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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26화 (126/159)

126화

현수의 다음 목표는 형부였다.

형부에 들어서자마자 형부 시랑 송경보를 찾았다.

“어인 일이십니까?”

“자네 나 좀 보세.”

“아, 예…….”

현수는 병부 시랑 때처럼 조용히 형부시랑을 불러 한적한 곳으로 데려왔다.

“위위경, 어인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자네 자식 일로 좀 보자고 하였네.”

“…예?”

형부시랑은 병부 시랑처럼 깜짝 놀랐다.

현수의 입에서 자신의 자식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내 큰 아이가 그러는데, 자네 자식이 내 큰 아이에게 첩의 자식이라고 하였다고 하더군.”

“그, 그게… 무슨!”

“내 자네를 질책하려고 부른 게 아니네. 자네 자식이 내 자식에게 첩의 자식이라고 한 걸 알고는 화가 많이 났지만, 참기로 했네. 이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네. 자네가 자네 자식에게 잘 일러서 그런 말은 하지 말고 평소처럼 지내도록 이야기만 좀 잘 해주게.”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송구하옵니다. 위위경.”

형부 시랑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현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태비의 조카가 현수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렇게 간결하게 말해도 알아들은 눈치였다.

“아니네. 내 잘못도 있으니, 자네 탓을 하는 게 아니야. 집에 가서 잘 이야기 해주고 너무 다그치지 말게. 아직 어려서 그러는 거 아닌가.”

“다시 한번 더 송구하다는 것을 말씀드리옵니다.”

“내 조만간 곧 혼례를 치를 테니, 그때 자네 자식과 함께 와서 축하해 주면 좋겠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위위경.”

현수는 그렇게 말을 하며 양소와 함께 형부 밖으로 나가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수아가 귓속말로 이야기했던 이들을 찾아다니며 말하였다.

* * *

한편, 현수는 양소와 함께 사천감으로 들어섰다.

덜컹!

방문이 열리며 급히 안으로 들어서자, 사천감장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위위경, 언질도 없이 어인 일이시옵니까.”

“아, 사천감장. 오랜만이오.”

“예. 위위경.”

“좌정(坐定)하시오. 내 물어볼 게 있어서 왔으니.”

사천감장은 원래 앉아있던 상석 자리로 가서 앉았다.

“혹시… 공부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응? 아… 아니. 그건 아니고. 황태비 마마께서 혼사를 언제 치를지 사천감에 물었다면서요.”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언제가 좋겠소?”

“황태비 마마께옵서 아주 좋은 날 잡으라고 하시길래… 9월 초하루로 잡았습니다. 황태비 마마께 날을 잡아 올리고 오는 길입니다. 위위경.”

“아, 그래요?”

“예. 위위경.”

“9월 초 하루라… 뭐, 날도 딱 맞은 듯하군. 사천감장도 내 혼삿날 올 거지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위위경.”

사천감장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이에 현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시오.”

“예. 위위경.”

사천감 밖으로 나온 현수는 한숨을 내리 쉬며 양소를 바라보았다.

“애비 노릇하기 힘드네.”

양소는 웃으며 말하는 현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그저 묵묵하게 현수의 말을 들었다.

“자네 혼자서 아이 키우는데 얼마나 고생하였을지 훤하네. 내 큰 아이 때문에 움직였을 뿐인데 이렇게 힘드니… 자네는 오죽하겠나… 자, 이제 가세.”

* * *

중방으로 악정을 호출하였다.

이와 함께 군기감장과 정 상서, 판 추밀원사를 불러들였고, 이의방도 함께 자리하였다.

상에는 개경전도를 펼쳐 놓았다.

“위치는 잡았습니다. 여기입니다.”

공부상서가 가르치는 곳은 남문 밖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고, 견룡, 순검군 훈련장과 매우 가깝습니다. 여차하면 군사를 대동할 수도 있을 것이니, 보안상의 문제는 없을 거로 보입니다. 병부상서께서도 이 부분에 동의하셨습니다.”

현수가 가만히 지도를 바라보았다.

군영이 설치된 곳은 훈련장으로부터 약 오십여 리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에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주위로는 전부 평야 지대입니다. 훈련하기도 좋은 곳이지요.”

“악 장군, 지금 이야기한 걸 양 장군에게 말 좀 해주게. 그럼 전문가가 판단하지 않겠나.”

현수의 말에 악정은 곧장 양소에게 말하였다.

통역을 알아들은 양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어차피 화약을 만들고, 훈련하다 보면 알 사람은 다 알게 됩니다. 화약을 만들고 화약을 사용하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할 뿐이지요. 지난날 남송은 아주 철저하게 관리를 해왔지만,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저 서역 상인들도 화약을 구하기 위해 남송과 접선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음…….”

“지금까지 고려와 금나라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지요. 화약은 그렇다 치더라도 핵심은 화약을 이용한 무기입니다. 화약을 숨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어가야 할 무기들을 소홀히 관리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양소의 말이 끝나자, 악정이 통역을 해주었다.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야…….”

이의방이 말을 거들었다.

“화약을 다룰 때는 엄청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손기술도 좋아야 하지만, 화약을 잘못 만지면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서 주위에 있는 이들이 다 죽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팔다리 하나는 너끈히 날아갈 수도…….”

양소의 말을 악정이 다시 통역하자, 병부상서가 물었다.

“지금 가지고 온 양으로 화포 소리를 군사들에게 익숙하게 할 수 있소?”

“예. 충분합니다. 우선 군사들을 적응시킨 다음, 다른 사람들도 적응시킬 예정입니다.”

“소리의 크기는 얼마나 하오?”

양손은 크게 양팔을 벌리었다.

짝!

손뼉을 치며 양소는 말하였다.

“이 소리의 백배 정도?”

“흠… 박수 소리에 백배? 그럼 고막이 찢어진다는 소리잖아.”

“그렇다고 봐야지요.”

“화포를 써보기도 전에 적응훈련 한다고 화약 다 쓰겠네요.”

“일단 화약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들 의논을 하다가 이의방은 손을 올리었다.

“이건 우리가 전문 아니니 전문가에 맡기자고. 자네들은 저 전문가 확실하게 지원해줘. 해달라고 하는 건 다 해주게.”

이의방이 간단명료하게 말하였다.

“지원은 어디까지 해야 할지요.”

“금나라를 지원한 대가로 받은 금병과 은병이 얼마나 남아 있나.”

“충분하게 남아 있습니다. 함경도에 무슨 짓을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호부 상서의 말에 이의방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원하는 대로 다 줘버려.”

“예. 합하.”

“감사하옵니다. 합하!”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그럼 전문가들끼리 이야기하고… 현수야.”

“예. 합하.”

“언제 출발할까. 강화도 말이다.”

“보름 후에 가시지요.”

“보름이라… 그래, 보름 후에 가자.”

“강화도는 어인 일로 다녀오려고 하시옵니까.”

병부상서 이문저가 이의방에게 물었다.

“강화도 해군 상태 좀 보려고. 아,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일이 공론화될 때까지는 자네들만 알고 있게.”

“예. 합하.”

“요동 남부 연안 일대를 모두 점령할 거야. 거란족을 그곳에서 몰아낼 것이니, 그렇게들 알고 미리 준비만 해놓게.”

“…….”

요동 남부 정벌을 한다는 말에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합하, 정벌이라니요… 잘못하다가는…….”

“금나라 영토지만 금나라 영토가 아니지요. 현재는.”

“나중에 뭐라면 어쩌시려고요. 병부상서.”

“자기들이 관리 못하고 인제 와서 내놓으라고 하면 내주면 안 되죠. 우리에게는 명분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북계에서 무슨 명분을 내걸었습니까.”

“…거란족 몰아내기?”

“그래요. 그 명분을 가지고 거란족이 있는 땅까지 가서 몰아내고 국경을 그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병부상서 이문저였다.

“…억지 아닙니까?”

호부 상서 임극정의 말에 병부상서 이문저가 말하였다.

“억지도 명분으로 만들면 됩니다. 요동 일대는 우리 고려의 영토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고구려의 영토였고, 발해의 영토였으며 우리 고려가 그 고구려를 계승해서 세운 나라가 고려입니다. 그뿐입니까? 발해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 고려가 땅을 되찾아 가겠다는데 금나라가 우리에게 X랄할 이유는 없어요.”

“크하하하하!”

이의방이 병부상서 이문저의 말에 빵 터졌다.

“맞는 말이야! 하하하! 형제뿐인가? 발해의 태자 대광현이 내투(來投)하였고, 발해인 수만 명이 고려로 투탁(投託)하였지. 이남송, 수을분, 선송 등의 수많은 발해인들이 고려로 투탁해왔는데 어찌 보면 병부상서의 말대로 보면 요동은 우리의 영토이지. 아니, 그러한가. 위위경.”

“그러하옵니다. 합하.”

“흠…….”

호부 상서는 여전히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가, 호부 상서.”

“합하, 그냥 말이 나온 김에 차라리 요동 일대를 정벌해버리시지요. 요동 재건하는 비용 때문에 혹시 남부만 정벌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시고, 요동 전체를 정벌하십시오. 재원은 호부에서 만들어내겠습니다.”

“합하께서 요동 정벌을 하신다면 저의 재산 반을 내겠습니다.”

“…….”

뭔가 더 커지는 재원 금액들에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치를 보다가 말을 툭 내뱉었다.

“저는 8할 낼게요.”

“…너도?”

이의방이 놀란 채 현수를 바라보았다.

“제가 가진 재산의 4할을 내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재산까지 내걸며 강행(强行)을 강요하기 시작하자, 이의방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나, 나는… 다 내지 뭐.”

“역시 합하이시옵니다!”

병부상서가 외쳤다.

“그럼 저도 재산의 7할 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진 게 많이 없어서… 전 3할 내겠습니다.”

군기감정까지 재산을 내겠다는 말에 현수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고, 이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이의방은 이마를 긁적였다.

요동 전체를 정벌하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난처했다.

“합하,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하시지요. 당장 준비만 해도 최소 삼 년은 걸릴 일이옵니다. 더불어 함경도와 북계를 잊는 철책은 물론이옵고, 함경도에 성과 군영을 설치해야 하니 말이옵니다.”

“음, 그래… 위위경 말이 맞아.”

“그게 무슨 말이옵니까?”

“응? 아, 어제 위위경과 이야기한 게 있는데… 여진족을 몰아내고 점령한 함경도 말이야.”

“예. 합하.”

“점령했던 함경도 일대에서부터 북계에 이르기까지 철책을 설치하고 성을 쌓아 군영을 설치하기로 하였거든.”

“그렇사옵니까?”

이의방은 맞장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인 김에 자네들 내일 중방으로 한 번 더 들리게. 함경도 일대 지도 병부에 가지고 있지?”

“예. 사본들이 있사옵니다.”

“몇 장 가지고 들어오게.”

“예. 합하.”

병부상서는 고개를 숙이었다.

“그럼 일단 화약과 화포에 관련된 이야기는 악 장군, 양 장군과 의논해서 하는 거로 하자고. 나는 이참에 강화도, 북계, 함경도에 한 번 다녀와 봐야겠어.”

“예!?”

“합하, 합하께서 아니 계시면 누가 조정을 이끄옵니까.”

이의방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현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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