 양성하려고 합니까?”
“수 시일이 걸릴 듯합니다. 능숙하게 다룰 포수는 최소 육 개월… 길면 2년은 필요합니다.”
양소의 말을 들은 이경수는 품속에서 가지고 있던 새로 만들 군선의 설계도를 꺼내 펼쳐 보였다.
“낡은 군선은 폐기하고 이 군선으로 대체를 할 겁니다. 기존 해군이 사용하던 평전선을 본떠서 만들었고 재질은 소나무이지요. 그리고 못은 쇠못이 아니라 나무못을 사용할 겁니다. 속도는 비록 느리지만, 이만한 배는 고려에서 활동하기에는 이만한 전선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배라면 송나라 금나라보다 더 강력한 군선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 배에서 화포를 써볼 수 있겠습니까?”
이경수의 말을 악정이 양소에게 전달해 주자, 양소는 유심히 설계도면을 바라보았다.
“이걸… 주력 군선으로 만든다는 말씀이시죠?”
양소의 물음에 이경수는 고개를 끄덕이자, 양소는 붓을 들어 먹을 묻히고는 설계도면에 무언가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현수는 그게 표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포 구멍.”
“예?”
이경수가 현수를 바라보았다.
“양소 장군이 그리는 건 포 구멍입니다.”
“어! 그러고 보니, 임안에서 본 그 구멍이네!”
정균은 그 구멍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양소는 배에 규모에 맞게 포 구멍을 약 15개를 그려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